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7 45. 1595년 =========================================================================
2월 초에 인도양 탐사를 마치고 김몽돌 소령이 돌아왔다. 소형 탐사선 세 척이 인도양을 항해하며 홍해와 페르시아 만을 중심으로 아라비아 반도 주변과 아프리카 동해안 측량을 마쳤다. 호주 남서부 신여수에서 인도와 아라비아 반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잔지바르 섬 근처에서 계절에 따라 남동풍과 북동풍이 번갈아가며 불어서 항해에 아주 유용합니다. 바람을 잘 활용하면 기관을 끄고 바람과 해류만으로 인도양을 뱅뱅 도는 것도 가능합니다. 갑자기 아랍 해적선들이 나타나서 전령들이 포탑으로 뛰어야 했습니다만,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기관을 끄면 전화가 먹통이 된다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선실 전기공급용으로 작은 기관을 꾸준히 돌려야 할까? 어쨌든 수고했다. 그런데 저번과 달리 해적선들이 왜 그리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지난번에는 태극기 달고 다니면 다들 도망갔었잖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고산국이 부자 나라로 소문이 난 모양입니다. 상품이 별로 안 실린 탐사선인데 말입니다.”
인도양 탐사전대 세 척이 한 달 동안 아랍 해적선 23척, 인도 해적선 11척, 잔지바르 근해에서 아프리카 해적이라고 분류해야 할 오만 해적선 5척을 격침시켰다. 인도양에서 평균적으로 매일 같이 전투를 한 셈이었다.
“아부다비 섬 주변의 수심을 정밀하게 여러 번 측정했습니다. 항구를 만들려면 물때에 따라 몇 번 더 측정해야 합니다만 충분히 깊은 안전한 해로는 일단 찾아냈습니다. 주변에 선물을 주라는 명령을 수행하려고 근처에 사는 베두인 족 토호들에게 비단과 설탕, 소금을 조금씩 나눠줬습니다.”
“얼마나? 충분히 주지 그랬어?”
김몽돌 소령은 인도 고아에서 포르투갈 부왕을 만나 옥 도자기를 선물로 바치고 아부다비와 주변 섬들에 대한 영속적인 토지소유 허가증을 얻었다. 포르투갈이 아부다비와 인근 섬들을 고산국 영토로 인정한 것이다.
접시 세트와 찻주전자 세트를 받은 부왕은 흐뭇해하고 비단 몇 필을 받은 부왕의 말레이계 혼혈 딸이 무척 기뻐했다고 한다. 이로써 아부다비에 매장된 석유는 고산국 것이 되었다. 이제 만수르는 없다.
“토호들마다 대충 서너 포대씩 나눠줬습니다. 몹시 기뻐해서 저희들도 기분이 좋을 정도였습니다. 아부다비나 주변 섬들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지라고 합니다. 고산국에서 무역항을 만들겠다면 노예들과 낙타를 보내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토호들이 우리가 아랍 해적이나 포르투갈의 공격을 막아주길 원했습니다.”
“안전한 무역항이 생기면 토호들도 장사하기 좋을 테니까 기대하겠지. 아마 인도와 페르시아 무역선들도 자주 찾아올 거야. 하지만 아부다비에 무역항을 세울 계획은 없잖아?”
“주변 지역을 안정시키기 위해 포르투갈과 협의해서 무역항을 세우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다만 오만 술탄이 욕심을 낼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놈의 오만한 오만 술탄!”
이 시대에는 아부다비 북쪽 카타르 반도에서 바로 북쪽부터 오스만제국 영토였다. 제국 영토는 아라비아 반도 내륙지방을 빼고 해안선을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갔다. 홍해 쪽도 마찬가지로 오스만제국은 주거지가 밀집한 해안지방만 중시했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두 종교 도시 중에서 메카는 해안에서 50km, 메디나는 해안에서 100km 거리였다. 이 정도가 오스만제국이 실질적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지배력을 미치는 범위였다.
“그런데 그 지역 설탕 값이 좀 비싼 모양입니다. 설탕 값에 해당하는 선물로 대추야자와 꿀단지를 산더미처럼 주더군요. 중동과 북아프리카는 사탕수수의 주요 산지라고 들었는데 왜 설탕 값이 비싼지 모르겠습니다.”
