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83화 (332/1,000)

00383  42. 남방 진출  =========================================================================

8월에 김몽돌 소령이 돌아왔다. 김 소령이 지휘하는 탐사선은 다시 한 번 자카르타 인근 여러 도시에서 무역을 하고, 네덜란드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알렸다.

그리고 발리 섬 옆 해협을 지나 호주에 최초에 상륙했다. 호주 북서 해안에 대한 초기 탐사를 마친 탐사선은 브루나이로 돌아와 연료 공급을 받은 다음 이번에는 말래카 해협으로 향했다. 해협을 지나 안다만 해와 벵골 만을 거쳐 스리랑카의 경도를 측량하고, 돌아오는 길에 버마 남부 지방도 살핀 다음 귀국했다.

“호주는 그저 넓다는 표현밖에 못하겠습니다. 거의 비슷한 침로를 유지하며 3천 리를 지났는데도 여전히 해안선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김몽돌 소령이 제시한 지도는 호주의 북서쪽 해안 일부에 불과했다. 암벽이 지상에 드러나 끝도 없이 펼쳐진 지역도 있고, 벌건 황무지가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진 지역도 있었다. 배에서 내린 기마 정찰대가 이틀 동안 달렸으나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에서 모래와 자갈 외에는 아무 것도 못 보고 돌아왔다며 고개를 저었다.

탐사선은 적당한 곳마다 상륙해서 수심과 경도 측정을 하고 국경을 나타내는 동판을 세웠다. ‘고산국 영토 호주’를 한글과 한자,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영어, 그리고 아랍 문어로 병기했다. 그러나 한자는 대륙이란 뜻의 호주(濠洲)가 아니라 지방이라는 뜻으로 호주(浩州)로 썼다.

“원주민은 만났나?”

“거의 북동쪽 끝 어느 섬에서 원주민들이 살던 주거지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며칠 간 수색 끝에 겨우 만날 수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이 아프리카 흑인 병사들과 비슷한 피부색깔을 가졌으나 얼굴 모습은 동인도 제도에서 가끔 보는 흑인과 더 흡사했습니다. 원주민 열 명을 바닷가에서 만났는데 돌도끼나 돌창을 가진 자가 절반, 쇠도끼나 쇠창을 가진 자가 절반이었습니다.”

호주 북서쪽 해안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직경이 100km나 되는 섬과 거의 맞붙은 섬 두 개가 있었다. 지도를 꽤 세밀하게 그려서 위도와 경도를 넣지 않더라도 처음 가는 탐험대가 금방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쇠도끼를 가졌어? 오오! 그래서?”

“저희에게 말린 해삼 한 말을 주더군요. 그래서 쌀 한 섬을 주려고 먼저 한 말을 건네주니까 무척 좋아하면서 돌아갔습니다. 그 동안 동인도 제도 항해자들과 그보다 적은 비율로 교환했던 모양입니다.”

“아무리 열대 해삼이라도 그렇게 싸지는 않을 텐데.”

“바다 밑바닥을 들여다보니까 해삼이 아주 우글우글했습니다. 열대 해삼답게 밋밋한 해삼입니다. 여기 보십시오.”

김몽돌이 탁자 위에 놓자 바짝 말려서 쭈글쭈글하고 시커먼 해삼이 탁자 위를 떼굴떼굴 굴렀다. 겨우 선풍기 바람에 굴러갈 정도로 말린 해삼이 가벼웠다. 과연 식용이 가능한 해삼인지 알 수 없었지만 품질이 낮은 것만은 확실했다. 호주는 네덜란드에서 먼저 발견했으나 별 관심을 두지 않았고, 해삼 때문에 영국이 탐내게 됐다고 들었다.

선풍기는 톱니가 맞물리는 곳마다 윤활유로 떡칠을 했는데도 여전히 소음이 크게 났다. 아무래도 날개 형상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원주민들이 먹고 살 걱정은 없겠어. 다행이야. 그럼 가축은?”

“시키신 대로 원주민들이 살지 않는 곳을 골라 건조한 지역에 양을, 얼마 안 되는 산악지역에 산양을, 강변 풀밭에 소를 풀어놓았습니다. 숨을 곳이 별로 없어서 육식동물에 발견된다면 살아남지 못할 것 같습니다.”

