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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537화 (486/1,000)

00537  56. 지중해 원정  =========================================================================

다음 날 낮에 지다를 떠나 그 다음 날 저녁에 수에즈 운하를 통과했다. 여기서부터 지중해였다.

운하를 건설하면서 놓은 철도는 지금은 선로가 뜯겨 나가 그저 야트막한 언덕으로 남았다. 수에즈 운하에서 회수한 선로를 북미로 가져가 새원산 북쪽에 다시 깔았다. 오대호 주변에서 산출되는 철광과 석탄을 이용한 제철소가 가동하기 전까지는 철 부족 만연 사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수에즈 운하 출구 동쪽 항구에서 하룻밤 정박하고 오전에 출발하기 직전, 이집트 총독을 비롯한 고위 장군들이 찾아왔다. 이민호는 급히 총함장 이순신과 육군 총사령관 계복을 국왕좌승함으로 불렀다. 투르크어 통역 장교 외에도 갈라티아 궁녀 두 명이 통역으로 나섰다.

이들은 이집트 총독 외에도 이집트에 주둔하는 오스만 제국의 4개 군관구 사령관들이었다. 몇 명은 맘루크 출신 고위 장교들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감시자인 재정관과 예니체리 군관구 사령관 2명이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이민호는 반란 의도를 직감했다. 인사를 마치고 총독이 결론부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집트를 기반으로 독립하고 싶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시오.”

“고산국 국왕폐하께서 결정만 하신다면 이집트에 주둔하는 예니체리들을 모두 죽이고 이집트 독립을 선언하겠습니다. 이집트는 고산국의 영원한 우방이 될 것입니다.”

“이집트의 군벌인 맘루크들도 거사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이 시기 이집트 총독은 맘루크 왕조 시절의 기득권층인 맘루크 출신이었으나, 맘루크를 일반적인 이집트 사람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군관구 사령관들도 이집트 사람이 아니라 오스만 제국 출신이었다. 이들은 이집트 백성들을 위해 독립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집트의 세습 지배층으로 남고 싶은 것뿐이었다.

“오스만 제국에 반역을 획책하는 것이오?”

“제국은 이미 늙었습니다. 현재 헝가리에서 진행되는 전쟁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국은 외부의 도전에 제대로 대응조차 못합니다. 그리고 조만간 내분으로 갈기갈기 찢겨질 것입니다.”

“역사상 어느 제국이라도 창업 군주 시대를 제외하곤 항상 늙은 상태요. 예니체리 사령관들이 참가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제국에 충성하기 때문이오?”

총독과 군관구 사령관들이 피식 웃었다.

“그들이 충성하는 대상은 황제가 아니라 자기네 조직뿐입니다. 그리고 그 황제의 노예 놈들은 욕심이 많기에 이번 거사에서 제외했습니다. 만약 예니체리 노예 놈들이 이번 반란에 참가한다면, 성공하기 전부터 이집트의 이권 대부분을 차지하겠다고 저희들에게 싸움을 걸 놈들입니다.”

“반란을 일으키려면 그대들이 알아서 하지 왜 나한테 온 것이오?”

“그야 폐하께 바다를 막아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리아 쪽으로 접근하는 제국 진압군은 저희가 상대하겠습니다.”

나일 강과 수에즈 운하를 방어선으로 삼으면 적은 병력으로도 지상군의 진격을 쉽게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오스만 제국이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병력을 움직인다면 육지가 아니라 바다 쪽이 결정적인 전장이 된다고 봐야 했다.

이집트 총독과 군관구 사령관들은 고산국 해군의 강함을 이미 충분히 듣고 있었다. 고산국 함대가 북아프리카 해적뿐만 아니라 프랑스 사략선 함대도 아주 짧은 사이에 전멸시켜서 이 시대 기준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해전이 되었다. 그래서 정확한 정보가 오히려 과장된 소문으로 오해받을 정도였다.

“반란이 성공하면 내게 줄 이익이 뭐냐는 질문이었소.”

“고산국에서는 수에즈 운하 이용도를 높이고 지중해 무역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북아프리카 해적들을 쳐야 합니다. 폐하께서 작년에 유럽에 오셨을 때 공개석상에서 여러 번 해적 퇴치를 단언하신 줄로 압니다.”

