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4 49. 1598년 =========================================================================
“오늘 해전으로 발생한 사망자와 포로 명단은 포로 심문 후에 따로 작성해서 넘겨주겠소.”
“감사합니다. 동인도제도에서 해적질하다가는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사실이 네덜란드 선원들에게 잘 알려질 것입니다. 카리브 해에서 프랑스 해적선들을 격멸했다는 고산국 군함보다 오늘 본 폐하의 함대가 훨씬 크고 많은 것 같습니다. 이 해역에서는 앞으로 절대 해적이 발호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 고산국이 얻은 이익이 많았다. 해적선에 실린 수백 상자의 금은보화는 물론, 비록 함포 사격에 너덜너덜해졌지만 값비싼 범선 네 척이 송두리째 굴러 들어왔다. 잘하면 해적질에 참가했다 붙잡힌 선원들의 몸값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전투 과정에서 발생한 전리품으로서, 승자가 갖는 것이 당연한 권리였다. 해적질을 당한 자바 섬의 무역도시들이 입은 손해를 회복할 방법은 가해자인 해적들이 손해를 배상하는 방법 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이민호가 잠시 야콥 제독을 노려봤다.
“야콥 제독은 네덜란드의 투자자나 무역회사들을 대표해서 선단을 지휘하면서, 동시에 공적인 임무도 띄고 있는 것 같소.”
“그렇습니다. 독립전쟁 중이라 모든 게 엉망이지만 네덜란드 북부의 7개 주로부터 제가 외교권까지 위임받은 것이 사실입니다.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간 다음 해적질을 한 범선의 소유주와 투자사를 파악해 피해를 입은 도시들에 손해를 배상하도록 조치하겠습니다.”
“네덜란드를 왕복하려면 너무 늦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오.”
“분명히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왕복에 2년 가까이 걸리고, 손해배상을 했다가는 그 무역회사들은 반드시 파산할 것입니다.”
이 시기에 네덜란드에서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자카르타에 오기까지 1년 반이 넘게 걸리기도 했지만, 향신료를 가득 실은 다음에는 3개월 만에 돌아가기도 했다. 향신료에 범선의 속도를 증가시키는 물질이 함유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바보 같은 생각이 이민호의 뇌리에 살짝 들었다가 사라졌다.
“이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소. 자바 섬 동부 지역의 도시국가들이 이번에 네덜란드 해적에게 입은 피해가 크오. 그러니 해적 행위에 책임 있는 네덜란드 무역회사에서 도시국가들에 배상해줄 때까지는 이곳 자야카르타에서 동쪽으로는 어떠한 네덜란드 선박도 통행을 금지시키겠소.”
“헉! 그건 좀 심합니다.”
네덜란드 선박은 순다 해협 주변과 자바 섬, 그리고 브루나이와 필리핀, 마지막으로 고산국까지 선을 그어 그 동쪽 해역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것은 2년 전에 하우트만 선장과의 조약에서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이렇게 조약을 맺은 것은 그 선의 동쪽 해역에서 포르투갈이 향신료 무역을 독점하는 것을 보장해주기 위해서였다. 그 동안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던 포르투갈 입장에서 불만이 많겠지만 만약 네덜란드와 전쟁을 벌일 경우 점령지역이 많아 전력이 분산된 포르투갈이 도저히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이민호가 포르투갈을 설득할 수 있었고, 수에즈 운하를 개통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포르투갈도 자기들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에 해적 때문에 자바 섬 대부분에서 향신료 교역을 금지당한다면 네덜란드가 크게 손해 볼 수 있었다. 일단 반탄 왕국만으로는 네덜란드에서 요구하는 향신료의 수요량을 감당하지 못했다. 당연히 야콥 제독이 크게 반발했다.
“실례지만 고산국 국왕폐하께 그런 결정을 내리실 권한이 있으신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자바 섬 여러 도시국가들이 결성한 무역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았소. 인도 고아에도 그렇게 통보하겠소. 단,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은 무역도시들이 손해를 충분히 배상받은 다음에는 이 조치를 해제시켜주겠소.”
“그러시다면야 몇 년 간은 저희들이 손해를 감수하겠습니다. 해적은 분명히 네덜란드 국적이었으니까 책임을 지겠습니다.”
