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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493화 (442/1,000)

00493  51. 프랑스  =========================================================================

51. 프랑스

갈리시아에서 인재를 모으며 며칠 지낸 다음, 함대가 비베이로를 떠났다. 동양의 강대국 국왕이라는 든든한 후견인을 확보하게 된 비베이로와 주변 갈리시아 지방 주민들이 항구로 구름처럼 몰려나와 환송했다.

비올레타는 항구가 안 보일 때까지 함미 쪽에 서 있었다. 이민호가 비올레타를 뒤에서 꼭 껴안았다.

“바닷바람이 차갑소. 감기 걸리기 전에 들어갑시다. 다음에도 고향에 올 기회가 있을 거요.”

“예. 아기님에게 감기를 옮기면 큰일이에요. 들어갈게요.”

“나에게는 비올레타 그대가 항상 우선이오. 알겠소?”

“훗! 그렇다면 아기님에게 더 좋은 아빠가 돼 주세요.”

아기야 당연히 천사처럼 예쁘지만 이민호는 초보 아빠라서 아기와 제대로 놀아주지 못했다. 제대로 안는 방법도 몰라 아기를 울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대신 말길을 튼 아이들에게는 정신적 수준이 비슷해서 그런지 아주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현대의 레고와 비슷한 장난감을 만들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이민호는 와인 양조업자를 구하러 에스파냐 북부 빌바오에 들를까 하다가 그냥 남프랑스의 보르도로 직행했다. 지롱드 강변을 따라 남쪽에 빽빽하게 들어선 포도 농원들을 감상하고, 더 들어가서 풍요로운 아키텐의 농경지들을 구경했다.

그러나 상류로 올라갈수록 수심이 얕아졌다. 좌초할까 걱정돼 적당한 강변마을에 배를 세우고 기다렸다.

잠시 후 프랑스 군대가 출동했으나 걱정한 것처럼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말을 타고 달려온 프랑스 군대에서 고위 기사가 함대에 접근해 꽥꽥 소리를 질렀다.

“뭐라는 건가?”

“알아듣지 못하겠는데 아마 오크어 같습니다. 당연히 오일어도 사용할 겁니다, 전하.”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는데, 별로 우호적인 반응이 아닌 것 같아. 신교도 노예들만 상륙시키고 돌아가겠다고 전하게.”

통역관이 나서서 불어로 뭐라고 말하자, 프랑스군 지휘관이 함대를 향해 다시 소리를 질렀다. 통역관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고산국 함대는 당장 꺼지라고 합니다. 즉각 물러서지 않으면 적으로 규정해 공격하겠답니다. 이 지역 출신이 대부분인 신교도 노예들만 내리고 돌아가겠다는데도 거부합니다.”

“흐음. 얼마 전에 포도 농원 농부들이나 양조업자들을 데려가서 그런가? 어쩔 수 없군. 이렇게 된 이상 파리로 간다.”

“훗! 그래야 전하답지요.”

배에서 내릴 준비하던 신교도들, 특히 남프랑스에 거주하던 신교도들이 이 상황을 모두 지켜보았다. 양쪽 모두를 이해해서 그런지 신교도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기도할 뿐, 고산국 수송선 선원들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않았다.

고산국 함대가 비스케이 만을 북상해서 영불해협에 접어드는 동안 중간 중간 해안에서 프랑스 배들이 바다로 뛰쳐나왔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를 뒤따르던 프랑스 배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죄다 뒤쳐졌다. 고산국 배를 속도에서 따라잡을 군함은 이 시대에 구할 수 없었다.

저지 섬 근처를 지날 때 생-말로에서 급히 출항한 프랑스 사략선 30여 척이 함대를 향해 접근했다. 셸부르를 지나 영불 해협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도 마침 불어온 남서풍을 타고 사략선들이 계속해서 추격했다. 속도를 더 내면 따돌릴 수도 있었으나 수송선 엔진에 무리가 갈까봐 순항속도를 준수했다.

“멕시코 만이나 카리브 해에서 당한 것을 복수하겠다는 거야? 기분 나쁘네. 확 다 침몰시켜버릴까 보다.”

“함포 사격 명령을 내릴까요, 전하?”

“아니오! 전단장은 고정하시오.”

멕시코 만에서 프랑스 해적들을 생포하고 카리브 해에서 프랑스 사략선들을 침몰시켰으니 고산국 함대에 원한을 품은 프랑스 해적들이 미친 듯이 따라붙는 것도 이해가 갔다. 해적을 극히 경계하는 이민호 입장에서 사략선들을 웬만하면 없애버리고 싶었지만, 영토 가까운 바다에서 싸움을 일으켜 프랑스 전체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프랑스 사략선들을 공격하지 않고 영국 해안 쪽으로 접근해 추격을 따돌리기로 했다.

“빨간 십자 깃발! 잉글랜드 함선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산 넘어 산이었다. 고산국 함대가 잉글랜드 해안에 가까워지자 이번에는 포츠머스에서 수많은 영국 배들이 나타났다. 50여 척에 가까운 배들이 고산국 함대의 진로를 차단하려고 빠르게 움직였다.

