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45 56. 지중해 원정 =========================================================================
바로 그렇게 생긴 자가 국왕좌승함에 탑승했다. 황제를 업고 뛰어온 환관이 지쳐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환관들의 도움을 받아 옷매무새를 다듬은 황제가 헛기침을 했다.
“반갑소이다. 고산국에서 도와줘서 정말 고맙소. 역시 최고의 우방이오.”
“제국이 어쩌다 이런 불행을 당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편하게 지내십시오. 혹시 어디 원하시는 곳으로 모셔드릴까요?”
“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우니 고산국 함대에 며칠 신세를 져야겠습니다.”
신뢰할 만한 신하가 지키는 곳으로 보내주겠다는데도 황제가 일단 사양하고 국왕좌승함에 머물기를 원했다. 반란 와중에 피아를 구별하기 어려워 곤란한 것은 제국의 황제도 마찬가지였다. 바로 며칠 전까지 잠재 적국이었던 고산국에게 목숨을 빚진 황제는 신하들보다는 차라리 외국 국왕을 신뢰했다.
“전하! 예니체리와 구르카 중대를 함대에 수용했습니다.”
“알았다. 함장! 국왕좌승함을 해안에서 멀리 물리고 순양함 다섯 척을 빼서 호위를 붙이게.”
“예! 전하. 반란군 놈들이 좌절하게 될 것 같습니다.”
오스만의 대포 사거리 바깥으로 국왕좌승함과 호위함들을 이동시켰다. 이로써 예니체리 반란군과 사라센 해적들이 오스만 제국의 황제를 잡거나 죽일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어쩌다 반란이 일어난 것입니까?”
“고산국에서 오신다기에 환영하려고, 험! 병력을 제도로 모았습니다. 외국의 국왕께 위세를 보일 기회니까요.”
“예. 뭐, 그렇겠지요.”
사라센 해적들의 존폐 문제를 두고 협상을 벌이다가 만약 수틀리면 고산국 함대가 이스탄불을 뒤집어엎을까봐 황제는 몹시 겁이 났다. 그래서 각지에 파견돼 있던 예니체리 부대들을 제도로 불러들였다. 심지어 헝가리에 파병돼 전투 중이던 부대도 지난달에 전령을 보내 황급히 소환했다.
예조 판서가 고산국으로 돌아가고 나서는 북아프리카에 사신을 보내 주력 사략선들을 이스탄불로 불러들였다. 원래는 고산국 함대 몰래 주변 항구에 숨어있을 계획이었는데, 고산국 함대가 이동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보스포루스 해협 양안에 주로 배치했다고 한다.
“그런데 무쉬르가 예니체리 장군들 중에서 반란 기도를 포착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조사권을 무쉬르에게 부여했지요. 그런데 그 놈이 그 권한을 이용해서 저에게 충성스러운 예니체리 장군들을 인질로 삼은 다음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무쉬르는 계급은 제국 육군 원수, 직책은 제국 육군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칭호였다. 오스만 제국의 중앙군은 예니체리를 비롯한 여러 병과로 세분된 카프쿨루, 지방군은 주로 시파히 기병으로 구성됐다.
“누가 반란에 참가했는지 확인됐습니까?”
“그게, 조만간 밝혀지겠지요.”
황궁 근처에 집결한 군대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지만 모두가 친황제파를 자칭하고 있었다. 물어 보면 다들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고 변명했다. 황제를 추격하다가 구르카 용병들에게 저지당한 예니체리 부대도 그저 황제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변명을 했다.
그러나 이들 예니체리 부대들은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해 어제까지 동료였던 다른 예니체리 부대를 공격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해적들이 약탈에 나섰다고 했다.
“해적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무엄하게도 예니체리 중에서 일부 부대가 반란을 일으켰고, 바르바리 해군은 분위기를 틈타 약탈에 나선 것입니다. 반란군이나 도둑놈이나 똑같은 역적이지요.”
황제 친위군이라 할 예니체리 부대들끼리 싸우는 와중에 해적들이 어느 한 편을 들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국의 해군 제독이 황궁에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않아 해군 지휘권이 붕괴된 것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그래서 사라센 해적들은 통일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고, 일부가 황궁에 난입해 약탈에 참가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이미 사라센 해적들의 운명은 결판났다.
- 쾅!
“어이쿠!”
누군가 머스킷 개머리판을 바닥에 내려치는 바람에 이민호가 깜짝 놀랐다. 그런데 그 머스킷을 든 자는 뜻밖에 화려한 옷에 장신구를 주렁주렁 매단 백인 여자였다.
“황제는 하렘의 여자들을 챙겨서 탈출하지 못했소. 자기 여자들을 지키지 못하고 도망친 황제가 백성들에게 얼마나 우습게 보이겠소?”
