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62화 (411/1,000)

00462  48. 북미 개척  =========================================================================

포우하탄 부족원 전체에 대한 예방 접종을 실시했다. 독을 주사하는 것으로 의심할 만도 한데 원주민들은 이미 고산국 백성이 됐다고 생각했는지 순순히 팔을 걷어 주사를 맞았다. 이민호는 포우하탄 부족민들의 태도에 약간 감동했다.

이 지역에 유럽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여러 번 유행했으나 아직 천연두가 유행한 적은 없는 것으로 확인돼서 이민호는 깜짝 놀랐다. 천연두 예방접종을 어린이들에게만 하려던 계획을 바꿔 어른들에게도 예방주사를 놨다.

거의 마지막까지 주사를 안 맞고 버티던 와훈수나콕 대추장이 간호사가 내미는 주사바늘 끝을 보고 놀라서 도망갔다. 호위 전사들이 몰려가 대추장을 끌고 와서 기어코 주사를 맞히고 말았다.

“풋! 겁쟁이.”

“비웃지 마라, 국왕! 아프다.”

“대추장도 애들처럼 사탕이나 하나 먹어라.”

“쳇! 쳇!”

그러면서 와훈수나콕은 결국 사탕을 까서 먹었다. 사탕에 비닐 포장을 못해서 종이에 눌어붙었지만 상관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새강릉을 떠나기 전에 어업연구소 북미 동부 분소를 방문했다. 넓은 체서피크 만에서 게가 무지막지하게 많이 잡혀서 새강릉에 사는 사람들은 물론 원주민들도 질리도록 뜯을 수 있었다. 꽃게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발에 하늘색이 섞여 있어 청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익히면 꽃게처럼 등껍데기가 빨개졌다.

어업연구소는 체서피크 만 몇 곳에 잠수부들을 내려 보내 조사한 다음 청게 10억 마리 이상이 서식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청게의 수명이 2, 3년 정도 되므로 어업연구소는 매년 1억 마리 이상을 잡아도 기후 변화로 인한 감소보다 개체수에 대한 영향이 적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그렇게 잡을 경우 먹을 입이 부족했다.

“굴 양식을 하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전하. 조선이나 고산국 굴보다 느리게 자라지만 맛은 더 좋은 편입니다. 포우하탄 강 하구에서 종패를 채취해서 만에서 대량으로 키울까 합니다.”

“항로에서 벗어난 곳에 양식장을 만드시오. 혹시 가두리 양식장은 필요 없소?”

“바다에 고기가 너무 많아서 따로 물고기 양식장을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이 지역 어업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물고기가 한꺼번에 너무 많이 잡혀서 그물이 찢겨나가는 것입니다.”

“대단하군요.”

새강릉 일대는 풍요로운 곳이었다. 사실 이 시대는 북미 대륙 전체가 땅과 바다를 가리지 않고 풍요로웠다. 그 동안 옥수수와 담배농사만 짓고 채취와 사냥에 식량 절반 이상을 의존하던 포우하탄 원주민들은 고산국 덕택에 정말 복 터졌다고 할 수 있었다.

포우하탄 원주민 전사들이 비만으로 인해 고통 받는 신기한 경험을 할 무렵 이민호가 말 몇 마리를 부족민들에게 내줬다. 수는 100여 마리로 적었으나 전사들이 교대로 훈련할 만한 숫자로는 충분했다. 새인천에서 말을 키우고 있으니 조만간 전사 숫자대로 말을 갖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민호로부터 다른 부족을 정복하거나 영토를 확장하지 말라는 엄명을 받았으나 포우하탄 원주민들이 약속을 지킬지 알 수 없었다. 이 지역은 숲이 많아서 기마전투가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령용이나 승마용, 마차용, 사역용으로 다양하게 쓸 만했다.

새강릉에서 여러 가지 많은 일을 지시하고, 지난번에 해적을 털고 남는 은 대부분을 이곳 국영은행 지점에 예치했다. 새강릉에서 쓰라고 남겨둔 것인데 앞으로 더 불어날지 줄어들지는 알 수 없었다.

이민호는 다시 포우하탄 원주민 지도자들을 만나서 주변 부족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라고 당부한 다음 새동래로 향했다. 새동래에는 잠깐 들렀다가 미시시피 강 하구를 살펴보고 텍사스로 향할 예정이었다. 유럽인들이 몰려와서 자기 나라 영토라고 주장할까봐 북미 동해안을 먼저 개척하고 있었으나, 추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살기에는 미시시피 강 유역이나 텍사스가 훨씬 나았다.

수송선들과 순양함 여섯 척을 새강릉에 남기기로 해서 함대는 여섯 척으로 줄어들었다. 새강릉이 지어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본 수병과 해병들 중에서 북미 이주 희망자가 늘어났지만 그들은 고산국 본토에서 정식으로 이주를 신청해야 했다.