서쪽에서는 플리머스에서 출항한 잉글랜드 갈레온 30여 척이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마요르카를 약탈하다가 나포된 해적선과 유사한 선형이었다.

“전하! 영국 함선들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이것들이 해보자는 거야? 전단장! 전투 준비!”

포문을 연다는 말은 상갑판 아래층 포 갑판에서 문짝을 위로 열고 대포의 포구를 배 바깥으로 내밀어 포격 준비를 마친다는 뜻이었다. 일반적으로 해전의 시작을 뜻했으나 포문을 열고도 전투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전투 준비를 하겠습니다. 전단장이다. 각 전대 해상전투 준비! 전 함선은 함교 창문을 비롯한 모든 창문을 닫고 갑판에서 활동하는 인원은 즉시 실내로 들어가라. 각 포탑 발포 준비, 장전!”

전단장이 무전기를 통해 전단 전체에 명령을 내렸다. 무선통신기가 함대 지휘에 도입된 이후 기함의 깃발 신호를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지휘 능력이 진일보한 셈이었다.

“먼저 프랑스 사략선들을 격멸하겠다. 전단, 전속 반전! 각 전대는 전면 3분의 1씩 맡아라. 각 전대장은 예하 함정에 표적 배분을 하도록.”

전단은 각 4척씩 3개 전대로 이뤄졌다. 고산국 해군에 아직 경험이 풍부한 함장이 부족하고 젊은 함장들의 지휘 능력을 완전히 신뢰하지 못해 가급적 전대 단위로 움직이게 했다. 전대장도 함장 직책과 분리해야 하나 지금은 겸임시키고 있었다. 국왕좌승함 함장도 전대장으로서 휘하 함정들에게 표적을 지정했다.

전단장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숫자가 적은 프랑스 사략선들부터 해치우기로 결정했다. 함대가 남쪽으로 급선회하면서 거리가 좁혀들자 프랑스 사략선들이 급히 함포 사격을 시작했다.

- 퍼엉~

첫 포탄이 국왕좌승함 한참 앞에 낙하해 제법 커다란 물기둥을 일으켰다. 프랑스 사략선들이 포를 연속 발사하면서 포연을 뿜어냈다. 첫 일제사격만으로 범선들이 하얀 연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거리를 잘못 판단했는지 포탄은 죄다 고산국 순양함들 앞에 떨어졌다.

고산국 함대 승조원들 절반 이상이 조선 수군 출신이었다. 조선 수군과 달리 커다란 돛을 잔뜩 부풀린 채 함포전을 실시하는 것이 어색했으나, 범선 위주인 유럽에서는 돛을 내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싸웠다.

“발포!”

- 쿠쿵! 쿵!

함대는 평소 해적선과 교전할 때와 달리 격침을 목표로 포격을 퍼부었다. 함수 쪽에 배치된 포탑에서 5인치와 3인치 포탄을 계속해서 날렸다. 함미 쪽 포탑은 영국 함선들을 경계하느라 교전에 참가하지 않았지만, 발사속도가 빨라 함수 함포만으로 충분했다.

- 콰쾅!

프랑스 사략선 두 척이 맹렬히 폭발하며 시뻘건 화염이 상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화약창고나 화약통이 잔뜩 쌓인 곳에 제대로 한 방 맞은 탓이었다. 전근대적인 쇳덩이 포탄에는 하루 종일 맞아도 이렇게 폭발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고산국 함대에서 발사한 파열탄은 몇 발 맞지도 않아 대포 주변에 가득 쌓인 화약을 인화시켰다.

첫 포격에 20여 척이 전투 불능이 되고 두 번째 포격에 나머지가 화염과 파편을 뒤집어썼다. 폭발하면서 즉각 격침된 배는 몇 척 안 됐지만, 대부분 사략선 옆구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가 조만간 격침될 운명이었다.

그러나 고산국 함대는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3차, 4차 포격이 이어지면서 사략선 다수가 침몰하는 중에 다시 포탄에 명중해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사략선장들이 전투를 포기하고 구명정에 이함을 지시하는 사이 해적들 절반 이상이 죽어갔다.

구명정은 겨우 10여 척밖에 뜨지 못하고 사략선 30여 척이 다 가라앉았다. 해적들이 부서진 널빤지를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아직 살아남아 바다로 뛰어든 자들 중에서 부상자가 태반이었다.

“함포 사격 중지.”

프랑스 사략선 30여 척 중에서 20여 척은 주갑판이 가라앉으면서 마스트와 찢어진 돛만 남았다. 나머지 사략선은 이미 가라앉았는지 아예 보이지 않았다. 구명정 10여 척이 바다에 빠진 동료 해적들을 건져내고 있었다.

- 타앙!

“무슨 소리야? 사격 중지! 전투는 끝났어!”

