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9 48. 북미 개척 =========================================================================
“국왕폐하 만세!”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우리를 지켜주기 위해 오셨다!”
이민호는 뉴펀들랜드 섬에 유럽 어선들이 있을 줄은 이미 예상했다. 1578년에는 뉴펀들랜드 주변 어장에서 유럽 어선 350척이 조업을 하기도 했다. 이들 중 영국인이나 프랑스인 일부가 뉴펀들랜드에 정착할 것을 우려해 이민호가 직접 확인하러 왔다.
그런데 에스파냐 사람들이 뉴펀들랜드에 대규모로 있을 줄은 전혀 몰랐기에 몹시 당황했다. 항구에는 다른 나라 어선들도 많이 정박했으나, 대다수는 에스파냐의 포경선이었다.
“전하! 복장은 저래도 스페인어를 씁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입니다!”
“에스파냐는 훨씬 남쪽에 있지 않나?”
“이곳 위도가 프랑스 중심부 정도에 해당합니다. 잉글랜드에서 오나 에스파냐에서 오나 거의 마찬가지 거리입니다.”
“그런데 여긴 왜 이리 추워?”
대륙 동부에 있어서 뉴펀들랜드 섬도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섬 전체 숲에 하얀 눈이 내려앉아서 더욱 춥게 느껴졌다. 그러나 현대 서울보다는 따뜻한 편이었다.
이민호는 가죽장화로 갈아 신고 거위 가슴 깃털 외투를 입은 다음 상륙할 준비를 갖췄다. 에스파냐 어부들이 저렇게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며 환영하는데 상륙해서 따뜻한 말 한 마디라도 해줘야 했다.
현대 대한민국보다 넓은 11만 평방킬로미터나 되는 거대한 뉴펀들랜드 섬의 남동부에는 아발론 반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함대가 도착한 선착장은 아발론 반도 서쪽에 플라센티아라는 이름의 항구였다.
바스크 족 어민들이 16세기 초, 1500년 경부터 조업을 하면서 이곳 플라센티아를 어업기지로 활용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고래 떼를 쫓아 대서양을 건넌 것이 1372년부터 시작됐다고 하는 설이 사실이라면 콜럼부스의 신대륙 발견보다 빠른 연대였다. 어쨌든 바스크 어민들은 고래와 대구를 잡기 위해 오래 전부터 뉴펀들랜드와 아이슬란드까지 들락거렸다.
에스파냐 포경선이 뉴펀들랜드에서 조업을 시작한 것은 16세기 중반이었다. 포경선들은 벌써 50년째 고래잡이, 또는 바다표범 사냥을 하고 있었다. 주로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해 고래사냥을 했는데 에스파냐 포경선들은 등불에 쓸 기름을 채취하고 나머지 고기 대부분은 버렸다. 고래 고기를 시장에 팔거나 화장품, 밀랍 원료로 사용한 것은 나중 일이었다.
대충 만든 선착장에 함선들이 차례로 접안했다. 어선들은 파도가 강하면 만 안쪽에 배를 대지만 고산국 함대의 배수량이 커서 이 정도는 끄떡없었다.
에스파냐 어부들이 내지르는 만세를 배경음으로 국왕좌승함에서 이민호가 내렸다. 호위들이 둘러싼 이민호를 에스파냐 사람들이 활짝 웃으며 마을 공회당으로 안내하려 했다. 그러나 퀴퀴한 가죽 썩는 냄새를 떠올린 이민호는 선착장에 남아서 대화하기로 했다.
“여길 바로 떠나야 할지도 모르네. 정해진 시간 내에 다른 지역도 돌아봐야 해서 말일세. 듣자 하니 여기서 북극고래와 흰고래를 잡는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지난 50년 동안 너무 많이 잡았는지 요즘 들어서는 고래를 구경하기도 힘듭니다. 고래잡이를 마칠 때가 다가왔는데 아직 한 마리도 못 잡은 포경선이 있을 정도입니다.”
