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54화 (403/1,000)

00454  48. 북미 개척  =========================================================================

다음 날 이민호는 페루 부왕을 만나 구아노 수입 협상을 벌였다. 파나마 운하를 거의 고산국만의 힘으로 건설해서 에스파냐도 뭔가 고산국에게 호의를 베풀려고 작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고산국이 원하는 것을 알게 됐으니 저렴하게 넘기기로 했다. 어차피 구아노는 지역에 따라 수백 미터씩 쌓인 곳도 있을 만큼 풍부한 매장량을 자랑했다.

“구아노라면 그까짓 새똥이 굳어서 만들어진 돌 아닙니까? 원주민들이 캐서 비료로 쓰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산 몇 개가 구아노로 이루어질 정도로 흔해빠졌으니 절반쯤은 고산국에서 캐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가격은 어떻게 정할까요?”

“고산국 상선은 그렇다 치더라도 국왕폐하께서 타신 배에도 운하 통과료를 징수한 것을 두고 멕시코 부왕이 미안해 죽을 지경이랍니다. 그렇다고 자원을 공짜로 넘겨드릴 수는 없으니 2만 파운드에 은 한 냥이 어떻겠습니까? 혹시 비싼가요?”

“대략 10톤에 한 냥이라. 그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한 척이 4백만 파운드 정도 운반할 테니 배 한 척당 200냥 정도 들겠군요. 채굴은 저희가 하겠습니다.”

이 시대에 꽤나 괜찮은 천연 비료인 구아노를 한 척 당 2천 톤씩 마구 실어 나를 꿈에 젖었다. 페루 부왕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가격이 오르기 전에 농가에서 미처 사용을 못하면 보관이라도 해야 했다. 당연히 구아노 값보다는 운송비와 보관료가 더 들 것 같았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페루 부왕이 꽤나 전략적인 선택을 했다. 고산국 대형 상선에는 3인치 함포를 앞뒤로 달아놓았다. 동남아시아에 들끓는 해적에 대비한 것인데 바로 이것이 고산국 상선을 거의 군함 취급하게 되는 요인이었다. 페루 부왕은 남미 남단을 돌아서 태평양에 진입해 페루를 약탈하려는 유럽 해적에 대한 강력한 방어수단으로 고산국 상선을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국왕폐하께서 그 동안 필리핀 총독부에 베풀어주신 후의에 보답하고자 합니다. 원주민을 부역에 동원해드릴까요? 제가 2년 전에 있었던 멕시코와 달리 페루에서는 부역제도를 마음껏 활용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원주민들도 은광보다 훨씬 안전한 구아노 광산에서 일하기를 좋아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부왕께 폐를 끼칠 수는 없지요. 근처에 사는 원주민들을 직접 고용해서 일을 시키겠습니다.”

“예전에 필리핀 총독부와 좋은 관계를 맺어주셔서 저도 일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비록 남미와 북미로 대륙이 떨어져 있다 해도 좋은 관계가 언제까지나 유지되길 기원하겠습니다.”

“물론입니다. 앞으로도 고산국에 협조해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다음 날 아침, 대서양에 접어든 함대는 북상해서 쿠바와 유카탄 반도 사이로 향했다. 파나마 운하를 성공적으로 건설한 공국 참의, 이제는 공조 참판은 남은 인원을 데리고 고산국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몇 달 쉰 다음에는 수에즈로 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수평선에 돛대! 동에서 서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함대가 플로리다로 가려고 유카탄 반도와 쿠바 사이를 지나 계속 북상하는데 수평선에 돛대 끝이 불쑥 솟아났다. 돛대가 점점 치솟으며 수평선 위로 하얀 돛이 올라왔고,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돛대 상단 망루에 오른 선원이 이쪽을 가리키며 갑판을 향해 뭐라 소리치고 있었다. 배의 전체적인 모양은 아직 확인할 수 없었다.

“해적이다. 전투 준비 명령 하달!”

