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5 48. 북미 개척 =========================================================================
붙잡힌 해적들을 배 밑창에 가두고 함대는 서쪽 베라크루스로 향했다. 해적들이 뭐라고 말하며 애원했으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말을 해도 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함대에 스페인어와 영어 통역은 많이 대동했어도 불어 통역을 하나도 안 데려왔다.
이민호는 카리브 해에 당연히 영국 해적이 다수 있을 줄 알았지, 프랑스 해적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이민호는 해병 지휘관을 불러서 카르멘 섬 작전 중에 직접 심문을 했다는 프랑스 해적들을 데려오게 했다. 스페인어를 조금 구사하는 해적 두목 몇 명을 집무실로 불러서, 해적과 되도 않는 스페인어로 간신히 의사소통을 했다.
“저희들은 국가의 명령으로 군사작전을 벌인 것입니다. 고산국 국왕폐하께서는 에스파냐와 프랑스가 현재 전쟁 중이라는 사정을 알아주십시오. 저희가 베라크루스로 끌려가면 에스파냐 놈들이 저희들을 해적죄로 살해할 것입니다. 저희들을 제발 풀어주십시오.”
해적들이 자기들은 해적이 아니라 프랑스 사략선 선원이라면서 살려주길 간청했다. 그러나 이들이 에스파냐 보물선단만 털었다면 모르겠으나 민간인이 주로 거주하는 도시를 약탈했으니 전쟁포로로 인정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이민호가 이 시대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사략선의 의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함대는 오후 늦게 베라크루스에 도착해 입항했다. 항구 입구에 위치한 요새에서 근무하는 에스파냐 군인들이 대규모 함대의 접근을 발견한 즉시 종을 울렸다. 급하게 타종하는 종소리를 듣고 도시 전역에서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항구로 몰려들었다. 에스파냐는 신대륙에서 지킬 곳이 너무 많아 병력을 충분히 배치할 수 없어서 시민도 민병으로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돛도 안 단 거대한 배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을 보고 소문으로만 듣던 어느 나라의 군함을 떠올렸다. 그 다음 깃대에 매달린 태극기를 확인하고 시민들이 환성을 질렀다. 특히 돛을 내린 해적선들을 고산국 순양함마다 한 척씩 예인해오는 것을 발견한 시민들은 미칠 듯이 열광했다. 함대가 등장한 것만으로도 시민들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챘다.
항구에 내린 이민호는 시민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환영을 받았다. 이민호는 어리둥절한 채 꽃이 가득 깔린 길을 따라 마차를 타고 시청에 입성했다. 도로 주변 2층 석조건물 창마다 아리따운 처녀들이 마차를 향해 꽃비를 뿌렸다.
천천히 움직이는 마차 뒤에는 손이 뒤로 묶인 해적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민호가 탄 마차가 지나갈 때 활짝 웃으며 환영하던 시민들은 줄에 묶인 해적들에게는 험악한 표정으로 발길질을 하고 돌을 던졌다. 해적들 행렬 양 옆을 에워싼 고산국 기마병들이 시민들에게 손을 저어 제지했으나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았다.
“올해 내내 골치 썩이던 해적들을 바로 잡아오시는군요. 고산국 해군의 능력에 정말 놀랐습니다.”
“부왕께서 여기 계시는 줄 몰랐습니다. 해적을 인수하십시오.”
파나마에서 헤어졌던 멕시코 부왕 가스파 유니가 백작이 베라크루스 시장, 관리들과 함께 시청 앞에 나와 있었다. 부왕은 파나마 운하가 완공돼서 국왕좌승함이 안전하게 대서양으로 진입했던 순간보다 더 기뻐했다.
“해적들은 어떻게 됩니까?”
“재판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사형이 언도될 것입니다.”
프랑스 해적들에게 몇 년 동안 시달리던 부왕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운명을 직감하고 고개를 푹 숙인 해적들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이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들이 해적이 아니라 사략선 선원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웃기는 변명이지요. 하지만 캄페체에서 인명을 살상하지 않은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다만 보물선단과 싸울 때 에스파냐 사상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항복한 병사들도 물에 빠뜨려 죽였습니다. 저는 식민지 병사들의 최고지휘관으로서 해적들에게 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호송선단 체제를 최초로 구축한 나라는 에스파냐였다. 해적들의 등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상선들을 모아 선단을 구성하고 호위 군함들을 붙여 한꺼번에 움직이는 방식이었다.
상황에 따라 군함을 포함한 호송선단 전체가 해적들에게 나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체로 해적선의 숫자가 적었기에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17세기 말에 카리브 해에 들끓던 해적들도 풍랑을 만나 선단에서 떨어져 한두 척 단위로 움직이는 에스파냐 배를 주로 공격했다.
