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6 52. 북유럽 =========================================================================
“예전처럼 소독약에 사람을 담그지 말게.”
“그때는 제가 미쳤었지요.”
문제는 전염성 질환을 가진 자들이 너무 많아서 격리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더블린의 임시 수용소에 몰려든 아일랜드 사람들 대부분이 오랜 굶주림으로 면역체계가 붕괴된 탓에 두세 가지 병을 앓고 있었다. 그래서 볼거리처럼 전파력이 높은 환자들만 따로 격리시켰다.
처참한 상황인 수용소에 비올레타를 동반하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다. 이민호는 비올레타가 수용소에 들르면 자칫 아기가 병에 옮을 수 있다는 핑계를 대면서 배에 남겨두었다. 이민호도 배에 돌아가면 옷을 갈아입고 목욕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일랜드 사람들이 수용소 건물 밖에 나와서 멍한 눈길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비쩍 마른 자들이 흐느적거리며 움직이자 마치 이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를 보는 듯했다.
“혹시 대기소에 식량이 부족한가? 사람 몰골이 아니야.”
“저들은 들어온 지 며칠 안 돼서 아직 죽을 먹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기운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이니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다행이고.”
“일단 잘 먹여서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치료를 하든지 예방주사를 놓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민자 수용소가 처음 지어질 때와 달리 반은 수용자들 숙소, 반은 병원 입원실로 사용됐다. 환자가 너무 많았다. 이민을 갈 생각이 없는 자들도 더블린에 공짜로 치료해주는 의사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억지로 여기까지 찾아온 경우도 많다고 했다.
때마침 아일랜드 사람들 100여 명이 수용소로 들어오고 있었다. 멀리서 왔는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비쩍 말라 마치 유령의 몰골이었다.
“박 주부! 손님 받게. 백여 명씩 몰려오는군.”
“저들이 백 명으로 보이십니까? 출발할 때는 천 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박 주부가 이민호를 놔두고 달려갔다. 이 상황을 만든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에 대한 박 주부의 분노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훨씬 안 좋았다. 이민자 수용소로 오는 길가에 굶어죽은 시체가 점점이 흩어져 있다는 말은 나중에 들었다. 상황이 더 심해지면 고산국 인원이 직접 내륙으로 들어가서 이민 희망자들을 호송해 와야 할지도 몰랐다.
“어서 멀건 죽 준비해! 목욕탕에 불 때!”
박 주부가 통역관에게 지시했다. 수용소의 실질적인 관리자인 통역이 현지 노무자들을 시켜 죽을 쑤고 목욕탕에 불을 피웠다.
“아일랜드에 식량을 좀 풀어야겠어. 내륙은 상황이 더 심각하겠지?”
“좋은 방법이지만 장기적인 대책은 되지 못합니다. 원래 식량사정이 좋지 못한 곳인데 내란이 더 악화시켰습니다. 아일랜드 인구 400만에서 절반 정도는 북미로 이주시켜야 합니다. 물론 그 숫자만큼 잉글랜드가 주민들을 이주시킬 게 뻔합니다만.”
곡물의 품종, 기후 변화, 서쪽에 펼쳐진 광범위한 황무지 등 아일랜드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잉글랜드의 가혹한 종교탄압과 이를 빙자한 토지 수탈이었다.
그리고 내란이 진행되면서 체계적인 행정과 곡물 유통이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였다. 아일랜드 반란군은 아직 조직 단일화를 못해 고산국에서 식량을 공급할 때 비효율이 극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다음 이민선은 언제 들어오나?”
“여드레 남았습니다, 전하. 마침 잘 됐습니다. 현재 수용인원 4천 명 중에서 2천 명 정도만 전하께서 데려가 주십시오. 최근에 들어온 자들은 배를 타기에는 너무 허약해서 좀 더 먹여야 합니다.”
“알았네. 계속 수고해주게. 수송선에 식량 좀 싣고 와야겠어.”
북미에서 첫 수확을 했을 텐데 수확량이 어느 정도인지 아직 보고를 받지 못했다. 일단 수용소장인 박 주부에게 에스파냐 금화 몇 상자를 넘겨서 식량 구입 등에 쓰도록 했다.
반란 중에도 더블린에 끊임없이 밀을 가득 실은 수레가 들어와 잉글랜드로 향하는 배에 태우고 있었다. 식량 부족 때문에 반란이 격화되는 것을 빤히 알고 있을 잉글랜드는 자유주의를 신봉한다면서 아일랜드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잉글랜드의 이런 자유방임주의 정책은 이후 두 번의 감자 대기근 때도 반복돼 사태를 악화시켰다.