망원경으로 살피던 전단장이 배의 정체를 파악하고 신호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신호수들이 밖으로 나가 다른 순양함들에게 깃발 신호를 보냈다. 그 사이 함장은 전화를 통해 각 포탑에 전투 준비 명령을 내렸다.

수평선에 나타난 배의 돛대 끝에 에스파냐 깃발이 나부끼지 않았고 돛에 커다랗게 그려야 할 국적 표시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해역에서는 이미 해적선이라는 확실한 증거였다.

물론 해적선이 돛대 끝에 국기를 달거나 돛에 다른 나라 국적 표시를 달아 위장할 수도 있었다. 그래도 카리브 해에서 에스파냐 배가 아니면 일단 해적선이었다. 그래서 멕시코 만과 카리브 해를 합쳐서 ‘스페인 대해’라고 불렀다.

“해적선이 도주합니다!”

해적선이 계속 같은 방향으로 이동해서 도주하는지, 함대를 무시하고 제 갈 길을 가는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역풍에서 지그재그 항해를 하는 해적선은 속도가 빠르지 못했다. 함대 속도를 높여 해적선을 함포 사거리에 넣으려는 전단장을 이민호가 말렸다.

“적당히 거리를 두고 따라가시오.”

“추격 작전으로 전환하겠습니다.”

해적선의 망루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며 함대가 해적선을 따라갔다. 해적선은 유카탄 반도 북쪽 바다를 지난 다음 남서 방향으로 침로를 바꿨다. 유카탄 반도의 중심지 항구도시인 캄페체로 향하는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이 근처에 해적들이 숨는 섬이 있는 것 같소.”

“해도에 작은 섬들이 있습니다만, 대부분 베라크루스와 쿠바 아바나 직선 항로 주변에 위치해서 에스파냐 해군에서 감시하고 있을 겁니다.”

“에스파냐에서 생각도 못할 전혀 의외의 장소일 수도 있겠소. 섬이면서도 육지로 인식되는 그런 곳 말이오.”

이민호가 지도를 보면서 생각을 밝혔다. 캄페체에서 남서 방향으로 150km 거리에 기다란 섬이 하나 있었다. 육지 쪽으로 움푹 파인 만을 길고 가느다란 사주가 가로막다 말았는데, 그 사주가 섬이 된 곳이었다.

“카르멘 섬이란 곳을 수색해봐야겠소.”

“서인도제도의 섬이 아니라 멕시코 땅이라니, 해적 두목이 대담한 자인 모양입니다.”

“근거지가 따로 있는데 약탈을 위해 임시로 기항했을 수도 있소.”

해적선은 이민호의 예상대로 카르멘으로 향하고 있었다. 함대는 계속 일정하게 속도를 유지하며 남서 방향으로 항해했다. 그리고 순양함 한 척을 빼서 캄페체를 살펴보고 오게 했다. 함대의 이동 속도를 해적선에 맞추느라 느려서 캄페체를 확인하고 온 순양함이 금방 함대를 따라잡았다.

“에스파냐 함대가 뒤늦게 캄페체에 도착해 정박하고 있습니다. 해적은 만나지도 못했답니다. 에스파냐 함장에게 물어보니 작은 도시인 캄페체를 철저히 약탈하되, 폐허로 만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주민들도 잡아가서 노예로 팔 것 같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을 도시에 남겨뒀습니다. 다만 시장과 몇몇 관리들은 납치당했습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약탈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군.”

캄페체에 다녀온 순양함 함장의 보고로부터 그런 결론을 내렸다. 해적들에게 있어서, 방어가 취약한 캄페체는 언제든 돈을 빼낼 수 있는 은행 현금인출기나 다름없었다.

멀리 육지가 보이기에 더 이상 함대가 해적선을 추격할 수 없었다. 서서히 어둠이 내리면서 단정 두 척을 보내 해적선이 사라진 방향으로 보내 수색하도록 했다. 단정들은 금방 돌아와서 보고했다.