하루 만에 함대가 새동래에 도착했다. 풍랑을 만나 돛대가 부러진 에스파냐 상선 한 척이 요새 앞 항구에 입항해서 수리하고 있었다. 이민호가 구경하러 갔다가 에스파냐 선장을 만났다.

“동맹국인 고산국의 국왕폐하께 인사 올립니다. 프랑스 해적들을 일망타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소, 선장.”

“이렇게 좋은 목재와 못을 내주시고 인력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해적이 없어서 심심한 곳이니 종종 이용하시오. 풍랑을 자주 만나라는 뜻은 아니오. 하하!”

플로리다 동쪽 바하마 군도에 얼마 전까지 해적이 들끓었다는데 지금은 싹 사라졌다고 한다. 고산국 해군이 활동하는 곳에서는 해적이 다 도망갔다.

고산국 해군에 대해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해적뿐만 아니라 에스파냐 사람들도 두려워할 정도였다. 초기에 파나마 운하를 넘어가 활동했던 전선들의 활약이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신기하게 플로리다 원주민들이 조용하군요. 저희 에스파냐가 지배할 때는 요새로 쳐들어온 경우가 많았습니다. 요새에서 탐험대가 나가기만 해도 원주민들이 싸움을 붙여왔습니다.”

“우리는 오자마자 주변 원주민들에게 술과 선물부터 돌리고, 그 다음에 교역을 했소.”

아열대 지역인 플로리다 원주민들에게 받을 것이라곤 옥수수와 담뱃잎밖에 없었다. 그러나 모든 고산국 정착지에서는 원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철제 무기와 농기구를 내주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리고 플로리다에 습지대가 많은 것을 파악하고 밀보다는 보리와 쌀 종자를 내주고 재배법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개척 초기에 원주민에게 옥수수와 담배 재배법을 배우던 영국 개척민들이나, 무작정 윽박지르던 에스파냐보다는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원주민들과 교섭을 할 수 있었다. 요새 자체가 원주민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면 원주민들이 공격할 필요가 없었다.

“이 넓고 비옥한 땅에 무엇을 재배하시겠습니까? 물론 곡물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이 지역에서 앞으로 사탕수수와 포도를 생산할까 고민 중이오.”

“와인용 포도라면 에스파냐나 이탈리아도 괜찮지만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나르본 산이 품질이 가장 좋습니다. 그런데 너무 비쌉니다. 요즘은 남프랑스 아키텐의 보르도 쪽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른 품종의 포도주를 첨가할 것을 감안해 여러 종류를 함께 키우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와인에 대해 많이 아시는 모양이구려.”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마시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적포도주는 보통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 그리고 카베르네 프랑에 쁘띠 베르도와 말벡, 까르메네르를 첨가해서 만듭니다. 백포도주는......”

선장의 입에서 모르는 말이 마구 터져 나왔지만 이해는 못하고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선장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포도 묘목을 몇 가지 구해주오시오. 선불로 은 1만 냥, 후불로 2만 냥을 줄 테니 되도록 큰 묘목으로 열 그루씩 운반해주시오.”

“헉! 갈레온 값의 몇 배나 되는 큰돈입니다. 종류는 어떻게 할까요?”

“선장이 플로리다 전 지역에 포도농원을 만든다 생각하고 포도 종류를 정하시오. 프랑스 농민에게서 묘목을 사서 가져온다면 은을 가질 자격이 있소.”

은 3만 냥이라면 1톤이 넘는 양이었다. 선장에게 일생일대의 기회는 아니더라도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금액인 것은 틀림없었다.

“포도는 품종에 따라 알맞은 토양과 기후가 있습니다. 아예 남프랑스의 포도 농가들을 이곳에 이주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여기에도 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더 데려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이오.”

“30년을 넘게 끌던 프랑스 내전이 곧 끝나면서 조만간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가 주어질 모양입니다. 그러나 개신교도들이 안심할 수는 없겠지요. 불안감을 이용해서 유인해보겠습니다.”

위그노 전쟁이 30년 넘어 지속된 전쟁은 아니었지만 프랑스 전체를 뒤흔든 대사건의 연속이었다.

“유인하더라도 강제로 납치는 하지 마시오. 농담이오.”

“하하! 설마요. 저는 가톨릭이지만 상인이라서 직업소명설을 지지합니다. 위그노들과 충분히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원들이나 특히 귀족에게는 말씀하지 말아주십시오. 하하!”

상선이 여기 오기 전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잔뜩 싣고 서인도제도나 남미에서 팔았겠지만 이민호는 농담처럼 지나갔다. 선장도 눈치를 보는 듯했다. 노예무역이 비록 합법이라지만 이 시대에도 좋은 소리는 절대 못 들었다.

부러진 돛대를 교체하고 천을 얻어 돛을 꿰맨 다음 에스파냐 상선이 떠나갔다. 은 1만 냥을 상자에 나눠 싣는 동안 선원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켜서 혹시 선상반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해적 협력자인 노인에게는 포도 농원으로 쓸 만한 땅을 지정하도록 했다. 중장비를 동원해 언덕의 숲을 갈아엎고 있는데 원주민들이 무장하고 나타났다. 그 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땅을 대규모로 개간할 때는 이렇게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았다. 오히려 밀차가 내는 굉음에 놀라 겁에 질려 달아나고 말았다. 잠시 긴장하고 있던 민영이 총구를 내렸다.

