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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433화 (382/1,000)

00433  47. 1597년  =========================================================================

함대가 사쓰마를 출항해 남쪽으로 향하면서 다네가시마와 야쿠시마를 비롯한 섬들을 지나쳤다. 유구국 군대가 일본 정벌에 참전한 공을 인정받아 야쿠시마를 비롯한 사쓰마 남쪽 섬들이 모조리 유구국 영토로 넘어갔다. 섬에 살던 왜인들을 모두 큐슈로 옮기고 농지를 배정해서 왜인들은 강제 이주 정책에 반발하지 않았다. 큐슈에 가까운 섬들은 큐슈 영토로 하되 공도정책을 실시해 섬에 아무도 살지 못하게 했다.

다만 다네가시마는 나중에 혹시 로켓 발사를 비롯한 우주센터를 세울까 해서 큐슈 영토로 남겨두었다. 그리고 유구국의 가장 서쪽 영토인 요나구니는 현재 무인도인데 고산국에 가깝다는 이유로 고산국 영토로 넘어갔다.

2월 10일에 도착한 유구국은 벌써 여름이었다. 함대가 나하에 도착하니 아라 공주가 탄 배가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민호가 내리자 아라 공주가 사뿐사뿐 달려와 이민호 품에 날아들었다.

“전하!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름답게 잘 크고 있소, 공주.”

“아잉~”

아라 공주가 빨갛게 변한 얼굴을 손으로 가리며 부끄러워했다. 이민호가 이 시대 사람치고는 너무 직설적인 탓에 오해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아라 공주가 미인으로 자라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아라 공주는 고산국의 무역 부문에서 큰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비록 왕명명이 명나라, 여섯 공주가 브루나이와의 교역에서 큰 역할을 맡고 있다지만 총괄은 아라 공주가 담당했다. 고산국이 무역국가인 만큼 어떻게 보면 후궁들 중에서 가장 큰 힘을 쥐고 있었으나, 직속상관이 혜영이었다.

이민호와 아라 공주가 왕과 왕비 차림으로 수레에 타고 슈리 궁성으로 향했다. 기병중대와 해병들까지 호위로 나서서 행렬이 실로 장대했다. 유구국 백성들이 본다면 공주와 사위이며 우호적인 이웃나라 왕이 인사하러 온 것이라 환영하는 사람들로 연도를 새까맣게 메웠다.

항구에서 슈리 성까지 가는 길 주변에는 새로 지은 집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섰다. 전통적인 흙담집이 아니라 벽돌이나 석재로 지은 아담한 집이 더 많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반 백성들이 살기에는 상상도 못할 비싼 주택이었다.

현재 유구국 백성들 절반 이상은 농업이나 어업이 아닌 항해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대부분 고산국의 무역을 보조하는 상선의 선원이었다. 조선에서 시멘트를 실어온다거나, 브루나이에서 목재를 실어 나르는 배에는 대부분 유구국 선원들이 타고 있었다. 선원들 수입은 고산국 절반 정도로 책정돼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버는 편이었다.

“공주! 혹시 무술 사부도 오셨소?”

“보름 먼저 출발해서 왕궁 경비병들에게 무술을 지도하고 계세요.”

진 사부가 손자 진원빈과 함께 유구국에 와서 직접 무술을 가르친다고 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진원빈이 1625년에 유구국에 왔다는데 이민호로 인해 많이 달라졌다. 유구국 사람들은 중국의 정통 남권 중에서도 맨손 무술뿐만 아니라 무기를 다룬 무술도 배울 수 있었다.

실제 역사에서 유구국 사람들이 독립을 위해 무술을 배웠다면, 지금은 해적을 상대하거나 무역상품을 도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배웠다. 얼마 전까지는 대포와 조총 등 화약무기를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바다가 안정된 지금은 지상에서 사용할 무술이 더 절실하게 필요했다.

“전하! 어서 오십시오.”

“쇼호 왕자! 반갑네.”

쇼호 왕자가 말을 타고 달려와서 이민호를 반갑게 맞이했다. 일본에서 전쟁을 할 때는 덤벙대는 감이 있었지만 그 사이 겨우 몇 살 더 먹었다고 꽤나 무게를 잡았다.

“상녕 국왕께서 슈리 궁전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가시죠.”

“상녕 국왕이라니? 유구국 국왕이 언제 바뀌었나?”

“예전의 쇼네이 국왕 맞습니다.”

유구 왕국에서 조선말이 제1 외국어가 되면서 한자 발음도 조선식으로 바뀌었다. 차기 국왕으로 내정된 쇼호 왕자도 상풍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상업국가로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 유구국 사람들의 언어 습득 능력은 대단했다.

