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3 47. 1597년 =========================================================================
거의 두 달에 걸친 순행을 마치고 궁성에 돌아왔다. 하루 쉰 다음 이민호는 혜영을 비롯한 국무위원들과 함께 후속조치를 검토했다.
새섬에서는 마오리 족과 꾸준히 접촉하며 장기적으로 어업기지를 세우기로 했다. 그리고 지역별 기후를 감안해 건조 지역에는 양을,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는 소를 키우게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한 남태평양 폴리네시아 섬들을 탐사할 때 마오리 족을 통역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비슷하게 생겨서 말도 통할 거라고 예상한 것이 그 이유였다. 물론 지금은 마오리 족과도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술루 왕국이었다. 항구를 가득 메운 수백 척의 배는 이들이 언제든지 해적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남겼기 때문이다.
감시가 느슨해지면 해적질을 할 가능성이 여전히 높은 술루 술탄국을 농업국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술루 사람들이 정착한 지역의 토양은 농업에 유리한 비옥한 땅으로 판단됐으나, 가끔 백성들을 납치해간다는 식인종이 문제였다.
“파푸아 섬에는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지만 가장 두려운 것은 식인종이에요. 섬의 고지대에 화식조 말고는 사냥할 동물이 많이 줄어서 몇몇 부족에 식인 습성이 생긴 것 같아요. 토끼와 산양, 염소를 산악지대에 풀면 어떨까요?”
총리 혜영이 한 말에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서울 가본 사람보다 안 가본 사람이 더 잘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토끼와 염소는 생태계를 초토화시킬 우려가 있는 동물들이오. 파푸아 섬에 처음부터 아예 없었던 짐승들이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오.”
“그래도 번식력과 생존력을 감안하면 토끼와 염소밖에 없어요. 예상하기 어렵지만 원주민들이 충분히 수를 제어할 수 있을 거여요. 그리고 양과 소, 닭 같은 가축을 파푸아 섬 원주민들에게 도입하는 게 좋겠어요.”
호주는 인구밀도가 낮고 천적이 거의 없어서 토끼가 마음껏 번식할 수 있지만 파푸아 섬에는 토끼를 사냥해 잡아먹을 원주민들이 충분히 많이 살았다. 오히려 원주민들이 사냥을 너무 많이 해서 번식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파푸아 원주민들이 돼지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서 다른 가축도 쉽게 이식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토끼와 사슴, 산양 등의 짐승은 처음부터 파푸아 섬에 서식하지 않은 것으로 탐사대에서도 판단했다. 파푸아 섬은 호주와 비슷한 식생이었고 동물들 분포도 비슷했다.
이민호는 파푸아 섬이 오세아니아에 속한 생태계라서 포유동물이 많이 없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유대류가 주로 서식하는 월리스 선을 언급할 필요는 없었고, 호주와 파푸아 섬이 8천 년 전 빙하기에 연결돼 있다는 사실은 이민호도 몰랐다.
“그런데 우리 영토도 아닌데 굳이 신경 써야 하나요? 해적질을 하더라도 그 근처에서만 할 텐데요.”
“저들이 다시 바다로 몰려나오면 대책이 없소. 테르나테가 제국을 칭한다 해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오.”
“술루왕국의 인구는 얼마 안 되잖아요.”
“술루왕국의 남자는 죄다 해적이요. 인구가 적은 유목민족이 정주민족을 침공할 때 남자가 죄다 기마병이 되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오.”
기원전 20세기부터 이집트 기록에 나타난 바다 민족들은 기원전 12세기 전후에 히타이트 제국을 비롯한 지중해 모든 지역을 침략해 문명을 파괴하고 수백 년 동안 그 지역 사람들을 문맹으로 만들었다. 무역에 재료를 의존해야 하는 찬란한 청동기 문명을 무너뜨리고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철기를 사용하도록 문명을 퇴락시킨 주범이 성서에 등장한 블레셋 등 바다 민족들이었다.