“그렇소. 그래서 이번에 오스만 제국과 협상하러 가는 길이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서는 고산국 해군이 북아프리카의 해적을 퇴치하도록 허용할 리가 없습니다.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밀리는 해군 전력을 북아프리카 해적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요.”

“결국 고산국은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 저희들은 폐하의 강력한 우군이 될 수 있습니다.”

이집트 주둔 총독과 군관구 사령관들이 이런 생각을 할 정도면 이스탄불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며 미리 대비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통역을 들은 이순신과 계복도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오스만 제국과 싸울 이유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남단을 우회해도 되고, 지금처럼 오스만이나 이집트에 상품을 넘겨도 큰 상관은 없었다. 오히려 지중해에서 아무도 못 건드리는 고산국 상선들이 지중해 무역을 독점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다.

이민호는 세계 무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여러 나라의 상선들이 자유롭게 지중해를 오가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이렇게 오해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폐하께서 만드신 수에즈 운하를 진정한 주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이집트 혹은 오스만 제국과의 공동운영이나 100년 간 조차가 아니라 아예 영원히 고산국 영토로 인정해드리겠습니다.”

“풋! 언제든 약속을 어기겠다는 뜻으로 들리오.”

이민호는 파나마 운하에서 그랬던 것처럼 수에즈 운하도 마찬가지 이유로 직접적인 소유를 포기했다. 남의 영토 한가운데에서 소수 병력으로 운하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만약 대규모 병력을 파견했다간 주둔 비용이 아니라 향수병에 시달리는 병사들이 일으키는 반란 때문에 큰일이 날 것 같다는 것이 이민호의 예상이었다.

그리고 운하 같은 토목사업의 결과물은 그 지역을 영토로 가진 국민이 가져야 한다는 것이 이민호의 생각이었다. 자연 경관이나 지하자원처럼 특정 개인이나 외국 정부가 사유화할 수 없었다. 물론 수에즈 운하 건설비용은 뽑아내야 했다.

“폐하께서는 이집트에 주둔한 수만 병력을 공짜로 얻는 셈입니다. 오스만 제국 같은 큰 나라와 전쟁을 하려면 필연적으로 장기전이 될 것이며, 보급선 유지를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로 저희들이 운하를 지키고 있습니다.”

“나를 협박하는 것처럼 들리는구려.”

“현실이 그렇다고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집트에 무기와 화약을 지원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민호는 이순신과 계복에게 지금까지 논의된 것을 간단히 설명하고 의견을 구했다. 계복이야 항상 싸우고 싶어 하면서도 이민호의 눈치를 살폈고, 이순신은 이 상황에서 고산국에 도움이 될 만한 제안을 하려고 고민했다.

“비록 저들이 오해했다지만 선택권이 많다는 것은 전하께 좋은 일입니다. 전하께서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할 의도가 없더라도 협상과정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해적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 전체와 싸운다면, 현재 준비한 전력이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진언 드리고 싶습니다.”

“옳으신 말씀이오. 우리는 오스만 제국을 설득해서 북아프리카 해적들을 치려고 온 것뿐이오.”

“그렇습니다. 결정은 전하께서 하시겠지만, 만약 오스만과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면 이집트를 먼저 얻으셔야 합니다. 우회하면 보급로가 최소 3배 이상 늘어난다는 사실만 기억해 두십시오.”

이민호는 태평양을 건너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대서양을 횡단한 다음 다시 지중해로 들어가는 보급선을 생각했다. 그러나 그 거리는 수에즈 운하를 통하는 것보다 5배 정도 거리였다. 이순신이 말한 보급선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지브롤터 해협을 통해 지중해로 진입하는 경로였다.

“그런데 형님은 진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전쟁을 할 것인가 하는 선택은 전하께서 하십시오. 일단 전쟁이 결정된다면 군인은 그 어떤 조건에서도 적을 이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 조건을 유리하게 바꿔 나가는 게 중요하겠지요.”

“형님이라면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하겠습니까?”

