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27화 (376/1,000)

00427  47. 1597년  =========================================================================

관세, 즉 무역에 부과되는 세금이 예상의 절반인 5퍼센트에 그치자 이민호는 기분이 묘했다. 조선과의 채권 채무 관계가 대부분 청산됐기에 이제는 완전히 평등한 관계가 돼도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조선은 고산국에 대해 여전히 특별한 지위를 부여했다.

조선은 무역의 절반 이상이 고산국을 통해 이뤄지는데도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세금을 적게 부과한 셈이었다. 고산국이 조선에서 수입하는 상품으로 주로 시멘트와 선철이 있었다. 이 두 가지는 조선에서 백성들을 공짜로 동원한 부역을 통해 워낙 싸게 생산하므로 다른 곳으로 수입처를 바꿀 이유가 없었다.

전복은 이민호 개인 사업체에서 생산한 상품이었다. 조선 왕실의 전복 공납 문제를 해결해주는 대가로 완도 전복이 면세품으로 지정돼서 추가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합의했다.

“아하!”

갑자기 느껴지는 게 있었다. 고산국에서 조선으로 수출하는 상품 대부분이 이민호는 쌀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은 물량 기준이었다. 사실 금액으로 따지면 비단과 도자기, 유리 같은 사치품이 더 많았다. 왕실과 고관대작들이 주로 사용하는 사치품이라 은연중에 세금을 많이 붙여 가격을 더 올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쨌든 조선국의 주상전하께 감사인사를 전해주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협상은 잘 끝냈다. 광해군은 이민호에게 해줄 만큼 해줬는데, 임해군과 고언백 핑계를 대면서 광해군을 심하게 몰아붙인 것이 뒤늦게 괜히 미안해졌다.

“미안하지만 확인을 합시다. 임해군이 교동도로 유배되고 고언백이 교동에 살았던 것은 정녕 우연이었단 말이지요?”

“전하께서 충분히 오해하실 만합니다. 하오나 교동은 고려 때부터 왕족들의 유배지였습니다. 한성에서 가까우면서도 완전히 격리된 곳이라 고려 희종이나 안평대군, 연산군도 교동에 유배됐었지요. 요즘 들어 한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배들이 많아지면서 대기하는 곳으로 쓰인 것뿐입니다. 그리고 교동도는 고언백의 고향 맞습니다.”

“전하께서 운이 없으셨습니다. 고언백이 퇴임한 선배 무관 자격으로 현직 무관을 구슬려서 임해군을 만났던 모양입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결국 사이코패스들이 끝까지 민폐를 끼친 것에 불과했다.

“임해군의 자녀들이 왜장에게 붙잡혀 끌려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오?”

“임해군에게는 자녀가 없고 다만 처첩이 있을 뿐입니다.”

유부녀를 덮치기 위해 대신을 쳐 죽일 정도로 밝히는 임해군이 뜻밖에 후사가 없었다. 그리고 가등청정이 임해군의 자녀를 데려와 아들은 고명한 스님이 되고 딸은 왜장의 첩이 되어 불행하게 살았다는 소문이 일본에서 나돌았는데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대역죄를 지으면 집을 허물어 연못을 판다는데 혹시 임해군의 집에도 실행했소?”

“대명률이 아닌 당률 10악조에 ‘죄가 극악하면 목을 베고 가족을 멸하고 그 집은 웅덩이를 판다.’고 했는데 주상전하께서 이미 죄인 이진의 목숨을 살려주기로 하셨으니 처첩을 종으로 삼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임해군이 광해군의 형이라서 죽여도 문제, 안 죽여도 문제였다. 당대의 가장 민감한 뇌관을 이민호가 아무 것도 모르고 지나가다 건드렸으니 조선 조정에서는 지금 아주 난리가 났다. 대신들이 임해군을 사사하라고 간청했으나 광해군은 끝까지 버텼다.