병색이 완연하던 상녕 국왕은 이민호가 준 홍삼 덕분인지, 아니면 나라가 기세 좋게 발전하는 덕분인지 요즘은 아주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었다.

상녕 국왕이 슈리 궁성 남문 밖에서 이민호를 맞이한 다음 수레를 나란히 하고 대전으로 향했다. 대전에서 서로 맞절로 인사한 다음 상녕 국왕이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쇼호, 이제는 상풍이라고 부르지요. 다음 국왕하고 이야기해봤는데, 이정도 연관됐으니 이제는 유구국이 굳이 독립을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유구국을 받아주시겠습니까?”

유구국은 현재 고산국 영토가 돼버린 큐슈와 고산국 중간에 끼어버린 지리적 특수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 입장에서는 유구국이 고산국의 일개 지방이 되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거의 속국으로 남겨두는 편이 좋았다. 사실 지금도 유구국 백성은 기본 소득을 지급하는 것만 빼고는 고산국에서 거의 내국인 취급을 해줬다.

“백성을 생각하는 훌륭한 국왕이 계속 나오는 왕가가 있는데 어째서 나라를 포기하시렵니까? 앞으로도 고산국과 우방으로서 함께 발전해 나갑시다.”

“고산국에 영원히 변치 않을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상녕 국왕이 고산국에 대대로 충성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태도도 달라지는 것이 국제관계에서의 상례였다. 나중에 사정이 달라지면 독립하겠다고 할 테고, 전쟁을 하면 국민감정만 나빠질 테니 구태여 지금 유구국을 흡수할 필요가 없었다.

이민호는 슈리 궁에서 며칠 쉬면서 낮에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유구국의 발전상황을 살폈다. 무역 분야에서는 급격한 신장을 이뤘고, 고산국과 연결된 해운과 조선 분야가 특히 발전했다.

유구국의 농업 분야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예전에는 쌀 등 식량을 자급자족하려고 노력했는데 지금은 후추 같은 향신료와 사탕수수, 열대 과일과 고추 등 상품작물 위주로 경작했다. 쌀은 고산국에서 거의 전량을 수입해서 먹는 게 경제적이었다.

“상풍 왕자! 물소의 뿔이 더 길어진 것 같다.”

“조선 궁장들이 뿔이 아주 조금만 더 길면 좋겠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키웠습니다. 덕택에 가격도 더 많이 받고 있습니다. 고산국 농업연구소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축산연구소가 따로 없어서 목축도 농업연구소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요즘 농업연구소는 내한성 쌀 외에도 치즈와 버터 생산에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특히 응고제 연구가 활발했다.

“그런데 상풍 왕자 너 언제 이렇게 조선말이 늘었어?”

“유구국의 국왕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소양입니다.”

“유구국 사람들은 다들 참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부럽다.”

이민호는 과도한 수입으로 인해 고산국 사람들이 편한 것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지 회의가 들었다. 기본 소득 매달 은 두 냥이면 웬만한 조선 자작농보다 많은 수입이었다.

“고산국 백성들이 특별히 게으른 게 아닙니다. 유구국에서는 게을렀다간 굶어죽습니다. 브루나이 사람들은 좀 게으르고 수입이 적더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은 없지 않습니까? 경제상황에 따라, 또는 풍토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 땅이 좁은 유구국을 다스리느라 고생이 많다.”

원래 역사에서 유구국은 사쓰마의 속국이 된 다음 과도한 세금을 내느라 인구 증가가 정체됐었다. 인두세를 내게 되면서 강제적인 인구 감소 정책을 쓰기도 했다.

참담한 일이지만 앞으로 유구국이 그럴 일은 없었다. 고산국 본토에 이어 해외영토인 큐슈나 동해국을 제치고 가장 먼저 아이들이 각종 예방주사를 맞게 된 곳도 유구국이었다. 열대에 가까워 각종 풍토병이 아이들에게 위험한 탓이었다.

“앞으로 북미나 호주를 개발할 때도 유구국을 많이 이용해주십시오.”

“물론이지. 그런데 혹시 유구국 영토를 넓히고 싶나?”

이민호가 상풍을 한 번 떠봤다. 만약 유구국에서 식량 자급이나 인구 과잉 문제로 고민한다면 호주나 북미 일부분을 떼어줄 생각도 있었다. 현재 고산국의 발전에 유구국이 기여한 바가 컸기 때문이다.

“고산국이 확장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면 부럽긴 하지만 유구국은 강대국들 틈바구니에서 영토를 유지할 능력이 도저히 안 됩니다.”

“불곰 반도는 주변에 강대국도 없고 좋긴 한데, 너무 춥겠지?”

“예. 배부른 소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유구 사람들이 살기에는 너무 추운 곳입니다.”