“나도 내가 못난 것 잘 알아요. 그러니 이제 그만해요, 엄마. 외국 손님들도 계시잖아요.”
“나를 발리데 술탄이라고 부르라고 했잖아! 어머나! 고산국 국왕폐하, 죄송해요. 오스만에서는 아들의 훈육을 주로 엄마가 맡는답니다.”
30대 후반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황제의 어머니, 사피예 술탄이었다. 모후가 정치에 참가하는 것은 오스만 제국의 오랜 관습이었으나, 사피예 술탄은 지나친 감이 있었다.
이민호는 가족사를 조용한 곳에서 처리하라고 황제와 환관들, 재상과 관료들, 사피예 술탄과 몇몇 후궁들에게 국왕좌승함의 사관 및 부사관 숙소를 내줬다. 당장 황궁을 탈환하라고 황제를 닦달하면서 사피예 술탄이 내지르는 소리가 숙소 밖으로 터져 나왔다.
황제를 구출한 예니체리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단정을 타고 왔다. 해병 소대장에게 보고를 받은 바에 따르면 지휘를 잘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직접 선두에 서서 공격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이민호가 장군에게 전공을 치하했다.
“장군! 수고했소. 황제께서 장군의 전공을 잊지 않을 것이오.”
“저, 황제폐하를 지키기 위한 호위 병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해병들이 잘 지키고 있으니 장군은 걱정하지 마시오.”
예니체리 병사 수백 명을 한꺼번에 국왕좌승함에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반란을 공동 진압했어도 두 나라가 여전히 잠재적 적국이라는 지위에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민호는 장군과 참모 장교들만 탑승시켜 황제에게 인사를 하도록 허용했다. 장군은 이제 파샤 칭호는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황제를 구출한 용감한 장군도 황제 입장에서는 예니체리 장군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다. 예니체리라는 이유만으로 밉보인 장군이 황제에게 아주 혼쭐이 났다.
“전하! 사략선 세 척과 오스만 해군 함선 한 척이 접근 중입니다.”
“오라고 해.”
황제가 함대에 있어서 오히려 함대 작전에서 자유도가 떨어졌다. 사략선이 아무리 북아프리카 해적이라지만 황제가 보는 앞에서 명목상 그의 해군을 쳐부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갈레온을 복제한 갈레온에서 단정을 내렸다. 그리고 터번을 쓴 노인이 국왕좌승함에 올라왔다. 어쩐 일인지 황제가 버선발로 마중을 나왔다.
“오! 무라트 레이스! 그대가 와서 안심이오.”
무라트라는 이름의 노 제독이 황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해군 제독이 황궁에서 실종됐다고 들었는데 멀쩡히 살아서 황제 앞에 나타나서 조금 수상해 보였다.
무라트는 오스만 제국 해군과 영광의 시기 대부분을 함께 한 역사의 산 증인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알바니아인인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스만 제국의 해군 또는 해적으로 활동했다. 1534년 바르바로사 하이레딘 파샤가 쉴레이만 1세에게 해군 사령관으로 지명될 때 처음 역사에 등장했다.
피리 레이스 밑에서 싸우던 그는 1538년 투르구트 레이스 밑에서 프레베자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고,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을 오스만 영토로 획득할 때도 참전했다. 인도양 함대 사령관으로서 고아에서 출발한 포르투갈 갤리선 함대에 큰 피해를 입혔는가 하면 몰타 섬 포위 작전에도 참가했다.
그는 키프로스 점령전에서 베네치아 함대의 지원을 차단했으며 1585년에는 아프리카 서쪽 카나리아 군도를 공략하는 중에 에스파냐의 란사로테 총독을 생포해 몸값을 받아냈다. 실제 역사에서 1638년에 알바니아 블로레 포위 작전 중에 사망했으므로 최소 110년 넘게 장수한 제독이었다.
“폐하께서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하오나 외국 배에 계시는 것은 폐하의 위신을 깎는 처사이오니 속히 제국의 함선으로 옮기시는 것이 옳을 줄로 아뢰옵니다.”
“그게, 이번에 해군도 반란에 참가했다고 들어서 말이오.”
“아랫것들을 단속하지 못한 소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저도 사실 예니체리들에게 구금을 당했다가 간신히 빠져 나오는 길입니다.”
황제가 무라트 레이스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통역장교가 간간히 중요한 대화만 전달했다. 함장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자 이민호에게 말을 걸었다.
“험! 분위기가 좀 그렇습니다, 전하.”
“다 좋은데 어째서 국왕좌승함의 함교를 황제의 알현실로 사용하느냔 말이야.”
