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397화 (346/1,000)

00397  44. 내부 발전  =========================================================================

“죄송합니다만 우리 에스파냐가 현재 종교 문제로 인해 프랑스와의 관계가 썩 좋지 않습니다. 근본도 없는 시골뜨기 나바라의 앙리 4세는 부모들이 철저한 위그노였고, 앙리도 프랑스의 칼뱅파 개신교도인 위그노였습니다. 그런데 프랑스 왕위에 앉기 위해 그 촌뜨기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척했을 뿐입니다.”

나바라는 현대의 바스크 지방으로, 한때 레온과 카스티야, 아라곤 지방을 차지해 스페인 거의 전역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산초 대왕의 분할 상속 이후 영토를 에스파냐 쪽에 다 빼앗기고 피레네 산맥 일부 지역만 남긴 채 프랑스 귀족이 되었다.

1562년에 시작된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이 지속되는 중이던 1589년 프랑스왕 앙리 3세가 암살당하면서 나바라 왕 앙리 드 부르봉이 프랑스왕 후계자로 지명됐다. 앙리는 몇 년 더 전쟁을 하다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다음 해에 앙리 4세로 즉위했다. 대관식이 1594년 2월에 있었고, 위그노 전쟁이 거의 끝나간다는 소식이 마닐라에 전해졌다. 프랑스혁명 시기까지 프랑스왕의 칭호는 ‘프랑스와 나바라의 왕’이었다.

“프랑스가 에스파냐에 전쟁을 걸어올 경우 붉은색 면포를 대량으로 유럽 시장에 풀면 프랑스에 경제적 타격을 크게 주어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 에스파냐를 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앞으로 붉은색 면포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싶다는 뜻입니다.”

위그노는 남프랑스에 많이 살았고 보르도와 라 로셀 항의 무역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붉은색 염료의 원료인 꼭두서니는 남프랑스에서 주로 재배됐다. 붉은색 면포를 유럽에 대량으로 푼다면 남프랑스의 위그노에게 확실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이 시기 면직물은 고급 천에 속했다.

오랜 전쟁에 지친 신성동맹 소속 도시와 지방들이 프랑스왕에게 속속 투항할 때, 브르타뉴는 에스파냐의 지원을 받으며 끝까지 저항했다. 1595년 1월 프랑스가 에스파냐에 선전포고를 하고, 벨기에에 주둔 중인 에스파냐 군대 때문에 루앙, 칼레, 아미앵 등 프랑스 영토 내에서 전쟁이 벌어진다. 결국 1598년 앙리 4세가 낭트칙령을 발표해 개인의 종교 자유를 인정한 다음 에스파냐와 평화조약을 체결하면서 위그노 전쟁은 완전히 끝난다.

“음. 그것 참. 물건을 파는 것일 뿐인데 남의 나라 전쟁에 간섭하는 격이 되는구려.”

“폐하! 멕시코 부왕령에서 파나마에 운하를 건설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산국이 유럽에 직접 진출하는 일을 에스파냐가 적극 돕겠습니다. 항해기술이 발달한 고산국이 언젠가 유럽 시장에 직접 진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이 급해진 페드로가 이민호에게 갖가지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호주를 얻고 나서는 파나마 운하가 열리지 않더라도 남미 남단이나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은 아직 남극 항로를 알지 못했다.

“도와줄 수는 있으나 많은 양을 생산할수록 생산비용이 높아지는 구조요. 면포 가격이 오를 것이오.”

“어느 정도는 감수하겠습니다.”

페드로는 이민호의 말을 믿지는 않지만, 프랑스의 위그노를 경제적으로 공격할 수만 있다면 가격 상승을 용인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대량의 붉은색 면포를 에스파냐에 넘기기로 약속했다.

붉은색으로 염색한 면포의 가격은 세 배로 결정됐다. 염색하지 않은 면포 자체도 고산국의 것이 다른 나라에 비해 품질이 우수하고 가격경쟁력도 있었다. 기계직조 방식이라 생산비가 싸다는 사실을 에스파냐에서는 전혀 몰랐다. 그리고 염색은 합성염료로 해서 원가가 싸게 먹히고 염색법도 훨씬 간단했다. 이민호는 처음으로 사치품이 아닌 상품을 대량 판매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수질 오염 문제는 이미 해결해두었다.

옥 도자기와 비단 같은 다른 상품도 거래를 마쳤다. 이 두 가지는 정해진 가격에 정해진 물량이라 확인만 하고 바로 결제했다. 포르투갈의 커피 수입액이 매번 거래할 때마다 두 배 이상씩 늘어났고, 유럽 디자인으로 제작한 칼 여러 종류가 처음으로 배에 실렸다. 초겨울이라 해달 모피는 재고가 없다고 했다. 서양 상인들이 해달 모피를 살 돈도 없었다.

