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57화 (306/1,000)

00357  40. 혼슈 전쟁  =========================================================================

왜군 본진에서 기마무사 2천 명을 보내 여진 기병의 뒤를 쫓았다. 기마병 2천은 절대 만만하게 볼 규모가 아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 기마병이 아닌 일본 기마무사라는 점에서 손색이 있었다. 여진 기병 뒤를 따르던 조선 기병 3천이 활을 몇 번 쏘고 달려들더니 단박에 몰살시켜 버렸다. 조선 기병은 바로 뒤돌아서 여진 기병을 쫓아 달렸다.

민영과 민혜가 동시에 혀를 차기에 이민호가 이유를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조선 기병이 멋지게 해치웠다고 생각했지만 여진족 출신이 보기에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듯했다.

“조선 기병들이 고산국 기병이 되고 싶다면 훈련이 더 필요해요.”

“그, 그렇겠지.”

민혜가 뭐가 불만인지 몰라도 이민호가 일단 동의했다. 이민호가 보기엔 충분했지만 조선 기병의 승마 실력이 여진족에 비해 딸리다 보니 여진족 호위들의 눈에 거슬리는 것 같았다.

용병 계약을 맺고 큐슈까지 온 함경도와 평안도 기병들은 정병 또는 토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여진족은 물론 조선의 무관이나 군관, 또는 무과급제자에 비해 승마 실력이 확연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활은 잘 쏘는군요. 하지만 승마실력이 떨어지는 왜군 기마병 상대로는 몽둥이나 맨손이 가장 적합한 무기에요.”

“음. 맞아.”

왜군 기병이 조선 기병과 맞붙은 것은 왜군 기마병이 창원으로 진출하고, 진주목사 김시민이 기병을 이끌고 창원 쪽으로 나가 싸웠다는 실록의 소략한 기록밖에 없었다. 정유재란 때 울산성 전투에서 아사노 요시나가(浅野幸長) 등이 이끈 기마무사들이 명나라 기병과 싸워 형편없이 당하고, 기마병을 구원하러 성문을 나온 보병 장창 방진까지 위기에 빠졌다는 기록이 일본 쪽에서 확인된다.

청나라에서 발간한 <무경칠서 휘해>에서 말을 탔을 때는 적이 10보에서 20보 거리 안에 들어와서야 활을 쏘도록 했다. 조선 후기에 간행된 <병학통>에서는 말을 타고 활을 쏠 때 적이 100보 거리에 들어온 다음 쏘도록 규정됐다.

사수 개인의 실력에 따라, 혹은 전투 상황에 따라 다른 사법을 구사할 수 있겠으나 조선의 기사(騎射)는 한족이나 여진족, 일본에 비해 사거리가 긴 편이었다. 또한 조선을 방문한 사신들이 반드시 구경할 정도로 기사의 명중률도 높았다. 그러나 기병끼리 싸울 때는 승마 실력과 전술, 무장상태와 과감성 등 다양한 변수가 승부에 작용했다.

“주인님께서 일부러 왜병들이 보는 앞에서 여진 기마병들을 출전시킨 이유는 제가 생각한 대로겠죠?”

“민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몰라도 아마 맞을 거야. 그래, 그래. 도끼눈 뜨지 마라. 왜병들에게 후방이 불안하게 됐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의도야. 전쟁에서 사기와 심리는 중요한 요소니까.”

이번 전쟁에 일본이 동원한 병력이 30만에 달했다. 왜군 지휘부는 히코시마 요새 앞에 절반이나 되는 자그마치 15만이나 집중 배치해 공격 중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예비 병력도 충분히 배치해 유사시에 본진을 돕도록 했다. 물론 주코쿠의 다른 지역에도 병참선을 지키기 위해 병력을 적당히 배치해놓았다.

그러나 히코시마 요새 공격을 위해 시모노세키에 병력을 지나치게 집중시킨 것이 문제였다. 상대방의 핵심 지역을 공격할 때 병력을 집중하는 것은 승리를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지만, 후방을 비우라는 뜻은 아니었다. 나머지 병력으로 천 리에 이르는 병참선과 넓은 지역을 지키려다 보니 왜군 경비부대는 소규모로 분산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

여진 기병 2만은 왜군 본진의 배후를 치고 들어갔다. 여진 기병들이 류오산으로 가는 길목을 왜군 5천여 명이 차단하려고 황급히 이동했다.

“멀어서 안 보여. 민영이 보이는 것을 알려줘.”

“여진 기병이 일제히 활을 발사한 직후 왜군의 보병방진에 돌입했어요. 여진 기병 2만이 왜군 보병 5천을 순식간에 짓밟고 지나가네요. 여진 기병들이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그대로 류오산 계곡으로 들어가요. 왜군 패잔병들을 조선 기병들이 환도로 후려치고 그대로 달려가요.”

잠시 후 멀리 북쪽 산 사이 계곡에서 화광이 충천했다. 낮이라면 시커먼 연기가 크게 일어났을 테지만, 아직 어두운 새벽이라서 대규모 화재가 난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밤새 히코시마 요새를 공격하던 왜군이 류오산 방향으로 이동했다. 여진 기병을 추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격을 그치고 포격 사거리에서 벗어난 지점까지 물러서기 위한 이동이었다.

