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61화 (310/1,000)

00361  40. 혼슈 전쟁  =========================================================================

3월 7일부터 패잔병과 굶주린 피난민 행렬이 오사카에 들이닥쳤다. 이번 전쟁에서 이민호가 준비한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군량 운반을 위해 동원된 왜인보다 피난민이 훨씬 많이 생겼고, 뒤섞이자 성인 남자에 한해서는 더 이상 구별할 수 없었다.

집과 식량, 가족까지 모두 잃은 피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들었다. 왜군 패잔병도 적, 군량 운반하던 왜인도 적, 다른 피난민도 모두 적이었다. 얼마 안 되는 식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리고 남의 것을 빼앗기 위해 다른 피난민 가족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칼을 내리쳤다. 그런 식으로 서로 죽여가면서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다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품고 오사카에 도착했다.

그러나 오사카는 작년과 올해 두 번이나 불 탄 다음 검게 탄 잔해만 남았다. 사실상의 수도 역할을 하던 오사카마저 전소된 것을 알게 된 패잔병들과 피난민들은 완전히 광기에 물들고 말았다. 폐허에서 먹을 것을 찾아 뒤지던 피난민들이 불탄 집을 무너뜨리면서 오사카 전역을 완전히 초토화시켰다.

하루가 지나자 주변 영지의 주민들까지 포함해 100만 이상으로 불어난 난병과 피난민들이 요도가와 강변을 따라 무작정 교토를 향해 북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범 도요토미 가문에서 동원한 왜군 10만이 막아섰으나 난병도 원래는 병사들이었다. 곳곳에서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면서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난병들이 너덧 배 이상 죽어갔다. 그 사이 굶주린 피난민들이 전투 지역을 우회해서 교토로 향했다.

근세 이전에 농촌은 식량을 생산하는 곳, 도시는 식량을 보관하며 소비하는 곳으로 역할이 나뉘었다. 기근이 닥치면 식량이 떨어진 농민들은 큰 마을, 소 도시, 대 도시 순으로 이동했다. 도시 규모가 클수록 보관된 식량이 많았고, 식량이 많이 보관된 곳일수록 고향을 떠난 농민들이 생존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잡일과 구걸로 연명하던 농민이 도시의 최하층민으로 임시 편입돼 겨울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면 봄에 다시 고향에 돌아가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수천 년 동안 반복되던 일이라 농민에게 도시는 기근을 피할 수 있는 구명줄로 각인됐다.

대다수가 농민 출신인 왜인들은 전소된 오사카를 떠나 굶주린 배가 시키는 대로 명목상 수도인 교토로 향했다. 오사카에서 교토로 가는 길에 성곽들이 산재해 있었지만 피난민들의 파도를 막아내지 못했다.

피난민들은 무작정 군량 창고로 돌진하는 비효율적인 전투를 벌였지만 숫자가 워낙 많았다. 군량 창고를 털어 생쌀을 씹다가 배탈이 나서 쓰러지는 농민들에 의해 교토를 방어하는 성들이 하나씩 떨어졌다. 결국 후시미 성(伏見城)까지 함락되자 교토는 난민의 수중에 완전히 장악됐다. 뒤늦게 달려온 왜병들도 광기에 물든 난민들의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난민을 저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식량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병사와 군량 운반하던 민간인에게 쌀을 주면 고향에 돌아가게 되어 있었다. 고향에서 쫓겨난 피난민들은 임시 수용소를 만들어 거주시키면서 다이묘들이 쌀을 갹출해서 모아 보내면 된다.

그러나 유능한 무장과 가신들이 조선이나 큐슈, 시모노세키에서 죽어간 이후 당주를 맡은 과부나 고아는 정치적 능력이 없었고, 가신들은 책임 질 능력이 부족했다. 그리고 전시에는 쌀을 모으면 모았지 풀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다이묘들끼지 서로를 믿지 못해 제대로 협력하지 않는 현재 상황에서 먼저 쌀을 내는 쪽이 먼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난민과 난병을 쳐 죽이려고 병력을 거느리고 성을 나섰다. 그러나 난민들도 죽자 사자 싸우므로 전혀 만만치 않았다.

