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1 44. 내부 발전 =========================================================================
“제가 알기로 필리핀 동부에서 여름과 가을에 태풍이 자주 발생합니다. 신참 선원들을 그 지역에서 연습시키면 어떻습니까? 해상근무를 2년 이상 했던 조타수들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견습 선원들을 다 죽일 셈인가? 사실 선원들 담력 훈련을 해봤자 소용도 없을 것 같아. 대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어. 앞으로 일정 이상의 파고에서는 고참 조타수만 타를 잡도록 해.”
그나마 탐사대가 항해 경력이 많은 자들로만 구성돼서 거대한 파도에 겁먹고 바다에 뛰어들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다.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같지만 공포에 질려 배를 탄 것을 후회하다가 배를 바다보다 더 무서워하면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고 직후부터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혹시 신참들 엿 먹으라고 신참들만 타를 잡게 한 것은 아니겠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교대했다가 문제가 생긴 다음부터 장교들도 돌아가면서 하루 두 시간씩 타를 잡았습니다.”
어느 나라 조직사회에나 호된 신고식이 있게 마련이지만 조선 조정의 신참학례(新參虐禮)는 정도가 심한 편이었다. 고려 말에 관제가 어지러워지면서 고관대작의 자식들이 쉽게 관리가 되면서 이들의 버릇을 휘어잡기 위해 시작됐다고 하나, 핑계에 불과했다.
대표적으로 기록에 남은 승문원, 성균관, 교서관에서는 허참례와 면신례 사이에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신참에게 모욕을 주고 각종 연회를 요구하는 등 주로 심리적, 경제적 압박을 가했다. 무반 계통인 내금위, 별시위, 우림위 등에서는 신참이 고참들로부터 받는 대우는 거의 육체적 학대 수준이었으며 사상자가 속출했다고 한다.
문제는 조선의 역대 국왕이 누차 금령을 내리고 법으로 막아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사헌부와 의금부 등 감찰 기관이나 법 집행 부서들까지 법을 무시하고 신참학례를 더욱 심하게 했다.
다행히 고산국에는 신참학례가 없었다. 초반에는 있었을지도 몰랐고, 지금도 안 보이는 곳에서 이뤄질지도 몰랐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관리가 되는 것을 크게 명예로 삼지 않는 분위기라서 고참이 신참학례를 하는 낌새만 풍겨도, 조금만 기분 나쁘게 대해도 자리를 버리고 나가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면 다음에 신참이 들어올 때까지 고참들만 죽어나갔다. 일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감히 신참을 괴롭히는 간 큰 고참은 없었다.
그리고 고산국에서는 징병제가 아니라 모병제라서 군에서 신참을 학대하는 악습이 생기기 어려운 편이었다. 그리고 신병의 희망에 따라 배치 부대를 쉽게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신병이 줄줄이 빠져 나가면 고참들만 손해였다. 또한 지금까지 전쟁에 여러 번 참전한 고참들의 권위는 신참학례가 없더라도 자연히 생겨났다. 신병들은 고참들이 해주는 전투 이야기에 껌뻑 죽었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호주 신부산에서 출항해 남태평양 항로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한 바퀴 도는 것일세. 출발하기 전에 페루 부왕에게 보내는 국서를 받아가게. 남극 항로도 그대에게 맡길 테니 쉬면서 준비를 하게.”
“전하! 남극 항로라 하시면......”
“호주 남쪽에서 출발해 남미 대륙 남단과 아프리카 남단을 지나 지구 한 바퀴를 가장 짧게 도는 항로일세.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때마다 임현석 중령의 이름이 영원히 기록될 걸세.”
“영광입니다!”
경제적 보상도 충분히 하고 있지만 탐사대가 가장 큰 보상으로 여기는 것은 첫 번째라는 명예였다. 북태평양 순환 항로는 에스파냐가 먼저 개척했지만, 나머지 항로는 임현석 중령이 고산국 첫 번째가 아니라 세계에서 첫 번째일 가능성이 컸다.
연말에 총함장 이순신의 막내아들 이면이 사관학교 산악부 동료들과 함께 집무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고산국 남부 고산준령의 최고봉인 옥산을 기어코 정복하고 말겠다며 허락을 요구했다.
사관학교장인 김학도, 아버지인 이순신도 결국 이면을 못 말렸다. 이순신은 괜히 이민호가 바람을 불어넣었다면서 항의하기도 했다.
“기어코 가려고 하는구나.”
