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38 56. 지중해 원정 =========================================================================
이집트 총독과 군관구 사령관, 맘루크 고위 장교들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이집트 여러 주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맘루크들이 찾아왔다. 일부러 수에즈 운하 북단에서 하룻밤 정박해 방문할 시간을 준 효과가 나타났다.
이들은 수에즈 주변 네 지역의 최고 행정관, 재정 담당관, 그리고 순례 집행관(Amir al-Hajj) 등의 요직에 오른 자들이었다. 맘루크이긴 한데 처음부터 군인이 아닌 자들이었다.
맘루크를 노예 병사로만 알고 있던 이민호는 잠시 혼란에 빠졌다. 비슷한 성격의 예니체리도 보병만 있는 것이 아니고 오스만 궁성에 위치한 상위 학교에서 양성된 자들은 제국의 고위 관료로 진출했다. 그러나 맘루크들은 능력을 바탕으로 누가 임명해준 것이 아니라 군사력을 이용해 스스로 기득권을 차지한 자들이었다. 이 시기 예니체리도 맘루크처럼 권력 투쟁 현장에 수단이 아닌 주체로서 참가하고 있었다.
“폐하! 안타깝게도 총독이 너무 서두른 감이 있습니다. 곧 예니체리 군관구가 하나로 줄어들 테니 바로 그때 반란을 일으켜도 늦지 않았습니다. 총독은 군관구 사령관들의 힘을 이용하고자 하지만 그들도 결국 오스만 제국의 인간들일 뿐입니다.”
나중에 예니체리 군관구가 하나로 줄어들면서 나머지 5개 군관구들이 예니체리 군관구를 지원하는 형식으로 바뀐다. 사령관(Agha) 6명 모두가 똑같이 황제에 의해 임명된다 해도 예니체리 군관구 병력이 이집트 군사력의 핵심이라는 뜻이었다.
대화를 해보니 행정권을 장악한 맘루크들도 결국 반란에 참가하기로 결정한 것 같았다. 이집트 맘루크 출신인 임기 1년의 총독, 제국에서 파견된 비 예니체리 군관구 사령관들, 맘루크 출신 행정관들이 힘을 합쳤다. 원래 역사보다 반란이 5~6년 일찍 일어난 셈이었다.
“그대들은 맘루크 왕조의 부활을 염원하는 거요?”
“이미 사라진 왕조, 미련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의 오랜 지배층인 저희 맘루크들이 오스만 제국을 몰아내고 이집트를 되찾을 자격을 갖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250년 동안 맘루크 왕조를 이끌었던 맘루크들은 자부심이 넘쳤다. 만약 다른 4개 군관구 병력으로 2개 예니체리 군관구 병력을 제압해 반란이 성공하면 제국에서 파견된 군관구 사령관들은 당연히 숙청 대상이었다.
그러나 군관구 사령관들은 맘루크들을 쉽게 부릴 수 있는 수족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제국을 상대로 한 반란보다는 성공한 다음에 일어날 내분이 더 재미있게 진행될 것 같았다.
“이집트인들과 협의는 어떻게 했소?”
“이집트 농민들 말씀입니까? 그들은 세금이나 내는 노예와 같은 자들입니다. 영토를 지키는 일에 참가하지 못하는 자들은 권력을 나눠먹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집트인들은 이집트의 권력에 참가할 권리를 전혀 나눠 갖지 못하고 그저 피지배민을 형성했다. 만약 불만이 있다면 종교계 원로 역할을 하는 울라마를 통해 권력층에 요구 사항을 진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렇구려. 잘해 보시오. 이 시대는 중동이든 유럽이든 무기를 들지 않는 자들에게 권력을 나눠줄 정도로 호락호락한 세상이 아닌 것 같소.”
“바로 그렇습니다, 폐하. 맘루크나 예니체리나 다 같은 노예였지만 무기를 들면서 권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대들도 무력에서 벗어난 자들 아니요?”
“물론 저희는 군대와 상관이 없는 맘루크입니다. 그래도 저희는 목숨을 내놓으면서 선택을 하고, 실패했을 때는 책임을 집니다, 폐하.”