“자네가 고중 평야에 펼쳐진 사탕수수 밭을 봐서 우습게 보이겠지만, 사탕수수는 의외로 경작비가 많이 드는 작물이야. 건조지대라서 생각보다 생산비가 많이 들거나, 아니면 누군가 설탕을 독점해서 장난치고 있을지도 모르지.”
십자군 원정 이후 중동에서 지중해 남단 유럽으로 사탕수수 재배가 확산됐다고 하지만 아직은 꿀보다 설탕이 더 비싼 시기였다. 유럽 귀족들이 홍차와 함께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소비한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가 설탕이었다.
아부다비는 평평한 섬이라 항구로 쓸 만한 해안 근처 땅이 약간 솟은 언덕을 요새 자리로 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탐사대가 아부다비에서 아직 물을 못 찾았다. 여차 하면 땅을 깊이 관정할 계획이었으나, 보통 우물 깊이에 물이 있을 것으로 이민호는 확신하고 있었다. 잘못하면 물보다 석유를 먼저 찾게 될지도 몰랐다.
“아랍 해적들도 처음에는 설탕을 달라더니 갑자기 총을 쐈습니다. 미리 대비해서 피해는 없었습니다만. 덕택에 전리품도 좀 얻었습니다.”
“저거야?”
큰 상자 20여 개에 호리호리한 금주전자, 향로, 금쟁반, 금화 등에 아랍식의 휘어진 금칼도 있었다. 거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온 보물 같았다. 아무리 소형 탐사선이라지만 3인치 함포 2문을 달고 다니는 배를 공격한 것은 해적들의 만용이었다.
“감정을 해서 절반 가격을 금화로 주겠네.”
“어? 너무 많습니다. 이미 탐사선 운영비에서 은화 열 냥씩 대원들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럼 금화 삼백 냥을 줄 테니 알아서 추가로 나눠줘. 덕택에 탐사 자금을 많이 얻었으니 여유가 생기겠어.”
김몽돌 소령이 어쩔 때는 균등하게, 또 다른 때는 계급이나 전공에 따라 차등을 두어 탐사대원들에게 돈을 나눠주었다. 이민호는 전리품 수입 중에서 황금 일만 냥 정도를 주변 토호들에게 돌릴 선물을 구입하는데 쓰기로 했다.
“도자기나 비단은 아랍 상인들이 몹시 좋아합니다. 아랍 토호들에게는 설탕과 소금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해. 토호들도 기대감이 크겠군. 하지만 역시 오만이 문제야.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아?”
“그 지역을 오만의 영토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만은 아부다비 주변의 토호들을 제압하지도 못했습니다. 저희 탐사전대에 도전해온 해적들은 거의 오만 술탄의 부하들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항로의 안전을 위해 오만 술탄하고는 한 번 제대로 붙어야 할지도 모르겠어. 잔지바르는 어땠어?”
김몽돌 소령은 대원 몇 명과 함께 아프리카 동해안, 현대 탄자니아 북동부 끝에 위치한 잔지바르 섬에 직접 상륙했다. 섬에서는 주로 아랍인들이 흑인 노예를 파는데 명목상 정복자인 포르투갈 상인들도 끼어 노예무역에 열심이더라고 했다. 김몽돌이 항의하니까 조만간 철수할 거라고 변명하기 바빴다고 했다.
잔지바르에서 아랍인들이 사용하는 스와힐리어가 아랍어 단어를 너무 많이 차용해서 혹시 안 통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스와힐리어 통역으로 흑인 병사 두 명을 데려갔는데 노예로 끌려오던 날이 생각났는지 아랍 노예상인들에게 마구 화를 냈고, 다 알아들은 아랍 상인은 사과하기 바빴다고 한다.
“잔지바르의 아랍 노예상인들을 다 몰아내실 겁니까? 숫자만 많지 화승총으로 무장한 병사는 아무리 많아도 300은 안 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섬 남쪽과 북쪽에 흑인 원주민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아랍 상인과 흑인 농민들을 엮어서, 노예무역보다 더 많이 남는 게 있다는 것을 가르쳐줘야지. 노예무역은 사실 큰돈이 안 되잖아?”
