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468화 (417/1,000)

00468  49. 1598년  =========================================================================

49. 1598년

명나라 황제에게서 온 칙서 몇 장, 조선 국왕에게서 온 국서 몇 장을 대충 훑어보았다. 명나라에서 군대를 요청하자 계복이 절강성과 강소성에 직접 파견돼 반란을 진압하고 돌아왔다. 고산국 군대에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반란군들이 절망적으로 총구 앞으로 돌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민호는 몹시 가슴이 아팠다.

조선 국왕이 보낸 국서는 건주 여진의 불온한 움직임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었다. 건주 여진이 곧 망할 것 같아 누르하치가 자칫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걱정이 많았다. 이민호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이유가 없다고 답서를 보내 광해군을 안심시켰다. 고산국이 조선을 공격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피곤하지만 괜한 걱정을 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가끔은 안심시켜 줘야 했다.

새해 첫날 느지막한 오전에 백성들이 궁성으로 몰려들었다. 양력 1월 1일은 설날이 아니기에 따로 공식적인 행사 계획이 없었으나, 혹시나 하고 왕도의 백성들이 나와 본 것이었다.

이민호는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그 동안 왕궁 앞에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백성들에게 과자나 간식을 나눠줬던 내명부는 생각이 달랐다. 뭔가 구경꺼리나 군것질거리를 찾아서 몰려든 백성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백성들도 왕궁 앞 광장에 늘어선 가판대에서 잔돈푼 주고 사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자튀김이나 솜사탕, 붕어빵과 쥐포만으로는 백성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못했다. 왕성에서 매번 해온 대로 뭔가 새로운 먹을거리가 필요했다.

그 동안 왕궁에서 새로운 간식을 무료로 나눠주고 조리법을 공개하면 백성들이 직접 해먹거나 음식점 주인, 또는 가판대 노점상들이 만들어서 팔았다. 그래서 고산국에서는 왕궁 요리사들마저 혁신적이어야 했다.

“생선전 맛이 좀 다르네? 이것도 뭐 괜찮군.”

“올리브유로 튀겼습니다, 전하. 그리고 달걀을 묻히지 않았으니 생선전이 아니라 생선튀김입니다.”

백성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간식을 가득 실은 수레를 밀고 가던 요리사가 대답했다. 이쑤시개로 생선튀김 조각을 입에 넣던 이민호는 잠시 이해할 수 없었다. 올리브유가 발화점이 낮아 불이 잘 붙는다는 것은 둘째 문제였다.

“응? 나라에서 올리브를 생산하나?”

“얼마 전부터 에스파냐에서 올리브유를 수입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하.”

“누가 그런 걸 생각했지? 그리고 생선전이 아니라 생선튀김이라면, 유럽 요리를 베낀 건가?”

“피렌체에서 온 왕궁 숙수가 직접 요리하고 있습니다, 전하.”

“피렌체라니, 플로렌스에서 온 요리사가 궁에서 일해?”

지난 11월에 파나마 운하를 넘어 고산국에 동양 요리를 배우러 온 이탈리아 요리사가 궁정 요리사로 취업했다고 한다. 마리오를 닮은 중년의 이탈리아 요리사는 고산국 요리를 배우면서 이탈리아 요리를 궁정 숙수들에게 가르쳤다.

생선튀김을 실은 수레를 보내고 그 다음 수레에 가득 쌓인 종이컵을 집어서 숙수에게 내밀었다. 주전자에서 뜨거운 것을 따라주는데 시커먼 색깔로 봐서 코코아 음료 같았다. 이민호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 설탕을 가득 넣은 초콜릿 음료였다. 이것이 고체 초콜릿으로 발전하고 헤이즐넛을 첨가하면 악마의 누텔라가 된다.

“너무 달다. 애들이 참 좋아하겠어.”

그 다음 수레에 여러 가지 색깔의 아이스크림이 대야에 담겨 있어서 이민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민호가 만든 빙과류보다 훨씬 맛이 좋았고, 이탈리아 숙수가 만들어서 그런지 한글로 젤라토라고 적혀 있었다. 16세기에 이탈리아에서 젤라토가 처음 만들어졌고 1590년대에 귀족들이 먹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간식거리가 수레에 실려 밖으로 나갔다. 궁정 요리사들도 이런 행사를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다.

“또 나가시게요?”

“구경만 하려고.”

이민호는 변장용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붙인 다음 수레 행렬을 따라 궁성 밖으로 나갔다. 늘씬한 민영이 따라다니면 다들 민영만 쳐다보느라 이민호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성문을 나온 이민호는 궁성 앞을 흐르는 사람들 물결 속에 자연스럽게 뒤섞였다. 물론 주변에는 평복으로 갈아입은 호위들이 따라다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신년을 하례 드립니다.”

