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5 41. 일본 멸망 =========================================================================
“그렇다면 좋소. 이미 전쟁이 끝나서 일본도 이웃나라들 중에 하나니까 식량을 보내 도와주는 게 좋겠소. 다만 다이묘나 사무라이들을 믿을 수 없으니 직접 식량을 나눠줘야 한다는 문제가 있소.”
일본은 물론 고산국 사람들도 이제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결정적으로 일본에 타격을 줄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산국 왕도에 돌아가지 않고 아직 간몬 요새에 남아있는 이유는 전쟁 뒤처리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고마워요. 고산국은 물론 다른 나라 백성들에게도 항상 자비로운 전하께서 유독 일본인에게만 잔인해지는 이유를 저는 아직 몰라요. 하지만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해요. 일본 사람들에게 식량을 제공해서 피해를 입은 일본 민간인들에게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싶어요.”
“속죄는 무슨! 그 동안 일본 때문에 조선을 비롯해 주변국에서 입은 피해가 훨씬 더 많았소.”
“죄송해요. 제가 당신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죄가 없을 거여요.”
“일본인들이 죄가 없긴 뭐가 없소? 조선에서 그렇게 분탕질을 쳤는데. 조선에서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남긴 기록을 보면 저들 일본인이 일반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참으로 난감할 때가 많소.”
“설마 그 정도인가요? 자기나 남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할복이라는 자살 방법을 쓰는 것도 특이하긴 해요.”
조금 화가 났지만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윽박질러봤자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비올레타는 에스파냐 사람이라서 이민호가 일본에 대해 품고 있는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조선인들도 일본을 싫어하긴 했어도 이민호만큼은 절대 아니었다. 조선인들에게 일본은 왜구와 임진왜란 때 당한 기억밖에 없었으므로 일본인은 그저 평범한 원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민호의 기억에는 일제강점기와 태평양전쟁, 그리고 2020년 들어서 한국을 몰아붙이던 일본이 들어 있었다. 가끔 번역되는 일본 사이트는 물론 국제적인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도 틈만 나면 한국인을 조롱하고 저주하는 일본인들을 좋게 볼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이번에 일본 백성들이 고생한 것은 전쟁 중에 거의 반드시 수반되는 비극일 뿐이오. 유럽에서도 전쟁이 나면 군대 이동로 주변에 사는 일반 농민들이 고생하지 않소?”
물론 거짓말이지만 이민호가 공격한 것이 일본 군대가 아니라 사실상 일본 민간인이라는 것은 극소수 지휘관들 외에는 어느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전투 중이 아니더라도 민간인 피해는 발생하기 마련이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장거리 원정에서 병참지원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군대가 이동로 주변을 약탈하는 일이 흔했다. 물론 병사들이나 용병들은 그 기회에 식량 외의 재산을 약탈하기도 했다.
“전쟁을 해서 다른 나라를 정복하더라도 최소한 인간의 양심은 지켜야 해요. 그 동안 전하께서는 많은 이들을 돌봐주시면서 자비롭다는 평판을 얻으셨잖아요? 전하께서 일본인들을 싫어하시는 것은 알지만 죄 없는 백성들은 부디 구해주세요.”
“그렇게 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전쟁 배상금 중에 일부를 써서 비올레타 당신이 쌀을 사서 나눠주시오. 하지만 당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 모르오. 그러니 비올레타가 직접 가지 말고, 일본 다이묘들이 바친 여자들을 시켜서 오사카에 구호소를 만들어 운영하시오.”
“그래요! 저는 항상 전하 곁을 지킬 테니 걱정 마세요.”
비올레타가 몹시 기뻐했다. 일본 전체를 정복한 것이나 다름없는 고산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상이 좋아질 것 같아 이민호가 허락했지만, 비올레타가 직접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 대신 일본의 다이묘들이 이민호에게 바친 처녀들이 직접 오사카에 가서 구호작업을 하기로 했다. 항복한 영주들이 자기 딸이나 손녀, 혹은 영지에서 고르고 고른 미녀를 이민호에게 바쳤지만 이민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난민구호소라는 것도 일종의 덫이었다. 굶주린 자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구호소가 생겼다는 소문이 일본 전역에 퍼져 난민들이 몰려온다면, 그 중에 절반 이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길거리에서 죽게 된다. 아일랜드 대기근 때에도 길거리에서 죽은 사람들 대부분이 구호소로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굶주린 자들이 모이는 곳에는 거의 반드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전염병이 발생한다. 이민호는 대충 예상했지만 이 시대의 자비로운 지배자들이 흔히 베푸는 자선사업이 이 정도에 그치므로 모른 척하고 넘어갔다.
“고마워요, 전하.”