“솔직히 고가 조선에 올 때마다 무시당하는 기분이었소. 사람은 고향에서 인정받기 어렵다고 하지요. 코찔찔이 때부터 봤을 테니 아무리 크게 성공해도 쉽게 존경하는 마음이 들기 어려울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지도 않고, 저희들이 귀를 막고 지내지도 않습니다. 전하께서는 단기간에 이상적인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유학을 배웠다는 자들은 전하를 떠올릴 때마다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며, 조선의 조정 관료들을 더욱 분발시키고 있습니다. 금상께서도 전하를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라 배우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으십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그저 존경한다는 뜻이었다. 조선의 천재라는 사람들이 칭찬해줘서 이민호는 조금 마음이 풀렸다.

“금상께 장성한 공주님이 계시다면 국혼을 주선해서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하고 싶습니다만, 아쉽게 됐습니다. 조선의 명문가나 고관대작들 가문에서 전하께 매파를 보낸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모두 사양했소. 고산국 왕성에 조선 출신 처첩들이 이미 자리를 잡아서 괜히 정식 왕비를 들여 내명부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혜영과 혜진은 이민호에게 조강지처라고 할 수 있었다. 정식 왕비가 아니니 억지로 말을 만들자면 조강지첩이 더 맞겠고, 아버지가 만석꾼이라 술지개미나 쌀겨를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한 적도 없었다.

“여기 고산국 국왕전하가 계시다기에 왔네.”

“중요한 회의 중입니다.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군 줄 알아? 감히 나를 몰라보고 가로막다니. 네놈들 집안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바깥이 시끄러워 이민호가 시선을 돌렸다. 그때 문이 와장창 부서지면서 머리가 허연 노인이 회의장에 들어섰다. 금군 두 명을 밀어젖히면서 문을 부서뜨리다니, 노인이 힘도 참 좋았다. 이항복이 벌떡 일어나 노인을 막아섰다.

“내암 선생!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국사를 바로 잡는 일에 대사헌이 가지 못할 곳이 어디 있단 말이오?”

이덕형까지 일어나서 말렸으나 노인은 아득바득 회의 탁자로 다가왔다. 누군가 했더니 경상도 의병대장이었던 정인홍이었다. 이민호는 민영이 권총 손잡이로 가는 손을 막았다.

영의정 이원익이나 좌의정 이항복, 동지중추부사 이덕형이 노인에게 쩔쩔 맸다. 나이뿐만 아니라 정인홍의 명성 때문에 그를 함부로 대하지도 못했다. 그 동안 쌓은 명분과 실적으로 인해 정인홍 한 사람에게 조정의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민호는 정인홍과 그리 좋은 관계가 아니었다. 현대에 광해군 재평가와 맞물려 정인홍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가 이루어진 것을 알고 있던 이민호는, 전쟁을 수행하면서 정인홍과 관계가 틀어진 경우였다. 정인홍이 훌륭한 선비든 정치가든 이민호에게는 아무 상관없었다. 다만 군사 지휘관으로서는 정인홍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직접 경상도에서 의병을 이끌고 싸운 사람이오! 조정에서 나만큼 당당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시오! 제독 총병관 대인도 대부분의 시간을 경상도 바깥에서 안전하게 보내지 않았소? 나는 왜적이 가장 많은 경상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싸웠소!”

정인홍의 권력 기반은 전직 관료인 유생으로서, 고령과 합천에서 의병을 일으켜 의병대장이 되어 싸우다가, 살아남은 것이었다.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처음에 의병도대장으로서 경상도 의병 전체를 지휘했던 김면이 병으로 죽고, 초유사였다가 경상우도 관찰사가 된 김성일도 병으로 죽었다. 진주성을 지켰던 김시민은 전사했다. 세 사람은 왜군에 의해 초토화된 경상도에서 백성들이 가장 믿고 의지했던 장수들이었다.

의병장으로서 경상도에서 유명세를 떨친 사람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은 곽재우와 정인홍 말고는 드문 편이었다. 그래서 전사한 다른 의병장들이 세운 전공까지 정인홍에게 쏠린 감이 있었다. 남명 조식의 수제자라는 학연으로 인해 정인홍은 경상도 백성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내암 선생. 당신은 왜적과 직접 싸운 적이 한 번이라도 있소?”