고아 부왕이 네덜란드 범선들에게 면허증을 발급하면서 은 100냥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생각해보니까 동인도제도에서 네덜란드 선박들의 면허증을 검사한다는 것을 까먹었다. 선박 수가 20척을 넘어서 면허를 받지 못한 배들을 쫓아내거나 나포할 방도를 강구해야 했다.
그러나 배상을 위해 네덜란드 선박들의 항해를 제한하는 것도 썩 바람직한 것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자바 동부의 무역도시들은 쇠해지고 이민호로부터 무역을 허락받은 자야카르타 항구를 보유한 반탄 왕국만 무역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그 문제로 고민하던 이민호에게 야콥 제독이 다른 방법을 제안했다.
“하오나 해적 행위에 책임 있는 무역회사가 도산했다면 이도 저도 안 됩니다. 차라리 일정 기간 네덜란드 선박들로부터 입항세를 받아 피해를 입은 도시들에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
“자세히 설명해보시오.”
“이곳 자야카르타 항구에서는 원래 입항세를 받지 않습니다만, 동인도제도에 들어오려는 모든 네덜란드 범선으로부터 입항세를 받아 무역도시들에게 나눠 지급한다면 피해를 입은 도시들에게 즉각적으로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올해처럼 향신료 가격이 싸다면 네덜란드 선단의 구입자금에서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저희 선단에서 먼저 입항세 명목으로 배상금을 지불하겠습니다. 그 대금은 저희들이 네덜란드로 돌아간 다음에 해적질을 한 그 무역회사에 구상권을 행사하겠습니다. 물론 파산할 것 같습니다만.”
“좋은 방법이오. 어느 정도 내겠소?”
“상선 한 척에 이 지역 무게 단위로 은 일만 냥을 내면 어떻겠습니까? 값비싼 향신료를 사러 온 상선들이니 크게 부담이 가지 않을 금액입니다.”
“그 정도면 괜찮을 것 같소.”
네덜란드 선박들이 매년 10척 이상 올 예정이므로 그 정도면 도시국가들에게 기본적인 피해 복구 정도는 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민호도 이번에 해적선에서 얻은 금과 은 일부를 내놓을 생각이었다. 아무리 전리품이라지만 대놓고 꿀꺽하면 피보호자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야콥 제독이 이번에 8만 냥을 내고, 앞으로 5년 동안 네덜란드 선박이 자야카르타에 입항하면서 일만 냥씩 내기로 했다. 이민호도 전리품 중에서 은 10만 냥을 갹출했다. 자바 동부에 대한 항해 금지도 풀어주어 야콥 제독이 몹시 기뻐했다.
매년 10만 냥이 넘어가는 피해 배상액은 마두라와 수라바야, 투반 등 해적들에게 피해를 입은 자바 섬 동부 무역도시들의 복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역도시들의 항구 요새를 대형화하고 고산국에서 제작한 신형 대포도 요새마다 3문씩 배치시켰다. 물론 대포는 제작비보다 조금 비싸게 판매했다.
기존 포르투갈 대포보다 구경이 큰 대포는 비록 흑색화약과 재래식 원형 포탄을 사용했지만 시험 사격 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거리가 연장되고 유럽 범선들을 관통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러나 화약을 정량보다 두 배를 넘게 쑤셔 넣어 쏘더라도 고산국 순양함에 정통으로 맞아도 관통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었다. 고산국 순양함은 목선 시대의 군함으로서 방어력의 정점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조만간 고산국에서 이집트에 운하를 건설할 예정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며칠 전에 운하 건설단이 출발했소. 아마 올해 말에 수에즈 운하가 개통될 것 같소.”
“맙소사! 대규모 토목공사일 텐데 일 년도 안 걸립니까? 아! 산을 오르내려야 하는 파나마 운하 건설에도 일 년이 안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고산국의 능력에 찬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네덜란드는 파나마 운하보다는 자유롭게 이용 가능한 수에즈 운하 쪽에 관심이 많았다. 파나마 운하를 이용하려면 독립전쟁의 상대방인 에스파냐가 장악한 카리브 해를 지나야 하고 파나마 운하의 운영 주체도 에스파냐이기 때문에 네덜란드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이용이 불가능했다.
“낯 뜨거운 소리는 그만 하시고, 내년 초부터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해서 아시아로 오시오. 운하 통행료는 오스만제국, 이집트와 협의해서 결정할 것이오.”
“통행료가 아무리 비싸더라도 아프리카 남단을 도는 것보다는 싸겠지요.”