이민호의 뺨에 입을 맞추는 비올레타의 표정이 많이 풀렸다. 비올레타 입장에서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도 있지만, 비올레타는 남편인 이민호가 악마로 불리지 않기를 더 원했다.
비올레타는 강짜 부리는 것으로 비쳐져서 자칫 이민호에게서 사랑을 잃을지도 모를 도박을 했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런 것인 줄 알기에 이민호가 흔쾌히 받아들여주었다. 그러나 감정 상한 것은 분명히 있었고, 사소하나마 비올레타를 상대로 복수를 하기로 했다.
“이제 화가 좀 풀렸소?”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끌어안았다. 며칠 전과 달리 오늘은 비올레타가 이민호를 향해 손톱을 세우지 않았다.
“흥! 그 동안 다른 분들 안느라고 좋았어요? 그런데 제발 천천히.”
“며칠 동안 나한테 대들었으니 오늘은 내게 혼날 줄 아시오.”
이민호가 비올레타의 옷을 하나씩 벗기는 동안 비올레타가 겁을 먹고 잔뜩 웅크렸다. 어쩐지 옷을 벗기는 이민호의 손에 힘이 잔뜩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 심하게 다루지 말아주세요.”
“시키는 대로? 흐흐!”
이민호는 그 동안 비올레타에게 차마 못 해봤던 것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비올레타는 가슴이 크고 탄력이 넘쳐서 그 위에서 한참 동안 놀았다. 비올레타가 너무 부끄러워서 나중에는 울먹거리기까지 했다. 침대 옆에 서서 시중드는 아이샤는 물론 보조침대에서 자는 척하던 민영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켜보았다.
“부부 사이에 이런 것 몰랐소?”
“듣긴 했어요. 하지만 직접 당해보니 너무 부끄러워요.”
이번에는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무릎을 꿇고 엉덩이를 높이 들게 만들었다. 전에 이런 자세를 해봤다 해서 다시 한다고 부끄러움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었다.
“자주 하다 보면 적응될 거요.”
“앞으로 다시 이런 부끄러운 짓을 시키시려고요? 하악!”
이 기회에 밝은 조명 아래에서 비올레타의 몸을 샅샅이 훑어봤다. 이민호는 비올레타가 키가 큰 편인데도 몸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녀들을 수십 명씩 거느릴 수 있는 것은 국왕의 특권 중 하나였다. 특히 비올레타는 다른 사람들이 바치거나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이민호가 장기간에 걸쳐 직접 유혹한 여자라서 더욱 애착이 갔다. 물론 주상아 공주를 비롯한 후궁들의 열광적인 지지와 지원이 있었기에 비올레타가 넘어왔다는 것을 이민호도 잘 알고 있었다.
시코쿠 점령이 끝났다. 초소카베 가문은 아와지 섬을 비롯한 동부 해안 방어에 주력하고 도도 가문은 중앙 산악지대를 철저히 수색했다. 혼슈로 도망간 주민들이 일부 있었지만 고산국의 지배를 받아들인 나머지 농민들은 숨죽이며 생업을 영위했다. 어느덧 농사철이 다가와 다들 바빴다.
시코쿠 서부에서 큐슈 방향으로 길게 뻗어 나온 사다미사키(佐田岬) 반도 끝에 작은 요새를 만들어 기리시탄 의용병 1개 소대를 주둔시켰다. 조만간 등대와 포대를 건설하면 유사시 분고 수도를 차단하고 건너편 벳푸의 안전이 보장될 만한 위치였다.
기리시탄 의용병들은 시코쿠에서 점령군 행세를 하면서 행패를 부리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다만 그 동안 종교 박해를 받던 경험 때문에 정반대 입장이 되면서 무척 뿌듯해 했다. 의용병들의 신앙심과 충성심이 반반씩 올랐다.
황소 두 마리가 끄는 수레가 모지 항에 들어왔다. 황소 두 마리가 기다란 쌍멍에를 같이 쓰고 멀찍이 배치되는 동남아식 황소 수레였고, 그 뒤에는 챙 넓은 투구를 쓰고 판갑 또는 찰갑을 입은 섬라 병사들이 호위했다. 섬라의 에까토싸롯 왕제가 간몬 해협에 와서 이민호를 방문한 것이다.
“국왕전하! 그 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어서 오십시오, 왕제. 큐슈 서부가 안정됐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왕제와 섬라 군 덕택입니다.”
이민호가 반갑게 섬라의 왕제를 맞이했다. 명군과 조선군이 귀국한 다음에도 1만의 군세를 거느리고 큐슈에 남아준 덕택에 이민호는 병력 운용에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말레이계 용병 2천과 묘족 용병들도 사고치는 일 없이 거점을 잘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섬라 군에게 절실한 닭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고산국이 산업구조를 바꾸고 식생활에 변천이 올 정도로 양계 산업 진흥을 위해 노력했다. 다른 음식과 옷도 보급을 잘해준 편이었다.
