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11 53. 북미 순행 =========================================================================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모호크 부족이나 이로쿼이 연맹을 조만간 제재하기로 했다. 이민호는 원래 북미 원주민 부족을 공격하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북미 원주민들이 원래 이 땅의 주인이라는 의식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호전적인 모호크 부족이 반드시 주변 부족들을 공격하게 돼 있었다. 새원산 주변 부족들을 지배 아래에 둔 다음에는 다시 새원산을 지키는 고산국 병력과 싸우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우호적인 부족들이 남아있는 지금 모호크 부족을 선제공격하는 편이 나았다. 적당히 화약무기의 위력을 과시하면 모호크 부족을 비롯한 이로쿼이 연맹 원주민들이 앞으로 얌전하게 처신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로쿼이 연맹이 거주하는 숲지대 깊숙이 들어가 공격할 병력이 없었다. 이민호는 가장 먼저 새원산 주변을 지키는 여진 기병 2천을 떠올렸다. 이 세상 어딜 가도 강력한 위력을 발휘할 만한 병력이었다.
그러나 철도 예정지 주변 일부를 제외하면 북미 북동부에는 산악지대와 숲이 많아 기병이 활동하기에는 불편한 곳이었다. 물론 말이 있으면 이동하기 편하지만 전투력 면에서는 기병부대가 보병에 비해 크게 나을 것이 없었다. 계곡이나 숲길 같으면 오히려 기병이 불리할 수도 있었다.
“전하! 이로쿼이 연맹을 공격하실 때 저희들에게 선봉을 맡겨주십시오!”
“포우하탄 전사들이 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나?”
생각해보니 포우하탄 부족 연맹은 이민호가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전력이었다. 게다가 원주민들은 숲속에서 빠르게 뛰어다니며 매복과 유인 작전에도 능했다.
그러나 대평원에 거주하면서 들소를 따라다니며 사냥하는 부족이라면 몰라도 산악지형이 많은 동부에서 600km 거리는 너무 멀었다. 건강한 전사들만 모아도 걸어서 대략 15일은 넘게 걸린다고 봐야 했다. 그러나 포우하탄 연맹의 대추장 와훈수나콕은 자신감이 넘쳤다.
“여진족 형님들에게 기마술을 거의 다 배웠습니다. 말을 타고 6일이면 모호크 부족 본거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여진족 형님들?”
“전하께서 저희 부족에게 말을 타고 다니라고 몇 백 마리를 주셨지 않습니까? 새원산을 지키고 계신 여진족 형님들에게 가서 부탁했더니 말 타는 법을 친절하게, 으드득! 가르쳐주셔서 이제 제법 잘 탑니다.”
포우하탄 부족 연맹의 영토가 워낙 넓어서 마차나 몰고 다니라고 말을 몇 백 마리 넘겼던 기억이 났다. 그런데 대추장이 이민호 이름을 팔아 여진족 기병에게서 기마술을 전수받은 것 같았다. 큰일 났다. 이민호는 눈앞이 캄캄했다.
실제 역사에서 야생마를 길들여 등자도 없이 기마술을 스스로 배운 원주민 전사들에게 에스파냐와 미국이 쩔쩔 맸었다. 그런데 여진 기병이 포우하탄 부족 연맹 전사들에게 기마술을 직접 가르쳤다면 북미 원주민 부족들 사이에서 완전히 밸런스가 붕괴됐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부족 전사 전원이 철제 무기를 갖춘 부족은 포우하탄밖에 없었다.
“앞으로 포우하탄 부족 연맹은 고산국의 지배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한다. 이해하겠느냐?”
“물론입니다! 고산국 밑에서 얼마나 살기 좋은데요?”
식량 문제 완전히 해결됐지, 전염병은 확 줄었지, 다른 부족 연맹으로부터 공격받을 염려도 없었다. 요즘 포우하탄 부족은 천둥새와 동맹을 맺은 것처럼 안심하고 살 수 있었다.
“명령 없이는 다른 부족 경계를 넘어가지도 마라. 큰일 나겠다.”
“저희 연맹은 원래부터 강했습니다. 고산국이 오기 전에도 알곤킨이나 이로쿼이 부족 연맹과 대등한 수준이었습니다. 이제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러나 포우하탄 부족 연맹에 딱 하나 문제가 있었으니, 요즘에는 전쟁을 할 기회가 확 줄어들었다는 것이었다. 와훈수나콕이 주변 30여 부족들을 통합해 부족 연맹으로 성장해나가는 동안, 전사들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쌓으면서 상위 전사로 승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에는 전사들이 전투에 나갈 수 없어 신분 상승 욕구를 해소할 길이 없었다. 재산을 늘리고 노예를 얻는 것은 부수적인 결과에 불과했고, 전사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전투와 신분 상승이었다.
