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9 47. 1597년 =========================================================================
예전에 비해 훨씬 커진 여수에서 하루 묵었다. 해동상단과 고산국 상선은 물론이고 유구국과 명나라 상선들도 여수항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선까지 입항했다. 서양 상선들은 고산국 덕택에 개항을 위해 힘겨운 외교적, 군사적 노력을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사실 고산국이 아니더라도 조선은 자체 생산품을 외국에 수출할 역량을 갖고 있었다.
전라좌수영 서쪽 간수군 훈련소도 그대로였고, 동정의 저택 후원 양지바른 땅에 심은 동백꽃은 이번 겨울에도 예쁘게 피었다. 한성이라면 몰라도 여수나 통영은 이민호가 앞으로도 가끔 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한산도에서 고성으로 옮긴 삼도수군통제영을 방문했다. 고산국 함대를 아직 겨울이라 그리 많지 않은 조선 수군 병사들이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고산국 해군이나 조선 수군이나 인적 자원 면에서 차이가 거의 없어서, 얼마 전까지 고향에서 부대끼던 친구들 사이였다. 월봉을 많이 받는다는 이유로 고산국 해군 또는 해병이 술과 고기를 사면서, 일본이나 먼 나라에서 대규모 전쟁을 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럴 때마다 조선 수군 병사들이 고기 먹는 것도 잊고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몇 달 뒤에는 고산국으로 향하는 이민자 행렬이 늘어났다. 술과 고기값은 당연히 국비로 처리됐다.
삼도수군통제사 이억기는 고산국 전선에 새로 탑재된 5인치 함포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3인치 함포는 천자총통보다 조금 센 정도로 알았던 이억기는, 5인치 함포의 위력을 보곤 도저히 좁히지 못할 격차가 생긴 것을 깨달았다.
이억기는 언젠가 작렬탄을 만들고 말겠다면서 의욕에 불탔다. 이론적으로야 화포와 비격진천뢰를 결합하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흑색화약으로 만들었다간 사고 가능성이 커서 이민호가 말렸다.
“경수 형님은 욕심이 너무 많아요.”
“좋은 게 빤히 보이는데 욕심을 안 낼 수가 없지. 저 대포만 있으면 어느 나라가 쳐들어와도 겁날 게 없겠다. 만드는 법 좀 가르쳐줘.”
그러나 무연화약 제조방법은 고산국 최고 기밀이었다. 고산국 해군 총함장 이순신이 3인치 포탄을 뜯어보려는 것을 말린 적도 있었다. 무연화약을 직접 본다 해도 제조법을 알 수는 없었다.
무연화약 대신에 이민호는 삼도수군통제영과 각 수영, 바닷가 고을 관아들의 재정 상태를 살펴보고 조언을 해주었다. 사창은 여전히 잘 운영되고 있었고 수차를 이용하도록 권해 경상도 남해안 동부 지역에 새로 생긴 염전도 흑자를 보게 해줬다. 수군들도 예전에 비용을 자체 부담하던 시대에 비해 훨씬 편하게 근무할 수 있었다.
“경수 형님! 통제사를 역임하고 나면 이제 무관으로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도 없죠? 형님 아직도 30대인데 어떡해요?”
“아마도. 잘해야 함경도 북병사나 오위도총부 도총관이겠지.”
통제사는 종2품이 기준 품계라 임기를 마치면 보통 다른 지역 병마절도사로 옮겼다. 왕실과 관련이 있으면 한성부 판윤, 또는 포도대장을 할 수도 있고, 중앙 관직은 공조 참판이 한계였다. 한성에 가까운 충청병사나 충청수사, 수원부사는 병사를 20년 정도 역임한 노장이거나, 아예 초짜 당상무관이 제수되는 경우가 흔했다.
어느 직책이든 실 병력 2만여, 보인까지 포함해서 삼남의 수군 10만 이상을 지휘했던 삼도수군통제사를 역임하고 나면, 무관 입장에서 보기에 사소한 직책이었다. 전시가 아니라면 병마절도사가 지휘할 수 있는 병력이 겨우 몇 십, 혹은 몇 백 명이었다.
그래서 기병 수천을 지휘할 수 있는 함경도 북병사가 병마절도사의 꽃이었다. 그러나 두만강 하류에 동해국이 생기는 바람에 함경도 국경이 아주 조용해져서 싸움에 나설 일도 없어졌다.
“옛날과 달리 북병사로 가도 임기 내내 하품이나 하겠군요.”
“조선 무관들의 꿈과 희망이 사라진 것은 오로지 통지 자네 때문이야.”
“전쟁이 없어졌으니 백성들은 좋겠죠. 그럼 고산국 해군은 어때요? 여해 형님이 자꾸 허리 아프다고 우는 소리를 해서 말입니다. 의사 다섯 명에게 진찰을 받게 했는데 병명이 뭔지 압니까?”
“당연히 꾀병이겠지. 여해 형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싶어서 그런 거야. 그 형님은 앞으로 최소 20년은 더 생생할 거야. 실컷 부려먹어도 돼.”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만, 연세가 들어서 앞으로는 지상근무만 하면 어떨까 하고요.”