누구든 권력을 누리려는 자는 일단 목숨을 내놓을 각오부터 해야 한다. 조선과 명나라에서 군인이 권력에서 철저히 배제됐지만 문관들도 권력 다툼에서 패하면 망나니의 칼 앞에 목을 내밀어야 했다.
그러나 맘루크 왕조가 멸망할 때 일부 맘루크들이 왕조를 배반하고 오스만에 붙음으로써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권력을 추종하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믿을 수 없는 자들이었다.
“나는 오스만 제국과 전쟁을 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오. 맘루크들이 이집트 독립을 위해 거사를 일으킨다면 방해하지는 않겠소. 다만 도와주지도 않겠소.”
“실망입니다, 폐하.”
“고산국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오. 하지만 만약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과 싸우게 된다면, 그대들의 독립 운동을 지원해주겠소. 다만 전쟁 기간 동안 나를 도와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맘루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이집트 독립전쟁이 이미 성공한 듯, 아니 이집트의 권력을 이미 쥔 듯 다들 몹시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동맹이 됐으니 당연합니다, 폐하!”
“아직은 조건부요.”
“죄송하오나 저희들 입장에서는 고산국과 오스만 제국의 협상이 실패하길 빌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산국의 협상 시도가 실패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민호는 협상에 실패하더라도 오스만 제국과 반드시 싸울 필요는 없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군관구 사령관들과 맘루크들은 협상 실패가 곧 전쟁이라는 도식을 기정사실화했다.
“밤새 말 달려서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들 하셨소. 돌아가실 때 여비나 하시오. 부인에게 비단옷도 만들어주고 말이오.”
맘루크 고위 행정관들에게도 선물을 돌렸다. 사병들을 무장시키도록 머스킷 50정씩 나눠주고 진주와 비단, 옥 도자기 등도 하사했다.
맘루크들은 이민호를 이집트 독립전쟁 동맹의 종주로 인정해 황금과 보석을 공물로 바쳤다. 맘루크들은 고산국이 오스만의 대군을 물리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맘루크들이 돌아가자 이민호가 집무실에 산처럼 쌓인 금은보화에 파묻혀 헤엄을 쳤다.
“세상에! 이런 장사도 괜찮겠는데?”
“꺄아~ 전쟁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비를 다 챙겼어요.”
설비도 금은보화의 산에서 뒹굴었다. 그 사이 민영이 한숨을 팍 내쉬며 장갑을 낀 손으로 금은보화를 상자에 나눠 담았다.
“맘루크 행정관들을 속으로 욕한 게 미안해지네.”
“그렇다고 전쟁 쪽으로 결론내리지 마세요, 주인님.”
호위들과 시녀들이 동원돼 황금과 보석을 따로 상자에 담았다. 황금은 무게를 달면 가치를 알 수 있지만 보석은 감정을 따로 해야 정확한 가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황금만으로도 이미 몇 달 간의 전비를 충분히 넘겼다.
“이집트가 부자 나라였구나.”
“이집트 영토에 욕심 내지 마세요, 주인님.”
“물론이야. 하지만 매년 이 만큼만 준다면 오스만을 상대로 이집트를 지켜줄 수 있겠어.”
“그럼 맘루크들에게 제안해볼까요?”
“아니!”
단기적으로 이집트에서 오스만 세력을 쫓아낸다 해도 앞으로 진압군이나 해적 함대가 끊임없이 몰려올 것이다. 이들을 상대로 계속해서 이집트를 지킬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키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이민호와 시대가 안 맞지만 나폴레옹과 넬슨 제독도 한때 이집트에서 활동했다. 영국에게 이집트가 중요해지는 것은 인도를 식민지로 얻은 다음부터였다. 영국에서 이집트를 거쳐 인도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지키기 위해 영국은 많은 곳에 신경 써야 했다.
맘루크들이 돌아간 직후 함대는 바로 출항했다. 예루살렘 서쪽 항구도시 아슈도드 앞바다를 지나고 하이파와 시돈을 거쳐 오후에 레바논의 베이루트를 방문했다.
