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67화 (516/1,000)

00567   58. 이집트와 레반트  =========================================================================

군중들이 분노하는 동시에 몹시 당황했다. 아사신은 이슬람 시아파 중에서도 이스마일파에서 분리된 니자르파 신도들이었다. 하시시에 어원을 둔 하샤신이 아니라 알 아사신이라면 알라무트 요새를 근거지로 한 알 아사스의 구성원이라는 뜻이었다. 어차피 같은 암살자 집단이었다.

한때 중동 지역에서 세력을 크게 떨쳤던 아사신은 셀주크에 밀리고 십자군 및 살라딘과 동시에 싸우고, 몽골에 본거지가 함락되고 맘루크에게 싹싹 쓸려버렸다. 그럼에도 시리아 아사신 일부가 살아남아 맘루크 왕조에게서 암살 의뢰를 받았다는 소문만 나돌았다. 그것도 이미 오래 전이었다.

하샤신은 하시시, 즉 대마를 복용하는 자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었다. 마리화나는 대마의 줄기와 잎을 말려 잘게 자른 것이고 하시시는 꽃봉오리 끝부분을 문질러 나온 진을 굳힌 것이다. 아사신도 마찬가지로 대마를 복용하거나 흡연을 하면서 천국을 꿈꿨다. 그런데 눈앞의 아사신은 조금 달랐다.

“아사신이면 보통 하시시를 하지 않나? 어째서 네 몸에서 아편에 절은 냄새가 나지?”

“후후! 폐하께서도 아편을 아시는군요. 좋은 것을 즐길 줄 알아야 진리에 가까워지는 법입니다.”

“웃기는군. 어차피 약쟁이지.”

이민호는 눈앞의 아사신이 아니라 청중들 사이에서 움직일지도 모를 동료 암살자들이 있는지 살폈다. 이때는 이미 구르카 여단이 모스크에 진입해서 주변 건물들을 모조리 장악한 이후였다. 호위 몇 명이 아사신을 조준선에 놓고 있었다.

아사신 같은 자객이 한 나라의 군주에게 접근해 날 달린 무기로 암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영주성에 몰래 잠입해서 다이묘를 암살하는 닌자는 후대의 창작물에 불과했다. 총기의 사거리가 길어지고 정확도가 높아진 현대에도 내부 동조자가 없으면 국가원수에 대한 암살은 거의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예외적으로 미국의 경우 대통령 경호원들이 군중들을 대통령의 10야드 거리 밖으로 몰아낼 수가 없으므로 암살 기회가 곧잘 생겼다. 미국 대통령은 시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연방 하원의원들이 대통령 경호 관련법을 안 바꿔줬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 암살의 경우 성공하든 실패하든 항상 음모론이 따라다녔다.

“폐하! 세상에 완벽한 진실은 없습니다. 그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니며, 모든 것을 의심해봐야 합니다.”

“그럼 자네는 알라를 믿지 않겠군.”

“의심을 깊이 했다가 알라의 존재가 진실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무슬림이 맞습니다.”

무아진이 크게 소리를 지른 다음 청중들 사이에서 큰 소란이 일었다. 불경한 자를 당장 끌어내 죽이라는 주장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암살자, 아사신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곳에 나타날 이유가 없었다.

이민호는 이 아사신이 몸에 화약을 잔뜩 두르고 왔다고 판단했다. 얼굴이 갸름하게 살이 빠졌는데 풍성한 유목민 복장을 하고도 허리만 볼록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래서 청중들 사이에서 일부러 끌어내 높은 단 위에 올라오게 했다.

“좋은 신앙고백이야. 그런데 아사신에게는 알라보다 천국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신앙과 경건함은 없고 쾌락으로 가득 찬 아사신만의 천국 말이야.”

“천국에 갈 수만 있다면 언제든 배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 판단에 따라 모든 행동이 허용됩니다.”

대화를 해본 다음 암살자의 판단에 따라 여기서 이민호와 같이 폭사하거나, 혹은 아무 일 없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암살자의 말을 믿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민호가 의구심이 들어서 물었다.

“나를 암살하라고 의뢰한 자가 누군가? 내가 죽더라도 주변 지역에서 이익을 볼 사람이 없는데 말이야.”

“이번 것은 통역을 크게 하지 마십시오. 두 집단 간에 싸움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익을 볼 다른 집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 결정됐습니다.”

아사신이 담뱃대를 꺼내더니 향로를 향해 손을 뻗었다. 하시시라도 피우려는 자연스러운 손짓이었다.

그러나 아사신이 입은 옷은 기름칠이 되어 있었고, 안에는 화약 주머니가 가득했다. 그가 현대식으로 자살폭탄 테러를 하려 했는지, 단순히 하시시를 피우기 위해 향로에 접근했는지 모르겠지만 호위들 입장에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 탕!

“잘했다, 지영이. 아사신의 천국에 갔겠군.”