이스탄불에서 반란을 일으킨 예니체리 부대들의 운명은 결정됐다. 황제가 무사히 황궁을 빠져 나간 이상 장군들이 더 이상 반란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예니체리 병사들이 먼저 알고 탈영을 계속했으며, 꾸준히 숫자가 줄어든 반란군은 진압군을 상대하지 못해 궤멸되고 말았다.
다음 날, 뒤늦게 이스탄불에 도착한 시파히 부대와 예니체리 부대가 잠깐 교전한 것을 빼면 반란 사건은 일단락됐다. 예니체리 장군 다섯 명이 체포되거나 사살되고, 두 명은 외국으로 달아났다.
“제가 고산국의 충고를 들었어야 했습니다. 노예는 노예일 뿐이고 해적은 언제나 해적의 본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럼 예니체리를 해산시키시렵니까?”
이번에 반란으로 인해 혼쭐이 난 황제가 예니체리에 학을 뗄 줄 알았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 황제들에게 예니체리는 아직도 충성스러운 군 집단이었다. 예니체리가 수시로 황제를 갈아치울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황제는 그런 비극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국내 정치에서 예니체리만큼 황제의 지위를 든든히 후원해주는 조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기독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에게도 예니체리를 개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국내에서 꾸준히 그런 요청이 있었습니다.”
“만약 무슬림이 예니체리 지위를 세습하게 된다면 예니체리 조직 전체를 사유화할 우려가 있습니다. 더 위험합니다.”
기독교도 아이들을 모집해서 예니체리로 키우는 이유는 무슬림이 같은 무슬림을 노예로 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니체리 양성 과정 중에 이슬람으로 개종하므로 그 순간 노예에서 벗어난다.
예니체리가 황제의 노예라는 것은 이렇게 상징적인 의미밖에 없었다. 다만 맘루크처럼 예니체리 병사들도 오스만 제국에 기반을 갖지 못해 황제 개인에게만 충성을 바치는 속성을 이용하려는 것에 불과했다.
예니체리는 무슬림이 선발될 수 없고 복무를 마치기 전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는 등 여러 가지 제한이 가해졌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제도적 장치가 차례로 무너지고 무슬림이 예니체리가 세습하게 되면서 후기로 갈수록 문란하게 변했다. 토지를 수탈하고 무역을 독점하며 입맛에 맞지 않는 황제를 폐위시키는 등 이들이 일으킨 폐단은 끝이 없었다.
“그렇다고 오스만 군의 핵심 전력인 예니체리를 해산할 수도 없고 말입니다.”
“이집트 맘루크를 보십시오. 결국 노예가 주인을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용병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고산국에서도 용병을 쓰지 않습니까?”
“구르카 용병은 고산국 군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주로 해외 원정 때 활용하고 있습니다. 변치 않을 충성을 바칠 황제 친위대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스위스 용병을 쓰십시오.”
그러나 로마 교황의 경호 임무를 맡고 있는 스위스 용병을 오스만 제국에서 고용할 수는 없었다. 이민호는 구르카 용병을 황제에게 추천하려다가 말았다. 만에 하나 구르카 용병이 오스만 제국에 대규모로 고용될 경우 자칫 유럽의 세력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집트 문제도 처리해야 하는데 미처 손을 못 쓰고 있습니다. 그 노예 놈들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는군요.”
“맘루크 놈들이 독립전쟁을 할 테니 도와달라고 고산국에도 손을 뻗었겠지요. 세금 일부만 바치게 하는 것을 빼면 거의 독립국이나 다름없는데 왜 그리 권력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권력에 욕심을 냅니다.”
네가 황제니까 모르지, 라는 소리를 간신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현재 오스만 제국 황제는 예니체리와 사라센 해적, 이집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몇 년째 이어지고 있는 헝가리 전쟁이나 시리아 군벌의 사적인 영토 확대 전쟁 같은 것은 문제 축에도 끼지 못했다.
“오스만 제국에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으로 압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혹시 고산국에서 이집트를 맡아주지 않겠습니까?”
이민호는 뭔가 이상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고산국에서는 더 이상 해외 영토를 관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영토 문제가 아닙니다. 제 신하로 들어오라는 것도 아닙니다. 고산국에서 이집트 총독 겸 마그레브 총독을 파견하고 형식상 오스만 제국의 신하를 자처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습니다. 고산국이 함선 몇 척만 띄우더라도 몰타 기사단이나 에스파냐에서 함부로 북아프리카를 침공하지 못하겠지요.”
그럴 듯한 해결책이었다. 여차 하면 미노 파샤가 탄생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유럽 기독교 세력과는 영원히 안녕이었다.
“제가 북아프리카를 돌아보면서 데이나 베이들을 만나보겠습니다. 그들을 정착시킬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해적은 해적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던 자들은 결코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이민호가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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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란은 이 정도에서 넘어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