“호주에 소를 잡아먹을 육식동물이 있나? 아! 악어가 있구나. 강에 올라오는 상어도.”

동남아시아에 이슬람이 번창하면서 양고기 수요가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됐다. 양모로 모직물을 만들고 양고기를 수출하는 것으로 호주의 기본 산업을 삼기로 했다.

가축을 풀어놓은 것은 자연 번식 가능성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자칫하면 호주 전 대륙이 양이나 산양으로 뒤덮일 우려가 있어 나중에 다시 회수할 예정이었다.

“헌데 아무리 돌아다녀 봐도 농사를 지을 곳이 없었습니다.”

“기후와 토양 때문에 농경은 호주 남동쪽에서 가능할 거야. 나머지 지역에서는 목축이나 해야지.”

“대부분 땅이 건조하고 풀이 짧으니 토끼를 키우면 어떻겠습니까? 고기와 가죽이 적지만 잘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호주에 토끼를? 끔찍한 소리 말게. 땅 전체가 토끼로 뒤덮여서 지평선이 흰 색으로 물드는 꼴을 보고 싶나? 토끼 때문에 모든 초지가 황무지로 변하는 것을 막기 위해 토끼만 걸리는 전염병을 퍼뜨려서 없애야 할지도 몰라.”

“무서운 이야기군요.”

호주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었지만 아직 벌어지지 않은 20세기의 사건이었다.

“다른 지역에서 봤던 동물이 없지?”

“예. 동물들이 다들 배에 주머니를 달고 다니면서 새끼를 키웠습니다. 동인도 제도에서도 동쪽 섬에서나 보던 특이한 동물이 호주에 많았습니다.”

“호주 전체가 다른 동물에 대한 면역이나 내성이 없으니 조심해야 할 거야. 만약 개를 몇 마리 풀어놓으면 몇 년 이내에 수십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며 사람을 습격하는 끔찍한 곳이 될지도 몰라. 호주에 상륙할 때는 동물 한 마리, 벌레 한 마리도 조심해야 해.”

“아아! 배에서 쥐 한 마리가 내려서 도망가는 것을 봤습니다. 배가 볼록한 게 새끼를 낳으러 가는 것 같았습니다.”

“끙! 놓쳤다면 어쩔 수 없어.”

호주는 유대류의 천국이었으나 이제 좀 달라지게 됐다. 이민호는 호주에서 지하자원을 캐고 목축 위주로 경영할 계획이었다. 남동쪽에서 농경을 하는 것도 가능했지만 너무 멀었다.

태즈매니아와 뉴질랜드는 호주 남동부에서도 더 멀어서 당장 어떻게 할 생각을 못했다. 이 시대에는 호주 전체보다 그 남쪽 태즈매니아 섬에 더 많은 원주민들이 살았으나 호주에 정착한 백인들이 학살해 멸종당했다.

뉴질랜드에는 이 당시 식인종인 마오리 족이 살고 있었다. 체구가 큰 마오리 족은 인구 절반이 죽어갈 정도로 치열하게 저항한 것을 자산으로 삼아 백인이 뉴질랜드를 점령한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땅은 무지막지하게 넓은데 인구가 적어서 당장 개발하기 어렵겠습니다. 그리고 원주민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시겠습니까?”

“계속 접촉해서 언어를 파악해야지. 아마 호주 전체 원주민들이 비슷한 언어를 쓸 거야. 북쪽에 다른 지역과 가까운 곳은 다른 언어를 쓰겠지. 땅이 워낙 넓으니 원주민 마을에서 충분히 떨어져서 살면 상관없어. 오히려 그들이 교역을 원할 거야. 만약 원주민들이 우리 것을 빼앗으려든다면 그때 누가 센지 가르쳐주면 돼.”

그 외에도 호주 북서 해안 지방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집무실에 입장한 기마 정찰대 장교가 해안에서 하루 이틀 거리의 내륙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지만 해안부터 안쪽 100리까지 거의 똑같은 지형이라 할 말도 별로 없었다.

“인도네시아, 그러니까 동인도 제도는?”

