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58 40. 혼슈 전쟁 =========================================================================
간몬 요새의 지휘소 겸 관측소인 등대에서 보낸 전령이 좌승함에 와서 보고했다. 첫 날 여진 기병과 함대의 연합작전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여진 기병이 새벽부터 오후까지 이동한 지역은 병참선을 지키는 왜군 부대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배치된 곳이라서 여진 기병들이 전투 중에 큰 피해는 입지 않기를 바랐다.
“병력이 확연히 줄어든다던가 하지는 않았겠지?”
“여진족 부상병이 확인한 바로는 출발했던 인원 거의 그대로라고 합니다.”
여진족 기병 부상병들 중에서 소년들을 골라서 등대에 배치해 관측병으로 삼았다. 이들은 전공을 세울 기회가 줄어들었다고 당연히 반발했으나, 하루에 여덟 시간이나 근무하는 일을 술을 너무 좋아하는 여진족 어른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설득해서 관측병 임무를 맡겼다.
“그리고 히코시마에 대한 공격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데도 도쿠가와 가문의 본진은 슬그머니 퇴각하고 있습니다.”
“그래? 2연대와 3연대 포병은 왜군 총대장의 군기를 목표로 포격을 집중하라고 전해줘. 2연대장은 임시 기병연대를 편성해서 모지 항에 집결하라고 해. 급하다. 어서 가!”
간몬 요새에서 온 전령을 급히 내보내고 히코시마 요새에 보낼 전령을 불렀다.
“일본어를 아는 병사들에게 일본군 총대장이 도망간다고 소리를 지르라고 해. 계복 대원수가 적당히 살을 붙이겠지.”
전령이 돌아가고 간몬 요새 정상에 배치된 포병들이 포구 방향을 돌렸다. 목표는 시모노세키 북쪽에 진을 친 왜군 본진이었다. 주변에 포탄이 낙하하자 왜군 지휘부는 큰 혼란에 빠졌다. 그 동안 고산국 포병이 최대 사거리에 포격을 한 경우가 드물어 왜군은 3인치 포의 최대 사거리를 훨씬 짧다고 잘못 알고 있었다.
포격 목표가 된 왜군 본진에 변화가 생겼다. 가신들이 어느 인물을 중심으로 뭉쳐서 이동하다가 말에 태웠다. 그리고 다른 가신이나 사무라이들도 서둘러 말에 탄 다음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계속해서 포탄이 따라가며 터졌다. 파편 폭풍에 휘말린 기마 사무라이들 다수가 말과 함께 쓰러졌다. 군기를 지닌 몇몇은 도망가고 몇은 다시 돌아왔다가 주변에 터진 포탄에 몰살당했다.
“누가 대장인지 모르겠어요. 적 총대장이 죽었을까요?”
“총대장이라고 해봤자 어린놈이니 그저 명목상의 대장이겠지.”
민영과 민혜가 폭사당한 왜군 본진의 구성원들을 살피려고 안력을 돋웠다. 그러나 누가 대장인지 사전에 확인한 적이 없는 호위들이 왜군 총대장의 사망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잠시 후 히코시마 요새의 외성에서 병사들이 일본어로 소리를 질렀다. 요새를 공격하던 왜병들이 그 소리를 듣고 큰 혼란에 빠졌다. 뒤를 돌아본 왜병들은 총대장의 군기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아봤다. 가신들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총대장이 포탄에 의해 이미 죽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총대장의 위치를 나타내는 마인과 군기는 분명히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전투 중에 지휘관의 위치, 특히 이동 방향은 아주 중요했다. 현대전에서도 지휘관들은 자기 위치와 행동, 그리고 이동 방향이 부하 병사들에게 어떻게 인식될지 주의해야 한다. 중대장이 참호선 후방에 위치한 소대에 직접 명령을 내리려고 참호선 뒤로 빠져 나갔다가, 중대장이 도주하는 줄 알고 중대 전체가 무너지는 일은 흔했다. 왜병들은 사무라이들이 전진하라고 독촉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 탕!
그 동안 훈련을 했던 저격병들이 활약할 때였다. 히코시마 요새 성벽에서 총소리가 울린 직후, 도망가려는 왜병들을 막던 사무라이의 이마에 자그마한 구멍이 나며 쓰러졌다. 막는 사람이 사라지자 왜병들이 우르르 북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터진 포탄 한 발이 왜병들의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공격진을 구성하던 일부 부대가 물러나자 전체 왜병들에게 공포가 순식간에 전염됐다. 여진 기병 수만 기가 퇴로를 차단했다는 헛소문까지 퍼지면서 5만에 달했던 왜군이 한꺼번에 무너지며 도주했다.
히코시마에서 마지막 전투가 될지 모를 이때, 1연대와 3연대 병사들이 총탄을 아끼지 않고 왜병들에게 총격을 퍼부었다. 이민호가 사격을 중지하라고 명령하고 싶었지만 좌승함에서 내린 명령이 즉시 전달될 리가 없어 내버려뒀다.