대서양을 횡단할 때 호송선단 체제를 꾸리는 일은 일차대전과 이차대전에 그대로 이어졌다. 유보트에 대비한 방어체계인데 문제는 전쟁 초기에 심각한 손실을 입은 다음에야 호송선단 체제를 다시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도 일차대전 때 그렇게 당했고, 이차대전에 뒤늦게 참전하면서 영국으로부터 강력한 권고를 받았지만 무시했다가 유보트에게 아주 호되게 당했다. 상선들이 줄줄이 침몰하는 참전 초기 일 년 반 정도 기간에도 미 해군 고위 장성들은 상선들이 따로 한 척씩 행동해야 유보트를 만날 확률이 줄어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대서양 북쪽부터 남쪽까지 그물망을 쳐놓고 기다리던 유보트 함장들 입장에서는 무척 고마운 말씀이었다.
“혹시 국왕폐하께서는 저들을 광산 노예로 쓰고 싶으십니까?”
“그건 아니요. 광산은 북미에서 아직 찾지도 못했소.”
부왕이 빙긋 웃으며 이민호를 시장 집무실로 안내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고산국 해군이 해적선을 나포하고 해적을 생포해온 데 대한 계산을 했다.
돛과 닻, 각종 삭구 등 항해용 도구가 고스란히 남아있었고 전투흔적을 아예 찾아볼 수 없이 멀쩡했기에 해적선 한 척에 12만 에스쿠도를 받았다. 해적 포로 한 명당 기본적으로 100에스쿠도를 받았는데, 선장과 항해사 등은 비교적 높은 몸값을 받았다. 특히 해적선장 한 명은 지명 수배된 유명한 범죄자라서 1000에스쿠도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사람값보다 배 값이 훨씬 비쌌다.
“해적의 조력자라는 자들은 직접 해적 행위를 하지 않았기에 재판에 회부해도 벌을 주기 어렵습니다. 가족이라서 어쩔 수 없이 해적을 도왔다고 우기면 더더욱 처벌하기 어렵지요.”
부왕이 충분히 공감할 말을 했으나 이민호는 즉각 대답하지 않았다. 부왕에게 뭔가 의도가 있을 줄 알고 다음에 할 말을 기다렸다.
“해적에게 가족을 잃은 시민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베라크루스에 머물게 할 경우 시민들에 의해 폭행을 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희들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할 것 같군요. 사실 그럴 마음도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충분히 이해합니다.”
“듣자 하니 고산국에 인구가 적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들을 데려가 일꾼으로 부리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보호해줘야 하는 군식구겠지만 세탁부나 심부름꾼으로 부리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
“여자들이나 아이들이 많아서 큰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여기에 있다간 생명이 위험하다니 데려가겠습니다. 그런데 말씀입니다.”
뚱뚱하면서도 억센 아줌마들과 어린 나이에 발랑 까지고 꾀죄죄한 아이들을 떠맡게 되었다. 이민호는 배석한 장교에게 명령해 그들을 냇가로 데려가 일단 목욕부터 시키도록 했다. 옷도 새로 주어 그나마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예. 말씀해주시면 경청하겠습니다.”
“에스파냐가 몇 년째 프랑스하고 전쟁을 했는데 조만간 끝날 것 같지 않습니까?”
“예. 사실 전쟁은 거의 끝났습니다. 프랑스의 앙리 4세가 뭔가 선언을 준비하다고 들었습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했다지만 신교도에게 너무 유화적인 기회주의자입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종교 내란인 프랑스의 위그노 전쟁이 최근 국제전으로 확대됐지만 조만간 끝날 예정이었다. 이민호는 프랑스 국왕이 낭트 칙령인가 하는 종교 자유 선언을 하는 것으로 기억했다.
“프랑스 해적들에 대한 사형 집행을 그 이후로 미루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천여 명이나 되는 해적들의 목숨을 프랑스를 상대로 한 외교에 이용하란 말씀입니다.”
“아하! 이해하겠습니다. 저들은 명목상 프랑스 사략선 선원입니다. 면허장을 발행해준 프랑스 국왕이 모른 척하지는 못하겠지요. 저들의 가족이 프랑스 국왕에게 줄기차게 탄원서를 올릴 겁니다.”
천여 명이나 되는 프랑스인 포로가 멕시코에 잡혀 있다면 프랑스가 외교적으로 수세에 몰리게 될 것이 빤했다. 이민호는 바로 그들을 이용하라고 조언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오. 천여 명의 인질을 잡고 정치적 이익이든 경제적 이익이든 프랑스로부터 뜯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밥값이야 더 들겠지만 어차피 재판은 내년 상반기 안에 못 끝날 겁니다. 인원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민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부왕이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어째서 조력자들을 굳이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조력자들이 여기에 있으면 위험하다면서요? 저들을 플로리다 산 아구스틴으로 데려가겠습니다.”