다들 음력설을 쇤다고 해놓고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새해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 날은 휴일이었다. 이중과세는 당연히 낭비였으나 백성들이 논다고 아까워 할 사람은 여러 기업체의 고용주인 이민호밖에 없었다.

현재 고산국은 국가 차원에서 상업 자본과 산업 자본 육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운차와 건설 중장비 대여를 통해 경작지를 늘려 성장 중인 농업 자본 외에 다른 분야는 아직 성장 초기였다.

신라방 같은 어용 상단을 제외한 다른 무역상들은 영세한 규모였고 소규모 공산품 생산업체를 차린 사람들은 국영기업에서 퇴직한 늙은 장인 출신들밖에 없었다. 직조기를 시중에 판매한 이후 공장 시설을 갖추고 노동자 수십 명을 고용해 면직물을 짜는 공장이 서너 곳 들어선 정도였다.

유대인들이 운영하는 보석 가공업체도 점차 확장하는 추세였으나 버마와 시암에서 수입한 보석을 넘겨주지 않으면 일감 부족으로 금방 망할 수도 있었다. 요즘은 해남도에서 들여온 진주를 가공하는 일에 몰두했고 꽤나 세련된 장신구가 생산됐다.

의외로 해상운송업은 대폭 성장 중이었다. 무역과 달리 운송업은 가격 변동의 위험에 노출될 염려가 없어서 일단 배만 구입하면 수입은 안정적이었다. 다만 외국인 선원을 저임금에 고용하려는 해운사의 요청을 정부에서 단호히 금지해서 말이 많았다. 민간 해운사가 소유한 선박은 아직 범선과 외륜선에 그쳤다.

- 쿵짜작! 쿵짝!

북치고 장구 치면서 지나가는 광대를 어린 아이들이 환성을 지르며 뒤쫓았다. 광장에서 놀이패가 줄타기 곡예인 어름을 하는 중에 여자들 사이에서 비명과 감탄성이 오갔다.

백성들이 다들 즐거워해서 이민호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보니 다들 새해라고 새 옷을 입고 있었다. 수족관과 동물원, 그리고 그 옆에 세워진 놀이공원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람 구경하느라 두리번거리는데 민영이 갑자기 폴짝 뛰었다.

“꺄악! 어떡해!”

민영이 눌러 쓴 모자가 바람에 날려 차도 위를 향했다. 마침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남자가 공중에 날아가는 모자를 아주 자연스럽게 잡았다. 30대 유럽인 사내가 민영에게 다가와서 자전거를 멈췄다. 그리고 정중하게 무릎을 꿇은 다음 모자를 민영에게 바쳤는데, 마술처럼 모자가 어느새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민영이 어리둥절하면서도 모자는 민영의 것이 맞기에 받아들였다.

“시뇨리타!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이봐! 내 여자다. 결혼했거든?”

“실례했습니다, 시뇨라. 옆에 못 생긴 분은 부군이신가요? 내버려두고 저와 함께 아름다운 아리수 강변으로 산책을 가시면 어떤가요? 하하! 농담입니다.”

유럽인 사내는 이민호를 무시하고 민영에게만 말을 걸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허리에 찬 권총을 가리킨 순간 사내가 얼른 얼버무렸다. 주변에서 호위들이 다가오자 이민호를 귀족으로 알아봤는지 유럽인 사내가 무척 조심했다.

“시뇨라라니, 이탈리아 출신인가?”

“그렇습니다. 피사 출신입니다. 나이가 좀 들었지만 왕립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고산국은 외국 유학생을 특별히 대우하는 게 아니라 모든 학비가 무료더군요.”

이탈리아 남자는 고산국에 온 지 좀 됐는지 조선말을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쉬는 날에 아르바이트하는지 자전거 뒷자리 바구니에 음식점 철가방이 담겨 있었다. 배달용 철가방은 이민호가 도입한 현대 한국의 물건들 중에서 가장 실용적인 것이었다.

“일하는 중인가? 시간이 나면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마침 점심시간이야.”

“시뇨라와 함께라면 어디든 따라가겠습니다. 점심은 사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먹고 싶은 것을 사주겠네.”

“고산국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내준다 해도 외국인 유학생이 시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돈이 있더라도 신기한 고산국 물건을 사느라 다 써서 말입니다. 이렇게 쉬는 날에는 일을 해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줬더니 자넨 쓸데없이 일하는 건가? 시간이 아깝네.”

