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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422화 (371/1,000)

00422  46. 1596년  =========================================================================

이민호는 요즘 아기들 장난감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흔들리는 요람과 그네요람을 만들고 아기가 모기에 물리지 않도록 기본적으로 위에 모기장을 씌웠다. 요람 위에는 갖가지 작은 인형을 매달아 모빌 대용으로 삼았다. 아기들이 손으로 잡을 만한 장난감은 특별히 입에 넣어도 괜찮을 재료로만 만들었다.

아기들이 활발히 기어 다니고 일어설 즈음에는 전에 만든 보행기를 새로 손 봐서 더 가볍게 만들어서 주었다. 백성 아기들이 탈 것은 너무 안전 위주로 제작해서 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님! 아기 장난감 만들 시간에 차라리 아기님들하고 조금이라도 더 놀아주세요.”

“그래야지. 맞는 말이야. 이것만 완성하고.”

민영이 핀잔을 줘도 이민호는 장난감 제작에 힘을 쏟았다. 지금은 괜찮지만 조만간 몸 하나로 아빠 노릇을 감당하기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후궁들 배가 자꾸 불러오고 아기들이 계속해서 태어났다. 왕자와 공주를 합해서 지금 여덟 아니면 아홉인 것 같았다. 아기 있는 후궁의 방에 들어가기 전에 호위들에게 미리 아기 이름을 확인해야 했다.

“방마다 아기님 이름을 써 붙이세요.”

“그럴까? 안 돼. 아기 엄마들이 섭섭해 할 지도 몰라.”

이민호가 시무룩해지자 민영이 이 기회를 타서 실컷 놀렸다.

“주인님 기억력이 나쁘시구나. 어떻게 자기 자식 이름을 못 외워요?”

“너무 많아서 헷갈리잖아. 게다가 아명이야. 개똥이 소똥이가 더 어려워.”

왕자와 공주들이 타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세발자전거도 미리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 아이들 타라고 마을 공용재산으로 나눠주었다. 미취학 아이들이 낮이나 밤이나 타고 다녔다.

고산국에서 아이들이 쓰는 것은 당연히 무료였고, 안전을 위해 야광등과 반짝이까지 달았다. 촌장이 직접 대여해주고 고장 나면 수리비를 징수하기 때문에 마을 공용 재물이라고 함부로 하는 사람은 없었다.

왜 세발자전거인지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성인용 자전거, 즉 두발 자전거도 만들었다. 각목 몇 개를 못질하고 마차 바퀴 두 개를 달아서 발로 밀어서 가는 단순한 것을 만들 수도 있고, 디자인과 소재에 최첨단 과학이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 자전거였다.

고산국이 현재 보유한 기술과 재료 중에서 은 한 냥, 쌀 두 섬을 제조원가로 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적절한 수준에서 표준적인 자전거를 만들었다. 현대 기술로는 훨씬 싸게 만들겠지만 현재의 고산국 기술로는 생산비가 말도 못하게 비싸게 먹혔다.

남녀용 각각 두 가지 크기로 만들고 네 가지 색을 칠한 두발 자전거는 세발자전거 제작비용을 뽑기 위해 약간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 못된 업체들이 다 그렇듯이 제작에 참가한 장인들과 초기 수용자들을 베타테스터, 시험평가단 삼아 홍보도 하면서 몇 가지를 고쳤다.

작은 자전거는 앞에 작은 짐칸을, 큰 자전거는 뒤에 큰 화물칸을 따로 달 수 있게 만들었다. 대리점을 지역마다 몇 곳씩 선정하고 점주나 고용된 장인에게 수리기술을 교육한 다음 판매를 시작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예상보다 너무 잘 팔려 얼마 지나서 아침저녁의 시가지는 출퇴근하는 남녀 백성들이 탄 자전거 행렬이 대로를 가득 메웠다. 은 석 냥, 쌀이 여섯 섬 가격인데도 생산이 따라가지 못해, 역시 고산국 백성들은 부자라는 사실을 실감케 했다.

이익이 너무 많이 남아서 조금 작게 만들어 청소년용으로 은 두 냥에 판매했다. 그런데 이것도 대량 생산하다 보니 원가가 자꾸 내려가 나중에는 이익이 조금 남았다. 속도가 빠른 자전거와 튼튼한 비포장용 자전거도 만들어 두 달마다 경주대회를 열어 꽤 큰 상금을 내걸었다.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나서야 백성들도 국왕이 왜 도로를 아스팔트나 넓은 벽돌로 매끄럽게 포장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궁성 앞대로는 8차선 도로와 넓은 인도를 상정해 만들었기에 마차와 수많은 자전거들이 무난하게 왕복할 수 있었다.

“도련님! 제가 직접 자전거를 타 보니 정찰용으로 쓸 만하겠는데요? 말발굽 소리가 안 나니까 적에게 안 들키고 좋지 않습니까?”

“글쎄. 도로가 아니면 장기간 운영이 어려울 텐데.”