왜병들이 최소한 3만 이상이 전사한 것 같았다. 히코시마 요새에서 입은 아군의 인명 피해 보고를 받았는데, 1연대에서만 400명 이상이 전사해서 이민호가 큰 충격을 받았다.

“주인님! 여진 기병으로 오사카까지 가는 것이 가능해요? 그러니까 수송 수단 말이에요.”

“응. 정확히는 매일 기병부대 전체를 수용하는 것이 문제야. 만약 여진 기병이 지상에서 숙영을 하고 함대에서 건초만 보급해줄 거라면 수송선은 열 척만 있어도 돼.”

“원정군 참모부에서 여진 기병을 투입할 경우에 지원해야 할 해상세력을 계산한 적이 있어요. 여진 기병과 조선 기병, 3연대 기병대대까지 2만 3천을 수용하고 보급 지원하기 위해 전마 수송선 60척이 필요해요. 수송선이 모자라잖아요?”

“당연히 전선도 기병 보급 지원 임무에 동원해야지. 한 동안 말똥 냄새를 맡게 될 테니 각오해.”

여진족 호위들은 상관없겠지만, 주상아 공주와 비올레타는 머리를 싸매게 될 지도 몰랐다. 전에도 비슷한 임무를 여진 기병에게 맡긴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1만씩 교대로 투입했고 주코쿠를 벗어나 멀리 가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기 원정이었다.

“설마 주인님이 직접 여진 기병을 지휘하시려고요? 아니면 전선과 수송선으로 병참 지원하는 함대를 맡으려고 그러시죠?”

“뭐, 딱히 그런 건 아니고. 민영아. 눈에 힘을 너무 많이 주지 마.”

이민호의 목소리가 기어 들어갔다. 체구가 큰 민영이 화를 내면 좀 무서웠다. 간몬 해협을 계복에게 맡기고 함대를 몰고 가려던 것이 이민호의 계획이었다.

“여진 기병은 오 방어사께, 함대는 총함장님께 맡기고 주인님은 간몬 해협에 계세요. 여러 번 기습당해서 다들 불안할 테니까요. 주인님이 중요한 작전에 참가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적의 대군은 간몬 해협 주변에 배치된 것을 잊으면 안 돼요.”

“호위대장님의 명령이시라면 받들겠습니다.”

“농담하지 마시라고요!”

일본을 탈탈 터는 핵심적인 공격 작전을 구경할 기회를 이민호가 놓치고 말았다. 대신 이순신이 대부분의 전선과 수송선을 끌고 가기로 했다.

여진 기병은 이미 육상으로 먼저 출발했고, 수송선들은 말을 수용하기 위해 간단한 내부 개조 작업에 들어갔다. 2연대 병력과 기리시탄 의용병들이 동원돼 목재를 잘라 전선과 수송선에 적재할 조립식 마구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왜인 포로들까지 동원돼 건초와 잡곡을 수송선과 전선에 실어 날랐다. 내부 개조와 건초 적재 작업은 오전이 돼서야 겨우 끝냈다. 그래도 전마 수송선이 모자라 해동상단에서 운용하는 외륜선 10여 척까지 동원했다.

임시 기병연대를 지휘하던 감동이 아침에 이민호에게 전령을 보내왔다. 왜군 지휘부가 또 다시 이민호의 뒤통수를 쳤다.

“히노야마 뒤쪽을 공격하다가 땅굴 입구를 두 곳 발견했습니다.”

“한 곳이 아니라 두 곳?”

한 곳은 모지 성 방향으로 파고들다가 수몰됐다. 다른 땅굴이 어느 쪽을 노리고 파 들어갔는지 모르겠지만 폭약을 이용해 붕괴시켰다고 한다.

하마터면 3연대가 히코시마로 이동해 수비 병력이 3분의 1로 줄어든 간몬 요새가 기습당할 뻔했다. 물론 급하면 기리시탄 의용병을 투입할 테니 점령이야 당하지 않겠지만 인명 피해가 다수 발생할 위기를 겪을 뻔했다고 생각하니 이민호는 모골이 송연했다.

“2번 참호선에서 모지 항 방향으로 땅굴을 파는 현장도 발견했습니다. 땅굴을 경비하던 왜군을 사살하고 공사에 동원된 왜인들을 내쫓았습니다. 공사도구는 쓸 만한 것이 없어 바다에 빠뜨렸습니다.”

“잘했다. 적 참호선을 적당히 폭파시키고 귀환하도록 해.”

“명령을 전하겠습니다.”

왜군이 땅굴을 한두 개를 판 것이 아니었다. 왜인 50만 이상을 동원한 왜군 지휘부는 악덕 고용주처럼 인력을 조금이라도 놀리는 법이 없었다.

다만 중간에서 파 들어간 땅굴은 바다 밑을 지나다가 단단한 암석층을 만나 공사가 지지부진했다고 한다. 왜군 쪽에서도 이렇게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며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다.