“카르멘 섬 서쪽 끝에 작은 항구가 있고 부두에 허름한 가건물 몇 채가 세워져 있습니다. 해적선으로 파악된, 돛에 국적 표시 없는 중소형 범선이 모두 열한 척입니다. 몇 척에는 국기가 게양됐는데 어두워서 확인을 못했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고산국 함대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으로 강력하다지만 야간전이 불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레이더도 없고 야시장비도 없는 시대에 섣불리 야간 공격을 감행할 수는 없었다.

함대에 등화관제를 시키고 바다 한가운데에서 묘박을 실시했다. 닻을 세 군데에 내리느라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배를 고정시켰다. 밤새 폭우가 쏟아졌으나 피해는 없었다.

새벽에 동트기 전에 함대가 해안으로 움직였다. 해적선이 열한 척이라서 좌승함 빼고 한 척씩이 배정됐다. 순양함들이 해적선에 조용히 접현한 다음 해병들이 넘어가 아직도 술에 취해 정신없이 자고 있던 해적들을 꽁꽁 묶었다. 해적답게 불침번도 세우지 않아 해적 800여 명이 거의 저항 없이 잡혔다.

몇 척에 프랑스 국기가 게양된 해적선을 모두 나포한 해병들이 다시 단정을 타고 해안에 상륙했다. 요란한 기관 소리에 잠이 깬 해적들이 비틀거리며 오두막에서 나왔으나, 아직 제정신을 차리기 전에 해병들이 쇠좆매로 두들겨 패서 제압했다. 무기나 죄인을 고문하는 형구로 쓰는 쇠좆매가 사람 피부에 착착 감기면서 고통이 최대화됐다.

- 타앙!

머스킷이 발사됐으나 해병에게 맞지도 않고 머스킷 사수는 곧바로 제압됐다. 쇠좆매에 맞으면서 사수가 내지르는 비명소리가 해안에서 멀리 떨어진 국왕좌승함까지 들려왔다.

해변에서도 해적과 젊은 여자 몇 십 명이 포함된 조력자로 보이는 자들 200여 명이 생포됐다. 배에서 붙잡힌 800여 명과 합해서 천 명이 넘는 해적을 붙잡은 해병 지휘관이 좌승함에 와서 보고했다.

“항구에서 212명을 생포했고 도망간 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두막에서 은괴와 금괴 다수를 발견해서 수송 중입니다. 해적선 선실도 수색 중이니 더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해적선을 에스파냐에 넘겨서 보상금을 받을 테니 그 전에 철저히 수색해서 전리품을 챙기도록 해.”

“예. 그리고 해적들 외에 에스파냐 포로 30여 명을 구했는데 그 중에 캄페체의 시장이라 주장하는 자가 전하께 알현을 신청했습니다.”

“좋아. 불러와.”

단정을 타고 국왕좌승함에 오른 자는 40대의 귀족이었다. 시장은 이민호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베라크루스로 보내주길 원했다. 카르멘 섬에서 서쪽으로 400km쯤에 베라크루스가 있었고, 그곳에서 육로로 서쪽 약 300km쯤에 멕시코시티가 위치했다.

“시장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리오. 우리도 해적선을 예인해서 베라크루스로 갈 예정이었소. 그런데 저 해적들의 정체가 뭐요? 몇 척에서 프랑스 국기를 확인했소만, 전부 다 프랑스 사략선은 아닌 것 같소.”

“주로 프랑스 해적이 맞습니다. 프랑스 사략선 여덟 척에 나머지는 영국과 네덜란드 배입니다. 해적들은 프랑스에서 직접 건너온 자들이 대다수이며, 캄페체 인근 산에서 몇 년 동안 벌목공으로 일하던 프랑스 노무자들도 다수 가담한 것 같습니다.”

현재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전쟁 중이었다. 원래 프랑스의 내전인 위그노 전쟁이 국제전으로 확대돼 프랑스 북부가 에스파냐 테르시오와 기병대에게 짓밟히고 있었다. 전쟁이라는 좋은 기회를 포착한 프랑스 사략선들이 대거 서인도제도로 몰려와 프랑스 국내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약탈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쿠바의 아바나에 에스파냐 함대가 집중돼 아바나를 약탈하지는 못했다.