“전하! 전투를 하고 싶습니다. 이번 전쟁에 저희들을 데려가주십시오.”
대추장 와훈수나콕이 마치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면서 무릎 꿇는 만화 주인공처럼 강렬한 염원을 담아 이민호에게 간청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로쿼이 부족 연맹을 치기에는 지상군 병력이 부족했다.
“전하! 모호크를 치러 언제 출전하시겠습니까? 오늘부터라도 전쟁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다음에 올 때 병력을 충분히 데려오겠다. 몇 달 걸리겠지. 내년 봄에 다시 오겠다.”
지중해의 이슬람 해적을 반 년 안에 없애기로 여러 나라와 약속했다. 그때 1개 여단을 새원산 북쪽에 파병해 이로쿼이 부족 연맹에 겁을 줘서 오대호 주변까지 시원하게 길을 뚫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때 대추장에게 전령이 달려와서 보고했다. 전령과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던 대추장이 이민호에게 내용을 전했다.
“그럼 늦을 것 같습니다. 모호크 부족 외에 이로쿼이 동맹의 여러 부족에서 전사들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레나페 족이 저희에게 급히 구원을 요청했습니다.”
“곧 전쟁이라고? 언제?”
이민호는 북미 원주민들이 얼마나 몰려오든 새원산이 점령될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맨해튼 섬에는 기병과 보병 1개 중대씩 주둔하고 도로 공사하는 인부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진족 기병 2천도 파견했다. 이민호나 함대가 없어도 방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모든 백성의 보호자인 국왕 입장에서 새원산에서 전쟁이 난다는데 무시하고 떠나기는 어려웠다. 가까운 시일 내에 전쟁이 일어날 예정이라면 이민호가 직접 참전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보름달이 뜨는 날의 저녁이라고 했으니, 어? 바로 내일입니다.”
“뭐야? 진작 좀 말하지 그랬어!”
“저도 방금 전까지는 전쟁이 일어날 날짜를 몰랐습니다.”
잠시 후에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온 레나페 족 사절들이 이민호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와훈수나콕 대추장이 중간에 통역을 맡았다.
“알았다. 포우하탄 부족 연맹은 내일 낮까지 이곳 항구에 전사들을 모아와라.”
“전쟁입니까? 혹시 말 탄 전사만 가능합니까?”
“말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대추장은 포우하탄 전사로서 전투를 원하는 자들을 이곳으로 모두 불러들이되, 마을을 지킬 전사들은 남겨둬라. 내가 직접 출진할 테니 그리 알고 레나페 족 전령은 이만 돌아가도 좋다.”
“예! 감사합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와훈수나콕이 신이 나서 만찬장을 뛰쳐나갔다. 잠시 후 대추장이 데려온 전사들이 전령으로서 여러 부족 혹은 마을로 달려갔다. 말 달리는 소리가 새강릉 전체에 울려 퍼졌다.
“대추장은 전쟁을 너무 좋아한다.”
“그래. 그게 문제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해야 할 때도 있단다, 포카혼타스.”
꼬마가 아기를 안고 이민호와 눈을 맞췄다. 마르그레타도 포카혼타스가 자기를 좋아해주는 것을 알았는지 품에 안겨서 잘 놀았다.
“대추장은 전쟁을 좋아해서 더 이상 영토를 넓히지 못했다. 더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전투 능력보다는 사람들을 품을 아량이 있어야 한다. 대왕은 대추장보다 위대한 사람이니 훌륭한 선택을 할 것으로 믿겠다.”
“그럴게. 근데 너 며짤?”
“네 짤!”
포카혼타스가 똑똑하다기보다는 주변에서 하는 소리를 생각 없이 따라한 것에 불과한 것 같았다. 아니면 원주민들이 말하는 것처럼 아주 잠시 위대한 령이 포카혼타스의 입을 빌려 이민호에게 말한 것이었을 수도 있었다.
“만찬 분위기 다 망쳤군. 참판! 올해 새강릉의 수확량은 어느 정도요?”
“쌀은 5십만 석, 도정하지 않은 밀은 8백만 석입니다. 옥수수는 하도 많아서 아직 계산을 못했습니다. 옥수수는 농사를 도와준 원주민 마을에 대량으로 넘기고도 많이 남아서 가축 사료로 쓸까 고민 중입니다.”