“동 두아르테! 향신료 무역은 잘 됐습니까?”

“올해는 안개 낀 날이 적어 육두구와 정향이 흉년입니다. 유럽에 가져가면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계라는 게 있는 법입니다. 비싸게 팔리더라도 물량이 적어 오히려 손해를 볼까 걱정입니다.”

“그럼 내가 물량을 어느 정도 대줄 테니 팔아보시오. 포르투갈 물량을 비싼 값에 먼저 팔고 나서 고산국 물량을 팔아서 나중에 정산합시다.”

“예? 고산국에서 육두구와 정향을 생산합니까?”

두아르테가 충격을 많이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애를 써서 동남아시아의 바다를 장악하고 이슬람 상인들의 향신료 무역을 방해했는데 엉뚱한 곳에서 사고가 터졌다.

“향신료는 토양과 기후만 맞으면 어디서건 잘 자라기 마련입니다. 유구국 상인들이 몇 년 전에 선물로 묘목을 주고 간 것이 있어서 남쪽에서 생산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내 수요량을 넘길 정도로 충분히 생산됐으니 남는 것은 판매해야지요.”

“그 동안 고산국에서 향신료를 수입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군요. 하오나 폐하!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살려주십시오!”

“걱정 마시오, 동 두아르테. 나는 우방국인 포르투갈의 이익을 침해할 생각이 없소. 그러니 물량이 부족할 때만 고산국에서 그 부족분을 채워가라는 뜻이오.”

“그러시면 고맙습니다만.”

물량이 모자랄 때 언제든 채워줄 수 있는 든든한 생산기반을 새로 갖게 됐지만, 두아르테는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최근에 간신히 향신료 무역에 끼어든 페드로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후추는 다섯 가지를 대량 생산 중이오. 그 중에서 세 가지가 유럽인들 입맛에 맞을 것이오. 인도에서 판매하는 가격보다 싸게 맞춰주겠소. 범선 세 척에 실을 물량은 되니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폐, 폐하! 그 동안의 협업관계가 향신료 때문에 무너질지도 모릅니다.”

“흐음. 별로 원하지 않는 모양이구려. 알겠소. 그럼 포르투갈의 이익을 위해 고산국에서 생산한 후추는 조선과 일본에만 판매하겠소.”

동아시아의 향신료 무역에서 포르투갈이 누리던 우위가 이로써 완전히 사라졌다. 향료제도까지 항해하는 인도와 아랍 상인들 때문에 어차피 처음부터 포르투갈이 향신료를 독점한 적은 없었다.

“폐하께서는 처음부터 우리 포르투갈의 목줄을 쥐고 계셨군요.”

“무슨 말씀이오? 모험심 강한 포르투갈 사람들의 목줄을 쥘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두아르테의 안색이 하얗게 변한 채 숨을 헐떡였다. 그리고 뭔가를 제시해야 함을 깨달았다.

“그 동안 반대했던 수에즈 운하 건설에 포르투갈이 최대한 협조해드리겠습니다. 하오나 영국과 네덜란드의 진입을 확실히 막아주십시오. 고산국 향신료는 포르투갈과 에스파냐에게만 판매해주시고, 다른 나라로 향신료 재배가 퍼지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향신료 무역과 운하 건설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합시다. 어쨌든 고산국에 향신료 재고가 꽤 많이 있으니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는 원할 때 언제든 활용하시오.”

“감사, 감사합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전쟁을 해서라도 향신료 무역에서 나는 이익을 지키려 할 텐데, 고산국 상대로는 감히 엄두를 못 냈다.

“두 나라 상인 여러분께 노예무역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폐하.”

전에도 이민호가 결정권을 쥐고 있던 판매자 시장이었지만 그래도 은을 잔뜩 들고 있는 구매자 입장이라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상인들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이민호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아프리카 흑인들도 사람입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가하고 신부님께 세례를 받아 정식 신자가 된 흑인 병사들이 많습니다. 고산국에서는 흑인 노예들이 자유인이 되어 병사로 지원한다는 사실을 아시죠?”

“예. 그렇습니다. 흑인도 하느님 앞에 평등한 사람 맞습니다.”

“앞으로 노예무역을 자제해주셨으면 합니다. 노동력이 필요하다면 임금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에스파냐의 페루 부왕령에서는 포토시 은광에서 원주민들에게 교대로 무임금 부역을 시키고, 멕시코 부왕령에서는 주로 자유노동자를 고용해 여러 은광에서 일을 시켰다. 수은 중독과 각종 사고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부역은 점차 임금노동으로 변해갔다.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아프리카에서 매년 1500명에 달하는 노예를 수입해 은광에 투입했다.