며칠에 걸쳐 150만이 넘어가는 왜인들이 교토로 계속 들이닥쳤다. 중간에서 굶어 죽고 얼어 죽고 서로 싸우다 죽은 50만 정도를 빼고 남은 숫자였다.

더 이상 이들을 막을 왜군 병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난민들에 의해 교토가 약탈당하고, 오래 된 도시가 결국 불타올랐다. 고산국 함대와 여진 기병들은 북동쪽에서 밤하늘이 시뻘겋게 변하는 것을 지켜봤다.

교토 시가지에서 일반 백성들의 집, 상가, 공경대부들의 저택이 차례로 불타올랐다. 사무라이들의 집과 다이묘들의 교토 주택도 습격당했다. 신궁 이름이 붙은 신사들도 차례로 불타고, 승병들이 처절하게 방어했으나 유명한 절 몇 곳도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사흘 동안 분탕질이 이어진 다음 교토 통틀어서 일왕의 거주지 고쇼(御所)만 덩그러니 남았다.

이 시대 일본인들은 일왕에 대해 그리 높이 치지 않았다. 권력을 잃고 권위만 남았다는 사실은 일반 백성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난민들은 신벌이나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워 차마 고쇼에 대한 공격을 하지 못했다.

난민들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몇몇 사람들이 도쿠가와 가문의 영지인 에도에 식량이 많으니 그쪽으로 가자고 선동했다. 중요한 순간마다 난민들을 선동해 한 쪽으로 집중 이동시켰던 자들이었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난민들 일부가 북쪽 산악지대로 이동하면서 점점 흩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당연히 니시무라 겐타로가 혼슈에 투입한 간세들이었다.

교토를 약탈하는 동안 오랜만에 밥맛을 보게 된 난민들은 다시 줄을 지어 이동했다. 중간에 걸리는 무엇이든 파괴시키는 살인 개미떼 마라푼다처럼 난민들의 행렬이 끊임없이 동쪽으로 이동했다.

간몬 해협 주변에서 싸우다 죽은 왜병과 왜인은 10만 이하에 불과했고, 여진 기병이 보급 거점과 해안도시를 불사르면서 발생한 희생자도 겨우 4~5만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군량을 나르다 얼어 죽은 자들이 50만에 후퇴 과정에서 새로 50만이 더 죽어 총 110만 넘게 사망했다. 오사카와 교토 사이에서 싸우다 죽은 자들 40만을 추가하면 벌써 150만이 죽었다.

그 동안 이민호는 매일 보고서를 받으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할 일이 없어진 함대와 여진 기병을 퇴각시키려다가 주변에 대한 무력시위를 계속 시켰다. 거의 100척에 가까운 대형 군선들이 세토 내해를 왕복하자 시코쿠 주민들이 몰려나와 구경했다. 다음 차례가 자기들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시코쿠에 사는 왜인들은 도망갈 곳이 없었다. 혼슈로 건너갔다간 자칫 난민들의 파도에 휘말리게 된다. 그리고 곧 농사철이 되므로 농민들은 농토를 버리고 떠날 수는 없었다.

“이런 결과가 될지 상상도 못했어요.”

“좀 심한 것 같소?”

침전에서 함께 보고서를 읽던 비올레타가 급기야 폭발하고 말았다.

“이것은 겨우 시작에 불과해요. 농민들이 농사철을 놓치면 어떻게 될지 아시잖아요! 그리고 이번 전쟁에 혼슈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제대로 매장하거나 화장해주지 못했어요. 당연히 여러 곳에서 전염병이 돌아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여요. 일본인들이 너무 불쌍해요.”

“유감이긴 하나 당신에게 사과하지는 않겠소.”