어쩐지 12층 건물 옥상에서 바라본 경작지가 서쪽 지평선을 훌쩍 넘어간다 했다. 농가 겨우 천여 가구가 수확한 곡식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벼 기준으로 농가당 평균 천 석이 넘었으니 다들 천석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실제 내용은 더 좋았다. 강변의 5백 가구가 쌀농사를 전담했으며 나머지는 밀과 옥수수, 그리고 각종 야채를 재배했다. 쌀농사 가구는 쌀만천석 이상을 수확했다.
농가 수입은 세금 절반을 제하고도 백미 500석, 은 250냥이면 매달 20냥이 넘었다. 본토 농민들보다 두 배 가량 수입이 좋았다. 물론 쌀 외에 여러 가지 작물을 재배했으니 실제 수입은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농가 다섯 가구에 한 대씩 빌려준 경운차를 농민들이 일 년 수입을 모아 아예 사버린 경우가 많았다. 농가마다 경운차 한 대씩 필요하다고 요청해서 본토에서 계속 제작해서 보내는 중이었다.
“다행이오. 농민들을 천석꾼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약속은 첫 해부터 지켜준 셈이군요. 본토에도 소식이 전해졌을 텐데, 농민들이 많이 이주하고 있소?”
“안타깝게도 새인천에 밀렸습니다. 거기는 기본이 벼가 아닌 백미 기준으로 가구당 2천석입니다. 여기보다 수확량이 네 배나 많습니다.”
정확히는 새인천과 그 북쪽의 평원이었다. 유구국이 받은 평원 절반에서 아직 반도 농지로 개간하지 못했는데 벌써 수확량이 넘쳐났다. 유구국이 나라 전체를 새 나하로 옮기겠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게다가 새인천은 2모작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긴 이제 2년 3작을 시도하는 중입니다. 본토에서 농민들이 이주해오기는커녕 오히려 새강릉 농민들이 새인천으로 가려는 것을 간신히 말렸습니다.”
“크윽! 너무 압도적이구려. 하지만 거긴 곧 한계가 올 것이오. 서부는 비옥한 땅보다는 황무지가 훨씬 많소.”
새인천에서 대풍을 이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고산국에서 농민들이 대거 이주하는 중이라고 했다. 조만간 평원 전체를 개간할 수 있을 듯싶었다. 비옥한 땅이라 그곳이 가장 먼저 개간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동부 해안은 인기가 없었다. 기후가 좋은 새동래 쪽에 열대 과일을 재배하려는 농가가 일부 이주했다고 한다. 그래도 농경지 면적은 동부와 북부 오대호 연안이 훨씬 더 넓었다. 조만간 미시시피 강 유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된다면 수확량은 서부와는 비교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였다.
“밀이 너무 많이 남습니다. 하필 복건 노무자들은 밀가루보다는 쌀을 주로 먹습니다. 아일랜드 이주민들이 밀과 호밀을 주식으로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솔직히 반가웠습니다. 쌀과 달리 밀은 장기간 보관이 힘드니 모리스코 사람들에게 공급할 것을 제하더라도 최소 5백만 석을 일 년 내에 처분해야 합니다.”
“건조한 땅에 가급적 밀을 심으라고 한 사람은 나요. 밀은 내가 처분해주겠소. 일단 아일랜드에 보내야지요.”
아일랜드에서 밀농사를 짓더라도 아일랜드 사람들이 비싼 밀가루를 먹는 경우는 드물었다. 일부 아일랜드 지주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영국 성공회로 개종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호밀, 나중에는 감자만 먹었다.
“그렇다면 앞으로 밀을 더 생산해도 되겠습니까? 약간 건조한 지역은 밀 생산에 적격입니다.”
“물론이오. 유럽의 밀 가격이 여기보다 훨씬 높소. 다른 나라에 밀을 수출하면 운송료를 제하고도 이익이 많이 남을 것이오. 아일랜드에 매년 4백만 섬씩 넘기고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소.”
아일랜드 사람들은 부족한 식량을 고산국에서 지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식보다 좋은 밀을 지원받는 호사를 누리게 생겼다. 수송만 원활하다면 잉글랜드나 스코틀랜드 사람들보다 훨씬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초기에 북미에 정착한 아일랜드 이주민들을 가급적 밀농사에 투입하기로 했다. 경운차 같은 농기계를 운용하기 어렵겠지만 앞으로 계속 인력이 늘어날 테니 어떻게든 밀농사가 확대될 것으로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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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늦게 올리게 돼서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