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85화 (534/1,000)

00585  61. 대서양  =========================================================================

대서양과 달리 북해에서는 함선들이 밤에 마음껏 속도를 높일 수가 없었다. 청어의 산란기인 5월부터 6월까지 북해는 낮이나 밤이나 네덜란드의 청어잡이 어선들로 붐볐기 때문이다. 그나마 어선들이 항해등이라도 켜서 해상 충돌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어선이 왜 이리 많아?”

“사방 수평선마다 한두 척씩 있습니다, 전하.”

네덜란드가 보유한 어선이 2천여 척이나 된다고 들었다. 먼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배답게 배수량도 꽤 커서 100톤 이상에 보통 15인승 이상이었다. 네덜란드 어부들이 청어를 대량으로 잡으면 칼질 한 동작만으로 내장을 빼내고 소금에 염장해서 외국으로 수출한다고 들었다.

이민호가 지시해서 네덜란드 어선을 지나칠 때마다 청어를 구입해 함대 전체에 나눠주었다. 그리고 전 병력이 청어구이 맛을 봤다. 약간 비린 듯하면서도 짭조름해서 밥반찬으로 아주 괜찮았다.

바로 이 청어가 네덜란드를 무역 왕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이 시기 유럽의 전체 선박 배수량의 45퍼센트를 네덜란드가 차지했는데, 대부분이 어선이었고 그 다음이 상선이었다. 상선만으로도 잉글랜드나 프랑스, 지중해에서 활동하는 이탈리아 여러 도시 국가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청어구이를 맛 봤으면 청어절임도 먹어봐야지.”

“비리지 않을까요?”

“글쎄. 나도 처음 먹는 거라서.”

하링, 즉 청어절임은 손바닥 길이만한 새끼 청어의 머리를 자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뺀 날 것처럼 생겼다. 그러나 네덜란드 어부들이 와인과 식초, 차와 허브 등을 넣은 소금물 보존액에서 숙성시킨 음식이었다.

“으음! 먹자!”

청어의 꼬리를 손에 쥐고 양파 다진 것에 찍은 다음 눈을 질끈 감고 씹었다. 후궁들도 비장미 넘치는 표정으로 청어절임을 입에 넣었다. 물컹한 느낌은 예상한 대로였지만 뜻밖에 그다지 비리지 않았다. 그리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번져 나왔다.

“괜찮네?”

“가자미식해 비슷한데요?”

새로운 음식에 대한 도전은 언제나 즐거웠고 삶에 활력을 주었다. 비린내 나는 손은 쌀뜨물에 씻었다. 청어 튀김도 그럭저럭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아기 고양이가 식탁 밑에서 자꾸 냥냥거리기에 이민호가 청어 살점을 잘라서 주었다. 이유기는 아직 멀었지만 생선살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양파가 고양이에게 좋지 않다고 해서 주의했다.

“호순이가 생선살을 좋아해요.”

민영이 벌써 이유식을 호순이에게 먹이는 중이었다. 생선 비린내를 맡고 덥석 문 호순이가 살을 뱉어내더니 온몸의 털을 곤두세웠다. 그리고 이민호를 향해 날카롭게 울었다.

“뭐? 싫음 말고.”

“캬웅!”

민영이 생선살을 물에 씻겨서 주니 호순이가 잘 먹었다. 그러나 가끔 눈알을 굴려 이민호와 눈길이 마주칠 때마다 카르릉 하는 소리를 냈다. 그 전에도 사이가 별로였는데 이제 완전히 찍힌 것 같았다.

“주인님! 주식회사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학교에서 안 가르쳐줬지? 에밀리아가 설명을 해보도록.”

식사 중에 왕실여학교 졸업생들이 묻자 이민호가 베네치아 시녀들에게 설명하라고 떠넘겼다. 지속적으로 영업을 하는 회사에는 아직 주식회사 개념이 없었지만, 일회성 사업에서는 의외로 흔하게 적용되는 개념이었다.

대표적으로 사략선의 활동이었다. 사략면장을 받은 다음 공개적으로 투자자를 모집해 사략행위가 성공할 경우 투자 비율에 따라 이익금을 분배하는 제도가 이미 정착돼 있었다. 잉글랜드 사략선들을 이끈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에스파냐 보물선을 나포해서 48배의 이익금을 분배한 사례를 들어 에밀리아가 상세히 설명했다.

