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62화 (311/1,000)

00362  41. 일본 멸망  =========================================================================

41. 일본 멸망

시코쿠로 돌아간 초소카베 모토치카와 도도 다카토라는 며칠 동안 시코쿠 점령 작전을 준비했다. 이들은 농번기 직전에 농사 준비로 바쁜 농민들을 달래서 간신히 징병과 징집을 마칠 수 있었다. 가혹한 처사에 반발한 농민들이 영주에게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영주들이 그 무서운 고산국에 항복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반란은 꿈도 못 꿨다.

그 사이 간몬 해협 모지 항에서 시코쿠로 조총용 흑색화약 수십 통을 보내고, 기병 1개 대대와 기리시탄 의용병 1만을 파견했다. 기병과 의용병은 감동이 지휘를 맡았다. 계복은 후방에서 병참 보급을 위한 일에 몰두했다.

고산국 왕실 깃발인 태극기를 휘날리며 2연대 기병대대 병력이 병력이 합류하는 곳에 나타나자 왜군 절반이 겁에 질려 도망갔다. 도주한 자들을 다시 집결시키느라 사무라이들이 제법 고생했다. 이런 식으로 이민호의 가신이 되기로 한 다이묘들이 다른 영지들을 공격할 준비를 완전히 갖췄다.

1연대장 감불은 히코시마 요새에서 고생한 1연대 병력을 데리고 벳푸의 온천 지대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 동안 히코시마 요새를 지키느라 지독하게 고생하고 다수의 동료가 전사한 1연대 병사들은 휴가를 즐길 자격이 충분히 있었다.

“저희도 온천에 갔으면 좋겠어요.”

호위들의 초롱초롱한 눈빛 공격에 이민호는 버티지 못했다. 그래서 일본의 항복사절이 온 다음 온천에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왜 아직 안 와? 공경들이 교토에서 다 죽었나?”

현재 일본에서는 2백만으로 불어난 난민들이 해안도로를 따라 후지산 남쪽을 지나쳐 에도로 향하고 있었다. 난민의 파도를 막기 위해 중간에 다이묘들이 군세를 연합해 두 번이나 막아섰지만 다 무너졌다.

난민들의 지휘부를 장악한 니시무라 겐타로의 간세들은 난민들이 흩어지지 않고 한 곳으로 향하도록 질서를 유지했다. 자연스럽게 군사 조직이 생겨나고 간세 한 명이 쇼군을 자칭했다고 한다. 무능한 다이묘들을 몰아내고 에도에 신의 나라를 세우면 고산국 침략자들이 자연히 물러난다는 민간신앙이 자발적으로 생겨났다.

“좀 지나친 것 아니오?”

“제가 간세들을 훈련시킬 때, 만에 하나 지도자가 된다면 그 구성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도쿠가와 가문이 멸문한 다음 자체적으로 해산시킬 계획입니다.”

이민호에게 대답하며 니시무라 겐타로가 땀을 뻘뻘 흘렸다. 어느 정도 의도하긴 했지만 일이 무지막지하게 커지고 있었다.

난민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배고픔과, 고산국 군대에 대한 공포였다. 초토화된 교토와 오사카에서 벗어난 난민들이 천리나 도망갈 수 있었던 것은 여진 기병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난민들의 조직이 단순한 반민의 집단을 넘어 국가를 세우겠다고 나서고 있었다. 왕조교체기의 중국에서 흔히 보던 장면이라 이민호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이야 확실히 멸망하겠지만 자칫 일본에 새로운 나라를 세워주게 된다.

“도쿠가와 가문에서 난민들을 막지는 못할 것이오. 이용할 데까지 철저히 이용해보다가 내부에서 붕괴시킵시다.”

“나라가 세워진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제가 훈련시킨 간세들은 왕이 될 만한 동량이 아닙니다.”

“니시무라 씨!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오. 겨우 간세로나 써먹을 만한 사람이라도 그 사이에 능력이 키워졌을 수도 있소.”

“설마요.”

니시무라 겐타로가 걱정하는 동안 이민호는 시코쿠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다. 시코쿠는 중앙에 산악지대가 넓게 퍼져 있어서 섬 면적에 비해 인구 부양력이 적은 편이었다. 만약 큐슈처럼 농사짓기에 좋았다면 이민호가 시코쿠도 점령하거나 왜인들을 모두 몰아냈을 것이다.

3월 13일 해군 함대가 간몬 해협으로 돌아와 여진 기병을 상륙시켰다. 2만에 달하는 기병들 중에서 사상자는 많지 않았다. 조선 기병과 3연대 기병대대도 무사히 돌아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총함장님.”

“바다에서 가만히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통쾌했습니다, 전하.”