오두막 바깥에 햇볕에 말리기 위해 비버와 수달 모피가 잔뜩 널려져 있었다. 지금은 포경보다는 원주민들과의 모피 교역으로 중심이 옮아가는 추세였다. 포경업을 금지시켜 고래를 보호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런데 어선은 에스파냐 국적 말고도 많았다. 어족 자원 보호를 이유로 유럽 어선의 조업을 금지시킬까, 아니면 적당히 세금을 받고 조업을 허용할까 고민했다. 사실 여러 나라 어선들이 자유롭게 조업하던 곳에 뒤늦게 나타나서 돈 내놔라고 하는 것도 꼴불견이라서 이민호는 주저하게 됐다.
“적당히 잡아야지. 욕심을 부리다간 다 같이 망해.”
“그렇지 않아도 포경업이 앞으로 몇 년 못 갈 겁니다. 나라에서 포경선을 자꾸 군함으로 징발해서 조만간 우리도 에스파냐 해군으로 입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해군도 나쁘지 않아. 특히 서인도제도는 해수욕하기 좋지. 너무 더워서 원주민 아가씨들이 상의를 안 입더군.”
“우와!”
에스파냐 포경선들이 뉴펀들랜드에서 사라진다 해도 고래의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조만간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포경선 수백 척을 띄우기 때문이다. 17세기 네덜란드는 매년 포경선 300척, 선원 18,000명을 바다에 내보냈다. 등불 연료 또는 윤활유로 사용하는 고래 기름 시장은 나중에 석유가 등장하면서 붕괴된다.
“폐하! 몇 달 동안 생선과 고래 고기만 먹었습니다. 부디 먹을 것을 나눠주십시오. 아! 모피를 넘겨드릴 테니 그 가격만큼만 곡식을 팔아주십시오.”
“좋아. 우방국의 어민들이니까 적당히 교역을 허락하겠네. 그리고 내가 술을 좀 내주겠네.”
“우와! 국왕폐하 만세!”
“어허! 난 자네들의 국왕이 아니야.”
쌀도 잘 먹는 에스파냐 사람들이라 쌀과 밀가루를 넘기고 수달과 비버 모피를 받아들였다. 비버 모피 몇 장을 엮어 담요를 만들었는데, 프랑스에서 비버 모피로 모자를 대량 만들 예정이므로 앞으로 비버 담요는 못 보게 될 것이다.
고산국에서 만든 럼주는 선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보통 럼은 사탕수수 부산물인 당밀로 만든 싸구려 취급을 받지만 고산국에서 제조한 럼은 조금 달랐다. 현재 사탕수수가 너무 많이 남아돌아서 사탕수수 즙을 직접 발효시킨 카샤사와 당밀을 증류한 럼을 섞고 적당히 숙성시킨 술이었다. 이것도 알콜도수가 높아 북미 원주민들이 몇 잔 마시고 뻗을 정도였다.
이민호는 술에 정신이 팔린 에스파냐 어부들을 내버려두고 배로 돌아왔다. 에스파냐와 벌써 몇 년째 우방관계를 지속해서 그런지 유럽에서 왕따 취급을 받는 에스파냐 백성들이 고산국을 꽤나 좋아했다.
“마침 에스파냐 사람들이 다수라서 다행이야. 다른 나라 어부들이 더 많았다면 영토 문제가 생길 뻔했어. 곡식을 가격보다 좀 많이 챙겨줘.”
에스파냐 사람들은 북미 대륙 전체가 고산국에 팔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뉴펀들랜드에 대한 영토적 야욕을 부릴 일은 없었다.
문제는 북극고래와 흰고래가 거의 멸종하고 포경선들이 해군에 징발되면서 1600년대 초반에 에스파냐 포경선들이 뉴펀들랜드 섬에서 대부분 철수한다는 것이었다. 이곳을 지켜줄 사람이 없게 된다는 뜻이었다.
이민호는 포경업이 사라져서 에스파냐 사람들이 본토로 물러나기 전에 이곳을 확고한 고산국 영토로 다져놔야겠다고 다짐했다. 프랑스와 영국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남의 영토에서 싸우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국왕좌승함에 다른 손님이 찾아왔다. 아일랜드 어선의 선장이라는데 빨간 머리 남자를 보게 돼서 신기했다. 갈라티아 출신인 파티마의 오빠라고 우겨도 통할 것처럼 비슷하게 생겼다.
“소문으로만 듣던 위대한 고산국 국왕폐하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 작은 배를 타고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하군. 바다에서 뭘 잡나?”