총소리는 딱 한 방, 이민호가 앉은 천막 위쪽 본관 건물 2층에서 울렸다. 아사신이 얼굴에 총탄을 맞고 쭉 뻗었다.

터번에도 기름칠이 되어 있어서 얼굴 외에는 총으로 쏠 부분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아사신은 여차하면 몸 전체에 불을 옮겨 붙인 다음 몸에 두른 화약이 터지는 식으로 암살을 준비했다고 이민호는 판단했다. 몸에 총탄이 맞는 순간 총탄의 열이 옷에 인화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이민호 뒤쪽에서 호위들이 쏠 경우 청중들이 맞을 수도 있어 수평 사격을 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2층 건물에 오른 호위들 중에서 사격솜씨가 뛰어난 지영이 한 발로 암살자를 잡았다.

- 타탕! 탕!

민영이 권총을 꺼내들어 앞에 서고, 다른 호위들이 방탄유리 방패로 이민호의 앞을 가렸다. 그 사이 청중들 사이에서 총탄 몇 발이 날아왔으나, 방패에 맞지도 않고 뒤쪽 벽에 맞고 튀었다.

연단과 가까운 곳에는 울라마들이 꽉 들어차 있어서 암살자들이 머스킷을 들고 이민호에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총을 쏜 아사신들은 울라마나 대학생들에 의해 곧바로 제압됐다. 두 명이 칼을 뽑아들고 날뛰었으나 칼질이라면 울라마들도 잘했다.

“의뢰자는 누굴까요? 맘루크 잔당? 시리아 지방 세력? 오스만 제국?”

“나를 죽여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세력은 역시 페르시아겠지. 내가 죽으면 고산국이 오스만 제국을 칠 것이라고 기대했을 거야. 물론 에스파냐나 로마교황청일 수도 있어.”

청중 사이에 숨어서 저격을 하거나 소동을 피운 아사신 여섯 명이 피투성이가 되어서 잡혀 왔다. 그 중에 네 명은 독약을 삼켰는지 이미 죽었다. 울라마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폐하! 아사신 두 명이 에스파냐와 로마교황청의 의뢰를 받았다고 실토했습니다! 그리고 독약을 먹고 자살했습니다.”

“에스파냐와 로마교황청은 아닌 모양이야. 오스만 제국을 의심하라는 미끼인가 봐.”

암살자가 현장에서 의뢰자를 밝히다니, 너무 빤한 속임수였다. 믿으면 바보였으나, 정치가들은 그 발언을 이용할 수도 있었다.

민영이 암살자의 옷을 칼로 베어 몸을 살폈다. 천으로 만든 주머니에 가루 같은 것이 잔뜩 들어 있었다.

“화약을 몸에 가득 둘렀어요.”

“화약 주머니를 온몸에 주렁주렁 매달았군.”

이민호는 아사신과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아사신들은 그저 비즈니스를 수행했을 뿐이었다. 한때는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중동지역에서 무차별적인 암살을 행하기도 했으나, 분개한 왕조들뿐만 아니라 같은 시아파에게도 증오를 사서 이제는 별로 남지 않았다.

“역시 옷이 중요한 준비물이었어. 하시시나 아편은 기름과 화약 냄새를 가리기 위한 위장이었나?”

연단 앞에 약간 깊은 구덩이가 있었다. 민영이 잘라낸 암살자의 옷을 이민호가 발로 차서 그 구덩이로 떨어뜨렸다. 16세기 말에 폭탄 테러가 가능한지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심지 역할을 하는 옷이 벗겨진 암살자는 그저 화약 포대와 차이가 없었다.

“앞에 물러서시오!”

암살자에게서 베어 낸 작은 천 조각을 향로에 대서 불을 붙였다. 흰 연기를 내뿜으며 맹렬하게 타오르는 그 천을 구덩이로 던지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옷이 폭발적으로 타올랐다. 아사신에 속한 아랍 연금술사도 나름대로 회심의 역작을 만들어낸 듯했다.

“자! 들으시오!”

이민호가 청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무아진이 반복해서 크게 소리를 질러 흥분한 청중들을 진정시켰다. 무아진이 자동번역기가 아니라서 이런 역할도 할 수 있었다.

“적들은 아사신을 내세웠으나 알라께서 나의 목숨을 연장시켜주었소. 앞으로도 이집트와 고산국은 같은 편이오! 알라흐 아크바르~”

“알라후 아크바아르!”

청중들이 기뻐했지만 애초에 아사신은 이민호를 죽이러 왔을 뿐이었다. 이민호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을 이용해 이집트인들과 고산국을 한 편으로 묶었다. 이집트인들이 아사신을 증오하기 때문에 가능한 조작이었다.

“아사신을 잡는데 공을 세운 울라마와 대학생들에게 큰 상을 내리겠소.”

암살자들을 잡아온 울라마와 대학생들 30명에게 오스만 제국 금화 200개씩 주기로 약속했다. 상을 받은 이들은 앞으로 고산국의 열렬한 지지자가 될 것이다.