“흥! 그래요! 제 방으로 돌아갈래요. 저를 잡지 마세요.”

마닐라에 거주하는 왜인들에 의해 인트라무로스가 함락당할 뻔하고 수시로 왜구들에게 약탈당했던 마닐라의 에스파냐 주민 비올레타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오늘 이민호와 함께 자려고 왔던 비올레타가 화를 내며 처소로 돌아가 버렸다. 이민호에게 항의의 표시로 한 일종의 섹스 스트라이크였다.

“주인님! 어서 비올레타 귀인님을 달래주세요.”

“달랜다고 화가 풀리나? 놔둬. 양심 문제니까. 한숨 자면 나아지겠지.”

민영이 권했으나 이민호가 거절했다. 이민호도 몹시 우울해져서 침대에 드러누웠다. 시모노세키에 집결한 왜군의 보급품을 불태우고 여진 기병을 풀어놓기 전부터 이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어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상황이 이미 이민호의 손을 떠났기 때문이다. 왜인들이 절반으로 줄어들지 10분의 1로 줄어들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잘하셨어요. 주인님은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멸망시키셨어요. 이번 승리는 결코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에요. 이런 상황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으나 주인님은 난민이 계속 불어날 수 있도록 조건을 꾸준히 유지하셨어요.”

“그래. 좋게 봐주니 고맙다.”

민혜가 위로해줘서 조금 기분이 풀렸다. 이민호는 민혜를 끌어안고, 손짓으로 민영을 불렀다. 민영도 이민호의 품에 들어왔다. 이민호가 민영의 치마를 들추며 물었다.

“그런데 이 치마는 뭐야?”

“비올레타 귀인님이 가르쳐준 방식대로 평상복을 만들어봤어요. 고대 유럽의 정복자인 켈트족이 만들어 입었던 치마래요. 발랄해 보이고 좋죠?”

무릎이 드러나는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상체를 약간 조이는 블라우스를 입으니 영락없는 여고생 교복이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옷차림에서 먼저 봄이 찾아왔다. 큐슈는 조선 남해안보다 봄이 빨라서 들판에 온통 들꽃이 피었다.

“좋긴 한데, 왕실학교 여학생들에게 입히는 게 낫겠어.”

“주인님 눈에 거슬리면 갈아입고 올까요?”

“아니, 뭐. 귀찮은데 그대로 입어.”

그날 밤 이민호는 민영과 민혜의 옷을 다 벗기면서도 체크무늬 치마만은 끝까지 안 벗기고 둘을 안았다. 치마를 배 위로 훌렁, 등허리 위로 훌렁 올렸을 때 의외로 알몸보다 더 야해 보였다. 경험이 적은 민혜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는 맛도 있었다.

끝나고 나서 민혜는 치마를 더럽혔다고 투덜거리고, 민영은 묘한 눈길로 이민호를 바라봤다. 이민호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

“왜?”

“주인님 평소보다 크고 단단...... 아니에요.”

민영이 괜히 오해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그러나 오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상대방이 오해하게 마련이었다. 여진족 호위들의 평상복 치마가 일제히 체크무늬로 바뀌었다. 그런데 민영이 오해한 게 아닌 것 같았다.

3월 11일 시코쿠 남서부 도사의 다이묘 초소카베 모토치카(長宗我部元親)가 일본식 관복을 입고 직접 간몬 해협으로 찾아왔다. 시코쿠(四國)는 도사(土佐), 이요(伊予), 아와(阿波), 사누키(讃岐)의 4개 구니(國)로 이루어진 섬이었다. 이민호는 노장 모토치카와 가신, 병사들을 군막으로 안내하고 감시를 붙였다.

다음 날 이요 구니 우와지마의 영주 토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간몬 해협을 방문했다. 역시 군막으로 안내했다.