“부럽습니다. 하하! 죄송하지만 원정을 한 번만 더 가주십시오. 이번에는 큐슈 동쪽 시코쿠입니다. 해군에서 도와주면 작전기간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1연대가 온천에서 돌아오고 그 다음은 여진 기병과 함께 싸운 조선 기병과 3연대 기병대대를 벳푸로 보냈다. 이들을 먹이기 위해 각종 음식 재료가 벳푸로 향했다. 여진 기병은 그 다음에 온천지대로 보내기로 약속했다.

해군과 해병은 시코쿠 작전이 끝나고 나서 온천에서 며칠 휴양하기로 했다. 오랫동안 전투에 참가하고 피해도 커서 사기가 꺾였던 1연대 병사들이 온천에서 돌아오고 나서 사기가 충천했다.

“왜군을 때려잡는 일이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제가 전쟁을 여색이나 술 마시기보다 더 좋아한다는 평가를 받은 사람입니다.”

“백사 대감이 그런 소리를 했죠? 어휴~ 그 인간.”

“천재이며 훌륭한 충신입니다.”

이민호는 이항복을 떠올릴 때마다 인상을 찌푸렸다. 동래에서 좋았던 인상이 큐슈에서 다 말아먹었다. 물론 광해군으로부터 밀지를 받고 와서 제 역할을 해낸 셈이었지만, 이민호 입장에서는 몹시 얄미웠다.

인재가 다른 인재를 줄줄이 천거한 이 시기 조선에 확실히 인재가 많았다. 특히 당파와 상관없이 율곡 이이, 류성룡, 이원익, 김육으로 이어지는 대동법 추진 세력은 양반 기득권층이면서도 백성들을 잘 살게 함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이루고자 했다. 방납 모리배와 결탁한 부패한 수구 특권층들과 전혀 달리 백성을 중심으로 자연스레 부국강병을 이루고자 노력한 진정한 보수 세력이었다.

“초소카베 군이나 의용병 등 우리에게 붙은 왜군이 많으니 피아식별을 확실히 하셔야 합니다. 휘하 함장들과 포수들에게도 알려주십시오.”

“고산국에 부역하는 왜장들이 있다니 신기합니다. 대세가 완전히 기울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듯합니다.”

여진 기병과 조선 기병은 휴식을 취하게 하고 해군과 해병은 시코쿠 정벌에 다시 동원했다. 출정일은 3월 15일이었다. 원정이 길어지면서 다들 피로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기고 있는 싸움에서는 없던 힘도 절로 나기 마련이었다.

우와지마의 영주 도도 다카토라와 도사의 다이묘 초소카베 모토치카가 3만의 병력을 내어 시코쿠 북서쪽 이요 지역부터 차례로 공략했다. 기리시탄 의용병 1만은 큰 역할을 하지 못했으나 2연대 기병대대의 포병대가 적의 저항 거점인 성곽을 확실히 격파하면서 원정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작은 영지의 영주들은 연합군의 군세를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고 항복하거나 혼슈 방향으로 도주했다. 일본인 다이묘들의 군세라면 어찌 어찌 시간을 끌면서 막을 수도 있겠지만 고산국이 배후에 있고 일부가 직접 참전하기도 했으니 도무지 막을 엄두를 못 냈다.

3월 17일 일본 조정에서 파견한 항복 사절단이 탄 배가 이요의 영지들을 공격하던 고산국 함대에게 나포 당했다. 사절단을 접견한 총함장 이순신은 그 배를 탐망선에 예인시켜 간몬 해협으로 보냈다. 탐망선과 사신선이 모지 항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오후인 3월 18일이었다.

사절단은 다이묘의 가신들과 달리 고풍스런 화려한 복장에 높은 관을 쓰고 사신선에서 내렸다. 일본 신사의 남자 신관이 비교적 단순한 색상의 신관복을 입은데 반해 공경들은 울긋불긋한 비단옷을 입었다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관을 쓰는 것은 좋은데 턱끈이 마치 노끈 같아서 이민호가 보기에 영 거슬렸다. 마치 현대 국군이 유격 훈련 중에 방탄모 턱끈을 흰 붕대로 감은 것처럼 꼴불견이었다. 조선을 비롯한 다른 나라였다면 당연히 끈을 모자와 같은 색깔로 하거나 다른 장식품으로 이었을 것이다.

“저희들은 천황폐하의 칙사이옵니다. 전례에 따라 저희들이 북벽에 서겠습니다.”

“누구 맘대로? 나는 일왕의 신하가 아니거든?”

이민호는 사신들을 모지 항에 친 대형천막에 들인 다음 임시 옥좌에 앉아 내려다봤다. 사신들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끝까지 이민호를 설득하려고 노력했다.