“제독 총병관 대인! 나는 의병도대장이었소. 일개 졸병이 아니란 말이오.”

이민호도 정인홍 같은 노인 의병장이 직접 창칼을 들고 싸워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전쟁 중에 노인이 칼을 들고 뛰어다닌다면 의병작전에 차질을 주어 차라리 민폐에 가까웠다. 다만 전투 현장에서 싸움을 지켜보기라도 했냐는 질문이었다.

“말 돌리지 말고, 직접 전투에 나가 활이라도 쏜 적이 있느냔 말이요. 아니면 싸움 구경이라도 제대로 한 적이 있소? 그리고 의병도대장은 송암 김면 장군 아니었소?”

“그 다음에 도대장을 맡았소.”

“그 다음 의병도대장은 망우당 곽재우 장군 아니오? 그리고 내암 선생은 일본을 치자고 그렇게 강경하게 주장했는데, 실제로 갑오년에 일본을 칠 때 휘하 의병을 한 명이라도 보냈소?”

“그, 그건 아니오. 원정이 실패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후일을 기약하자고 동료 의병장들과 약속했소.”

“명나라와 조선, 고산국이 연합해 일본을 공격하면 조선에서 의기 넘치는 의병들이 최소한 5만 명쯤 참전할 줄 알았소. 다들 말로는 바다를 건너가 왜추와 왜왕의 목을 베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로 일본을 정벌하는 동안 의병은 거의 참가하지 않았소. 창피한 줄 아시오.”

이원익 등 똑똑하고 노련한 정치가들이 쩔쩔 매는 정인홍을 이민호는 계속해서 몰아붙였다.

“내가 전쟁 중에 경상우도에 군량을 보급할 때 내암 선생 그대는 끊임없이 군량을 요구했소. 그대에게 간 군량이 최소 5만 석이 넘었소. 당신이 병력 2, 3천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도대체 누가 그 많은 쌀을 먹은 것이오?”

“알다시피 주변 백성들에게 나눠주었소.”

“합천과 고령의 백성들 대부분은 이미 진주성 서쪽으로 옮긴 다음이었소. 그리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쌀을 나눠주는 일은 다른 이들이 맡고 있었소. 그대는 군량을 횡령하여 빼돌린 것에 불과하오.”

“절대 아니오!”

보통 식량과 군량은 의미가 전혀 달랐다. 군량은 전투 지역에 주둔하는 군사들에게 먹이기 위해 운송에 들이는 백성들의 노고가 포함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식량 횡령과 군량 횡령은 처벌에 있어서 아예 차원이 달랐다.

“그대의 집과 근처 창고에 군량 2만 석을 쌓아두었소. 백성들에게 나눠주지도 않았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 관아에 반납하지도 않았소.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일부 관군과 의병들을 집에 잡아두고 종이나 소작농으로 부리지 않았소?”

“그래도 나는 왜적을 쳐부수고......”

“왜병들과 싸운 것은 손인갑이나 김준민 같은 장수들이 한 일이지 그대가 한 일이오? 물론 당신이 의병대장이라서 중위장이나 선봉장을 보내 싸움을 시킨 것은 인정하지만, 의병들이 풍찬노숙하는 사이 그대는 계속 기와집에만 머물지 않았소?”

정인홍은 의병들이 세운 전공을 조정에 보고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 여겨 조정에 보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전쟁 중에 세운 전공에 비해 상을 타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상우도라는 지역 내에서 소문이 다 돌고 돌았고 초유사나 경상관찰사가 의병부대의 전공을 조정에 자세히 보고했으므로 의미가 없는 주장이었다. 만약 이순신처럼 제대로 된 지휘관이라면 수하 장수, 병사들의 전공을 조정에 자세히 상신해 포상을 받게 해서 사기를 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정인홍이 수하들의 전공에 대해 보고하지 않고 입을 다무는 바람에 오히려 문제가 많이 생겼다. 정인홍 의병부대의 중위장으로서 실제로 병력을 지휘한 손인갑 같은 경우 잘 싸우다가 사망했으면서도 개인적인 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고령과 합천의 의병부대가 세운 모든 전공이 의병대장 정인홍 개인에게 쏠렸다.

