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367 41. 일본 멸망 =========================================================================
4월 중순이 되면서 이민호는 후궁, 호위들과 함께 벳푸의 온천지대에서 휴식을 가졌다. 허연 수증기가 곳곳에서 피어올라 지옥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산기슭에 작은 별장과 음식점이 세워져 있었다.
일반 병사들이 휴양하는 곳은 서쪽이나 남쪽 온천지대였고 개방형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둘레에 꽃나무를 심어 완벽히 차단된 곳이었다. 섭씨 98도에 이르는 온천수가 흐르는 주변 지역은 온도가 높아서 사시사철 꽃이 피어났다.
“주인님. 궁성에서 서양 상인들과 큰 거래가 있을 시기인데 안 돌아가세요?”
“아라 공주와 명명에게 알아서 하라고 편지를 보냈다. 몇 달 전부터 서양 상인들이 필요한 상품을 주문해서 다 생산해놨으니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다만 가격이 문젠데......”
민영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가격협상에서 밀린 서양 상인들이 쩔쩔 매겠군요.”
“큭큭! 그렇겠지. 너무 바가지 씌울까봐 그게 더 걱정이다.”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있으니 세상 일이 다 부질없는 짓 같았다. 이민호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반쯤 누워있는 사이 민영과 민혜가 이마에 올린 수건을 찬물에 식힌 것으로 계속 바꿔줬다.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지만 머리가 시원해서 내버려두었다.
이곳에 온 지 이틀째, 온천욕을 하면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고산국에서 파견한 궁중요리사와 조선과 명나라의 숙수, 일본의 요리사가 주방에서 함께, 혹은 교대로 일했다. 온천 별장은 세 나라 음식의 경연장이 되었다. 고산국 왕실에서는 기생충 감염과 중독 우려로 생선회와 복어 요리를 취급하지 않았다.
국왕이 쉰다 해서 요리 종류가 특별히 다른 것은 아니었다. 왕실 식구들에게도 온천을 방문한 일반 병사들과 똑같은 식단이 제공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리사의 솜씨가 달라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특권을 충분히 누리고 있었다.
“함대가 앞바다를 가득 메웠어요.”
“응. 드디어 끝난 모양이군.”
벳푸 앞바다를 전선과 수송선들이 가득 메우며 입항했다. 선착장에 여진 기병들이 말을 탄 채로 내리고, 해병들도 개인 소지품이 든 배낭을 메고 내렸다. 2만여 명을 수용할 숙박시설이 없어 여진족은 천막을 치고 지내야 했다.
“시원섭섭하시겠어요.”
“예상보다 일찍 끝나서 다행이지 뭐. 그리고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야.”
이민호가 다시 드러누웠다. 잠시 후 이민호가 오랫동안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상아 공주의 시녀들이 남자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도련님! 저 돌아왔습니다.”
“감불이 왔어? 수고했다. 너도 온천에 들어와라.”
갑자기 감불이 온천에 나타나자 헐벗은 주상아 공주의 시녀들과 비올레타가 비명을 질렀다. 이민호의 명령에 따라 감불이 옷을 벗다 말고 어리둥절했다. 친남매나 다름없는 호위들의 알몸을 보고 전혀 반응이 없던 감불이 주상아와 비올레타를 보고 깜짝 놀라 뒤돌아서서 다시 옷을 입었다.
“아! 귀인님들도 계셨군요. 죄송합니다.”
감불이 허둥지둥하다가 넘어지는 추태를 연출했다. 이민호는 어쩔 수 없이 수건으로 몸을 두르고 온천에서 나왔다. 그리고 작은 정자에서 얼음을 넣은 시원한 음료를 놓고 혼슈에서 돌아온 감불과 대화를 나눴다.
감불은 이민호에게 연락을 받고 병력을 간몬 해협이 아닌 벳푸에 상륙시켰다. 여진 기병과 고산국 기병, 그리고 해군 수병과 해병들이 온천에서 북적거렸다.