더 이상 시코쿠의 영주들이 찾아오지 않아 이민호가 두 사람을 불렀다. 다른 영주들이 올 것을 충분히 예상했는지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 전역에 알려질 것을 알았기에 구태여 숨기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상하셨다시피 저는 국왕전하께 항복하러 왔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초소카베 가문은 1585년 시코쿠 전체를 통일했다가 풍신수길이 동원한 12만 병력에게 항복하고 사도 한 구니만 영유하고 있었다. 고산국 함대에게 공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었는데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사도 노카미는 히데야스 님의 가신이 아닌가?”

“제게 우와지마 영지를 내리신 분은 관백 히데쓰구 님이신데, 히데야스 님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해 제게 영지를 주어 독립시킨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 의도를 알기에 의리상 새 주군을 모시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저를 보호해주지 못한 옛 주군을 모시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제게 주군이 없는 셈입니다. 국왕전하께서 제 주군이 되어주신다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도도 다카토라는 그런 대로 대화가 통하는 똑똑한 인물인 줄 알았는데 아전인수하는 것은 다른 일본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민호는 도도 다카토라가 주군을 자주 바꾸긴 하지만 최소한 배신하지는 않는다는 인물평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대는 일본인, 나는 고산국왕인데 그게 가능한가? 다른 다이묘들이 반발할 것 같은데?”

“주군이 따로 없는 독립 영주가 스스로 판단하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불만이 있으면 군대를 몰고 오라고 하지요.”

“전하! 저도 사도 노카미처럼 전하를 주군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유럽이라면 다른 나라 영토의 영주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외국 왕을 주군으로 모실 수도 있었다. 영지의 독립성을 높일 수는 있지만 민족의식이 점차 각성되는 시기였으므로 장기적으로 봐서 좋은 일은 절대 될 수 없었다.

이번 같은 경우 두 영주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시키기에는 두 사람이 딱 적당했다.

“두 분 다 내 입장에서는 위험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소? 초소카베 님은 한때 시코쿠 전체를 통일했던 유능한 무장이고 사도 노카미는 여러 번 나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자요.”

“저희들의 충성을 받아주시는 순간 저희들은 앞으로 국왕전하만 모시겠습니다.”

“내게 충성하겠다는 이유가 뭐요? 나는 큐슈 동해안을 지키기 불안해서 시코쿠를 사람이 살지 않는 섬으로 만들 계획이었소.”

“바로 그 이유 때문입니다. 일본인들이 잘못을 많이 저질렀지만 불쌍히 여기셔서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이민호는 한참 고민했다. 나중에 일본이 역습을 가해온다면 시코쿠는 훌륭한 완충지대가 될 수 있었다. 왜군이 혼슈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진군하거나 배로 군량을 운반할 때 일찍 발견해서 큐슈에 알려줄 수도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능력이라면 성곽이 다 무너진 시코쿠를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다. 두 사람을 내 가신으로 받아들이겠다.”

“감사합니다. 평생, 그리고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초소카베 모토치카와 도도 다카토라가 양 무릎을 꿇고 절을 해서 이민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민호는 기사 서임식처럼 칼을 뽑아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들겨주려다가 오해할까봐 하지 않았다.

“첫 임무다. 두 사람이 협력해서 시코쿠 전역을 점령하라. 기리시탄 의용병 1만과 고산국 기병 1개 대대 600기를 빌려주겠다. 지휘권은 유보할 테니 다만 협력하도록 하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주군! 하오나 화약이 부족하옵니다. 화약을 구울 때까지 두 달만 기다려주십시오. 마침 4월은 모내기 철이니 그 이후에 징병이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 필요한 만큼 주겠다. 시코쿠 점령은 3월 안에 끝내도록.”

초소카베 모토치카와 도도 다카토라가 이민호를 우러러봤다. 화약을 준다고 해선지, 점령 기한 때문인지 이민호는 묻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이번 편은 이렇게 마무리지었습니다.

다음 편은 일본의 항복과 시코쿠 점령, 전후 뒤처리를 묶어서 3~4회 분량으로 짧게 정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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