프랑스 해군 또는 사략선이 서인도제도 약탈함대의 주력이었던 이 시대와 달리 17세기 말에 카리브 해에서 기승을 부렸던 버커니어는 서인도제도에 거주하던 프랑스인들 위주의 해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에서 식민지를 개척해 집단으로 이주시킨 것이 아니라 일자리를 찾아 서인도제도에 개별적으로 왔다가 집단적으로 해적이 된 경우였다.

에스파냐 본토에 신대륙에서 실어온 은이 넘쳐나면서 상품 가격이 폭등하고 인건비도 끝없이 올랐다. 그래서 가까운 프랑스에서 노무자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였고, 일부는 서인도제도까지 흘러 들어왔다. 서인도제도에 정착해 살면서 근처 바다에 보물선들이 오락가락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욕심이 절로 생겨나 결국 해적으로 나서게 된 경우였다.

“외국인 노동자를 무작정 받아들이면서 관리를 안 하니 집단화되면서 이렇게 해적이 되는 거지.”

외국인 노동자를 대량으로 고용하고 여러 나라 출신의 이주민들을 받아들인 고산국에서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었다. 앞으로 북미에서 유럽 이주민들을 대량으로 받아들일 텐데 그들 중 일부가 해적이나 산적 등 범죄 집단이 되거나 지역 단위로 독립을 선언할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유럽 본국과 연결된 독립 세력과 어느 정도 전쟁을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이 지역 실정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원주민들 체력이 너무 약해서 벌목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원주민들 체력이 약하다면 시장이 지나치게 착취해서 굶주려서 그렇게 된 것 아니오? 그리고 프랑스인 벌목공을 고용했으면 계속 고용을 유지해야 할 것 아니오? 저들도 살기 힘드니 해적질에 나선 것이겠지요.”

에스파냐가 우방이긴 했지만 식민지 정책에 대해서는 이민호도 불만이 많았다. 특히 식민지에 프랑스 벌목공이나 흑인 노예 등 외지인을 자꾸 들여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았다.

원주민과 외지에서 온 노동자들의 갈등을 이용해 양쪽 모두를 쉽게 제어하는 전형적인 식민정책일 수 있었으나 나중에는 식민지 정부도 감당하지 못한다. 지금은 프랑스도 먹고 살만해서 이 지역 버커니어가 소수에 불과했으나 100년쯤 지나면 카리브 해는 온통 버커니어가 판을 치게 된다.

“하지만 벌목공의 고용은 민간에서 할 일입니다. 노무자들을 프랑스에서 데려온 것도 민간 상인들입니다.”

“그럼 민간 회사에서는 저임금으로 프랑스 벌목공을 부리면서 필요 없을 때 해고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부담은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밖에 되지 않소. 그렇다면 애초에 프랑스 벌목공 유입을 정책적으로 막았어야지요.”

“지금 당장은 프랑스 노동자를 유입시키는 편이 이익입니다. 염료용 나무를 벌목해서 수출하면 큰돈이 됩니다.”

“외지인을 데려온 만큼 앞으로 보물선이 더욱 자주 공격을 받게 될 것이오. 그럼 항로를 지키는 일에 더욱 많은 해군 함선을 투입해야 하고, 그만큼 본토 방어가 약해질 수 있소. 결국 에스파냐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짓이오.”

“국가 단위의 일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시장이라면 그 정도는 감안해서 시정을 펼쳐야지요. 최소한 에스파냐의 관리이거나 귀족, 혹은 지식인이라면 당장 이익이 되더라도 장기적으로 국가에 해로운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오. 국가반역자가 아주 악독한 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요.”

바로 네가 국가반역자라는 질책에 시장이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생각을 하는 듯 억울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났다.