“하하! 예. 해적들에게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프랑스와 전쟁이 끝나고 외교가 잘 풀려 석방될 경우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럼 고맙지요. 앞으로 누에바 에스파냐 부왕령과 고산국 북미 지역은 우호관계를 지속하게 될 것 같습니다.”
“저희야 기쁜 일이지요.”
멕시코 부왕들은 고위 귀족이라 교육을 확실히 받아서 그런지 필리핀 총독들보다 훨씬 똑똑했다. 부왕은 이민호가 쓸 만한 선원이라면 전직이 해적이라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봤다. 그리고 서인도제도에 개별적으로 이주한 프랑스 사람들이 이번 일로 인해 고산국에 호의적인 감정을 조성하게 되리라는 것도 예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민호 입장에서는 거래 상대방인 이웃이 똑똑해서 좋을 일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최소한 답답하지는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욕심만 많은 멍청이 지도자는 정말 최악이었다.
시청에서 나온 이민호는 프랑스 해적 조력자 200여 명이 훌쩍이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남편이나 아버지, 혹은 아들이 이국땅에서 죽게 생겼는데 웃고 있을 리가 없었다.
“여기 스페인어 하는 사람 있나?”
“제가 좀 합니다, 나리.”
몇 안 되는 노인 중에서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얼굴이 쭈글쭈글한데 베레모를 쓰고 있었고, 검은 조끼 안에 흰 셔츠를 받쳐 입었다.
그런데 스페인어 통역을 맡은 장교는 이민호에게 국왕폐하가 아닌 나리라고 일부러 정확하게 통역했다. 이럴 때는 이민호의 체면보다는 상대방이 이민호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이다. 유능한 장교라고 이민호가 그 장교 얼굴을 기억해두었다.
“바스크인가?”
“바스크는 아닙니다. 아키텐, 그러니까 남프랑스 피레네 산맥 바로 북쪽에 살고 있었습니다. 위그노 농부였습니다.”
“혹시 보르도와 가깝다면 와인 양조를 했나?”
“그, 그렇습니다. 차콜리를 만들었습니다.”
툴루즈나 보르도 지방에서 포도 농사를 많이 지었고, 로마시대에 바스크 지방에서 와인을 양조했다는 기록도 있었다. 차콜리는 바스크 전통 화이트 와인이었지만 이민호가 알 턱이 없었다.
“뭔지 몰라도 만들 수 있다니 좋다. 어쨌든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곧 전쟁을 끝낼 것 같으니 해적들은 당분간 포로로 잡아두기로 했다. 아마도 2, 3년 안에 석방될 것이다.”
“오오! 주여! 감사합니다.”
“기도하지 마!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도 말고 다시 배에 탈 때까지 기다려.”
“저희들을 끌고 가시렵니까? 저희들은 아들이 석방될 때까지 여기서 10년이라도 기다려야 합니다.”
노인이 저항할 것은 이민호도 예상했다. 사실 이들을 데려갈 권한이 이민호에게 없었지만, 해적 조력자들이 겁에 질려있으니 이들에 대한 처분 권한을 갖고있는 척했다.
“너희들이 베라크루스에 있는 동안 멕시코 부왕이 보호해줄 수 없어서 너희들의 보호를 내게 요청했다. 일종의 추방령이니 너희들은 내 명령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자식이 잡혀있는데 저희들만 떠날 수는 없습니다.”
“시민들의 폭행에 노출돼 어린아이들의 생명을 위험에 노출시켜도 좋단 말인가? 멕시코 부왕의 명령도 있으니 어찌 됐든 너희들은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대신 2, 3년 정도 플로리다에서 살고 있으면 멕시코 부왕이 석방된 아들을 플로리다로 보내주기로 했다.”
“그 기간 동안 저희들을 노예로 부리실 작정이시군요. 어쩔 수 없지만 따르겠습니다. 플로리다라면 혹시 카로리네 요새입니까?”
“아니. 산 아구스틴이다.”
이민호가 마차를 타고, 해적과 달리 처음부터 묶이지 않은 조력자들은 울면서 마차를 따랐다. 기병이 가끔 채찍을 길바닥에 휘둘러 큰 소리를 내면서 공포 분위기를 돋웠다. 베라크루스 시민들이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봤지만 이미 고산국 국왕의 노예가 된 것으로 보이는 자들에게 해코지할 수는 없었다.
플로리다는 16세기 중반에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서로 차지하려고 수십 년 동안 치열하게 싸운 곳이었다. 현재의 잭슨빌에는 1564년 초기 프랑스의 위그노 정착지인 카로리네 요새가 세워졌지만 몇 차례 에스파냐에 점령당해 불태워졌다. 그 남쪽 산 아구스틴도 1586년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이끄는 영국 해적에게 약탈당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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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회에 플로리다에 도착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