- 전단장님! 프랑스 사략선에서 내린 구명정에서 해적이 5번 함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습니다. 물론 피해는 없습니다.

“발포한 구명정이 확인되는 대로 기관총 사격!

“아! 전단장!”

이민호가 말렸으니 이미 늦었다. 기관총 2정이 연속 발사되는 소리가 길게 이어졌다. 구명정에 탄 어떤 미친 해적이 괜히 성질난다고 순양함을 향해 권총을 쐈다가 동료들까지 물고기 밥을 만들어버렸다. 작은 관측창을 통해 벌집이 되어 가라앉는 구명정 주변에 시뻘건 피가 번지는 것을 확인한 이민호는 관측창을 닫아버렸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하명하여 주십시오.”

“아니, 됐소. 전단장이 계속 지휘하시오.”

군함을 잃고 구명정에 탄 자들은 이미 전투능력을 상실한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구명정에서 겨우 권총을 쐈다고 다 죽여 버렸으니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효과는 확실해서, 프랑스 해적들이 저항을 완전히 포기하고 무기를 바다에 버렸다.

“전단, 전속 반전!”

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역풍을 타고 남하하던 영국 함대가 남아있었다. 그러나 영국 함대는 프랑스 함대가 순식간에 전멸하는 것을 보고 전의를 잃은 듯했다.

아니면 고산국 함대가 프랑스 함대와 함께 잉글랜드를 침공하는 것으로 오해해서 전투태세를 갖춘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는 상상보다 훨씬 드라마틱했다.

“영국 함대가 물러섭니다. 지휘계통이 무너져 개별 함정들이 무분별하게 도주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배에서 대화를 요청하는 깃발이 올랐습니다. 단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전령이라면 받아들여!”

지금까지 모든 전투는 전단장이 지휘했고 이민호는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 구경만 했다. 전단장이 해전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지휘했으나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었다. 이민호가 지휘권을 줬으니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영국 기함에서 내려 보낸 단정이 국왕좌승함을 향해 곧바로 왔다. 국왕의 문장을 따로 달지 않았는데도 단번에 알아보는 것에 이민호가 조금 놀랐다. 쇠로 만든 계단 사다리를 내리자 영국 해군 몇 명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고산국 함대는 정말 대단합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됩니다. 목격자들이 표현을 제대로 못하고, 듣는 사람이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탓에 고산국 해군이 과소평가된 셈입니다.”

갑판에 올라온 영국 해군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자가 유창한 불어로 감탄하는 말을 연달아 토해냈다. 이 시대에 영어는 국제어가 아니었고, 잉글랜드 귀족 대부분은 불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귀관은 누구요?”

“실례했습니다. 저는 에핑엄 남작 겸 노팅엄 백작 찰스 하워드입니다. 잉글랜드 해사위원회에서 해군경을 맡고 있습니다, 고산국 국왕폐하!”

이민호는 꽤나 화려한 복장을 한 영국 해군 고위 장교와 마주했다. 영국은 노인 공경을 하는 나라가 아닌 듯, 최소 60은 넘어보였다.

찰스 하워드는 해군본부라고도 번역되는 the Board of Admiralty의 수장이며 1588년에 에스파냐가 침공할 당시 해군뿐만 아니라 모든 영국군의 지휘를 맡았던 인물이었다. 현재는 잉글랜드 총사령관을 에섹스 백작이 맡았고, 하워드는 두 번째 지휘관인 Lord Lieutenant General of England 직책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는 노포크 공작 토마스 하워드의 손자이며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촌이었다.

찰스 하워드가 노팅엄 백작 작위를 받은 것은 에스파냐가 다시 잉글랜드를 침공할 것으로 예상된 1596년이었다. 영국은 에스파냐가 잉글랜드를 침공할 기미가 보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카디스에 선제공격을 가했고, 그 해에는 한 달 동안 에스파냐 남서쪽 요새 항구인 카디스를 점령했다. 1587년에도 영국 해군이 카디스를 공격하고 사흘 간 점령해 에스파냐 함대의 출항을 1년 간 지연시킨 바 있었다.

“칼레 해전에서 노팅엄 백작의 대승리를 늦게나마 축하드리오. 경은 환갑, 아니 60세 넘으신 것 같소.”

“감사합니다, 폐하. 저는 올 들어 62세인데 천국에서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아직도 생생합니다. 사람을 많이 죽여서 지옥에 자리가 있는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1536년생인 찰스 하워드는 원래 역사에서 1624년에 사망하니 거의 90년 가까이 장수했다. 오히려 4살 연하이며 칼레 해전 당시 부사령관이었던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2년 전에 먼저 죽었다.

찰스 하워드는 1588년 칼레 해전에서 에스파냐 해군과 선원들을 무수히 죽인 외에도, 1596년 카디스를 한 달 동안 점령하며 약탈했다. 그리고 평시에는 재판관을 맡아 국내에 칼바람을 불게 만든 인물이었다. 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에게 사형을 언도한 재판관이 바로 찰스 하워드였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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