네덜란드 선주들이 향신료 무역에 나설 때에도 이런 식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하우트만 형제가 실제 역사에서는 향신료를 적은 양만 구해서 돌아갔는데도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의 400퍼센트를 배당했다.

“이 책은 뭐여요? ‘동인도회사 및 증권거래소 설립과 운영에 관한 지침’이라는 제목이네요.”

“우리 지수가 스페인어를 잘 하는구나. 투자금을 모집해서 회사 자본금으로 쓰는 것은 에밀리아가 설명했지? 그런데 매번 항해 때마다 정산하지 않고 일 년 단위로 동인도회사의 이익 일부를 투자자에게 분배하는 배당을 실시할 계획이야.”

“증권거래소는요?”

“그 투자금에 대한 권리 증서를 주식이라고 해. 회사가 꾸준히 이익을 많이 내고 성장 가능성도 크면 회사의 가치가 커지겠지? 그럼 주식 가치도 올라가. 그 주식을 거래하는 곳이 증권거래소야.”

에스파냐는 중남미 은광 개발에 여념이 없었고 금과 은을 본토로 가져오는 일만으로도 벅찼다. 포르투갈도 식민지 항구를 지키고 나름대로 무역체계를 꾸려나가고 있었다. 두 나라는 오랫동안 고산국의 훌륭한 무역 파트너였으나 남는 배가 별로 없어서 북미 위주로 전개되는 대서양 무역을 감당하지 못했다.

고산국에게 대서양 무역의 파트너로 인구가 적으면서도 배가 많은 네덜란드가 가장 적당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키우다 보면 겨우 몇 년의 배당금으로 초기 투자 자본을 회수할 수 있고 나중에는 주식 가치가 크게 상승할 것으로 기대했다.

“대주주가 회사를 키워서 주식 가치를 올린 다음 증권거래소에서 주식을 팔아버릴 수도 있겠네요? 주인님이 그렇게 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적당한 시기가 오면 동인도회사의 운영에서 손을 떼려고 생각 중이야. 주주가 바뀌더라도 회사는 살아있는 조직이니까 알아서 굴러가겠지.”

지수의 날카로운 질문에 이민호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살짝 돌려서 설명했다. 그러나 지수는 몹시 실망한 표정이었다.

“약간 무책임하다고 느껴져요.”

“여기까지는 주식회사의 특성이야. 만약 네덜란드 정부가 동인도회사에 대한 견제를 심하게 하면 내가 운영권을 내놓을 수밖에 없어. 물론 지수 네가 생각한 대로 주식회사 운영권을 쥔 자가 돈을 벌기 위해 얼마든지 부도덕해질 수가 있다는 것이 문제야.”

이민호의 뇌리에 주가 조작이나 분식회계 같은 온갖 나쁜 짓들이 떠올랐다. 유무상 증자나 전환사채 발행 등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하면서 회사 운영권을 쥐고 흔들 방법도 얼마든지 있었다. 고산국 국영상단과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거래를 이용해 부당한 이득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 국왕인 이민호 입장에서는 그런 방법으로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반대로 주식회사, 또는 회사 경영자들의 부도덕한 짓을 막는 역할을 해야 했다.

앞으로 주식회사의 시금석이 될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설립되는 중이었다. 이민호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고산국 상인은 물론 정치에 참가한 사람들도 많이 배우길 원했다.

“고산국에 주식회사가 생기면 정부에서 통제를 잘해야겠어요.”

“그렇지. 동인도회사가 성공하면 앞으로 웬만한 회사는 시작부터 주식회사로 설립될 거야.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앞으로 고산국에서도 국영회사 일부를 주식회사로 전환해서 공개모집을 할 수도 있어.”

“헤~ 그럼 돈이 생기면 주식을 사야겠어요. 어떤 회사가 낫겠어요?”

주식회사에 대한 정보가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지영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내부자 거래에 해당할 만한 정보를 요구했다. 이민호는 후궁들이 국영기업에 대한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할까 고민했다.

“안정적이거나 발전 가능성이 크거나, 취향에 따라 골라. 다만 회사를 잘 살펴보고 선택해야 할 거야. 나는 모르니까 너희들이 알아서 해.”