“잉글랜드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일부러 굶겨 죽이려고 작정한 것 같습니다. 반란이 일어나면 합법적으로 반란군을 죽일 수 있어서 오히려 반란을 유도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1534년 영국 성공회가 생기고 나서 잉글랜드 왕실이 아일랜드 주민들에게 성공회를 강요함으로써 아일랜드에서 숱한 반란이 일어났다. 1534년이 아일랜드 반란의 시작이라고 하나 이때는 아일랜드 세습 총독 토마스 피츠제럴드, 킬데어 백작의 개인적인 반란에 불과했다. 그 이후 잉글랜드가 아일랜드 플랜테이션이라는 식민정책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종교적 탄압을 가해 반란이 일상화됐다.
초기에는 아일랜드에서 동유럽으로 빠지는 인구가 많았고, 빠진 만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주민들이 빈 땅을 채웠다. 종교는 핑계에 불과하고 경제적 동인이 크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도 거의 인종청소에 버금가는 종교정책이 강압적으로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크롬웰처럼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을 죽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미친 짓이야! 이것을 핑계로 외국이 잉글랜드를 공격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요즘 유럽에 인도주의가 확산되고 있으니까 말이야.”
“뻔뻔한 놈들이라 핑계는 얼마든지 있겠지요. 이제 시험 시간입니다. 보시겠습니까, 전하?”
수용소 마당에 아일랜드 사람들이 모였다. 이번에 입항한 함대에 동승해 북미로 갈 이민자들을 선발하는 시험이라고 박 주부가 설명했다.
“춤을 춰서 배에 탈 체력을 증명한다고?”
“그렇습니다. 달리기를 시키면 절반쯤 죽어 나자빠질 것 같아 아일랜드 전통 춤을 추게 해서 승선 예정자들을 골라내고 있습니다.”
“젊은 사람이 유리하지 않나?”
수용소에서 아이리시 탭 댄스라는 문 댄스, 또는 리버 댄스 경연대회가 펼쳐졌다. 비장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딱딱한 가죽 구두를 신고 무대에 올라 다른 사람들과 발을 맞춰 탭 댄스를 추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어린이나 노인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거나 업고 와서 오히려 젊은이들의 체력이 더 나쁩니다. 물론 수용소에 들어온 다음부터 빠르게 회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 단위로 심사를 하고 있습니다.”
“잘했네. 가족 단위로 정착시켜야 하니까.”
젊은 남성이 일 시키는데 효율적이라 해서 청년들만 뽑아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지독히 이기적인 군주가 남성만으로 이뤄진 군대를 장기간 해외에 파병했다가 군대도 영토도 다 잃어버린 사례가 흔했다. 가족들을 버리고 갈 아일랜드 청년도 없거니와, 가족애는 쉽게 애국심과 연결될 수 있었다.
즐거워야 할 춤 경연대회가 참가자들의 눈물로 얼룩졌다.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아일랜드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인 것처럼 정말 최선을 다해 스텝을 밟았다. 원래 경쾌한 춤인데도 상황이 이래서 춤동작에서 깊은 슬픔이 우러나왔다.
“정말 심각하군. 다시 생각해야겠어. 내가 본국에 돌아가면 대규모 지원을 할 방도를 강구하겠네.”
“꼭 부탁드립니다, 전하.”
다음 날 아침, 함교에 오른 이민호는 수용소 정문이 열리고 수레 수십 대가 언덕길로 향하는 것을 지켜봤다. 병에 걸려 죽은 자들이 절반, 그리고 나머지는 수용소에 도착하자마자 하룻밤도 못 넘기고 죽은 자들이었다. 싸늘한 시신들이 거적에 덮여 공동묘지로 실려 갔다.
로마 가톨릭 신부가 연기가 피어나는 향로를 좌우로 흔들며 수레 대열 맨 앞에서 걸었다. 수레 행렬을 가족들이 고개를 숙이며 뒤따랐고, 수용소 주변을 경비하는 잉글랜드 병사들도 심하게 인종차별을 했던 기억을 감추고 투구를 벗어 조의를 표했다.
“세상에! 밤새 수십 명이 죽은 거여요? 아아!”
“비올레타! 정신 차리시오!”
비올레타가 충격을 받아 실신하고 말았다. 주치의가 달려와 건강에 큰 문제는 없다고 알려줬으나 침전에 옮겨진 비올레타는 30분이 넘어서야 깨어났다. 비올레타는 깨자마자 울음부터 터뜨렸다.