그런 바다 민족이 아시아에 나타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유럽에서 바이킹은 소수에 불과했고 동아시아에서 왜구의 정체는 큐슈 북서부 극히 일부 섬 지역의 해적들에 불과했지만 주변국들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몇 배나 되는 정규군으로 이뤄진 침략군은 쉽게 막아낼 수 있어도, 수시로 후방을 약탈하는 소수의 해적들은 막기 어렵다.
“음.”
혜영이 술루왕국에 대한 공격을 고려하는 것 같았다. 비용이 많이 든다고 전쟁을 싫어하는 혜영으로서도 해적을 큰 위협으로 인식한 듯했다.
“총리는 그들을 몰살시킬 수 있다고 보시오? 고산국이 전 함대를 동원해서 공격하더라도 못해도 절반은 빠져 나갈 것이오. 10분의 1만 해적질에 나서도 동남아시아의 교역은 마비될 것이오. 홀로 섬에 기반을 뒀을 때는 정주할 때라서 오히려 해적의 영향력이 적었던 셈이오.”
“그렇다면 술루왕국이 유지되는 편이 낫겠군요.”
“술루왕국이 멸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때부터 모든 전선은 바다에 떠 있고 전 백성을 무장시켜야 할 것이오.”
이민호가 일본이나 유구국에 신경을 많이 쓴 이유도 마찬가지로 항해 능력 때문이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그리고 네덜란드도 역시 항해 능력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민호는 그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몰살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유구국을 건국 초부터 확실한 부용국으로 만들고, 왜구는 반쯤 몰살시키고 나머지는 섬에서 큐슈로 강제로 이주시켜 농민으로 정착시켰다. 남들이 보기에는 어이없겠지만 이민호는 큐슈 나머지 지역이나 혼슈가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명나라가 멸망한다면 이민호가 가장 먼저 병력을 투입해 장악할 곳도 북경이 아니라 복건과 광동의 해안 지방이었다.
“그럼 전하 뜻대로 술루왕국이 농업국으로 전환될 때까지 돕기로 해요. 그게 오히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겠어요.”
“누누이 강조했지만 전비보다는 쌀이나 가축을 주는 게 훨씬 싸게 먹힌다오.”
“포탄 값을 바가지...... 휴우~ 그 이야기는 그만해요.”
다음은 호주로 백성들을 이민 보내는 문제였다. 실제 역사에서 영국이 북미 식민지를 개척할 때처럼 사람만 데려다주고 끝낼 수는 없었다. 영국이 호주를 개발할 때는 죄수들 다수와 소수 관리들을 내팽개치듯 호주 땅에 버렸다. 개척민들이 죽든 말든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참 편하게 식민지를 개척한 셈이었다.
영국과 달리 고산국에서는 호주 개척민들에게 기본적인 사회 체계, 즉 최소한의 치안과 행정,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줘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와 조정 대신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농민들에게서 세금도 걷어야 하고 미래의 농민이나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나중에 일을 제대로 시키려면 기본적인 교육이 되어 있어야 했다. 고관대작들로서는 당연하게도, 호주에 초기 개척민으로 가는 농민들을 위한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다.
“땅이 넓다고 소문나서 농민들 중에 이민 희망자가 많아요. 하지만 교사나 공무원들은 아무 것도 없어서 불편한 호주에 가고 싶겠어요?”
“만약 강제로 보낸다면 교사고 공무원이고 다 관두겠지요?”
“당연합니다. 본토에서 얼마든지 편하게 지낼 수 있는데 왜 척박한 개척지로 가겠습니까?”
“농민과 가족인 교사가 있다면 갈 수도 있겠습니다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누구든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자원자도 있는 법이었다.
“뭔가 교사와 공무원들을 유인할 방법이 없겠소? 격오지 근무자에게 월급을 더 주는 방법 말고 말이오.”
“월급 주기 아까우세요, 주인님? 국가재정에서 주는 거여요.”
“아니, 뭐. 다른 교사나 공무원들과 형평성 문제도 있고. 공무원들은 일정 기간을 개척지에서 보내면 그 기간만큼 승진 연한을 줄여주겠다고 하시오. 교사는 다른 유인책이 없겠소? 북미에도 같은 방법으로 보내야 하니 장기적으로 유용한 대책을 생각해봅시다.”