베이루트는 중근동 지방의 지중해 연안 도시들 중에서 가장 큰 도시였고, 5천 년 역사를 이어온 국제 무역항이었다. 지난 십자군 원정 기간에 절반쯤 파괴된 모스크 옆에 새로 지은 모스크가 서 있었다. 바로 옆에 동방정교회 교회 건물도 서 있었다.
베이루트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로서 형식상 다마스쿠스 총독령이었으나 1590년부터 애매하게 됐다. 베네치아와 제노바 외에 여러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과 프랑스 상선들이 부두에 정박하고 있었다. 쇠퇴했다고 들었던 동방 무역이 이곳 베이루트에서 나름대로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유럽 상인들은 이곳에서 명나라의 비단과 도자기, 인도의 향신료, 중앙아시아의 융단, 레바논의 사탕수수, 메소포타미아의 면화 등을 수입했다. 그리고 목재와 모직물, 와인 등 유럽의 상품을 이곳에서 판매했다.
고산국 함대가 수송선들과 함께 베이루트 항구에 입항하면서 아주 난리가 났다. 수송선이 부두에 접안하기도 전에 유럽인과 아랍인, 페르시아인, 유대인 상인들이 떼로 몰려들어 병사들이 질서유지에 동원돼야 할 정도였다.
이 지역 관리가 병사들과 함께 국왕좌승함에 올라 이민호를 영접했다. 이민호는 국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한 채로 관리를 배로 맞아들였다. 짧은 겨울 빼고는 항상 더운 지역이라 등에서 땀이 줄줄 흘러 내렸다.
“고산국 국왕폐하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베이루트의 세금 징수 청부인입니다.”
관리는 신약성서에도 등장하는 오래된 직업, 세리(稅吏)였다. 일정한 지역 내에서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라서 유럽의 지방 영주와 흡사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세리의 권력이 의외로 커서 주의 총독이나 주둔군 사령관과 권력 다툼을 하거나, 사병을 대거 동원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18세기 전반 갈릴리 지방의 세리 자히르 알 우마르는 해안 도시 아코(Acre)를 점령하고 오스만 제국의 황제로부터 독립적인 권력을 행사할 정도였다.
“고산국 함대는 이스탄불로 가시는 길이십니까? 베이루트에 머무는 동안 부디 많은 상품을 판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런! 우리는 휴식과 관광 목적으로 왔는데 말이오. 하지만 세금 징수 청부인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교역을 약간 해봐야겠소.”
현재는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의 우방으로 행세하고 있었지만 북아프리카 해적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랐다. 세리는 그런 사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전혀 개의치 않고 호의를 베풀려고 노력했다. 이 세리는 사실상 오스만 제국의 관리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수에즈 운하를 건설하신 고산국 국왕폐하께 여러 가지 명예로운 칭호가 붙은 것을 아시는지요? 순례자들의 길잡이, 노인과 아이까지 메카로 인도하는 자, 동방 무슬림의 보호자 등이 대표적인 칭호입니다. 저희 드루즈파에서도 폐하께 어떤 칭호를 올릴지 협의 중입니다.”
“영광스러우나 내게 과분한 칭호요.”
무슬림도 아닌데 그런 종교적인 칭호를 받아서 이민호는 낯이 뜨거워졌다. 어쨌든 수에즈 운하를 개통해 메카 순례가 편해지면서 무슬림들 사이에서 이민호의 인기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았다.
이민호가 세리에게 선물을 내주고, 세리가 감사 인사를 하며 고맙게 받았다. 세리 개인에게 가는 선물이 아니라서 양이 많은 편이었다. 선물은 이곳에서 교역하면서 내는 세금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옥 도자기와 나전칠기 등 완전히 생산자가 가격을 결정하는 고산국 독점 상품만 총독이 지명하는 상인들에게 적당한 물량을 내줬다. 드루즈파라는 소수 종파 신도로서 세리와 연결된 상인들은 옥 도자기와 나전칠기를 싸게 구입하는 특권을 누리며 기뻐했다.
그 사이 원정 함대와 동승한 고산국 어용상인들이 시장을 돌면서 레반트 지역의 상품 가격을 조사했다.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세 대륙의 갖가지 상품들이 만나는 지역이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직접 판매하기에는 어정쩡한 가격이었다. 당연히 유럽에 직접 가서 파는 편이 나았다.