이순신은 절강성 주산군도 해적들을 토벌할 때 겨우 보름 원정 가 있는 동안에도 늙으신 어머니 걱정에 한숨을 내쉬곤 했다. 앞으로 이순신에게는 해군사령관으로서 해군 전략 수립이나 교육, 훈련을 맡기고, 젊은 총함장을 임명해서 원정에 내보낼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더러 고산국 해군 총함장을 하라고? 조선의 선무공신인 내가?”
“여해 형님은 선무공신 일등에서도 첫 번째입니다. 2등보다 높죠?”
아직 정식으로 발표도 안 했는데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공신청에서 근무하는 아전들 입을 통해서 수시로 정보가 새나왔다.
“문관들은 생각이 다를지 몰라도 함께 싸워서 그런지 무관들은 조선이나 고산국이 여전히 같은 나라라고 본다. 생각해보마. 그런데 고산국에 가면 통지 자네한테 꼬박꼬박 전하라고 불러야겠군.”
“상관없어요. 여해 형님은 면이 문제로 제 멱살을 잡을 뻔했지요.”
“큭큭! 그런 좋은 기회를 잡았으면 자그마치 국왕전하를 땅바닥에 패대기쳤어야 하는 건데. 여해 형님은 너무 물러.”
밑밥을 깔아놨으니 나중에 낚으면 되겠다 싶었다. 이억기를 오랫동안 봐온 이민호 입장에서는 꽤나 믿음직한 무관이었다.
그리고 문관과 달리 무관들은 중앙 정치에 신경을 덜 쓰기에 이경록처럼 목민관의 역할을 더 잘 하는 수가 있었다. 1591년에 이억기가 순천 부사를 하고 있을 때 백성들을 잘 살게 해주는 일에 있어서는 이민호와 꽤나 잘 통했었다.
정문부가 문에 치우친 총독을 맡는다면, 이억기는 전쟁 위협이 상존하는 지역의 총독을 맡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고산국의 사관학교와 대학교에서, 그리고 군에서 젊은이들이 무럭무럭 크고 있었지만 아직 20대에 불과해서 경험이 조금 더 필요했다.
동래를 들르고 독도를 지나 울릉도와 함흥을 들른 다음 동해국에 도착했다. 많이 근대화된 포구에 내려 고개를 넘어가니 석성 주변이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천막은 줄어든 반면 돌이나 벽돌로 지은 집이 수천 채나 되었다. 첨사 아오지가 여진족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 이민호 일행을 열렬히 환영했다.
명색만 동해국 총독인 호국 참의도 주둔군 1개 소대를 데리고 나와 영접했다. 동해국에 주둔하던 고산국 병사들은 이번에 예정보다 한 달 일찍 근무를 마치고 교대할 수 있어서 좋아 죽으려 했다.
“칸께서 살리신 목숨들이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고산국에서 의사를 파견해 가장 먼저 공중위생부터 개선했다. 부족한 식량을 공급하고 몇 가지 약재를 제공하자 신생아 사망률이 뚝 떨어지면서 인구가 폭발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는 자기들끼리 서로 빼앗으려고 싸우다가 인구가 줄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 더 안심하고 아기를 낳고 키웠다.
일본 정벌에 참가했던 여진족 기병 1만 5천은 아오지 첨사가 적당히 분산해 정착시켰다. 여진족들 사이에 매년 몇 번씩 일어나는 전쟁으로 인해 여진족도 심각한 여초 지대라서 처녀장가 가는 홀아비들이 많았다.
마을이 흩어질 때 가족을 잃어 건주여진에 원한을 가진 기병들이 대부분이라 건주여진의 공격으로부터 동해국을 잘 지켜줄 것으로 이민호는 기대했다. 이들에게 앞으로 3년 동안 좁쌀과 쌀을 지급하기로 하고, 양을 나눠줘 농업과 목축을 시켰다.
동해국 전체 여진족에게는 아직 세금을 받은 적이 없었고, 앞으로 10년 간 안 받기로 했다. 건주여진이나 해서여진의 침략으로부터 스스로 지킬 수 있을 때가 되면 그때 다시 판단해보기로 했다. 이민호가 자비로워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니라, 세금보다 세금을 걷는 비용이 더 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음 날 아오지 첨사가 새로 개간한 밭을 이민호에게 안내했다. 지난 몇 년 동안 힘겹게 확장한 밭은 얼어붙은 눈에 덮여 있었다. 여진족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일했겠지만, 이민호가 보기에는 깨작깨작하는 수준이었다.
“새로 밭을 개간하기 어렵지요?”
“그렇습니다. 그래도 칸께서 보내주신 쇠로 만든 쟁기를 말에 달아 열심히 개간하고 있습니다. 땅이 넓으니 언젠가는 자급자족할 수 있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양떼는 외양간에 넣어서 따뜻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칸께서 보내신 산양은 특별히 찬바람을 맞는 외양간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잘하고 계시오.”