“교감과 교장 자격에 필수 요건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다들 교감과 교장을 안 하려고 하는 분위기에서 그게 가능할까 싶소. 해고한다는 위협도 안 먹힐 것이오.”
고산국에서는 다들 배가 불러서 일을 시키기가 어려웠다. 현대에서 대부분 국가들이 서민들을 못 살게 구는 것이 이해가 갔다. 백성들이 가난하면 자그마한 경제적 유인책에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기 마련이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적당히 가난해야 다스리기 편했다.
“교사들은 월급 올려주겠다고 해도 시큰둥하고, 직급 올려주겠다고 해도 관심이 없어요. 그럼 호주나 북미에서 근무하는 교사는 근무기간을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하면 어때요? 방학 외에도 반 년 동안 여행이나 다니면서 실컷 놀라고 하는 거죠. 아니면 1년 근무하면 그 다음 1년은 놀게 해주는 거여요.”
“오오! 그거 좋다. 나도 교사할래.”
“주인님!”
“쳇!”
그런 정책을 발표했더니 교사들 중에서 호주 근무 지원자가 쇄도했다. 특히 1년 근무하고 1년 노는 근무형태를 선호했다. 여행 다니겠다는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교육대학에서 차분히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교육대학에 등록하고 공부를 하는 교사는 성적에 따라 유급휴가로 처리하거나, 경력을 가산해주는 제도가 이미 있었다. 미안하게도 이 정책이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교사들 대부분이 몰랐다. 이민호와 혜영, 예부 참판과 최 선생이 모여서 슬그머니 그 제도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필리핀 북부는 영토만 차지했지 실질적으로는 원주민들의 자치에 맡겨 놓아 어떻게 보면 호주가 첫 번째 식민지나 다름없었다. 북미가 더 중요한 식민지이므로 북미 개척 전에 호주 식민지를 개척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하나씩 개선하기로 했다.
3월 중순부터 개척민들이 호주로 떠났다. 남반구는 가을이므로 적도에서 가까운 장영실 항 주변으로 먼저 보내려 했다. 가을이 되면 본격적으로 새부산과 새여수로 개척민을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미리 도착해서 집을 짓고 농경지를 개간해야 한다는 개척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개척민들이 모이는 대로 새부산과 새여수로 보냈다.
다음은 파나마 운하와 북미 개척 문제였다. 운하 건설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이민호가 개인 재산에서 해결하고 있었다. 북미 대륙도 이민호 개인 돈으로 산 것이나 다름없으니 북미 전체가 이민호의 개인 재산이었다.
“고산국 본토처럼 북미 전체도 왕토가 되는 셈인가요?”
“그렇소. 농사를 짓거나 일정 면적 이상의 토지를 이용하려면 내게 세금을 바쳐야 하오. 음하하!”
혜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보자 이민호가 꼬리를 말았다.
“물론 수조권을 국가로 이전시켜주겠소.”
“전하께서 손해는 안 보게 해드릴게요. 자금이 회수되면 북미에서 기업을 세우실 거죠?”
“왕립 기업을 만들어봤자 이익 나는 기업은 국가에 다 뺏기는데 무슨 재미가 있겠소? 마치 가마우지가 된 기분이오. 사유재산을 보장해주시오.”
목이 노끈에 묶여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고 어부 앞에서 토해내는 가마우지를 연상한 혜영이 피식 웃었다.
“어린애처럼 투정부리지 마세요. 왕이 되셨으면 백성들을 돌보셔야죠.”
“쳇! 쳇!”
이민호와 혜영이 잘 놀고 있었다. 대신들은 흔히 보는 광경이라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전하! 북미 서해안에 먼저 도시 두 곳을 만드는 동안 전선이 주변 경계를 해줘야 합니다. 최소 세 척이 필요하고, 교대할 배까지 합하면 일 년에 12척, 1개 전단이 필요합니다. 연료 수송선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북미의 관문이 될 ‘새 나하’를 먼저 건설합시다. 만 입구 남쪽 언덕에 요새를 만들어 대포를 배치한 후에는 전선을 배치할 필요가 없을 것이오.”
“북미 동해안도 마찬가집니다.”