“청어와 대구입니다. 저는 폐하께 청원을 하러 왔습니다.”
“뭔지 모르겠지만 해보게.”
1358년 네덜란드 어부 빌렘 벤켈소어가 청어의 내장을 한 칼에 따는 칼과 기술을 개발하고 통에 소금 절임을 했다. 이후 북해 청어 잡이와 염장 청어로 네덜란드가 돈방석에 앉았다. 네덜란드가 독일 자유 상업 도시들의 연맹인 한자 동맹을 앞서는 기반이 된 어종이 청어였다.
1620년에는 네덜란드의 어선 2천 척 대부분이 청어 잡이 어선이었다고 한다. 겨울이 긴 유럽에서 청어와 대구는 중요한 식품이었다.
“폐하! 아일랜드를 잉글랜드의 압제로부터 구해주십시오.”
“흐음.”
의외로 일찍 그런 제안을 받아 이민호는 잠시 당황했다. 만약 고산국이 영국 본토를 공격하게 된다면 반영 감정이 있는 아일랜드를 교두보로 삼을 예정이었으나, 지금은 고산국이 영국을 공격할 어떠한 이유도 없었다.
아일랜드는 12세기부터 잉글랜드로부터 꾸준하게 침략을 받다가 16세기 중반 헨리 8세 시기에 잉글랜드에 완전히 정복됐다. 영국 성공회가 기존 가톨릭과 교리상 별 차이가 없는데도 가톨릭교도인 아일랜드 인들을 종교적인 이유로 탄압하기도 했다.
아일랜드 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20세기 후반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흑인 노예와 비슷한 차별을 당했다. 실제로 아일랜드인의 멸칭이 하얀 흑인이었다.
“듣기로 영국의 지배를 반기는 아일랜드인 지주들도 있다면서? 아일랜드를 해방시켜 준다 해도 모두가 반기지 않을 걸세.”
“그들은 반역자들입니다. 하오면 아일랜드인의 이주라도 받아들여주십시오. 혹시 고산국은 황인 우월주의 국가입니까?”
“그건 아니야. 유럽 학자들 다수를 초빙해서 왕립대학교 교수로 임명할 정도니까.”
고산국 백성들 중에 은근히 인종주의적 사고를 가진 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북미 개발을 위해 유럽에서 이주민을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관리들이 많았다.
이민호는 고산국의 주요 민족 구성원인 조선 출신 백성들에게 많은 특권을 주는 편이었다. 이민호부터가 조선인, 또는 한국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했다. 하지만 그 적은 백성들만으로는 북미 대륙을 경영하기는커녕 지키기도 어려웠다. 고산국에 충성할 만한 이주민들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았다.
“아일랜드인은 가난해서 유럽이나 고산국이나 어딜 가든 차별받는 것은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고산국은 다른 종교에 관대하다고 들었습니다. 오히려 가톨릭교회와 예수회 선교단을 지원해준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부디 아일랜드 사람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종교 난민이라. 그럼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을 해봐야겠군.”
“고맙습니다, 폐하!”
문제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받아들였을 경우 이들이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독립전쟁 등에서 반영적인 색채가 뚜렷했지만 분리주의적 성향은 그다지 강하지 않았다. 남북전쟁 때는 연방정부 중심주의인 북군의 주요 지지자들이기도 했다. 이에 반해 남군은 주 중심주의에 잉글랜드 출신이 많아 친영적인 색채가 강했다.
“그런데 북미에 어떻게 오려고 하나?”
“바로 그게 문제입니다. 아일랜드에서 북미까지 올 만한 대형 어선은 적은 편이며 대부분 잉글랜드 선주 소유입니다. 이주민들을 모집한 다음 큰 배를 임대해서 대서양을 건널까 합니다.”
“어휴! 지저분한 잉글랜드 배에 타면 병으로 죽고 굶어죽고 아주 난리가 아닐 거야. 대서양을 건너는 동안 절반도 살아남기 어려워. 그리고 배 삯 낼 능력이라도 있어?”
“다들 가난하지만 어떻게든 마련해보겠습니다.”
“거의 불가능할 텐데?”
이민호는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북미에 도착한 다음 배 삯을 대신 내주는 농장주 밑에서 일정 기간 동안 노동을 하는 역사적 방식을 떠올렸다. 그 농장주 역할을 고산국이 떠맡을 수도 있었다.