“잔지바르를 점거한 아랍인들을 무조건 몰아낼 계획은 아니시군요.”
“혐오스럽긴 하지만 그 인력을 이용하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오만하고 너무 강하게 엮여 있어서 문제야. 오만하다는 게 아니라 오만 술탄국 말이야.”
잔지바르 섬은 노예무역이 아니더라도 인도양 해로에서 중요한 지점이었다. 17세기 이후 아랍과 유럽 세력이, 또는 유럽 세력들끼리 거대한 마다가스카르보다 오히려 자그마한 잔지바르를 차지하기 위해 더 자주 충돌을 일으킬 정도였다.
만약 고산국 군에 병력 여유가 생겨 잔지바르 항에 1개 중대만 주둔시킬 수만 있다면 아랍인들을 다 몰아내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힘으로 몰아내더라도 오만 인을 비롯한 아랍인들이 꾸준히 섬의 탈환을 노릴 게 분명했다.
조금 지난 시기에 오만에서 포르투갈 인들을 몰아내고 3천 km나 떨어진 이곳에 오만 제국의 수도를 세웠다. 그러나 나중에는 오만과 분리된 독립 술탄국을 세웠다. 결국 잔지바르와 아부다비, 오만은 질기게 엮여 있어서 한꺼번에 처리해야 했다.
“그 전에 홍해 쪽에서 이집트와 오스만제국의 배들을 만났습니다. 의외로 태극기를 알아보고 호의적으로 나오더군요. 홍해 깊숙이 들어가 수에즈에서 배를 내려 북쪽 이스칸다리야에 가면 콘스탄티니예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고 합니다.”
“다행이야. 곧 오스만에 사신을 보내야겠어. 이집트에서 맘루크들이 방해할까봐 걱정되는군.”
도시 이름이 아랍식 명칭이라서 혼동이 됐다. 이스칸다리야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니예는 오스만제국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아랍식 발음, 나중에 이스탄불이었다.
“오스만은 전체적으로 어떻습니까, 전하?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에 걸친 제국이지만 레판토 해전에서 유럽 신성동맹에게 패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금방 해군력을 재건해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 맹렬하게 영토를 넓히고 있다고 해서 혼란스럽습니다.”
“쉴레이만 1세가 죽은 다음에는 오스만도 별로야. 술탄이 죽은 다음 예니체리 제도가 엉망이 됐다더군. 차차 기울겠지.”
유럽 사학자들은 쉴레이만 1세의 죽음을 기점으로 오스만제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민호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주장을 인정한다면 20세기 초반까지 장장 30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쇠퇴만 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말이 되지 않았고, 중간 중간 부흥하기도 했다. 그러나 더 발전해나갈 가능성은 많이 줄어든 것은 확실했다.
“오스만제국 황제가 수에즈 운하 건설을 찬성했다는데, 저는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속주인 이집트를 방어하기 불리해지는 것 아닙니까?”
“예전에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포르투갈이 인도에 도착하면서 무역 독점이 크게 위축됐고, 결국 오스만에게 망했지. 오스만제국은 에스파냐가 대서양을 무역로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점점 위축되고 있어. 무역이 한 국가에서 차지하는 경제 비중이 낮더라도 이렇게 흥망을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수가 있어. 오스만제국이 장악한 지중해 무역의 독점권은 오래 못 갈 거야. 그걸 알기 때문에 황제가 수에즈 운하 건설에 적극적이지.”
멸망 전에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는 인도와의 무역을 통해 부를 쌓고 있었다. 그러나 캘커타 등 인도에 도착한 포르투갈 상인들이 무역을 방해하고 설상가상 1509년에는 함대를 이끌고 가서 홍해 무역을 마비시켰다. 비슷한 시기에 오스만제국에게 시리아를 잃고 1517년에는 이집트 본토까지 오스만제국에 정복되고 말았다.