“동해안에는 에스파냐에서 건설한 요새가 있다니까 약간 개축해서 사용하면 될 것이오. 다만 동해안은 요새가 완성된 후에도 유럽 사략선들 때문에 전선들이 고정 배치돼야 할 것 같소.”
돈과 인력, 장비를 분배하는 일로 하루가 다 갔다. 대규모 식민 경험이 없어서 어느 한 사람에게 모든 계획을 떠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4월에 북미 서해안으로 처음 개척단을 보냈다. 당분간 기병 1개 중대와 보병 1개 중대를 고정 배치하기로 하고, 민간인 기술자들까지 합해 1천여 명이 출항했다. 먼저 샌프란시스코, ‘새 나하’의 만 입구에 요새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유구국에서도 ‘새 나하’ 건설을 위해 초기 개척민을 포함해 2천여 명을 보냈다. 기관을 장착한 대형 수송선이 얼마 없기 때문에 주로 범선에 장비와 물자를 가득 실어 보내고, 인원 수송은 고산국 수송선을 이용했다.
파나마에서 일하는 명나라 노동자 1만여 명 중에서 4천여 명이 연장 근무를 지원해서 운하 건설이 끝나는 대로 도시 건설에 투입하기로 했다. 고산국 본토와 필리핀 북부에서 일하던 복건 노동자들 중에서도 2만여 명이 차례로 북미로 향했다. 파나마 운하 건설 과정에서 사망자가 거의 없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도 전해진 덕택이었다.
“주인님. 북미에 너른 땅이 많다는 소문이 다 퍼졌어요. 복건 임노동자들이 가족 단위로 북미에 가고 싶어 해요.”
“북미에 정착하고 싶어 한다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명나라의 심기를 거슬릴 필요가 없잖아.”
북미 개발에 노동력이 많이 필요하기에 이민호도 복건 임노동자를 백성으로 받아들여 이주시키고 싶었다. 도시 건설을 마치고 북미 동해안과 철도 연결이 끝나면 새 나하나, 고산국 이민자들이 거주할 현대의 로스앤젤레스인 새인천에 차이나타운을 건설해 정착시켜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명나라와 척을 지고 싶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욕심을 줄여야 했다.
북미 서해안 지역에 임시로 붙인 이름은 현대의 LA가 새인천, 샌디에이고가 새목포, 시애틀이 남포, 앵커리지가 새의주였다. 이름 짓기 귀찮아서 한반도 서해안 도시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였다.
“투박하지만 착한 사람들이에요.”
“복건 노동자들 말이야?”
“예, 주인님. 1, 2년 일하다가 고향에 돌아간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은 몇 년째 꾸준히 일하면서 번 돈은 모두 가족에게 보내는 착한 사람들만 남았어요.”
한 푼이라도 더 벌겠다고 휴일이나 평일 저녁에 부업을 하는 명나라 노동자들을 고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현대와 정반대로 이 시대 기준으로는 명나라 사람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며 억척스러웠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왔던 명나라 장수나 관료들의 발언을 실록에서 찾아보면 조선인이 엄청나게 게으르다는 비판을 흔히 접할 수 있다.
“기회가 생기면 그들을 백성으로 받아들여줄게. 정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해야지 뭐. 요즘 명나라 관리들이 부패가 심각하다니까 잘 해결될 거야.”
“고마워요, 주인님.”
혜영이 눈물을 쏟으며 이민호에게 안겼다.
“혜영이도 의외로 착한 구석이 있었군.”
“제가 언제 안 착했나요?”
“백성들한테는 충분히 착한 정치가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나한테도 좀 착해봐. 서러워.”
“흥! 내가 모르는 돈주머니 차고 다니는 주인님한테 착할 필요 있겠어요?”
“뭐야? 이리 와!”
이민호가 혜영을 밤늦게까지 꾸짖었다. 남편의 위엄을 충분히 드러내 보이니 혜영이 반성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민호의 착각이었다.
“주인님! 이 나이에 보약 드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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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행이 꽤 길었군요...
오늘은 아마도 한 회만 올리게 될 것 같습니다. 기다리지 마십시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