거리가 멀긴 하지만 2만여 명의 남자들이 홀랑 벗고 다니는 꼴을 본 이민호는 이곳이 역시 소문대로 지옥이구나 싶었다. 지옥은 펄펄 끓는 유황온천 이곳저곳에서 솟아나는 수증기 연기 때문에 생긴 벳푸의 별칭이었다.
“어떻게 됐어?”
“시키신 대로 했습니다. 천황인지 일왕인지가 사는 곳이 불타고 약탈당했습니다.”
“일왕이나 그 후계자들이 도망갔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후계자라 할 만한 자들이 남김없이 죽어서 일본 조정 대신들이 걱정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4월 초에 느긋하게 오사카에 상륙한 여진 기병 2만 기는 왜군의 저항을 전혀 받지 않고 교토 외곽에 진입했다. 그리고 일본 조정에서 파견한 중견 관리의 안내를 받아 난민을 토벌하러 비와 호 남쪽 길을 천천히 지나갔다.
곳곳에 왜군이 주둔해 교토를 방어하고 있었지만 이미 전쟁이 끝났으므로 여진 기병과 왜군의 충돌은 없었다. 일본 조정에서 정식으로 고산국에 파병 요청을 했으므로 고산국과 왜군은 이때만큼은 동맹군이었다. 여진 기병이나 고산국 기병들은 어색해 했지만 왜병들은 같은 편이 되어서 안도하는 표정이라 더욱 이상했다고 한다.
“교토 남쪽 길목을 지키는 군세는 우에스기 가문의 병력이었는데 대장이 사랑 애(愛) 자를 투구 장식으로 붙여서 변태 같았습니다.”
“징그럽다. 별 희한한 놈들이 다 있어.”
당시 우에스기 가문의 당주는 우에스기 카케카츠로서, 애 투구를 쓴 자는 친구이며 가신인 나오에 카네츠구였다. 애는 애염명왕(愛染明王)을 뜻하는 문자로서 밀교의 명왕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난민 10여 만이 여진 기병과 아슬아슬하게 길이 엇갈리는 바람에 난민들이 교토로 진입할 수 있었다. 난민들이 교토로 접근하는 사이 파발이 급히 뜨고 여진 기병이 뒤로 돌아 달렸다.
그 사이 교토 남쪽을 방어하던 우에스기 가문의 병력 1만이 무너지고, 대장인 나오에 카네츠구는 난전 중에 조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우에스기 군이 거의 일방적으로 몰살당하는 중에 여진 기병이 난민들의 본진 후방을 급습했다. 난민들은 뒤를 공격하는 기병이 왜군이 아닌 고산국 병력임을 알아보고 기겁했다.
일본인들에게 악마와 동급으로 평가받는 여진 기병의 출현에 놀란 난민들이 교토로 밀려났다. 그러나 교토는 이미 지난달에 난민들에 의해 초토화됐기 때문에 멀쩡한 건물은 일왕의 거처인 고쇼(御所)밖에 없었다. 여진 기병의 공격과 천황의 신벌 중에서 어느 쪽이 무서운지 여기서 결정 났다. 난민들은 여진 기병의 공격을 피해 전에는 감히 들어가지 못했던 고쇼로 난입해 여진 기병에 저항했다.
감불은 일왕의 안전을 염려한다는 핑계로 고쇼 바깥에 진을 치고 기다렸다. 그리고 사흘 동안 고쇼 안에서 난리가 났다. 죽고 죽이고 불을 질러 비명이 터져 나오고 하늘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일본 조정 관리들이 일왕을 구해달라고 애원했지만 감불은 섣불리 접근하면 일왕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병력을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왜군 부대가 근처에 있었지만 그들은 병력이 적어서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고쇼가 불타고 무너진 다음 난민들이 흩어지려 했습니다. 그래서 병력을 나눠서 난민들을 북동쪽으로 천천히 몰아냈습니다. 교토 북쪽에 진을 친 사나다 마사유키라는 영주의 병력이 그 와중에 몰살당했습니다. 적당히 난민을 추격하다가 돌아와서 계속 교토를 지키겠다니까 일본 조정 대신들이 그만 돌아가도 좋다더군요.”