그래도 맘루크는 우수한 행정체계와 맘루크 왕조 멸망 당시의 배반 덕택에 이집트의 지배층으로 살아남았다. 오스만 지배 아래에서도 계속해서 노예병을 충원해 관리와 장군들을 배출해냈다는 뜻이다.
이집트 속주의 초대 총독은 오스만에서 보낸 투르크인이 아닌 배신자 맘루크가 차지했다. 총독은 이집트의 행정권과 사법권 일부를 가지고 있었으나 임기는 1년에 불과했다. 오스만제국에서 직접 임명하는 재정관과 6개 군관구 사령관은 이집트 총독이 아닌 이스탄불에 책임을 졌고, 일부 군관구에는 오스만제국에서 파견한 예니체리 부대가 주둔했다.
“이집트 속주에서 맘루크들이 운하 건설에 반대할 거라 보십니까?”
“포르투갈과 상황이 비슷해. 원래 이집트 지상을 통해 인도와 지중해 사이의 무역을 중개했잖아.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가는 항로를 독점한 포르투갈은 그 무역로를 막는 게 유리하지. 수에즈 운하가 생기면 외국 상선들이 그냥 지나갈 테니 그 동안 인도 무역을 분점한 포르투갈과 이집트가 손해란 말이야. 중개무역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으니까.”
“손해 보는 나라가 둘이나 되는데도 운하 건설이 가능할까요? 이집트는 운하가 건설될 오스만의 속주이며, 포르투갈은 인도양을 장악한 나라입니다.”
19세기에 수에즈 운하가 실제로 건설됐을 때는 거꾸로 오스만제국이 반대하고 이집트가 찬성했다. 이집트는 경제적 이익과 독립을 위해서 운하 건설에 적극적이었고, 오스만제국에서는 이집트에 운하가 개통된 뒤 서구 열강이 개입할까봐 반대했다.
실제 역사에서 운하의 소유권이 여러 나라 사이를 오갔으며 이집트가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과 프랑스, 이스라엘이 연합군을 형성해 쳐들어갔다. 2차 중동전 때 소련이 개입해 삼차대전이 일어날 뻔했다.
“그러니까 관련되는 나라에 이익을 골고루 나눠줘야지. 상선이 왕복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야. 그러나 사람들은 절대적 이익보다는 상대적 이익을 중요하게 여기지.”
“이익의 크기보다는 남들보다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군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지. 이게 문제이고, 그래서 설득할 여지가 있는 거야. 오스만과 이집트, 포르투갈과 고산국 네 나라가 운하 건설로 인한 이득을 나누려고 해.”
이집트는 독립국가가 아닌 오스만제국의 속주에 불과했지만 수에즈 운하가 통과할 지역이라 우대해주기로 했다. 건설할 때부터 이집트의 적극적인 참가가 필요했고 만약 이집트가 강짜라도 부린다면 전쟁 말고는 대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전하께서는 아프리카 남단 항로를 유럽 배들이 이용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계십니까?”
“그런 면도 있어. 하지만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지 못할 네덜란드와 영국은 어쩔 수 없이 희망봉을 돌아야 하겠지.”
나머지 국적의 배들이 수에즈 운하로 지나다니면 최소한 아프리카 남단의 요새에서 수평선상에 가물가물하게 멀리 보이는 배의 피아가 확실해지는 장점이 있었다. 이 시대 유럽에서 인도까지 가는 동안 선원들의 절반이 병에 걸리고 2, 3할이 사망한다. 시체 치우기와 병자들의 신음소리에 지긋지긋해진 그 배의 선원들은 흑인들이 지키는 요새의 포와, 고산국 함대의 함포 공격을 받게 될 것이다. 이민호가 므부투와 흑인 병사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내려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불쌍합니다.”
“원래 나쁜 놈들은 아니겠지만, 자본 구조가 그래서 나쁜 짓을 할 수밖에 없다니까.”
이민호는 대영제국이 역사에서 했던 짓을 알고 있으니 불쌍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네덜란드도 이 시기에는 힘 좀 있다고 깡패 짓을 서슴지 않았다. 장기적으로 고산국의 가장 큰 경쟁자가 영국이 될 테니 초반부터 철저히 밟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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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과 인도양에서 부하들만 뺑뺑이 돌리고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