임시 기병연대를 편성한 감동이 모지 항에 기마병들을 이끌고 대기했다. 전선 7척과 해협에 남은 수송선 세 척이 기마병들을 실어 해협 북쪽으로 날랐다. 기마병들이 배에서 내리는 동안 이민호가 감동을 불러 전술을 지시했다.
“감동아! 왜병들이 빠르게 물러나도록 분위기만 잡아. 쫓아가서 죽일 필요 없어. 뭐라고?”
“죽일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왜적들이 최대한 살아서 도망가도록 급히 추격하는 시늉만 하겠습니다.”
“그래. 며칠 뒤에는 내 명령이 이해가 갈 거야.”
감동이 여러 연대에서 차출한 혼성 기병연대를 이끌고 간몬 해협 북쪽에 상륙했다. 총대장의 군기를 따라 도주하던 왜병들은 해협 북쪽에 나타난 고산국 기병을 확인하고 그때부터 정신없이 흩어져 달려갔다.
기마병 수천 기가 뛰면서 내는 말발굽 소리와 천지를 뒤흔드는 진동이 왜병들의 공포감을 더욱 자극했다. 총소리가 몇 발 울린 직후 왜병들이 넘어졌는데, 대부분 놀라서 넘어졌지만 총에 맞아 죽은 것으로 착각한 왜병들은 젖 먹던 힘까지 내면서 달렸다. 중간에 넘어진 왜병들은 동료들에게 짓밟혀 죽을 정도로 왜병들은 이성을 잃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왜병들 다수가 전사한 지금, 왜병보다 몇 배나 많은 숫자가 왜인들이었다. 전선에서 멀찌감치 물러서서 전투를 구경하던 왜인들도 고산국 기마병이 돌진해오자 모든 것을 버리고 달아났다. 고산국 기병을 보지도 못한 왜인들도 도주 행렬에 급히 합류했다. 공포에 빠진 왜인들은 고산국 기병 20만이 몰려온다는 식으로 헛소문을 내서 공포가 더욱 증폭됐다. 다들 급히 도망가느라 기본적인 식량과 옷가지도 챙기지 못했다.
이민호는 왜군의 지휘체계가 완전히 무너졌다고 판단했지만, 자발적으로 후위를 맡아 희생을 자처한 용감한 다이묘들이 있었다. 이들은 좁은 계곡 길을 틀어막고 고산국 혼성 기병연대와 맞붙을 각오를 다졌다. 후퇴하는 아군 다수를 살리고 대신 죽으려는 무장과 병사들이 비장하게 무기를 쥐고 고산국 기병연대의 기마 돌격을 기다렸다.
그러나 이민호의 명령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감동은 후위에 배치된 왜군 보병 약 3천과 싸울 의사가 전혀 없었다. 감동은 흥분해서 돌격하려는 부하들을 말려 해협으로 돌아왔다. 전투는 이것으로 완전히 끝났다.
“도련님! 돌아오는 길에 왜군의 대형 군기를 여러 개 발견해서 가져왔습니다. 포탄 파편에 맞아 죽은 사무라이들이 많았지만 누가 총대장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기병연대를 이끌고 나갔던 감동이 포탄에 맞아 쓰러진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군기 몇 개를 가져왔다. 미츠바 아오이(三葉葵), 아욱 또는 세 잎 접시꽃 문양이 들어간 군기들은 도쿠가와 가문의 것이 맞았다. 총대장의 위치를 알려주는 우마지루시(馬印)를 든 자는 북쪽 산악지역으로 사라져 추격하지 않았다.
“잘했다. 총대장은 화려한 갑옷을 입은 15세 정도의 소년 장수겠지.”
“아! 그런 자가 있었습니다. 너무 어려서 설마 했습니다. 왜장의 목을 베어 올까요?”
“관둬. 필요 없으니까.”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3남 도쿠가와 히데타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가문의 당주가 죽어 가문 내에서 처절한 후계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좋았지만, 어린 당주가 살아남아 계속 위태로운 채로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사실 풍신수길의 후계자가 누군지도 신경 쓰지 않는 이민호였다. 풍신수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태어나긴 했으나 관백은 여전히 도요토미 히데쓰구였다. 니시무라의 보고에 따르면 현재 일본 권력층의 내부 알력 다툼이 꽤나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전투는 완전히 끝나고 기병연대가 돌아온 때는 이미 밤이 깊은 시간이었다. 보급을 유지해주기 위해 모지 항과 함대 사이를 왕복하는 수송선 선장이 전해준 보고서를 읽고 이민호는 오늘 하루 여진 기병이 활동한 자세한 내역을 파악할 수 있었다.
여진 기병의 지휘관인 오응태의 평가에 따르면 혼슈 서부 주코쿠 지방에 배치된 왜군은 소규모 영지들에서 내놓은 병사들을 모아 급조한 2선급 부대였다. 게다가 잘해야 3천 이하의 소규모로 넓게 분산돼 있었다.