계사년 전반기에 김면 등 주요 의병장들이 병으로 죽은 다음에는 경상우도 의병부대들이 세운 전공으로 인한 명예와 권리를 남명 조식의 수제자라는 정인홍이 개인적으로 독차지하게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정인홍이 조정에서 누리는 권세는 경상우도 의병들의 피와 땀을 착취한 것이었다. 조정에 전과를 보고하지 않은 목적이 애초에는 순수했을지라도, 이 정도면 심각한 역사 왜곡과 명예 도둑질이었다.

“그래도 나는 경상우도 백성들이 믿고 의지하는 의병장으로서......”

“진주가 포위됐을 때 나는 제독총병관으로서 경상우도의 모든 의병부대들을 진주성으로 소집했소. 곽재우나 다른 의병장들은 휘하 병력을 이끌고 진주로 몰려들었고, 비록 입성하지는 못했지만 진주성 주변에서 왜적들과 치열하게 싸웠소. 명령서가 그대에게 전달된 것을 분명히 확인했소. 그대는 진주성으로 직접 오거나, 병력을 보냈소?”

“병력을 보냈습니다. 정말입니다.”

“거짓말이오. 진주성에서 전투가 계속되는 동안 그대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소. 진주성은 어차피 왜적에게 함락될 테니 병력을 보존해야 한다면서 병력을 보내지 않겠다고 다른 의병장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봤소. 증거가 이토록 명백하니 그때 집행하지 못했던 군령을 늦게나마 집행해야겠소.”

이민호가 허리에 찬 칼을 뽑았다. 명나라 황제가 하사한 상방검이 아직도 이민호에게 남아 있었다. 이번에 북경에 갔을 때 돌려주려고 마음먹었다가 또 깜빡했다.

“군령을 어기고 군량을 횡령한 죄로 그대의 목을 베어야겠소. 위선자, 국가반역자로서 더러운 이름이 영원히 남을 것이오.”

“아, 아니오! 전쟁은 이미 끝났소! 더 이상 군령을 집행할 수 없소!”

그토록 꼬장꼬장한 선비라던 정인홍이 신발이 벗겨진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도망쳤다. 정인홍은 바로 그날로 벼슬도 다 버리고 고향 합천으로 도망갔다.

이민호는 상방검을 칼집에 꽂아 넣었다. 정인홍이 벼슬 제수와 사직을 반복하면서 점점 벼슬이 올라가, 지지자들과 더불어 북인 정권이 세워질 즈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결국 광해군 대의 집권당인 북인 정권은 이 자그마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아예 세워지지 못했다. 이이첨 정도가 조정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조선 조정을 누가 장악하든, 어떤 정파가 커지든 전혀 관심 없소. 하지만 이것은 내가 조선 조정에 보내는 작은 선물이오.”

“선비 의병장이 아니라 위선자였군요. 몰랐습니다.”

이민호는 이원익이나 이항복 같은 문관들과 비교해서는 논리에서 밀리고, 이순신 같은 무관들과 비교해서는 지휘, 통제력에서 밀렸다. 그러나 핵심을 짚는 능력은 갖고 있었다.

원리주의 강경파를 부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그 원리였다. 물론 부끄럼을 아예 모르는 자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암 선생이 고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회의실로 난입했소?”

“저도 몹시 궁금합니다. 하하!”

물어보지 않아도 빤해서 이민호는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조선 선비들 중에서는 아직도 고산국이 조선의 속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 선비들은 고산국에 이민 가는 것을 신분 하락으로 여겨, 고산국이 아무리 잘 나가도 이민 가려는 양반이 별로 없었다.

============================ 작품 후기 ============================

정인홍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임진왜란 당시 군사적 측면을 중점으로 판단해보니 정인홍이 영 별로인 것 같습니다. 정인홍이 광해군 당시 정치적 영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한 것을 기초로 내용을 전개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