“장교로 임관하고 나면 시간이 없을 것 아닙니까? 어쨌든 전하께서 살펴보시고 허가해주십시오. 사관생도로서 사관학교장의 부당한 결정에 상소할 권리가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고산국은 현재 대원수와 총함장이 각각 육군과 해군을 맡아 지휘하고, 사관학교장이 육해군 생도들을 교육시키는 체제였다. 사관학교가 육해군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않고 국왕 직속 기관이라 사관학교장의 군령상 상급자는 바로 국왕이었다.
이면 등 우수 생도들을 유럽 군사학교에 위탁교육을 보낼까 했는데 유럽의 유명한 산마다 다 오를까봐 차마 못 보내게 생겼다. 이민호가 등반계획서를 살폈다.
“등반대원 다섯에 안내인 세 명? 너무 단출하지 않나? 그런데 안내인은 뭐야?”
“고산국 원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옥산 중턱에 고산족 원주민 종족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을 안내인 겸 짐꾼으로 고용할 예정입니다.”
“그런데 저 개는? 다섯 명이 개 다섯 마리를 데려간다고?”
탁자 맨 끝에 큼지막한 개 한 마리가 대표로 와서 의젓하게 앉아 있었다. 얼굴이나 체형은 알래스카 말라뮤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뚱뚱해 보였다.
이민호는 몰랐지만 일본이 남극 대륙에 데려갔던 사할린 허스키라는 견종이었다. 시베리아 지역에는 시베리아 허스키 말고도 늑대와 비슷한 모습의 썰매 끄는 개들이 여러 종류가 있었다.
“아이누 섬 북쪽 사할린에서 구한 개입니다. 힘이 좋고 추위를 잘 견딘다 해서 여러 마리를 구했습니다. 이 개들이 썰매를 끌 수도 있고, 등에 짐을 메고 다닐 수도 있습니다. 옥산에 설표가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맹수가 접근하면 이 개들이 먼저 경고를 해줄 것입니다.”
“식량 떨어지면 냠냠하게?”
“키우던 개를 어떻게 잡아먹습니까? 그리고 살펴봐서 결코 위험한 곳까지 올라가지 않을 계획입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민호는 아문센 등이 북극이나 남극을 탐험할 때 개썰매를 타고 달렸다고 들었다. 나중에 탐사대에게도 개썰매를 끌 개들을 준비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면을 위험한 탐사대에 들이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자칫 사고라도 나면 이민호는 이순신의 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이민호가 대학 다닐 때 읽었던 난중일기에서 막내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심정을 절절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같은 사건이 나게 할 수는 없었다.
“방수가 되는 외투로 잘 준비했군. 이건 오리털 침낭인가? 얼어 죽지는 않겠어. 비상식량도 충분하고.”
산악부가 사용할 장비를 이민호가 직접 검사했으나 꼼꼼하게 잘 준비한 것 같았다. 지난 몇 년 동안 등반을 해온 전문가들이 준비한 것이라 문외한에게 트집 잡힐 일은 없었다.
“선물을 주마. 이건 저번에 말했던 산소 호흡기야. 계기판에 시간 표시가 되어 있듯이 몇 시간 못 쓰니까 호흡기를 달고 높은 곳에 올라갈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위험한 경우에만 사용해. 고소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생기면 도움이 될 거야.”
“감사합니다. 지난번에 높은 산에서 고산병을 겪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우수한 대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산악부를 탈퇴했습니다.”
이민호가 안면 전체를 가리는 산호호흡기 다섯 개를 넘겨줬다. 플라스틱과 모피로 추운 날 피부에 달라붙지 않게 잘 만들었다. 군용 눈안경은 산악부에서 이미 갖고 있었다.
“이건 옥산 정상에 파묻을 동판이야. 국적과 이번에 오를 등반대원들 이름이 새겨져 있지. 그리고 이건 다음에 등반할 사람들을 위한 탁본용 금속 막대기야.”
“이런 것까지 준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로 무겁지는 않군요.”
“위험하지 않다면 앞으로 많이들 올라가겠지. 다녀와서 등반기를 잘 써보게. 나중에 등반할 사람들에게 좋은 안내가 될 거야.”
이민호는 이면이 가는 길에 괜히 다른 일을 시키고 싶어졌다.
“가는 길에 원주민들 생활도 살펴보고, 문제가 있다면 내게 바로 건의를 하게. 하산하는 길에 일정이 맞으니까 고산족 특별 징병시험도 주관하게.”
“저희들은 사관생도인데 괜찮겠습니까?”
“어? 지도 교사는? 장교들 있지 않나?”