“훨씬 빠르고 안전하기도 할 것이오. 아프리카의 풍토병이 보통 위험한 것이 아니라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단순히 거리 단축의 문제가 아니지요.”
수에즈 운하가 아직 건설되지도 않았는데 이민호는 벌써부터 대주주로서 영업활동을 시작했다. 원래 역사에서 네덜란드는 동인도제도에 무역선들을 보내기 위해 가장 먼저 아프리카 남단 케이프타운에 보급기지를 건설한다. 원래 보급기지 역할로 국한된 케이프타운은 차차 식민지로 확대된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네덜란드가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수에즈 운하 건설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는 남아프리카에 거대한 금광과 엄청난 양이 생산되는 다이아몬드광산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이민호가 노리는 것은 남아프리카의 귀금속과 보석이었으므로 수에즈 운하에서 어느 정도 손해를 볼 각오를 하고 있었다.
므부투는 주변 부족들에게 새로운 농법을 가르치고 새로운 곡식 종자와 철제 농기구를 나눠주면서 빠르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므부투가 이끄는 흑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려면 아직 멀어서 고산국에서 식량과 각종 물자를 끊임없이 지원하고 있었다.
남아프리카 광산에서 산출될 금과 보석이 이 일에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이민호가 자선사업가는 절대 아니었으므로 더 많이 챙길 계획이었다.
“폐하! 상관 개설 문제로 건의 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무역을 하려면 상관이 필요하겠지요. 말씀해 보시오.”
네덜란드 상관(商館)은 단순히 선원들의 숙식제공이나 보급기지 역할, 정보 제공처 수준이 아니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네덜란드는 무역하러 온 상선이 아니라, 상관에서 주재국과의 무역을 주도하는 경우가 흔했고, 이는 보다 유리한 가격으로 교역이 가능하게 해주었다.
실제 역사에서 네덜란드가 여러 나라와 무역을 하는 것보다는 그 나라들에 개설한 네덜란드 상관끼리 무역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네덜란드 상관의 특성에 대해 전혀 몰랐다.
“앞으로 수많은 네덜란드 배가 이곳에 들이닥칠 것입니다. 동인도제도까지 항로를 개척하고 향신료를 교역하는 것도 제게 중요한 임무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동인도제도 적당한 위치에 상관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곳 자야카르타 항구에 상관을 개설하면 좋겠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십시오.”
“그 문제는 반탄 술탄에게서 허락을 받아야 할 것이오.”
의외의 대답에 야콥 제독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예? 동인도제도, 특히 자바 섬은 고산국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나는 작은 나라들을 보호를 해줄지언정 남의 영토를 내 마음대로 하지 않는다오.”
“존경합니다, 폐하.”
야콥 제독이 존경하든 말든 이민호는 반탄 왕국의 술탄을 불렀다. 마타람 왕국의 왕세자와 달리 이곳 술탄은 맘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생겼다.
자야카르타에 이미 포르투갈 상관이 개설돼 있었으므로 네덜란드 상관을 설치하겠다는 야콥 제독의 청을 술탄이 흔쾌히 허락했다. 야콥 제독도, 이민호도 깜짝 놀랐다.
“아니, 술탄! 앞으로 외국 배들이 수시로 들락거릴 텐데 이렇게 쉽게 허락해도 되는 것이오? 오늘도 자야카르타 앞바다에서 해적과 싸움이 있었소.”
“저희들을 도와주는 함대가 없을 때 항구가 해적선에게 공격당할 수도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바 섬에서 마타람을 빼곤 모두 무역왕국입니다. 해적의 위험이 있다 해도 나라를 유지하려면 물건을 사러 오는 외국 배를 막을 수 없습니다. 무역을 하기 위해 상관이 필요하다면, 저희 영토라도 내줘야 합니다.”
“그런 고민이 있겠구려.”
이민호가 혀를 찼다. 무역왕국이라 해서 화려한 면만 생각했었는데 국제무역을 유지하기 위해 왕국에서 들이는 노력과 감수해야 할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다는 생각을 깜빡했다. 고산국은 초기부터 압도적인 판매자 우위 시장을 유지하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평범한 소규모 무역왕국이라면 온갖 진상 손님들을 상대해야 하는 동네 술집과 비슷한 위치였다.