“동인도 제도의 주요 무역항에 요새를 건설하도록 도와줬습니다. 유력자들이 보는 앞에서 함포를 쐈습니다. 성벽이 단숨에 무너지는 것을 직접 실연하니 할 말을 잃더군요. 그 다음 철근과 시멘트로 단단한 포루를 지어줬습니다. 항구마다 대포가 몇 문씩 있는데 구경이 작은 편이었습니다. 3인치 함포를 황금 천 냥에 팔라고 해서 잠시 솔깃했습니다.”

탐사선의 3인치 함포로 성곽을 때려서 돌로 쌓은 성벽이 무너지는 꼴을 보게 된 왕과 유력자들은 시대가 변했음을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네덜란드 배가 와서 실제 전투 중에 성벽이 무너져서 받을 충격에 비하면 훨씬 약했다.

“일만 냥이면 몰라도 천 냥은 약하지. 잘했다. 포루는 위가 열린 것으로 만들어줬지?”

“물론입니다. 그런데 전하께 여쭤볼 게 있습니다. 그 나라들과 만약 고산국이 싸우게 된다면 너무 강한 방어시설을 갖추게 해준 셈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우리 손으로 말입니다.”

“전선의 주포를 5인치 함포로 개장 중이니까 괜찮아.”

“헉! 드디어!”

지금까지는 앞뒤에 3인치 함포 2문씩 도합 4문을 다는 것이 고산국 전선의 표준 무장이었다. 그러나 이물과 고물의 주갑판에 각각 5인치 단장포를 탑재하고, 상부 갑판에 위치한 3인치 함포탑을 3인치 2연장 포탑으로 교체했다. 같은 3인치 규격의 함포 2문이 같은 포탑 안에 나란히 탑재되는 형식이었다. 5인치 함포 2문이 순수하게 추가된 셈이니 화력은 두 배 이상 강화됐다.

조선을 비롯한 각국의 회반죽 종류 중에 시멘트 비슷한 단단한 건축자재가 있었다. 회반죽을 잘 활용하면 철근 뼈대에 자갈을 섞어 20세기 중반의 토치카와 비슷한 방어시설을 만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웬만하면 5인치 함포로 깨고 만약 안 부서지면 폭약을 설치해 날려버릴 수 있으니 가상 적국의 방어력이 강해지는 것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동인도 제도의 왕들과 혹시나 관계가 나빠지더라도 구태여 점령하거나 보복할 필요도 없어.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알아서 살아가라고 해. 네덜란드만 아니었으면 아예 관심도 두지 않았을 거야.”

“예. 브루나이에서 호주까지 항속 거리가 되니까 동인도 제도에는 굳이 중간 기착지를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쉬울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은 석유의 힘이었다. 만약 석탄을 때는 증기기관을 배의 동력기관으로 채택했다면 중간 중간 항구에 반드시 저탄시설을 유지해야 했다. 요즘 소나 말을 이용한 외륜선 사용이 외해 항행에서 줄어들면서 팔라완과 마닐라에 파견했던 병력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 고산국은 여전히 인구와 병력이 적기 때문에 가급적 해외에 파견되는 인력을 줄이는 일에 고심했다.

“말래카 요새는 요즘 네덜란드와 영국의 침공에 대비해 요새를 확장하는 공사 중이었습니다. 그곳 요새에서 이틀 쉬면서 철근과 시멘트로 포루 두 개를 지어줬습니다.”

“잘했어. 포르투갈 사람들이 해협을 지켜줬으면 좋겠는데, 네덜란드 모험가들이 죽기 살기로 달려들 테니 쉽지 않을 거야.”

에스파냐와 무역이 끊긴 이후 네덜란드 사람들은 모든 일에 목숨을 걸고 달려들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에 임하는 자세가 절실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고도 남지만 남의 것을 빼앗아 해결하려는 것이 문제였다.

김몽돌 소령이 말래카 해협을 지나 안다만 해와 벵갈 만을 항해한 이야기를 했다. 몬순 지대라 줄기차게 비가 왔다고 한다.

“혹시 포르투갈 해적선들이 달라붙지는 않았어?”