“으음. 우리 에스파냐 입장에서는 노예에게도 식량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노예나 임금 노동자나 들어가는 비용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습니다. 두 부왕령과 본국 국왕폐하께 건의하면 쉽사리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달리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혐오감 드는 노예무역을 하면서 다른 나라로부터 경멸을 받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르투갈은 판매할 물건이 별로 없기 때문에 노예무역에서 얻는 자그마한 이익에라도 의존하고 싶어집니다.”

에스파냐는 은광에 노동력 공급만 된다면 노예든 임금 노동자든 상관없다는 입장이었고, 포르투갈은 자그마한 이익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래서 이민호가 이번에도 돈으로 때웠다.

“앞으로 20년 동안 두 나라에 매년 은 10만 냥을 상품 대금에서 감해주겠소. 그러니 노예무역을 하지 마시오.”

“컥! 당장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도 하느님의 종으로서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 같아 기쁩니다.”

서양 상인들은 노예무역으로 인해 별로 양심에 꺼린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일단 말은 그렇게 했다. 그래서 올해부터 당장 은 10만 냥씩을 깎아주고 노예무역을 없애기로 합의했다. 영국이나 네덜란드가 노예무역에 참가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나중 일이었다.

“그럼 포르투갈 사람들이 잔지바르의 노예시장에서 퇴거하도록 연락하시오. 이익을 적당히 나눠주면 받아들일 것이오. 고산국 함대가 인도양에 진출하는 즉시 가장 먼저 잔지바르의 노예시장을 없앨 것이오. 남대서양의 다카르와 카보베르데 섬도 공격할 것이오.”

“예. 예? 잔지바르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서해안의 노예시장도 공격하시겠다고요? 그럼 고산국 전선이 대서양을 항해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현재 북태평양을 탐사하는 줄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뭐, 할 수 있겠지요. 희망봉을 돌든, 마젤란 해협을 돌든 가능하지 않겠소? 지구는 둥그니까요.”

“그렇습니다.”

서양 상인들은 고산국이 항해능력이 없어서 두 나라에 중개무역을 맡긴 게 아니라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깨닫게 되었다. 사실 고산국은 아직 한 번도 대서양에 진입한 적이 없었으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연코 없었다. 다만 연료 문제가 남았으나, 연료 수송선을 동반시킨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당분간은 무역을 두 나라에 맡길 계획이었다. 무역 독점을 하려다간 두 나라와 싸우게 될 테니, 이익을 적게 보더라도 우방을 얻는 편이 나았다.

“헌데 저희가 폐하께 바칠 선물로 노예를 약간 데려왔습니다. 고산국에 오는 노예는 즉시 해방되는 것을 알기에 노예를 사오면서도 심적 부담이 적었습니다.”

“어허. 알겠소. 노예를 해방하고 적당히 일을 줘서 살게 하겠소.”

포르투갈 상인 두아르테는 마카오에 오래 거주하다 보니 동양식 상거래에 익숙해져서 능숙하게 선물을 바쳤다. 이민호는 노예를 돌려보내느니 고산국에서 살게 하는 편이 노예에게도 좋을 것 같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수에즈 운하 이야기는 이집트 총독과 오스만제국 관리에게 문의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소. 선물도 좀 뿌려가면서 대화를 진행해보시오.”

이민호가 외국인들을 상대해야 할 두아르테에게 은 20만 냥, 내국인들을 설득해야 할 페드로에게는 10만 냥을 따로 건넸다. 운하 건설에 필요한 기름칠 비용이었다. 운하가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나, 있으면 항해 거리를 줄일 수 있어서 좋았다.

항상 그랬듯이 상담을 마치고 나서 며칠 동안 범선에 상품을 적재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했다. 도로를 가득 메운 마차가 왕도와 아리수 항을 오가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아리수 강변을 열차가 세 번을 왕복하면서 아리수 항 부두에 기중기의 도움을 받아 컨테이너를 내려놓았다. 인력으로 짐을 옮긴 것은 부두에서 배까지 단 몇 십 미터에 불과했다.

“폐하! 이게 뭡니까?”

“기차라고 합니다. 증기기관은 아시죠?”

“예. 고대 그리스에서 학자들이 장난삼아 만들거나, 경건한 분위기가 필요한 신전 문을 자동으로 여닫을 때 썼던 것으로 압니다.”

“그것과 비슷한 장치를 단 수레입니다.”

“전기 같은 이해 못할 장치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쉽군요.”

“유럽에서도 학자들과 장인들이 머리를 맞대면 비슷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얼마나 시간이 많이 걸리고 효율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당시 유럽 기술로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중세시대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증기기관을 만들어 활용법을 고민하기도 했다.

============================ 작품 후기 ============================

할 일이 많네요. 좀 건너뛰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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