동해국이 자리 잡은 곳은 두만강 하류, 현대 지명으로 훈춘으로, 그리 넓은 지역은 아니었다. 수비 부담만 없다면 북서쪽이나 북쪽으로 진출해 넓은 평원을 개간하겠지만, 건주여진이나 다른 여진 부족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시기라서 동해국을 적극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만 수도 동쪽이나 북동쪽으로 계속 확장하기로 했다.
“동해국 백성들을 위해 가져온 게 있소.”
“말로만 듣던 코끼리입니까?”
삽차와 밀차가 우렁차게 기관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아오지를 비롯한 여진족들이 괴물이 나타났다고 소리치며 도망가고 싶었지만 이민호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억지로 참았다.
삽차는 농수로를 길게 파고 밀차가 밭을 평평하게 다졌다. 중장비들이 작업을 끝낸 평지에 경운차가 움직이며 쟁기를 끌었다. 돌이고 얼음이고 그냥 밀고 지나간 다음에는 밭으로 변했다. 석성 근처 평지를 다 개간한 다음에는 북동쪽으로 확장해 현재의 블라디보스토크나 우스리스크를 개간할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간단하게 밭을 개간할 수 있다니, 이것은 신기입니다. 칸은 역시 하늘이 내린 신인이십니다.”
“낯 뜨겁게 무슨 말씀이요? 어쨌든 중장비 각 두 대씩, 경운차는 여섯 대를 가져왔으니 농사를 지을 줄 아는 젊은이들을 데려와 운전하는 방법을 배우게 하시오. 수레 운전하는 것하고 비슷하니 지레 어려워하지 말라 하시오. 고장 나면 수리해주겠소.”
“아아! 매번 칸께 은혜만 입고 갚을 길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모피 교역의 중심지가 된 것만으로도 동해국은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건주여진과 연해주, 몽골 동부와 멀리 송화강 북쪽 지역에서 모피를 가져왔다.
세계 모든 지역에서 다 통용되는 사냥꾼의 규칙을 여진족도 지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이민호가 모피가격을 올려줘서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들의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테니 번식기에는 짐승을 사냥하지 않기를 바랐다.
“북쪽 송화강에서 사는 자들은 별 문제 없소?”
“아직까지는 없는 모양입니다. 몇 달에 한 번 모피를 대량으로 가져오는 것을 봐서 잘 사는 것 같습니다.”
건주여진이 송화강 인근에 사는 여진족을 아직 흡수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지역은 동해국의 영향력이 강하고 인구도 적어 건주여진에서 아예 포기한 듯했다.
“지난해부터 모피 교역량이 왜 늘어났지요? 건주여진과 협의한 사항이 아니오?”
“건주여진에서 보낸 것입니다. 저희들이 매입하는 물량이 채워지면 여진 부족들이 건주여진으로 모피를 가져가서 팝니다. 그럼 건주여진에서 모피를 조금 더 가공한 다음 가격을 올려서 저희에게 한꺼번에 떠넘깁니다. 요즘 명나라 쪽에서 모피 수입이 확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수량 제한을 건주여진에서 그런 식으로 이용해먹는군요. 혹여나 산짐승들이 멸종될까 두렵소.”
동해국에서 고산국으로 수입되는 모피가 매년 30만 장 이상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건주여진에서 먼저 협정을 깬 것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사냥했다간 조만간 짐승들의 씨가 마를 우려가 있었다. 이민호는 구태여 그 사실을 지적하지 않았다.
“송화강 북쪽에는 뭐가 있소?”
“너무 추워서 호랑이도 살지 않는 조용하고 거대한 삼림입니다. 승냥이들이 을씨년스럽게 울부짖는 숲이나 평원을 말 타고 사흘 또는 닷새를 지나야 작은 마을 하나를 겨우 만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사람들과는 풍습이 비슷해도 말이 거의 안 통합니다.”
시베리아는 알타이 계통 또는 고아시아 여러 부족이 사는 넓은 지역이었다. 끔찍하게 추운 곳이라 이민호가 개척민들을 보내 살게 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다만 자원개발을 위해 철도를 깔까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당연히 철제 무기와 농기구입니다. 멀리 북쪽으로 가면 날이 잘 선 작은 단도나 쇠도끼 하나에 기꺼이 준마를 팔곤 합니다.”
여진족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건주여진에서도 최근에 조선에서 건너간 철장이 아니었다면 자체 철기 생산이 어려운 수준이었다. 철광석을 녹여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만드는 일은 웬만한 인구로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마을마다 대장장이가 있더라도 고철을 녹여 다른 용도로 재사용하는 것에 불과해, 철제 무기나 농기구를 더 많이 만들려면 선철이나 쇳덩이를 외부에서 수입해야 한다.
“동해국에 젊고 튼튼하며 멀리 나돌아 다니기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있소?”
“그런 건달 놈팽이들이야 얼마든지 있습니다. 젊을 때는 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오지 첨사도 젊었을 때 꽤나 멀리까지 싸돌아다닌 모양이었다. 아오지의 눈 깊은 곳에서 아련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 작품 후기 ============================
시베리아도 좀 신경 쓰고...
주인공이 건주여진에는 별 관심 없습니다. 명나라는 조만간 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건주여진과 명나라의 멸망이 반드시 관계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