왕제 옆자리에 보기만 해도 가슴 떨릴 정도의 미인이 앉았다. 이민호에게 인사할 때 살포시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이는 미인을 보고 섬라에도 미인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제의 부인이십니까? 대단한 미인이십니다.”
“아니오. 애인입니다.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에까토싸롯은 왕의 친동생이며, 나레쑤언 국왕의 후계자나 다름없으니 정식 부인은 아니라도 이렇게 전쟁터에 여자를 데리고 온 것 같았다. 이민호도 호위를 빙자해서 여자들 십여 명을 좌승함에 태우고 다니니 남을 비난할 이유는 없었다.
“연약한 여인으로서 전쟁터에서 지내면서 고생하셨겠습니다.”
이민호는 왕제의 애인이라는 여자가 마음에 들어서, 혹시나 여동생이라도 얻을까 해서 작업용 멘트를 날렸다. 그런데 에까토싸롯 왕제가 벌컥 화를 냈다.
“전하! 제 시종이 아무리 여자처럼 생겨도 그렇지, 제가 전쟁터에 여자를 데리고 나올 그런 개념 없는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예? 그럼 저 분은.”
이민호가 미인의 목울대를 살폈다. 희미하게 나와 있는 것 같기도 해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도저히 구별할 수 없었다. 목울대가 튀어나온 것은 남자의 상징이었지만 가끔 목울대가 나온 여자도 있었다.
“제 시종은 당연히 남자입니다. 일본인이나 버마인, 포르투갈 사람들도 남자끼리 동침하던데 고산국은 신생 국가라서 아직 그런 풍습이 없나 봅니다.”
“하하! 뭐 다른 나라 풍습이지만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서로 좋으면 그만이죠. 신생 국가라서, 하하!”
이민호는 은근히 기분 나빴다. 에까토싸롯 왕제의 말에 따르면 이민호는 전쟁터에 여자를 데리고 다닐 정도로 개념 없는 권력자가 되었다.
다양한 문화가 융성하고 발전하는 섬라에 비해 고산국은 아직 멀었다는 식의 이야기도 불쾌했다. 그런데 예전 버마 국왕이 포르투갈 용병 근위대장하고 애인 사이가 되는 바람에 포르투갈도 같은 범주에 묶인 것이 좀 우스웠다.
“전하! 전쟁이 끝난 것 같아 이제 고국에 돌아갈까 합니다.”
“예. 그 동안 도움을 많이 주셔서 고맙습니다. 보상을 해드려야 할 텐데 혹시 원하는 게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최대한 들어 드리겠습니다.”
섬라 병사들에게는 명군이 귀국하기 전까지 명나라에서 매월 은 한 냥을 지급했다. 그 이후부터는 고산국에서 병사마다 은 두 냥씩 지급해서 사기를 드높였다. 섬라군의 보급도 고산국이 감당해줬다. 이민호가 말한 보상이란 국가적 차원의 것이었다.
“제 소원은 섬라의 독립입니다. 우리나라 섬라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 저의 유일하고도 간절한 소원입니다.”
섬라, 즉 아유타야 왕국은 버마로부터 갓 독립했고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으니 왕제로서 그런 소원을 품을 만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섬라가 이미 강대국이고 버마는 지는 해이며, 크메르 제국이 망하면서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섬라, 버마로부터 영토를 빼앗기는 약소국으로 전락했다. 18세기에 다시 강해진 버마에 의해 아유타야 왕조가 멸망하나 아직은 먼 미래였다.
“훌륭하십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겠습니까? 지금처럼 앞으로도 섬라와 고산국이 협력관계가 지속되길 원합니다.”
“국왕전하께서는 조만간 말래카 해협을 거쳐 인도양을 지나 아프리카로 진출하신다고 들었습니다. 그 소문이 맞습니까?”
“포르투갈 사람들하고 약속했었지요.”
일단 향료제도로 진출하는 네덜란드 상선들을 막고 나서 본격적으로 움직일 예정이었다. 인도양의 해적을 섬멸하고. 남아프리카 남단에 진출해 영국과 네덜란드의 인도양 진입을 차단하고, 오스만제국 및 무굴제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 수에즈 운하를 뚫어 유럽과 직접 통교하고, 흑인 병사들을 아프리카에 돌려보내 나라를 세우는 것이 이민호의 장기적인 계획에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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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가 없는 고산국에서는 주인공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것보다는 이견을 제시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기회가 생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