“잠시 후에 말씀하시지요. 일 끝날 시간이 됐으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니임~ 느끼한 남자하고 같이 있기 싫어요.”

민영이 거부했으나 이탈리아 남자들의 종족 특성이라 어쩔 수 없었다. 비쩍 마르고 날카롭게 생긴 사내가 작업용 멘트를 날리니 옆에서 구경하는 이민호에게도 역겨웠다. 그러나 이민호는 상대가 뭔가 아주 특이한 사람이라고 알아봤다.

일하는 식당이 가까운 곳에 있는지 사내는 금방 돌아왔다. 그리고 사내는 혜진이 운영하는 왕도에서 가장 고급 식당을 가리켰다.

“저긴 너무 비싼 곳인데?”

“귀족 같으신데 실망입니다.”

“할 수 없지.”

직원들이 이민호를 알아봤으나 옷차림을 보고 미행(微行)임을 눈치 채고 모른 척했다. 이민호는 별실도 아니고 연못이 딸린 후원의 별관 하나를 통째로 빌렸다.

“외국인 손님이 오셨으니 외국 음식보다는 동양적인 음식 위주로 내오게.”

“예. 전, 아니 손님.”

종업원들이 분분히 물러났다. 차림표를 보면서 잔뜩 기대하던 사내는 이민호가 일괄적으로 주문하자 몹시 실망했다. 그러나 식도락은 나중에 즐길 수 있었다.

“소개하지. 나는 고산국 국왕이라네. 자넨 평범한 대학생이 아닌 것 같군 그래.”

“처음 뵙겠습니다, 국왕전하. 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까지 피사에서 수학 교수로 일했습니다만, 지금은 대학생입니다.”

갈릴레오는 이민호의 정체를 눈치 챘는지 놀라지도 않았고, 오히려 이민호가 크게 놀랐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갈릴레오가 논문이나 책을 발표하지 않아 아직 유명세를 타지 않았기에 아는 척하면 곤란했다.

“자넬 뭐라고 불러야 하나? 시뇨르 갈릴레이? 아니면 친근감 있게 갈릴레오?”

“어이쿠! 친근감을 표시하는 유럽 다른 나라와 달리 이탈리아에서 앞 이름만 부르면 존중하는 의미입니다.”

“좋아. 그럼 갈릴레오라고 부르겠네. 교수였다니 존중 받을 만하지.”

“과분합니다만, 전하께서 학자를 존중하는 의미로 이해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호박죽 등 몇 가지 전채가 들어왔다. 아직 남유럽이나 서유럽에 코스 요리가 들어오기 전이라 갈릴레오는 어리둥절했다. 한 숟갈씩 떠서 맛만 보거나 마음에 드는 것만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어떻게 이 멀리 고산국까지 왔지? 피렌체에서 토스카나 대공이 후원해주지 않나?”

“메디치 가문의 대공들마다 성향이 달라서 페르디난도 1세는 건축가나 음악가들 같은 예술가 위주로 후원해줍니다. 저는 예술가가 아니라 학자이지 않습니까?”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메디치 가문의 후원을 받는 것은 코시모 2세가 대공인 때였다. 그러니 아직 갈릴레오에게는 후원자가 없었다.

갈릴레오는 그 전에 한때 피렌체에서도 살았지만 학생 때든 교수 때든 대부분 고향인 피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물론 피사가 피렌체의 항구도시 역할을 하므로 따로 떨어진 지역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학식이 높은 것 같은데 왜 교수를 안 하지? 유럽 출신 교수들이 자넬 알아보지 않나?”

“젊은 나이에 과분하게 피사 대학에서 교수를 맡았습니다만, 아직 배울 게 많아서 여기서는 대학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왕립대학에서 2학년에 편입해 지금은 3학년이며 전공은 물리학입니다.”

“교수가 다시 대학생이라니, 좀 그렇군.”

“그때는 고산국 말을 잘 몰라서 최선이라 판단했습니다. 배운 것이 많아서 지금도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는 강의를 하고 연구도 해야 하지만 대학생은 공부만 하면 된다. 이민호는 갈릴레오가 언어를 배우면서 개인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왕립대학의 수학과 물리학 수준이 굉장히 높더군요. 몇 가지 공식의 유도 과정은 몹시 인상 깊었습니다.”

“수준이 좀 높지.”

현대 물리학의 아버지라는 갈릴레오 앞에서 자랑하자니 이민호는 참으로 곤란했다.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뉴턴 등이 평생 노력한 결과물을 고산국의 수학과 물리학 교과서에 옮긴 사람이 이민호였다. 날로 먹은 셈이었다.