“몇 척이 접근했다가 태극기를 보고는 잽싸게 달아났습니다.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해서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해적선에 탑재한 함포의 사거리 아슬아슬한 거리일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인도양의 포르투갈 사람들은 고아 총독 밑으로 일사불란한 조직 체계가 갖춰진 게 아니니까 엉뚱한 놈들이 나올 수도 있어. 앞으로도 조심하는 게 좋아.”

특히 버마에서 용병 일을 하거나 해적질을 하는 포르투갈 모험가들은 그 행동을 종잡을 수 없었다. 고산국이 포르투갈과 우호적인 협정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고산국 탐사선이나 수송선에 해적질을 시도할 수 있었다.

“신참 모험가들은 어땠어?”

“뜻밖에 모든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위도와 경도를 잘못 측정하면 나중에 지도만 보고 올 배가 좌초할 수 있다고 하니까 아주 세밀하게 측정했습니다. 필요한 것은 결국 배우게 되더군요.”

교실보다는 현장에서 배우는 게 확실했다. 배우는 자세가 다르니까 가르쳐주는 사람도 흥이 났다.

“좋아. 보름 정도 쉬었다가 다음에는 탐사선 두 척을 이끌고 가. 매번 같이 움직일 배를 늘려야 할 거야. 선장과 항해사는 장교로 임명하겠다. 그러나 나중에는 선장부터 말단까지 군인을 배제하고 모험가로만 채워야 할 거야. 그러니 앞으로는 모험가들을 선박 운행에 참가시켜. 쉬는 기간에 모험가들을 모아 항해학을 가르칠 테니까 모자라는 것은 현장에서 따로 가르쳐.”

“모험가들에게 그 비싼 배를 맡기신다는 말씀입니까?”

“상인에게도 배를 맡기는데 모험가 정도면 만고의 충신이지.”

상인은 이익에 따라 국적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상인의 신앙도 일반인과 다른 면이 있다. 항해의 안전을 지켜주는 관음상이나 마조(媽祖)일 수도 있고, 심지어 돈 자체일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왕실 소유 수송선을 맡은 상인들이 함포와 기관이 딸린 배를 외국에 팔아먹고 도망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전하께서는 군인이 타는 탐사선과 민간인 탐사선 두 가지를 동시에 운용할 심산이십니까?”

“호주처럼 평화로운 곳에는 민간인 탐험대를, 인도양처럼 전투 위험이 높은 곳에는 군인 탐험대 위주로 보내겠다. 북미대륙에도 당분간 군인 탐험대 위주로 보낼 거야.”

“앞으로도 제게 이런 일을 맡겨 주십시오.”

“물론이지.”

이민호는 호주 북서쪽 해안 지도를 살피다가 김몽돌 소령이 기입해놓은 임시 지명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래. 호주 북쪽 끝에 섬 두 개 이름은 몽돌 섬과 순이 섬으로 정하겠다. 두 섬이 찰싹 달라붙어 있으니 부부 이름을 따서 붙이는 게 낫겠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섬 이름 같은 것보다는 실제로 마누라한테 잘해주는 게 좋을 거야.”

김몽돌 소령을 비롯해 장교와 부사관, 선원과 신참 모험가들까지 생명수당을 포함해 두둑한 상여금을 안겨주었다. 탐사단 전원이 비단과 도자기 일습 등 선물을 한 아름 안고 헤벌쭉해진 채로 돌아갔다.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부럽지 않아.”

혜영에게 대꾸하는 이민호의 목소리에 힘이 전혀 실리지 않았다. 혜영이 피식 웃었다.

“초기 탐사를 마치고 나서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면 짧은 기간 다녀오세요.”

“정말? 그래도 돼?”

“주인님은 새로 국가를 세운 창업자예요.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어쩌겠어요? 대신 안전을 충분히 확보한 다음 움직이세요.”

“고마워!”

혜영을 껴안으려 했으나 품안에서 아기가 자고 있어서 안지 못했다. 쭈글쭈글하던 피부가 펴져서 지금은 아주 탱탱했다. 아기를 볼 때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 작품 후기 ============================

가끔 직접 나갈 수도 있습니다.

북미에 갈 때는 왕실 절반 정도가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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