에스파냐가 유럽이나 신대륙에서는 강대국이었지만 바다에서는 영국과 프랑스, 네덜란드를 동시에 상대해야 해서 코너에 몰려 있었다. 보물선에 실린 엄청난 양의 금과 은에 욕심을 내는 해적들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해상수송로를 지키는 일에 국력을 기울이다 보니 에스파냐 전체의 국력도 약해졌다.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악독한 해적을 막을 힘을 보태주소서.”

“나는 항상 카리브 해에 있지 않을 것이오. 해적을 없앨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긴 한데, 아마 에스파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오.”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십시오.”

“저들은 실질적으로 해적들이지만 법적으로 사략선이라는 한계를 이용하는 것이오. 사략선 선원들은 자국에서 해적으로 몰려 교수형 당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고 알고 있소.”

국가의 통제로부터 벗어난 해적은 수명이 결코 길지 않았다. 국가에서 묵인해주기 때문에 해적이 생존할 수 있었다. 자국 또는 우방국 선박을 약탈한 해적은 반드시 몇 년 이내에 밧줄에 목이 매달렸다.

“그렇긴 합니다만.”

“은과 상품을 운반하는 배를 에스파냐 국적선으로 제한하는 법을 없애면 간단하오. 그러니까 유럽 다른 나라 선박에도 보물 운송 업무를 개방하는 것이오. 그럼 사략선이 공격할 핑계가 사라질 것이오.”

“영국과 네덜란드 상선이 곧 해적선입니다. 국민 자체가 도적놈들입니다. 그들을 결코 믿을 수가 없습니다!”

“나중에 두고 보면 알 것이오. 그때는 이미 늦겠지만.”

100년 후에 이뤄질 에스파냐의 정책이 지금 당장 시행될 리가 없었다. 이민호도 충분히 이해했다.

잠시 후 해병 지휘관이 와서 이민호에게 전리품의 양을 보고했다. 바로 며칠 전에 도시의 재산 전체를 털린 캄페체 시장이 옆에 있어도 상관없었다. 멕시코 부왕이 인정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 없어도 전리품은 온전히 고산국 함대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은괴 350톤, 금괴 21톤, 에스파냐 금화와 은화 109상자를 모두 좌승함에 실었습니다. 나머지 상품은 다른 배에 나눠 적재했습니다. 배가 가라앉을 위험 때문입니다.”

“이야! 카리브 해에 오니까 단위가 다른데? 마닐라 갈레온에 실린 은이 매년 200톤을 안 넘잖아?”

“해적들이 올여름에 에스파냐 보물선단 하나를 온전하게 털었다고 합니다. 두목들을 심문해보니 카리브 해 전체에 쳐진 에스파냐 해군의 봉쇄선을 뚫기 위해 캄페체에 이어 베라크루스를 공격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에스파냐 해군이 뒤늦게 베라크루스에 도착하는 사이 유럽으로 도망치려는 계획입니다.”

“아주 짭짤하군. 여기서 해적이나 털고 다닐까? 일단 승조원 전원에게 은 30냥씩 나눠주고 나서 다시 이야기하세.”

함대에 동승한 사람 모두에게, 즉 해군과 해병, 기병, 플로리다에 정착할 기술자와 그 가족들에게도 예외 없이 나눠주고도 은 3톤밖에 들지 않았다. 캄페체 시장이 손바닥에 놓인 은괴를 보고 화를 내면서 아래 선실로 내려갔다.

“그래도 은은 들고 가네.”

이민호가 시장을 비웃었다. 이민호가 보기에 해적들을 불러들인 자는 바로 저 시장이었다. 캄페체 주위에 지천에 깔린 염료용 목재를 베어 수출하기 위해 프랑스 노무자들을 시장이 불러들였고, 그 노무자들이 프랑스 사략선과 내통했을 것이다. 사략선 선원들과 벌목공들은 돈도 벌고 애국도 하려고 양심의 가책 없이 신나게 약탈에 나섰을 것이 빤했다.

============================ 작품 후기 ============================

길더라도 다 연결되는 내용이라 한 회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