“그럼 고산국에서 아일랜드로 일정 기간마다 배를 보내주겠다.”
“가, 감사합니다.”
그러나 선장의 표정에서 여러 가지 걱정거리를 읽었다. 이 시대에 항해기간 동안 먹을 음식은 승객이 준비해야 했다. 돈을 받고 팔 수도 있겠지만 다들 하도 가난해서 아일랜드 이주민에게서 돈을 받을 생각은 아예 포기해야 했다.
“배 삯은 고산국 정부에서 대신 내주겠다. 항해기간 동안 음식도 제공하지. 대신 북미에 도착한 다음 고산국 정부에서 지정하는 농장이나 배, 또는 다른 일터에서 2년 동안 일해야 한다.”
“배 삯 대신에 2년 간 무임금 노예 노동이겠군요. 감수하겠습니다.”
“임금은 5인 가족이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은 될 것이다. 그 후에 자유로이 직업에 종사하거나, 농민이 되겠다면 개간된 농지와 농기구를 주겠다. 고산국 농민과 동일하게 대우를 해주는 대신 수확량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할 것이다.”
“폐하! 흑흑~”
아일랜드 선장이 감격해서 울부짖었다. 이민호도 우연히 뉴펀들랜드 섬에 왔다가 아일랜드 선장을 만나서 이주민 문제 해결의 물꼬를 틀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북미로 이주할 만한 사람들은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독일 땅에 산재한 무수히 많은 제후국들 정도를 들 수 있었다. 17세기에 접어든 다음 농업 생산성이 뚝 떨어진 이후에는 프랑스도 가능했다. 동유럽 사람들도 힘겹게 살았지만 발트 해나 흑해로 고산국 배가 직접 들어가기 전에는 이주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국왕폐하! 아일랜드 촌놈들을 고산국 북미 이주민으로 받아들이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고산국 백성이 된다면 그건 특권입니다!”
아일랜드 어선 선장이 몇 번이나 절을 하고 좌승함에서 나간 다음 에스파냐 포경선 선장 몇 명이 몰려왔다. 에스파냐 선장들이 무엇 때문에 흥분했는지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민호를 마치 자기네 나라 국왕처럼 여겼다.
“에스파냐는 우방국이라서 안 돼. 이주민을 안 받을 거야.”
“에스파냐 국왕은 항상 전쟁 일으킬 생각만 하는 전쟁광입니다. 국왕과 귀족들의 전쟁 놀음에 병사로 끌려가 개죽음당할 수는 없습니다.”
“너희들은 멕시코나 남미에 개척단으로 가면 징병도 피하고 얼마든지 땅을 얻을 수 있잖아?”
“그래봤자 이익은 귀족이나 신부들이 독차지합니다.”
귀족과 신부는 이 시대 에스파냐의 특권층이었다. 귀족이 적당한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직업으로는 불가능해서 뭔가 다른 경제적 특권을 가져야 했다.
그리고 신부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청빈하더라도, 선교 사업이란 게 보통 막대한 자금이 드는 사업이 아니었다. 결국 신부들도 교회를 유지하기 위해 경제적인 특권을 요구했고, 국왕이나 부왕들이 적당한 이권을 떼어줘야 했다. 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서민들만 손해를 봤다.
“우방이라 어쩔 수 없어. 나라를 좋게 만드는 것은 국왕과 정치가들만의 일은 아니야. 백성들이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잖아?”
“광신도 국왕은 결코 백성들의 말을 들어먹지 않습니다.”
펠리페 2세가 네덜란드 북부에서 신교도들을 마구 때려잡는 바람에 가톨릭 신앙을 유지하던 남부에서도 독립전쟁에 참가할 정도였다. 에스파냐 국왕의 정치적 이상은 최소한 유럽, 장기적으로 세계 전체를 가톨릭 신앙 아래에 두는 것이었다.
에스파냐 백성들이 국왕의 이상에 100퍼센트 동의한다고 볼 수 없었다. 이민호도 FSM교의 독실한 신자로서 에스파냐 국왕의 이념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오늘 저녁은 오랜만에 스파게티를 먹겠다고 주방에 지시했다.
============================ 작품 후기 ============================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이민의 물꼬가 트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