“전하! 저 가련한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물론이오. 식량을 구입해서 주변 지역에도 나눠주라고 했소. 북미에 가자마자 식량을 이곳에 대량으로 보낼 것이오. 아일랜드 전체를 구해주겠소.”
“반드시 그러셔야 해요. 여긴 지옥이에요!”
식량을 아일랜드에 보내주면서 더 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러나 일단 사람 생명부터 살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아일랜드 이민자 2천여 명을 수송선에 태웠다. 탈락한 자들이 마치 버림받은 듯이 서럽게 울부짖었으나 사나흘 간의 항해도 버티지 못할 체력이라 배를 타는 것은 위험했다. 박 주부가 그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먹어야 했다. 이슬람 노예 시장에서 구했으나 고향에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한 자들 2천여 명과 합쳐 거의 5천 명이 수송선에 나눠 타게 되었다.
출항 직전에 물을 긷는 동안 이민호가 국왕좌승함의 전단 회의실에 들렀다. 대서양과 북미, 유럽이 다 들어가는 커다란 해도대를 가운데에 놓고 전단 참모들이 회의를 하고 있었다.
전단 참모진은 대서양을 한 바퀴 도는 대서양 항로를 선택해 세부 항로를 잡고 있었다. 수송선과 여객선 외에 순양함이 포함된 함대가 대서양 항로를 답사하는 것이 이번 순행의 목적에 포함돼 있었다.
“전단장! 사람들부터 살려야 하니 새강릉까지 직행하도록 합시다.”
이민호는 아프리카 서해안까지 남하했다가 북적도 해류를 타는 대서양 항로를 항해해보고 싶었지만 지금 수송선에 태운 민간인들이 너무 많았다. 수용소에서 며칠 회복했다 해도 체력이 약해 항해 중에 얼마나 죽어갈지 몰랐다. 이들을 최대한 빨리 새강릉에 실어 나르는 일이 급선무였다. 식량을 모아 아일랜드에 수송선도 보내야 했다.
“어명을 받자와 북쪽 항로를 잡겠습니다, 전하. 헌데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는 들르지 않으시겠습니까?”
“어차피 덴마크 왕국하고 협의하기 전에는 무의미할 것 같소.”
“그럼 뉴펀들랜드까지 직항 노선을 탄 다음 해안선을 따라 남하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전단장이 참모들과 함께 새로운 항로를 긋는 것을 보면서 이민호가 밖으로 나왔다. 집무실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산국 국왕폐하! 저는 아일랜드 해방군 대장이 보낸 전령입니다.”
“편지인가?”
통역장교가 장갑을 끼고 스페인어로 된 편지를 번역해줬다. 편지는 1554년부터 시작된 반란군 단체의 오랜 역사와 규모, 아일랜드의 구교도들로부터 폭넓게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전령의 신분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방문 목적은 전령이 직접 말한다고 했다.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습니다. 현재 아일랜드에 독립을 추진하는 무장 단체가 여럿 활동하고 있지만 저희 아일랜드 해방군이 동부와 남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요청 사항이 있나?”
“그렇습니다. 저희 아일랜드 해방군에 무기와 식량을 지원해주십시오. 나중에 독립하게 된다면 고산국에 충분히 보답을 하겠습니다.”
“더블린에서 이민을 보내고 있어서 잉글랜드의 눈치를 봐야 한다. 아일랜드는 도로 사정이 워낙 나빠서 다른 항구로 옮길 수도 없어. 그래서 지금 당장 무기 지원은 곤란하고 식량만 지원해주겠다. 일반 주민과 무장단체에 동일하게 지급하겠다.”
무장 단체에 식량을 주면 주민들에게 배급하지 않고 더블린에서 팔아 외국에서 화약무기를 사는 구도가 그려졌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주민이 우선이었지만, 목숨을 걸고 독립투쟁을 벌이는 무장반란군 입장에서는 그런 선택을 하기 쉬웠다.
아프리카 반군들도 원래 봉기 목적과 달리 유엔에서 배급한 식량을 주민들로부터 약탈하는 경우를 뉴스를 통해 숱하게 접한 이민호였다. 무장반군 세력을 이용해 주민들을 인질로 삼아 개인적인 치부를 하는 지도자가 있다면 상황은 최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무기도 급합니다. 더블린을 우리 해방군이 점령한다면 북미 이민이 훨씬 쉽고 자유롭게 이뤄질 것입니다.”
“화약 제조는 문제가 없나?”
“예. 밭에 말똥을 뿌려서 쉽게 제조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머스킷 생산 능력이 딸려서 많이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식량과 함께 가장 큰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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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더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