유구국 사람들에게 캄차카 반도 남단에 항구도시를 건설하게 해서 북미 항로 기착지로 이용할 생각도 해봤다. 그러나 캄차카 반도 서쪽은 오호츠크 해, 동쪽은 베링 해였다. 양쪽 다 춥기로 악명 높은 바다라 그 중간의 캄차카 반도도 끔찍하게 추운 곳이었다.

아열대 사람들을 혹한의 땅에 이주시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정책이었다. 만약 고산국 사람에게 캄차카에 살게 하는 대신 매달 은 2냥을 준다면, 유구국 사람에게는 그 두 배를 줘도 모자랄 것 같았다.

캄차카 반도의 항구도시는 꼭 필요한 곳이라 왜인들을 시켜 개척해볼까 한때 고민했었다. 그러나 고산국 국무회의에서 앞으로도 왜인들을 대양에서 아예 배제시키기로 결정했다. 왜인들이 앞으로 배를 타고 태평양을 누비게 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유구국 인구가 얼마나 되나?”

“현재 50만이 조금 넘습니다. 그런데 20만이 6세 미만입니다.”

“경악할 노릇이군.”

“한 세대만 지나면 나하에 집 지을 땅이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바다나 다른 나라 항구에 있기 때문에 항상 유구국 국내에 머무르는 것은 아닙니다.”

현대 오키나와 현의 인구가 140만 정도로 이민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섬이 개발된 다음에 140만을 부양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시대에는 인구 부양 능력을 넘어선 심각한 인구 폭발이었다.

“아기들이 태어나 잘 자라주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야. 어른들은 그 아이들이 걱정 없이 클 수 있도록 일을 열심히 해야겠지.”

“하오나 저희들은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전하께서 아량을 베푸셔서 호주나 미주의 농지를 떼어주신다 해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처럼 배를 타고 다니면서 해안 항구도시에서 살도록 해주겠네. 유구국 사람들은 농민이나 어민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대양의 선원으로 남을 거야.”

이민호가 세계전도를 펼친 다음 북미 서해안 한 곳을 가리켰다. 다시 상세하게 측량한 지도 한 장을 꺼냈다. 폭이 좁은 목 안으로 들어가면 남북 양쪽으로 거대한 만이 펼쳐진 곳으로, 현대 지명으로는 샌프란시스코였다. 유구국이 참가한 1차 태평양 탐사대에서 제대로 조사를 못하고 지나간 지역이라 상풍 왕자도 모르고 있었다.

“천혜의 항구로군요. 고산국에서 출발해 북미에 도달하는 북태평양 항로의 종점이 될 만한 곳입니다.”

“이름을 ‘새 나하’로 정하겠네. 북미 개척민들이 처음 들러서 준비한 다음 여러 지역으로 출발하는 거점 항구도시가 될 걸세. 유구국에서 개발하게. 내 백성의 안전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상풍 왕자가 잠시 정신이 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식으로 유구국의 해외 영토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주로 유구국 사람들이 살 땅이 생긴 것이다. 이민호는 살기 좋은 샌프란시스코를 과감하게 유구국에 떼어줬다. 고산국 백성들이 살 곳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영광입니다. 가장 안전한 항구를 만들겠습니다.”

“고산국 군항은 이곳에서 2천 리 남동쪽에 건설하겠네. 이곳 군항 건설도 유구국에서 맡아주게.”

멕시코 국경과 가까운 만에 군항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현대 미 해군의 군항인 샌디에고 위치였다.

“일을 시켜주시면 고맙지만 고산국이 건설 역량이 훨씬 크지 않습니까?”

“북미 서해안은 유구국에 맡기고 고산국은 북미 동해안을 개발할 걸세. 여기 파나마에 운하를 만드는 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유구국 상선들이 물자수송에 다수 참가하고 있습니다.”

“고산국에서는 파나마 운하 너머 이곳 원주민이 미시시피 강이라 부르는 곳 하류와 이 반도, 그리고 북미 동해안에 거점 도시를 마련하려고 하네.”

미시시피 강 외에 이민호가 가리킨 곳은 플로리다 반도와 버지니아였다. 아직 이름이 없어서 이민호가 이름을 몽땅 새로 지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었다.

“엄청나군요.”

“유구국은 북미 서해안에 도시 두 곳을 건설할 뿐만 아니라, 북미 동해안에 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물자를 실어 날라줘야 하네.”

“하겠습니다! 국운을 걸고 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파나마 운하가 개통되면 주요 손님이 유구국 상선이 될 전망이었다. 앞으로 북미 동해안에 상품과 물자를 운송할 때 운하 통과비도 책정해서 줘야 했다.

============================ 작품 후기 ============================

사정상 한 번 빼먹은 것은 조만간 보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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