실제 역사에서 마두라의 왕족, 아마도 왕세자는 처음 보는 서양 배들을 환영하러 나왔다가 그 전에 원주민에게 습격을 받아 흥분한 하우트만 선장의 보복성 공격에 의해 억울하게 죽었다. 명색이 무역왕국이라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렇게 왕족까지 목숨을 내걸고 신규 고객 영입에 나서야 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소규모 무역도시가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다른 도시나 왕국들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해야 했다.
반탄 왕국의 술탄과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이민호가 야콥 제독을 내보냈다. 한참 동안 이야기를 듣던 술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도시국가들과 힘을 합쳐 연합 함대를 결성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술탄께서 중심이 되어 함대를 만들어 순다 해협과 자바 해역 전체를 지켜주면 좋겠소. 서양 대포보다 좋은 신형 대포를 판매해준다면 가능하겠소?”
“중부의 마타람 왕국이 영토를 확장하지 않는 동안에는 가능할 것입니다. 하오나 병력이 부족한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해결할 방도가 있긴 합니다만, 지금은 그게 조금 복잡합니다.”
자바 섬 중부를 장악하고 있는 마타람 왕국은 생산량이 풍부한 농업 국가라서 무역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나중에는 자바 섬에 산재한 무역도시들을 통합하거나 영토를 확대하지만 그것은 아궁이 술탄으로 즉위한 다음의 일이었다.
“그게 뭐요?”
“자바 섬에서 바다 건너 북동쪽, 술라웨시 남서쪽에 거주하는 부기스 족을 용병으로 고용하는 것입니다. 부기스 족이 옛날에는 해적질을 했었는데 지금은 테르나테 제국 아래에서 조용한 편입니다. 그러나 호전적인 성격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해적이었다면, 고용주들에게 위험하지 않겠소?”
“부기스 족 같은 무신론자들에게 무력을 맡기고 싶지 않지만 저희들도 병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습니다. 함대를 결성하더라도 대포는 우리가 쏘고, 칼 싸움과 총 싸움은 부기스 족에게 맡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제가 요청한다고 해서 테르나테 술탄이 허락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 역사에서는 말래카 해협 남부에서 잘 나가던 조호르 술탄국이 17세기 말 내부 권력다툼 과정에서 용병으로 고용됐던 부기스 족에게 잡아먹혔다. 말레이 족이 술탄 직위는 유지했지만 실제 정권이 부기스 족에게 통째로 넘어간 것이다.
마치 서로마제국과 게르만 족의 관계, 오스만과 예니체리, 이집트와 맘루크 같은 관계였다. 이 시기에는 부기스 족이 아직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하기 전이라서 애니미즘에 가까운 신앙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내가 테르나테 술탄에게서 허락을 받아주겠소.”
“폐하께서는 테르나테 술탄에게 명령을 하시면 됩니다. 테르나테가 요즘은 감히 제국을 참칭하지 못하는 것은 폐하께서 주변 모든 섬들을 아우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도 마찬가지로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폐하께서는 이 지역 이슬람의 수호자이시니까요.”
반탄 왕국의 술탄은 이민호가 자바 섬 여러 나라의 안전을 위해 신경 쓰고, 해적에게 피해를 입은 도시국가들을 위해 손해배상을 받아준 사실을 알고 크게 감동했다. 향료제도의 주인들인 테르나테와 티도레의 술탄들, 그리고 발리 섬의 군주까지 이민호에게 고개를 숙인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민호는 실제적으로 이미 동남아시아의 패자로 인정받고 있어서 이렇게 과도한 예의를 차릴 수 있었다.
“그대에게 명령을 내리겠소. 내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아도 되니 일어서시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이민호가 얼떨떨하면서도 종교적인 칭호와 동시에 이 지역을 대표하는 권한을 받아들였다. 동로마제국을 정복한 이후 오스만제국 황제가 로마황제 겸 가톨릭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쓰는 판에 이민호가 동남아시아 이슬람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었다. 이민호가 FSM교를 믿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최소한 무슬림들이 경멸하는 무신론자나 다신론자 이교도는 아니라서 이런 칭호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별로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사태가 흐르고 있었다. 고산국이 동남아시아까지 관리해주기에는 이민호가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서양 세력의 침투를 막고 고산국에서 호주까지 연결되는 항로의 안전을 추구하다 보니 어느새 이렇게 되어버렸다.
============================ 작품 후기 ============================
이번 회는 외교만으로 끝냈습니다만, 그 동안 자바 섬 무역국가들 등 동남아시아 여러 해양국가들에게 공을 들인 효과가 나타난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분량도 많군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모두 설 잘 쇠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