“재작년에 고산국에서 비행기 발명을 시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작년에 배를 타고 왔습니다. 이제 새해니까 재작년이군요.”

“비행기에 대한 소문을 듣고 왔다면서 왜 국방연구소에 들어오지 않았나?”

“국방연구소는 경비가 삼엄한 편이라서 접근하기 어려웠습니다. 고산국에 도착한 초기에는 말도 안 통했습니다. 그래서 시험 비행 때만 멀리서 지켜봤습니다. 대단하더군요.”

“관심 있으면 내가 자넬 국방연구소에 추천해주겠네. 어떤가? 비밀유지는 자신이 있어서 하는 제안이야.”

고산국이 가진 기술의 핵심은 추진력을 내는 엔진이었고, 갈릴레오에게서 얻을 것은 공기역학이었다. 갈릴레오가 쇠공과 깃털이 동시에 낙하한다는 이론을 전개했으니 양력의 존재를 확실히 알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저는 학자이지 기술자가 아닙니다. 비행기를 만드는 연구소는 기존의 학문적 성과를 적용하는 단계에 있으니 제가 일할 곳이 아닙니다. 천문대에 있다는 천체망원경을 이용하게 해주십시오.”

“수학 교수였으며 물리학 전공 대학생이 천체 망원경을 원한다? 다 연결된 학문이긴 하지.”

“학문의 연속성을 이해해주시는 분을 처음 만난 것 같아 기쁩니다.”

현재 고산국에서는 갈릴레오가 만년에 제작한 수준인 30배 망원경을 완성하고 해상도를 높이기 위한 개량을 하는 중이었다. 현대의 학생용 천체망원경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이 시대에는 망원경이 아직 제작되지 않았고, 초기에는 3배 수준이었다. 그리고 굴절 망원경이 아닌 반사 망원경의 원리를 안다면 갈릴레오도 기겁할 것이라고 이민호는 생각했다.

“언제 고향에 돌아갈지 모르겠지만 고산국에 있는 동안 연구를 지원해주겠네. 후원을 해주겠다는 뜻이지.”

“그래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하나 제가 이탈리아로 돌아갈 이유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고산국 백성이 된다면 더 좋지.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물리학과 천문학인가?”

갈릴레오는 11세에 수도원에서 인문학을 배워, 철학과 논리학이 그가 평생 이룬 과학적 업적의 기반이 되었다.

“그렇습니다. 혹시 전하께서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믿습니까? 교리에 어긋나더라도 말입니까?”

“관측 결과가 지동설이 옳다고 하면 지동설을 믿어야 하지 않겠나? 그리고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학설 중의 하나가 반드시 교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보네.”

“모든 군주나 성직자들이 전하 같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구약성서 여호수아 10장 13절에 여호수아 군대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루 동안 태양이 움직이지 않았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고민인데 전하께서는 어떻게 설득하시겠습니까?”

이 구절 때문에 지동설은 로마 가톨릭은 물론 루터파에게도 비난을 받았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에 끌려간 이유이기도 했다. 지구가 자전 한 바퀴를 하거나 태양이 다시 남중하는 시간, 즉 낮밤이 바뀌어야 하루인데, 하루 동안 태양이 멈춰 있다는 말은 논리적 모순이었다. 물론 하루를 24시간으로 바꾸면 논리적 모순은 안 생겼지만 이렇게 하루와 24시간은 달랐다.

“성경 구절을 맹목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지동설이 배척당하겠군. 잘 설득해야겠어. 내 생각에는, 지구에서 관측했으니 그렇게 알게 될 수도 있다고 봐. 만약 지구 바깥에서 봤다면 지구가 멈춘 걸로 보일지도 모르지.”

“그것도 가능하겠군요. 하지만 지구나 태양이나 거대한 천체인데, 전하께서는 그 중에 하나가 멈출 수도 있다고 보십니까?”

“기세등등한 이단심문관 앞에서는 둘 중 하나가 멈췄다고 인정해야지 어쩌겠나? 실제로 믿는가는 중요하지 않네. 구절 자체가 의심스럽다 해도 일단 믿는 척하게.”

“크크! 이곳에서 연구하는 편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종종 찾아뵙겠습니다.”

흠칫했지만 갈릴레오의 방문을 말릴 이유는 없었다. 다만 궁성 안에서만큼은 제발 껄떡거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뿐이었다.

다음 날 이민호는 갈릴레오를 왕립대학교 천문학과 교수 겸 천문대장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왕립대학교 총장이 검소한 수사 출신이라 작은 기숙사에 기거하고 있기에 빈 총장 공관을 갈릴레오에게 내줬다.

============================ 작품 후기 ============================

늦어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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