“새강릉 주변에 사는 원주민들보다 호전적이네요.”

“우리는 그들에게 신뢰를 줬으니까. 이쪽은 아직 못 줬다는 차이가 있어.”

포우하탄은 이미 고산국 백성이었지만, 이곳 원주민들과는 동거인일 뿐이었다. 원래 역사에서 플로리다 원주민들 대부분은 에스파냐 사람들을 따라 쿠바로 이주하거나, 북쪽에서 내려온 다른 지역 원주민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가 소멸할 운명이었다.

새동래에서 섣불리 원주민에게 접근하지 못하는 것은, 원주민 부족들이 통합되지 못하고 중구난방이었기 때문이었다. 멀쩡하게 교역하러 왔다가 갑자기 무기를 들고 요새 수비대에 기습 공격을 가한 경우도 있었다. 정치적 통일성을 이미 갖춘 포우하탄 같은 경우가 교섭하기에도 편했다. 물론 전쟁하기에는 분산된 부족이 상대하기 훨씬 쉬웠다.

“여진족 기병 500명만 풀어도 원주민들을 다 쓸어버릴 수 있어요. 그 전에도 기병의 위압감 때문에 원주민들이 감히 저항하지 못할 거여요.”

“나는 저들이 포우하탄처럼 스스로 선택하기를 원하는 거야. 좀 더 기다려야겠지.”

그리고 플로리다나 새강릉에 여진 기병을 배치할 계획은 없었다. 숲에 기병을 풀어놓아봤자 전투 효율이 낮기 때문이다.

“그럼 여진 기병 나머지 5천은 어디에 배치하실 건가요?”

“여기 북미 지도를 봐. 북미 남부 텍사스에서도 남동부에 평원이 넓어. 그리고 북쪽에 호수 몇 개 있지? 이곳 남쪽과 서쪽이 대평원이야. 두 곳에 절반씩 배치하려고.”

북미 지도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해안선만 자세하고 내륙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북미 동부 해안선 안쪽에 길게 이어져 있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는 시기였다.

1534년 프랑스 탐험가 자크 카르티에가 세인트로렌스 만과 세인트로렌스 강을 탐사하긴 했지만 거대한 다섯 호수가 있다는 이야기를 북미 원주민들에게 듣고 대충 지도에 그려놨을 뿐이었다. 오대호 남쪽과 서쪽에 대평원이 있다는 사실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민호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리학적 관점에서는 중앙평원을 나눠 대평원과 중앙초원 등으로 구별됐다. 고원지대인 대평원은 캐나다부터 멕시코 국경까지 이어진다. 중앙초원이라고도 하는 프레리는 그 동쪽 미시시피 강 유역과 거의 겹쳐다.

“무슨 들판이 남북으로 2천km가 넘어요? 5천 리? 와아!”

“말 타고 달리고 싶지? 부럽지?”

“안 부러워요. 흥!”

오대호 주변 평원은 몽골고원처럼 황무지나 사막도 아니고 만주처럼 추워서 경작하기 어려운 곳도 아니었다. 나중에 개간이 끝나면 끝없이 밭이 이어질 곳이었다. 농약을 비행기에서 뿌리지 않으면 답이 안 나오는 지역이었다.

장기적으로 유럽 이주민들을 받아서 배치할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유럽의 빈농이나 도시 빈민들이 이곳에 와서 넓은 땅을 경작하며 행복에 겹겠지만 겨울에는 좀 추웠다.

좀 더 따뜻하고 농업생산성도 높은 곳은 북미 남북을 길게 가르는 미시시피 강 유역이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프랑스는 미시시피 강 유역을 따라 남쪽 멕시코 만까지 루이지애나를 개척한다. 미시시피 강의 지류이며 북미에서 가장 긴 미주리 강은 로키 산맥까지 연결돼 이곳도 농지로 개간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주인님은 고산국 농민은 비옥한 북미 동해안이나 미시시피 강 유역, 따뜻한 텍사스 남동부에 정착시키고, 유럽 농민들은 건조한 초원이나 추운 북쪽 땅에 내몰겠다는 말씀이시죠?”

“아니, 뭐. 땅 좀 넓혀주면 되겠지.”

이민호가 어버버 하면서 변명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고산국 출신과 유럽 출신자 간에 경제력 격차가 못해도 열 배는 날 것 같았다. 소득 격차가 지역 또는 인종 간에 발생하면 반드시 내부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계획을 이대로 진행한다면 유럽 이민자들이 내란을 일으키거나 독립운동을 하더라도 변명하기 어려웠다.

============================ 작품 후기 ============================

내용이 불어나서 텍사스에는 다음 회에 갑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