“큐슈 대영지를 맡아 다스리고 계시니 고산국 국왕전하께서도 천황폐하의 신하로서 충성을 다 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천황 운운하면 바로 죽이겠다. 일왕이라고 해!”

“예. 일왕폐하께서......”

“뭐?”

“일왕전하께서 고산국왕 전하께 국서를 전달하라고 하명하셨습니다.”

이민호가 이마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패배해서 망하기 직전인 주제에 자존심은 더럽게 강했다.

니시무라 겐타로가 보고한 바에 따르면 요 며칠 사이 난민들이 도쿠가와 가문이 동원한 군세를 전멸시키고 에도 지역을 초토화한 다음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했다. 난민들 대부분이 농민 출신이라서 농사철을 놓치지 않으려는 본능이 강한 탓이었다.

그러나 약탈에 맛을 들인 난민 일부는 주변으로 흩어져 약탈을 하고 다녔다. 일부는 다이묘들이 동원한 군세에 의해 흩어지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며 다시 서쪽으로 이동했다. 지금까지 숨죽이며 지내던 공경들이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다시 교토로 향하는 난민 집단에 겁을 먹은 탓이었다.

“관백은?”

“확실치는 않지만 관백의 집안은 멸문 당한 것 같습니다. 다른 다이묘들이 나설 만한 상황도 아니고, 그래서 덴노, 일왕전하의 명을 받고 저희들이 움직이게 됐습니다.”

난민들이 오사카에서 교토로 밀고 들어갈 때 이곳저곳에서 전투가 엄청나게 많이 발생했다. 몇 번의 전쟁을 거치며 이미 병력이 줄어든 상태에서 교토로 가는 길에 병력을 이끌고 나가 텅 빈 성곽은 난민들에게 절호의 목표였다. 이 와중에 다이묘의 가족들이 몰살당한 경우가 흔했다.

“국서라고 했나? 항복 문서가 아니면 돌아가.”

“항복 문서에 버금가는 국서이옵니다.”

“여기까지 온 정성이 갸륵해서 읽어는 주겠다.”

이민호가 사신이 바친 일왕의 국서를 읽었다. 일본 덴노의 이름으로 이민호를 타이르고 질책하는 내용이 앞부분에 길게 이어져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결론은 당장 전쟁을 그만 두고 큐슈까지 비워둔 채로 고산국으로 물러나라는 명령이었다.

“너희들이 매를 버는구나. 내게 백만 대군은 없지만 총병 5만과 여진, 조선 기병 10만은 동원할 수 있다.”

“전하! 참으십시오. 다른 국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것들이 감히 간을 봐? 쓸데없이 중간 것 내보이지 말고 마지막 것을 꺼내! 더 이상 나를 우롱하면 용서하지 않겠다.”

이민호가 화를 내자 호위대장인 민영이 권총을 뽑아 들고 무섭게 노려보았다. 그러나 사절단은 권총이 뭔지도 모르니 겁을 낼 리가 없었고, 몇몇 사신은 민영을 보고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이민호가 봐도 민영이 인상을 찡그린 모습이 귀여워서 속으로 피식 웃었다.

“두 번째 국서는 보여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국서는 없습니다. 지금은 시일이 급해서 고산국 국왕전하의 의향을 여쭤보고 다시 일왕전하에게 보고해서 협의할 시간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국왕전하의 말씀을 들어보고 받아들일지 결정하기로 했습니다.”

“항복 조건을 여기서 정하자는 건가? 공짜로 항복을 받아달라고?”

“고산국 군대는 비싼 무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정 비용이 몹시 많이 든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황금 10만 냥과 백은 50만 냥을 전쟁 배상금으로서 고산국 국왕전하께......”

“겨우?”

“앞으로 10년 동안 매년 바치겠습니다.”

이민호가 인상을 찌푸리자 배상금이 단번에 열 배로 치솟았다. 사신들이 이민호의 눈치를 보는 것이 짜증이 났으나 꾹 참았다. 금 100만 냥과 은 500만 냥이라면 원정 비용을 어느 정도 충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다. 보상금은 그렇게 하고, 일단 영토 조항이다.”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 사신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민호는 참모부와 협의해 일본과 종전협상을 진행할 경우 요구 조건들을 미리 준비해놓았다.

“오사카와 교토는 반드시 지키고 싶겠지?”

“물론입니다. 대도시 두 개를 잃는다면 일본은 망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항복을 할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민호는 백성들에게 몹시 자비로운 군주였고, 전쟁을 벌였던 외국에 대해서도 자비를 베풀 줄 알았다. 그래서 폭이 열 자나 되는 지도를 보면서 설명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항복부터 시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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