“곧 라마단 기간이 돌아옵니다. 예전에는 낙타를 타고 갔으나 앞으로는 배를 이용해 순례를 하는 무슬림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탓에 순례자들의 집결지였던 다마스쿠스와 베이루트가 쇠퇴할지도 모르겠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폐하. 메카에 가기 위해 다마스쿠스에서 집결하던 순례자들이 올해부터는 베이루트로 몰려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주의 순례 집행관들이 저에게 배편을 문의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례자들이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많은 상품을 베이루트에서 구입할 것입니다. 아무리 낙타가 사막의 배라고 하지만 운송 능력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납니다.”
자신감 넘치는 세리는 이민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마친 다음 돌아갔다. 베이루트는 형식상 오스만 제국 영토이긴 하나 지금은 파흐르 앗 딘이 지도하는 드루즈파의 영지였다. 세리도 파흐르 앗 딘의 부하였다.
현재 베이루트를 비롯해 레바논 전 지역을 드루즈파의 수장인 파흐르 앗 딘이 지배하고 있었다.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그는 오스만 제국 황제로부터 이 지역의 통치권을 인정받아 반독립국을 운영해나갔다.
파흐르 앗 딘은 현재 유럽 여러 나라의 상인들을 초청해 무역을 확대하고 심지어 여러 유럽 국가들과 독립적으로 외교적 합의를 했다. 유럽인들이 학교를 세우고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포교할 정도로 베이루트는 중동 다른 지역과 전혀 다른 특색을 갖고 있었다. 기존에 레바논 지역에 존속하던 기독교 집단인 마룬파에 이어 다른 종교들이 동일하게 세력을 얻으면서 베이루트가 종교의 시장이라는 별명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드루즈파가 이렇게 유럽과의 교역을 장려하고 다른 종교에 관용을 베푼 덕에 베이루트가 최근 급격히 발전하고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중에는 정복전쟁을 계속해 다마스쿠스를 점령하고 한때 바그다드를 위협하게 된다.
“전하! 수에즈 운하 개통 이후 이 지역 향신료 가격이 절반으로 폭락해서 후추의 경우 인도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다섯 배에 불과합니다.”
“후추는 유럽에 가서 열 배로 팔면 적당하겠군.”
어용상인들이 돌아와 이민호에게 여러 가지 상품 가격을 보고했다. 현재 수에즈 운하 개통으로 말미암아 오스만 제국과 베이루트의 상인들만 크게 이익을 보고 있었다.
이민호는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에서 해적들이 설치도록 방치함으로써 무역 독점을 노리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곁다리로 베이루트도 무역 활성화로 인해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총함장님! 수병들과 해병들을 교대로 외출 시키십시오. 병사들에게 은 두 냥씩 내줘서 기념품을 사도록 하십시오.”
“오스만 제국이 긴장을 풀도록 하는 계책이십니까? 알겠습니다. 보병총을 제외한 기본 무장을 하고 권총을 휴대한 간부의 인솔 하에 열 명씩 붙어서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고산국 병사들 수천 명이 하루 종일 베이루트 시장과 시내를 돌며 관광을 했다. 외국의 항구 도시 관광은 원정군 병사들이 누리는 특권이었다. 이 지역 상인들도 아주 좋아했다.
“외국 군대 수천 명이 도시에 들락거리면 일단 긴장부터 해야 되는 거 아냐?”
“이들은 기본적으로 상인들이에요. 위험보다 이익을 먼저 생각해요. 그리고 고산국은 해적 외에는 함부로 공격하지 않는 평화로운 군대로 인정받고 있어요.”
레반트 지역에 와본 적이 있는 베네치아 시녀가 그렇게 말했다. 갑옷을 입은 프랑스 기사들이 중동 지역에서 평화롭게 기사학교를 운영하는 꼴을 보게 됐다. 아무리 오스만 제국 황제의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라지만 베이루트는 이 시대 기준으로 무척 특이한 도시였다.
============================ 작품 후기 ============================
점점 접근하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