“군인에게 전쟁을 해야 하는지 물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스만과의 전쟁에서 이겨서 무엇을 얻으려 하십니까? 지중해입니까? 아니면 석유가 나는 아라비아 반도입니까?”

“그게 문제입니다. 전쟁을 해서 우리가 얻을 게 없어요. 지중해에서 무역을 자유롭게 한다 해도 다른 나라들이 더 많은 혜택을 얻을 것입니다. 영토도 아라비아 반도 정도라면 욕심이 나지만, 모래사막에서 낙타와 말을 타고 달리는 유목민들을 복속시키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황무지로 인식하는 드넓은 사막과, 석유 매장량을 염두에 둔 아라비아 반도의 가치는 차원이 아예 달랐다. 그러나 석유의 가치를 아는 이민호도 아라비아 사람들을 다스려야 한다는 명제 앞에서는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만약에 고산국에 석유가 부족하면 아라비아에서 사서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었다. 고산국을 이어갈 후손들에게 이 세상의 모든 석유를 독점시켜줄 이유도 없거니와, 영토를 지키기 위해 아랍 사람들과 수백 년 동안 열사의 사막에서 싸우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역시 전하께서 영토를 욕심 낼 이유가 없으십니다. 그렇다면 오스만 제국을 설득해 북아프리카 해적들을 해산시키는 것이 최선입니다. 일단 오스만 제국과 대화를 해보십시오.”

“알겠습니다. 그게 당연한 순서겠지요.”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이민호는 이집트 총독과 군관구 사령관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잘 설명해서 보냈다. 일단 오스만 제국과 협상을 해보고,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전쟁을 할 경우 이집트의 독립과정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절대 이들을 배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증명하기 위해 선물을 잔뜩 안겨줘야 했다. 특히 군관구 사령관마다 머스킷 200정씩을 나눠주면서 군관구 병력의 화력을 강화시키도록 했다.

“그런데 이집트인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군요.”

“오래 전부터 인류의 문명을 대표했었는데 지금은 모든 이집트인들이 이민족의 노예일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다른 족속들을 노예로 만들지는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같은 족속을 노예로 만들려고 혈안이었는데 말입니다.”

“노예제도가 별로 효율적인 경제제도는 아닙니다. 특히 고산국에는 전혀 안 어울립니다.”

실제 역사에서 남북전쟁 이후에도 미국 남부에서 모든 흑인 노예들이 전면적으로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임금이 싼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노예제를 유지하는 것보다 경제적이라는 사실이 남부 농장주들에게 알려지면서 노예제는 진정으로 종말을 맞이했다.

고산국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처럼 소작농 제도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농민들을 북미나 호주로 보내 대농장을 경영하게 함으로써 훨씬 많은 세곡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인력이 부족해 농민들이 원주민들을 임금 노동자로 고용하고 있지만, 그들이 없다 해도 수확량 일부를 과감히 포기하는 식으로 경영 효율을 기할 수도 있었다.

“고산국과 조선의 백성들이 노예로 전락하지 않도록 전하께서 잘 이끌어주십시오.”

조선의 옛 신하로서, 그리고 조선 민족으로서 이순신은 항상 조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도 조선 출신이므로 조선 출신 사람들의 감정을 이해해야 했다.

“형님이 많이 도와주셔야지요. 지금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군사력은 중요합니다. 특히 해군이 핵심입니다.”

“물론입니다, 전하. 하지만 고산국에 충성하는 사람은 일단 저 하나뿐입니다. 자식의 앞길마저 충성을 위해 바치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이 말을 마치고 이순신이 함대 기함으로 돌아갔다. 아체 술탄국 여 제독의 딸을 이면에게 시집보내려고 한 것을 두고 이순신이 아직도 꽁해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문제는 분명히 이민호가 잘못했다. 훌륭한 제독이라는 공통점 때문에 두 가문을 이어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면이가 첩 좀 거느릴 수도 있잖아요.”

이순신이 기함에 탑승한 것을 확인한 다음 이민호가 투덜거렸다. 아무리 10년 넘게 이순신을 형님으로 모신 이민호라지만 면전에서 투정을 부릴 자신이 없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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