임시로 사관학교에서 강의를 맡은 장교들이 교사라 해서 교수부 인원의 주를 이뤘다. 현대 한국 사관학교 같으면 교수 요원을 사관학교 시절부터 따로 키우거나, 주로 한 자리 이내 우수 졸업자가 교수를 한다고 들었다.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다른 교수들도 장교로서 교수사관으로 채용됐다.
고산국에서도 나중에는 사관학교 졸업여부와 상관없이 전원 장교 출신을 교수로 임명할 계획을 세워두었다. 당연히 교수 요원들이 석박사 학위까지 마치도록 국비로 지원을 해줄 계획이었다. 사관학교의 특성상 학문의 깊이보다는 폭넓게 배우는 것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 교사님들은 이번 등반은 아예 포기하셨습니다. 옥산은 너무 높답니다.”
“그래도 생도들이 야외활동을 하는데 인솔자가 있어야지. 너희들은 생도에 불과하니 지도 교사와 산중턱까지만 동행하도록 해.”
이면 등이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으나 외부 일은 사관생도보다는 장교가 책임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사관생도들이 현역 장교들보다 너무 씩씩해도 이렇게 탈이 생겼다.
며칠 후 이면이 옥산으로 향했다. 아직 고남 시까지 연결되는 철도가 개통되지 않아 사관학교장 김학이 특별히 가벼운 산악용 마차를 빌려주었다. 가족들과 인사를 마친 산악부 대원들이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순신이 배웅 나왔다가 이민호와 마주쳤다. 이순신의 노여움이 깃든 눈초리를 받은 이민호가 바짝 졸았다.
“이보게, 통지! 내 막내아들이 혹시나 잘못되면 내 다시는 자넬 안 볼 줄 알게나. 국왕전하가 사관생도 하나 못 말리나?”
“아이고! 형님! 나도 면이를 최대한 말렸습니다. 도대체 말을 들어먹어야 말이죠.”
“도대체 말이야. 애비 말 안 듣는 건 영락없이 지 애비 닮았어.”
“형님도 젊으셨을 때 그러셨나요?”
효자에 언제나 바른 생활 사나이 같은 이순신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을 믿기 어려웠다.
“젊었을 때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지.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너무 걱정시키면 안 좋아.”
“면이가 그러는데 사관학교 다니는 동안만, 그것도 방학 때만 마음대로 하고 싶답니다. 이번에 준비도 철저히 한 것 같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면 등이 젊은이의 치기가 아니라 등반 전문가로서 철저히 준비한 것 같아서 이민호도 등반을 허락하고 말았다. 장비도 극한지용으로 제대로 준비했으니 뭐라 트집 잡을 핑계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옥산 주봉은 3952미터로서 고산국 최고봉인데 아직 정상을 등정한 기록이 없다는 사실에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히말라야라면 몰라도 국내 최고봉은 진작 정복했어야 했다.
“원주민들이 산중턱까지 벌써 길을 닦아놨습니다. 그리고 겨울에 바람이 더 약하게 불고 눈과 비가 적게 오기 때문에 차라리 한겨울에 가는 편이 낫다고 합니다. 직접 만나보니까 다들 단단히 마음을 먹고 장비 준비를 철저히 해서 문제는 절대 안 생길 겁니다.”
“신경 써줘서 고맙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내 자식이 못난 탓이겠지.”
현대에는 삼림철도가 옥산 정상 아래까지 나 있어서 세 시간짜리 당일 트래킹도 가능했고, 한국에서 출발하는 3박 4일 대만 관광코스 중의 하루 일정에 포함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산 밑에서부터 며칠이나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걱정했는데 이면과 사관학교 산악부원들은 3박 4일 만에 아무 탈 없이 돌아왔다. 연말에 옥산 주봉을 등반하고, 하산했다가 다음 날 꼭두새벽에 다시 출발해서 새해를 산꼭대기에서 맞이했다고 한다.
이민호는 이면과 대원들에게 당장 그 자리에서 등반기를 쓰라고 독촉해서 다음 날 국영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운해 위에서 맞이하는 새해가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울 수 없다는데, 이 시대에 아직 사진기가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면은 낙석지대를 우회하고 낭떠러지 길에 난간을 설치하는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등반객이 많아지면 정상 아래에 산장을 설치할 것을 건의했다.
이민호가 원주민들을 동원해 두 달 안에 건의사항을 다 해결했다. 종종 등반객들이 찾아와 고산족 원주민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고산지대에 사는 원주민을 고산족이라 하는데 나라 이름이 고산국이라서 국왕인 이민호가 고산족 원주민 출신인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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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1595년입니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