“아주 잘했다. 출정비는 선불로 받았으니 상관없겠지. 돌아오는 길에 별일 없었어?”
공경 대신들의 허탈했을 얼굴이 눈에 선했다. 감불은 이민호가 시킨 임무를 120퍼센트 완수했다.
난민들은 교토에서 여진 기병에게 잠시 추격을 받아 비와 호변을 따라 북동쪽으로 도주했다. 난민들이 향하는 곳은 마에다 가문의 영지인 가가 지방이었다. 석고수 100만 석 이상의 영주가 마에다 도시이에 한 명만 남은 상황에서 가가 지방이 약탈당하면서 마에다 가문이 일본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가능성을 확실히 없애버렸다.
일왕이 죽은 다음 일본이 어떻게 될지 지금으로선 아무도 몰랐다. 방계 가문 중에서 일왕이 즉위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권위는 예전보다 더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일왕의 후손임을 표방한 여러 다이묘 가문에서 억지로 후계자를 내세웠다가 서로 싸울 수도 있었다. 지금은 제대로 영지를 운영하는 다이묘가 드물어 병력 동원도 어려운 시기라서 겨우 몇 만을 동원해서 일본 전체의 권력을 쥘 수도 있는 시기였다. 이민호는 일본에서 무장들이 군웅할거를 하든 말든 당분간 내버려 두기로 했다.
“오사카로 가는 길에 급히 교토로 이동하는 다테 가문의 기마병 3천기하고 마주쳤습니다. 길에서 엇갈려 지나치려고 했는데 기마 철포대라고 뻐기는 놈들하고 여진족들이 시비가 붙어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몰살시켰습니다. 카타쿠라 카케츠나라는 무장이 지휘했다고 합니다만 전사했습니다. 포로와 말, 갑옷은 다른 영주나 상인들에게 싸게 팔아버렸습니다.”
“누군지 몰라도 운이 없었군.”
다테 가문은 오슈 지방을 차지한 다이묘로서 오슈가 군마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무척 부유했다. 그래서 보병보다 운영비가 훨씬 많이 소요되는 기마병을 대량으로 운용하면서, 동시에 기마병들에게 철포를 사용하게 했다. 이민호가 초반에 승마보병을 운용한 것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 시대의 화승총은 말을 타면서 운용하기에는 극악한 수준이라 전쟁터에서 큰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기마병이 운용할 만한 마상총이 만들어진 시기에는 이미 기병이 전쟁터의 주역에서 밀려날 때였다. 이민호도 평원에서 전쟁을 할 것이 아니라면 굳이 승마보병을 운용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배에 타려는데 항구 주변에 난민들이 10만 정도 모여 있었습니다. 히메라 불리는 귀족 아가씨들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죽을 나눠주느라 팔 힘이 다 빠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는군. 혹시 시끄럽지 않았어?”
“초소카베 영주가 키가 아주 큰 아들을 보내 구호소를 지켜주고 있습니다. 병력은 적지만 굶주린 난민들이 통제를 잘 따라서 괜찮을 것 같습니다.”
조선 출신이라면 조선식 한자 발음으로 이름을 말했겠지만 감불은 여진족 출신이라 일본식 발음 그대로를 외웠다. 아와(阿波) 구니와 아와지(淡路) 섬의 다이묘였던 하치스카 이에마사가 조선에서 전사하는 바람에 이 지역에 대한 토벌을 의외로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초소카베 모토치카의 넷째 아들 초소카베 모리치카가 몇 년 전부터 후계자로 지정되어 있었다. 모토치카는 새로운 시대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른 시기에 가독 상속을 준비했다.