바다에서 전선이 주요 거점에 함포 사격을 하고 지상에서 기병이나 해병이 마무리를 하는 전술은 이미 그 효율을 충분히 검증 받았다. 여진 기병은 함포 사격의 지원을 받으며 1만 또는 2만이 한꺼번에 몰아쳐 병참선 경비부대 여럿을 격파하고 해안도시와 보급 거점들을 덮쳤다. 그리고 도시나 중간 보급 거점을 불태운 다음 다시 동쪽으로 빠르게 달렸다.
여진 기병의 기동력은 압도적이었다. 기습을 받은 왜군 부대에서 급히 기마전령을 보내 동쪽에 배치된 다른 왜군 부대에게 경고를 해주지 못할 정도였다. 마치 국경에서 보낸 파발마와 침략자인 몽골군이 왕성에 동시에 도착해서 방어 준비할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았다는 몽골군의 전설을 보는 듯했다.
“좀 적당히 죽이라니까! 병력은 쫓아내고 군량만 불태워도 되잖아!”
“적을 죽이는 것이 전쟁의 기본 아닌가요, 주인님?”
민혜가 책을 많이 읽고 남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특이한 발상을 할 수 있다지만 군인으로서는 아직 어렸다. 그리고 적에게 가차 없는 여진족 출신이며 이민호 개인을 지키는 호위로서 오랫동안 활동해서 적이 발견되면 일단 완벽하게 제압, 즉 죽이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경향이 컸다.
“패잔병 한 명이 피난민 열 명 이상을 만들 수 있으니까 아깝지. 오응태 방어사가 여진 기병을 제대로 통제하는지 모르겠어.”
“주인님은 일본 서부를 완전히 비울 작정이시군요. 그러는 편이 미래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겠죠.”
이민호가 의도한 난민 공격만으로도 일본이 멸망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었다. 일본 지도부가 난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조금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일본에 큰 타격을 입힐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도시에 난민들이 진입할까 두려워 병력을 동원해 섣불리 막았다간 난민들이 폭도로 돌변해 죽기 살기로 같은 편과 싸울 가능성이 높았다.
독일에서 주로 벌어진 30년 전쟁이 끝날 즈음 독일 인구가 3분의 1로 줄었는데 양 진영 군대끼리 직접 맞붙어 벌인 전투로 인한 사망자는 거의 없었다. 그 시대 대부분 전쟁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부수적인 일, 즉 군대가 군자금과 보급품을 얻기 위한 민간 약탈 과정에서 죽었다. 특히 양쪽 진영이 용병을 대량 고용하면서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한 탓에 이동로 주변이 초토화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1593년 7월 <난중일기>에도 비슷한 사례가 기록됐다. 2차 진주성 전투 직후에 보고하는 사람에 따라 진주 또는 광양 사람들이 왜인의 옷을 입고 광양의 민가와 관아를 불태우는 등 분탕질을 쳤다. 이것을 기점으로 소요사태가 확산돼 광양과 순천, 낙안 등이 초토화된 적이 있었다.
여기에 더해 경상도 하동과 전라도 광양의 경계선인 두치진을 지키던 장흥부사 류희선이 겁을 먹고 도주하는 바람에 그 휘하 병력에 대한 통제를 잃어 사태가 극히 악화됐다. 섬진강 방어선을 지키던 수천 명의 군인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진주성을 함락한 왜군이 전라도에 쳐들어온다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관아에 불을 지르고 민가를 약탈했다. 광양부터 서쪽으로는 순천, 낙안, 흥양, 강진까지 약탈하고 섬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구례, 곡성이 초토화돼 전라도 동부와 남부 고을들이 한 동안 방어능력을 상실했다. 두치진 복병장 류희선은 참형을 당했다.
함경도 국경지대에 수자리를 서러 가는 군인들이 길가의 민가에서 가축을 잡아먹고 멀쩡한 초가지붕을 뜯어 모닥불을 피우는 민폐는 평상시에도 자주 일어났다. 평시에 이 모양이니 전시에 겁에 질리고 굶주린 패잔병들과, 집과 농지를 잃은 농민 피난민들이 도주하는 길 중간에 걸리는 모든 고을은 초토화된다고 봐야 했다.
“이 정도는 돼야 일본이 항복하겠지. 일본 땅을 일일이 점령할 필요도 없고 좋잖아.”
“1연대에서 전사자가 많았다고 너무 가슴 아파하지 마세요.”
집무실 의자에 앉은 이민호의 얼굴을 민영이 가슴으로 품었다. 이민호가 차분해졌다가 다른 의미로 흥분했다.
“위로해줘서 고마워.”
간몬 해협에 3개 연대 전체를 투입했는데도 병력이 부족해서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다. 이민호는 몹시 속상했으나 민영의 풍만한 가슴에 안기니 조금 기분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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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끝나갑니다. 시간은 더 걸리겠지만 분량상으로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