계복이 쓸 만한 제안을 했다. 이민호도 이차대전 배경 영화에서 군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본 것 같아 제안을 수용했다.

산악용 자전거를 좀 더 튼튼하게 개량하고 바퀴 제작할 때 고무를 더 많이 써서 시제품 세 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군에 넘겨 정찰용으로 특전대대 군인들이 시험해보게 했다. 이틀 만에 세 대 모두 고물이 되어 돌아왔다.

“도련님! 산악용보다 튼튼한 거라면서요?”

“산악도로용이지 바윗길로 뛰어다니라고 하지 않았다.”

정찰용은 실패했지만 문서수발 전령용으로 군용 자전거 몇 대를 군에 넘겼다. 도시나 마을에서 이용할 때 말보다 대인 사고 위험이 훨씬 줄어들었다.

이참에 교통규칙도 몇 가지 정했다. 마차와 자전거는 우측통행을 기본으로 삼고 마부는 마부석의 왼쪽에 앉도록 했다. 경운차나 건설용 중장비도 운전석이 모두 왼쪽에 붙어 있었다.

사람은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길이든 아니든 안전을 위해 가까운 차선의 마차가 앞면을 마주보는 쪽에서 걸으라고 권했다. 마차나 자전거처럼 강제조항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차도와 인도가 분리된 길에서는 같은 인도에서 우측통행, 분리되지 않은 길에서는 좌측통행을 하게 됐다.

자동차 시대를 위한 준비를 벌써부터 하고 있었으나 자동차가 만들어지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건설장비라면 몰라도 ‘승용’이 되기 위한 조건을 맞추기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서스펜션, 즉 현가장치와 브레이크, 즉 제동장치를 일 년 넘게 개량 중이고 축전지 성능도 필요한 시간에 크게 미달했다. 자동차는 종합 산업이라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민호는 비올레타와 함께 성탄 전야 미사에 참가했다. 양력으로 12월 24일이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11월 6일밖에 안 됐다. 서양과 교역하는 경우가 많으니 조만간 그레고리우스력을 기준 역법으로 삼아야 할 것 같았다. 신교 국가들 중 일부는 아직 율리우스력을 쓰는 나라도 있었다.

왕립대학교 의과대학장이 귀띔을 했는지 아이들에게 주는 사탕을 신부가 이민호에게 주었다. 졸지에 성탄절 때만 사탕 얻어먹으러 성당에 나오는 아이가 된 이민호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미사에 참가했던 아이들과 성가대 애들이 한참을 웃었고, 슬프게도 비올레타마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남들 신경 쓰지 말고 자주 참가하세요.”

“성당에 올 때마다 다른 곳에도 가야 해서 귀찮소.”

“날으는 스파게티 괴물인가 하는 신을 위한 신전은 안 지으세요?”

“그 분은 웬만하면 그 분의 신전을 짓느라 돈을 낭비하지 말라고 하셨소.”

이민호는 이날따라 몹시 스파게티를 먹고 싶어졌다. 소스 듬뿍 뿌리고 미트볼도 잔뜩 넣어서.

매달 파나마를 왕복하는 연락선으로부터 운하 건설 진행 상황을 보고받았다. 현장 감독으로 가 있는 공조 참의가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어느새 공사용 철도가 완성되어 수로 굴착에 속도가 많이 붙었다고 한다.

공조 참의가 전선 세 척을 화차에 실어 파나마 지협을 넘어 대서양에 띄웠다. 해군에게 대서양 방면 경비임무를 맡기자마자 다음 날 영국 해적선 두 척을 나포했다. 함포와 기관총을 쏴서 돛대를 모조리 부러뜨리니까 해적들이 바로 항복해서, 해적들 중에 가벼운 부상자 세 명만 발생했다. 포로는 124명이고 모두 에스파냐 수비군 장군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잘하고 있군. 혹시 사고가 많이 일어났어? 말라리아나 황열은?”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는지 원주민들이 사고를 좀 당했습니다. 3개월 동안 사망 17명, 부상 210명입니다. 110여 명은 치료를 받은 다음 보상금을 받아서 귀향했고 나머지는 가벼운 부상이라 완치 후 공사에 복귀했습니다. 공사 현장 주변의 밀림을 싹 밀어버려서 그런지 말라리아나 황열 환자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부상자가 많지만 병자가 발생하지 않아 다행이군.”

예상보다, 그리고 실제 역사보다 훨씬 적은 사상자 숫자였다. 원주민들에게도 고산국 토목기술자들과 동일한 의료 수준과 식사를 제공하기에 평판이 좋은 편이었고 원주민 공사 인부가 계획보다 많은 3만 명 이상을 유지했다.

“부역이나 강제 노역하는 사람은 없지?”

“그, 그게.”

선장이 약간 망설이다가 이민호가 노려보자 바로 실토하고 말았다.

“제가 도착했을 때는 두 척에서 생포한 해적 포로 124명에게 노역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임금은 주고 있습니다.”

“잘했다. 바로 교수형 시키는 것보다는 낫네.”