카이로 성채에 다녀온 병사들이 금화를 바로 가져와서 나눠주었다. 이집트와 고산국이 확실한 우군이 된 것을 선전하는 대가치고는 아주 싸게 먹혔다.

이민호는 호위들과 구르카 여단 병사들과 함께 카이로 성채로 돌아왔다. 성채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던 이순신이 흡족한 얼굴로 이민호를 맞아들였다. 그 동안 암살 위협은 숱하게 있었어도 이번에는 이순신도 조금 걱정할 정도였으나, 큰 문제없이 잘 넘겼다.

아즈하르 모스크에서 몰려나온 1만여 명의 울라마와 대학생들이 떼를 지어 카이로 시내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오늘 일어난 사건을 재구성한 승리의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오스만 제국을 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웠던 이집트에 모든 사람들이 증오할 만한 좋은 적이 나타났다.

“너무나 이상적인 적이야. 실체가 별로 없는 아사신을 적으로 돌리면서 이집트인과 다른 민족 거주자들을 하나로 만들었어. 아사신은 전쟁이 날 경우 부담이 가는 외국도 아니고, 도덕적인 거부감 없이 누구나 경멸할 만한 적이거든.”

현대에서 아랍 테러리스트들이 주로 이런 역할을 맡았다. 알카에다가 큰 사고를 치기 이전에도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정보기관들은 몇몇 테러 단체를 주요한 적으로 상정해 예산을 증액하는 등 큰 힘을 쥐게 되었다.

“혹시 주인님이 의뢰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여요.”

“다음에 필요하면 의뢰해야겠다. 농담이야.”

이민호는 민영과 대화를 하다가 지영을 불렀다. 몸이나 머리가 아니라 얼굴을 제대로 노린 것은 아사신의 암살 도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이민호가 화약을 잔뜩 지고 자살폭탄 테러를 하는 암살범에 대한 대응 교육은 호위들에게 시키지 않은 것으로 기억했다. 그래서 지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아사신이 온몸에 화약을 두르고 불에 잘 타는 옷을 입은 건 어떻게 알았어?”

“네? 저는 그저 아사신이 너무 잘 생겨서 죄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사신이 입은 옷은 품이 너무 크잖아요. 얼굴을 맞히면 명중 확인이 금방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뭐? 설마 남에게 줄 바에 아무에게도 안 주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나요? 주인님을 노리는 암살자인데요.”

지영이 생긋 웃었다. 그런데 어느새 호칭이 전하에서 주인님으로 바뀌었다. 물론 책임질 만한 일을 하긴 했지만 조금 이르다고 생각했다.

“소원은,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상을 주마.”

나의 소원은 조선의 진정한 자주 독립이라고 말할 호위들이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연해주에서 잡은 호랑이 가죽을 지영에게 하사했다. 말 잔등에 올리든 침대에 사용하든 자유였다.

이틀 후 이집트인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카이로를 출발했다. 정식 통치권 인수는 총독 대리를 보내면서 하기로 하고, 그때 이집트를 위한 정책도 정식으로 실시하기로 했다.

지금은 이집트의 여러 가지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 시기였다. 이집트는 식량이 부족한 곳이 아닌데도 여러 가지 문제가 산재했다. 차라리 황무지에 관개사업을 실시해 넓은 농경지를 마련해줘서 칭송을 받는 편이 훨씬 쉬웠다.

하루 반에 걸쳐 동쪽으로 이동해 수에즈에 도착했다. 이미 하루 전에 함대가 수에즈 운하 남단을 통과해 수에즈 항에 도착해 있었다.

그 동안 마차 바퀴가 부서진 것이 열다섯 번, 장갑차 무한궤도가 벗겨진 것이 두 번이었다. 그때마다 행렬이 정지하긴 했지만 수리하는 동안 나머지 행렬은 계속 전진했다.

“도련님! 장갑차 궤도가 고장이 너무 자주 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 계복아! 그런 식으로 기술자들을 다그쳐라. 하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아주 준수하다는 것만 기억해라.”

“장갑차 부대를 기동할 때 일부가 고장 날 것을 염두에 두라는 뜻이군요. 제가 장갑차에 기대한 수준이 너무 높았나 봅니다.”

“마차 바퀴도 부서지는 일이 많은데 장갑차 바퀴라고 다르겠어?”

완벽한 무기체계는 없었다. 어떤 무기든 고장 날 가능성이 있었고, 지휘관이 할 일은 그것들을 수리해서 전투에 최대한 많이 투입하는 것이었다. 실제 전쟁 중에는 정원의 절반도 투입하지 못하는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아무리 기술자들을 족친다 해도 고산국에서 생산한 장갑차만 완벽할 수는 없었다.

“예멘 모카 항으로 가자!”

정식 작전은 함대가 아부다비에 가서 연료와 청수를 공급받는 것이었고, 예멘은 중간 기항지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민호가 괜히 예멘을 중간 기항지로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 작품 후기 ============================

늦어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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