장남의 딸과 4남, 삼촌과 조카를 결혼시켜 가문을 상속시키는 꼴을 지켜보면서 이민호는 개 족보를 떠올렸다. 하지만 일본의 결혼문화는 조선이나 한국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했다.
“수고했다. 일본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겠다. 지켜보다가 누군가 혼슈 전체를 통일시킬 것 같으면 개입해야겠어.”
“시간이 꽤 걸릴 겁니다. 그리고 일본 조정이 무너지면 아무래도 내년부터는 배상금을 못 받아낼 것 같은데요?
“그럼 그 핑계로 일본을 다시 공격하겠다고 협박하지 뭐. 일본의 지배층들이 백성들을 굶겨 죽여가면서 배상금을 준비할 거야. 배상금을 적게 내겠다고 자기들끼리 싸우겠지.”
감불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민호는 일본 문제에 한해서 몹시 집요한 편이었다. 그가 이 시대로 날아온 직후부터 준비한 일이니 절대 허투루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 걸릴 일도 아니니 여진족들은 동해국으로 돌려보내야겠다. 수송선이 준비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하니까 그 동안 여진 기병들을 이곳에서 휴양을 시켜.”
“여진족들은 목욕보다는 먹는 것을 좋아하겠지요. 온천이 아주 멋지네요. 이곳 정자 연못도 그래요. 김이 솟아나는 이 뜨거운 물에 연꽃이 살다니 신기합니다.”
“이곳도 좋고, 사쓰마 지역도 괜찮아. 여기서 온천을 운영해보고 사쓰마에 더 큰 휴양시설을 지으려는 거야. 고산국에서 병력을 교대로 보내 큐슈를 방어해야 하니까 이런 휴양시설이 필요할 것 같아.”
“그런데 저 여자들은 뭡니까?”
감불이 10리 떨어진 병사용 온천에서 일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말했다. 여진 기병들이 거시기를 덜렁거리면서 움직여도 일본 여자들은 별로 놀라지도 않는 것 같았다.
“눈도 좋다. 난민들 중에서 젊은 처녀들만 추려서 이곳에서 일을 시키고 있어. 음식과 빨래도 하고 주변 농토에서 채소도 가꾸고 있지. 적당히 조선말을 가르친 다음에 여진 기병 중에 큐슈에 정착하겠다는 이들한테 시집보내려고.”
“흠! 일본 여자는 키가 작고 너무 약해서 여진족 남자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을 겁니다. 차라리 2만 기 전부 다 동해국으로 보내서 여진족 여자하고 결혼시킨 다음에 다시 데려오는 게 어떨까요? 여진족끼리 전쟁을 오래 하는 바람에 처녀는 충분합니다. 홀아비도 인기가 좋아요.”
“뭐?”
이민호가 큰 충격을 받았다. 큐슈에 정착할 여진 기병들에게 일본 처녀를 하나씩 떠맡겨서 장가보내주면 무조건 좋아할 줄 알았는데, 홀아비 주제에 따지는 게 많았다.
“그럼 저 처녀들은 어떡하지? 전쟁 중에 일본에서 남자들이 너무 많이 죽어서 성비가 균형을 잃었어. 시집가기 힘들 것 같다.”
이민호는 조선 외에 이 시대 다른 나라의 풍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부모와 가족을 모두 잃은 일본 처녀들을 보호해주고 시집보내줘야 한다는 책임감만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 처녀들을 온천에 데려와 일을 시키고 있었지만, 완벽하게 보호해줄 자신이 없었다.
여성의 정조 관념이 몹시 빈약한 이 시대 일본 평민 처녀들을 내버려두면 금방 불행해질 수 있었다. 일본인 남자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처녀를 덮치는 것은 물론이고, 일정 기간마다 마을 남자들이 모여서 같은 마을 처녀들을 윤간하는 일도 흔했다. 일부 촌구석 마을에서는 그런 풍습이 현대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최악의 경우는 일본인 남자들이 보호자가 없는 처녀들을 잡아서 유곽이나 기루에 팔아먹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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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은 한 회 남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