공조 참의가 보고서에 해적이 잡혀서 에스파냐에 넘겨줬다고 했는데 그 사이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었다.

“공사 현장을 수비하는 에스파냐 장군이 해적들에게 차꼬를 채우고 일을 시키라고 청해서 공조 참의께서 수용한 것입니다. 멕시코에서 호송 병력이 올 때까지만 일을 시키기로 했습니다. 참의께서 전하께 구두로 보고하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에 대해 말할 게 더 있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전하. 웃기게도 해적선장이 젊은 여자였습니다. 베스라고도 하고 리즈나 엘리자베스라고도 했습니다. 이름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부하 해적들은 그 여자를 커틀러스 리즈라고도 불렀습니다.”

“같은 이름이야. 커틀러스는 칼 이름이지.”

커틀러스는 해적들이 선상 전투에서 사용하는 조금 작은 군도였다.

“그 여자는 에스파냐 사람들을 몹시 미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주민이 가까이와도 아무 걸로나 후려치고 집어던졌습니다.”

“음.”

여자가 포로로 잡힌 이후에도 그런 격렬한 반응을 보인다면 원인은 한 가지뿐이었다. 이민호는 여자 두목이 해적이 되기 전에 에스파냐 사람이나 원주민에게 강간이라도 당한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셔랜드는 1577년에 태어나 1587년에 버지니아에 상륙한 초기 이주민의 가족으로 따라갔다는 설이 있다. 개척민 마을이 북미 원주민들에게 점령되면서 엘리자베스는 크로아톤 인디언들에게 끌려갔다. 영국에 돌아갔다가 10대 후반에 결혼을 하고 여해적 Grace O'Malley의 이야기를 듣고 바다로 나와 해적이 됐다고 한다.

“해적 포로들 입에서 여두목이 황금 3만 파운드를 카리브 해 어딘가에 숨겨뒀다는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오! 흥미로운 이야기야.”

그러나 다른 해적들이 이 소문을 듣더라도 황금 13.5톤을 찾으러 카리브 해의 섬들을 뒤지고 다닐 일은 없었다. 해적들 입장에서는 차라리 에스파냐 보물선을 약탈하는 편이 훨씬 빠르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보물을 찾게 되더라도 황금에 눈이 뒤집힌 동료들의 살해 위협이 전투보다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다음 달에 들어온 보고서에는 여해적과 포로들이 멕시코시티로 끌려갔다고 했다. 그 다음 달에는 재판에서 해적들이 모두 교수형을 언도 받고 닷새에 걸쳐 사형이 집행됐다. 대부분 해적들의 마지막이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났으니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보급에 문제는 없겠지?”

“물론입니다. 한 달에 수송선 열 척이 염장한 고기와 곡식을 파나마에 퍼붓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사오는 옥수수도 많습니다.”

“양계장은 잘 돼?”

“예. 1만 마리 중에서 4천 마리가 태평양을 살아서 건넜다는데 제가 출발하기 전에 3만 마리로 불어났습니다. 다음 달부터 닭고기를 본격적으로 급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양도 잘 번식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돌까봐 무서워 돼지는 보내지 않았다. 파나마 운하 건설에서 일하는 중미 원주민들은 그나마 에스파냐가 중남미를 정복한 초기에 전염병에 걸려 죽지 않은 자들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돼지는 또 다른 감염원이 될 수 있었다. 닭은 조류라서, 그래도 조류 독감의 가능성은 있었지만 돼지에 비해 훨씬 안전했다.

“공조 참의께서 양과 닭을 원주민 마을에 분양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새끼 양을 낳을 때마다 수컷 두 마리, 암컷 네 마리 비율로 나눠줄 거랍니다.”

“아! 그거 좋군. 미처 생각을 못했네.”

에스파냐가 정복할 당시까지 중남미에 식인 풍습이 확실히 있었다. 북미에도 식인 풍습이 남아 있었다는데 이민호는 확실한 자료는 못 봤다. 라마 말고는 가축이 거의 없는 미 대륙이라 식인 풍습을 함부로 비난하기 어려웠다.

“배가 워낙 커서 웬만한 풍랑을 만나도 침몰할 염려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겨울 폭풍을 한 번 만나봐야지 그런 소리를 못하게 될 거야.”

“예? 배가 크고 안정성에 중점을 둔 설계라 아무리 높은 파도가 쳐도 침몰할 것 같지 않습니다.”

“모르지.”

이민호가 한 말이 씨가 돼서, 12월에 출항한 수송선 열 척 중에서 두 척이나 침몰했다. 선단 항해 중이라 그나마 다행히 선원 다섯 명을 구조할 수 있었다.

나머지 선원 58명은 차가운 북태평양의 바다에 잠겼다. 바닷물이 얼어붙는 베링해에서 한참 남쪽인데도 구조된 선원들 중에서 두 명이 의무실에서 저체온증으로 숨졌다. 한꺼번에 수십 명이 사고로 죽어 몹시 안타까운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고 항상 편안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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