오후에 총함장 이순신이 전선과 수송선, 외륜선까지 긁어모아 출항했다. 포격 지원용으로 간몬 해협에 남은 전선은 7척에 불과했다.

이민호는 몇 척 안 되는 전선을 갖고 간몬 해협 전체를 방어해야 했다. 만약 이때 큐슈 동쪽 시코쿠에서 왜군이 배를 타고 온다면 막을 전선이 없었다. 그래서 탐망선 두 척 중에서 한 척은 분고 수도에, 한 척은 모지 항에 배치했다.

이민호는 함대가 떠난 직후 군복을 입은 채 침대에 들었다. 적이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옷은 물론 신발도 못 벗고 잤다. 전선 승조원들도 3직제로 전환돼 교대로 눈을 붙였다.

“적이 또 와요. 그냥 계속 주무실래요?”

“나가봐야지. 민영이 그 동안 안 잤어? 교대로 쉬도록 해.”

이민호가 일어나면서 시계를 확인하니 다섯 시가 넘었다. 이민호가 민영을 침대로 잡아당겼다. 무거운 눈꺼풀을 반쯤 내리고 있는 민영을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호위 세 명과 함께 다시 관측실로 올라갔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다시 왜군이 시모노세키의 폐허를 가득 메우며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전선 7척과 탐망선 한 척에서 함포를 쏘지 않았다. 히코시마 요새와 간몬 요새에 배치된 포병도 침묵을 지켰다.

포격에 대비해 왜군이 충분히 분산해서 몰려왔기 때문에 계복이 포격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왜군이 포격이 무서워 흩어져서 몰려오면 히코시마의 외성에 배치된 병사들의 총격만으로도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 따다닷! 따다다닷!

지금까지 생산한 기관총 6정이 모두 히코시마에 배치됐다. 사거리도 길고 위력도 강해서 보병총 사거리보다 먼 거리에서 왜병들을 무수히 쓰러뜨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에 깃발을 꽂은 왜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요새로 몰려왔다.

- 콰콰쾅!

계복이 깃발로 포격 명령을 내리자 히코시마 요새와 간몬 요새에 배치된 대포, 그리고 전선에 탑재된 함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사람의 신체 일부가 날아다니는 꼴을 보는 것은 별로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주인님. 적이 언제까지 공격해올까요? 보급거점이 불탔으니 며칠 못 버티겠죠?”

“글쎄. 군량만 따진다면 꽤 오래 버틸 거야. 군량 일부가 분산 배치됐으니까. 하지만 사기가 땅에 떨어졌으니 곧 물러설 생각을 하겠지.”

히코시마 요새의 외성에서 드디어 보병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요새 앞쪽에 무수히 깔린 시체들을 짓밟으며 왜병들이 대나무사다리를 들고 몰려들었다. 아무리 죽이고 또 죽여도 왜병들은 계속해서 몰려와 외성을 넘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왜군은 이미 충분히 강화된 요새의 외성을 넘을 수는 없었다. 땅굴을 파서 내부에서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왜군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외성을 돌파할 길은 없었다. 왜군 지휘부는 병력을 총격과 포격으로부터 피할 곳이 없는 허허벌판에 내몰아 같은 편 병사들에게 총살을 집행하고 있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자존심 때문도 아니고, 피아를 안 가리고 사람들을 죽이고 싶어 하는 사이코패스가 총대장이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이민호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제 같은 유리한 상황에서도 히코시마 요새를 점령할 수 없었다면 왜군 지휘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물러서야 했다. 특히 여진 기병에게 보급 거점까지 털렸다면 즉시 퇴각로의 안전을 살펴야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격에 집착하고 있으니 왜군 30만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왜군이 후퇴하려고 해도 이미 늦었다. 시모노세키 인근에 처음 투입된 왜군 20만이 지금은 10만 정도로 줄어들어 있었다. 이들이 오사카나 그 동쪽 영지로 안전하게 귀환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았다. 여진 기병으로 이들을 포위하거나 추격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패잔병 10만과 왜인 수십만이 한꺼번에 퇴각하면서 서일본 전체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면 내버려두는 편이 나았다. 이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천 리에 이르는 퇴각로 주변에 위치한 모든 마을과 도시를 약탈할 것이다. 그러나 식량을 얻을 만한 대도시나 큰 해안가 마을은 이미 여진 기병에 의해 초토화된 뒤라서 얻을 게 별로 없다.

그 동안 군량 운반에 동원된 왜인들의 약탈에 시달리고 다시 왜군의 약탈에 모든 것을 잃은 주변 농민들까지 동쪽으로 향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난 거대한 약탈자 집단이 주변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며 일본 전체에 심대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높았다. 굶주린 채 후퇴하는 왜병과 군량 운반을 하던 하인, 농민들의 통제되지 않는 집단이 이민호가 일본에 가하는 결정적인 타격 무기였다.

“전하! 등대에서 동쪽 50리, 야마구치 남서쪽 60리 지점 해안 마을인 우베(宇部)에서 여진 기병을 전선과 수송선에 수용했습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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