“에~ 주인님이 잘 아실 거 아녀요?”

“일반 백성들과 똑같은 입장에서 투자를 해봐. 투자를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보겠어.”

물론 기업 공개 전에 정보를 세세히 밝히더라도 더 고급 정보를 쥔 쪽이 더 많은 이익을 얻게 돼 있었다. 주식회사 자체는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이상적인 자본주의에 그다지 걸맞은 제도가 아니었다.

조만간 고산국 경제체제를 본격적인 자본주의 체제로 전환시킬 계획이었다. 이민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제적으로 주식회사 설립을 주도했지만,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파장과 문제점들은 솔직히 두려웠다.

“나코루루. 튤립 구근은 잘 보관하고 있지?”

“예, 주인님. 선선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보관 중이에요.”

이스탄불 제3 중정의 화원에서 튤립 구근 10여 종을 구해왔다. 동식물에도 영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아이누 족 나코루루는 항해 중에도 구근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의식을 치러주고 가끔 축음기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궁궐에 돌아가면 잘 키워봐.”

“예. 왕궁 정원을 예쁜 튤립으로 가득 채울게요.”

“아니. 새로운 튤립 품종을 개발해보라는 뜻이야.”

“아! 자연 그대로가 좋지 않나요?”

게임 캐릭터인 나코루루라면 이민호가 두들겨 맞겠지만, 고산국 후궁 나코루루는 자연친화적인 아이누 족 여자일 뿐이었다.

“자연을 잘 이해해야 더 잘 보호할 수 있어.”

“네! 새롭고 예쁜 품종을 여러 가지 만들어볼게요.”

“품종에 대한 기록을 확실히 해둬. 구근마다 족보를 만들어 두라는 거야.”

나코루루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민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일을 시키자 받아들였다. 이민호는 항상 수익성을 염두에 두고 일을 시켰다.

튤립 투자 광풍이 일어나는 시기가 앞으로 20여 년 뒤였고 거품이 터지는 시기는 1630년대로 어렴풋이 기억했다. 미리 준비해야 제대로 이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왕궁에 꽃도 심을 겸 버블이 터질 때까지의 과정을 추적해서 연구하려고 튤립 투자 광풍에 참가할 계획이었다. 굳이 돈을 벌 필요는 없었다.

다음 날 오전 베르겐에 도착한 함대는 일단 그 지역 상인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판매하는 상품이라곤 정향과 육두구, 그리고 모직물밖에 없었고 그나마 양도 적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며칠 기다리면 북미에서 상품을 싣고 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날이 갈수록 상선들이 모여들었다. 암스테르담에서 상품을 사지 못한 네덜란드 상인들도 소문을 듣고 베르겐으로 향했다. 병사들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항구도시에서 편하게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 이민호는 발트 해 연안국가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헤드비히 공주와 시녀들이 많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덴마크와 스웨덴 외에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 핀란드, 루스 차르국, 그리고 한자 동맹 소속 도시들이 발트 해를 끼고 있었다.

한때 덴마크와 동군연합이었던 스웨덴은 덴마크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이나 러시아의 침략을 물리쳐야 하는 시기였다. 현재 리투아니아의 대 헤트만은 크지슈토프 미코와이 라지비우라고 헤드비히 공주가 알려줬다.

“크지슈토프 뭐라고요? 폴란드 사람들 이름은 너무 길고 발음하기도 어렵소.”

“호호! 폐하 혀가 꼬여요. 고산국 알파벳, 한글로 적어드릴게요. 엄밀히 따지면 발음이 달라도 비슷하게 표현할 수 있을 거여요.”

사실 덴마크나 스웨던어가 발음하기 더 어려웠다. 그러나 이름이 사정없이 길어지고 새로운 개념이 많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의 정치를 배우는 것은 몹시도 어려웠다.

“폐하! 네덜란드에 회사 자본금으로 얼마를 내셨어요?”

“65만 파운드, 대략 650만 굴덴이오.”

“와! 천문학적인 금액이에요. 잉글랜드의 1년 세입보다 많잖아요?”

“잉글랜드야 유럽에서 가난한 나라 아니오? 그리고 어느 나라나 중앙정부의 세입은 변변치 않소.”

고산국 왕립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초기 투자금은 은 200만 냥이 조금 넘는 금액이었고, 실제 역사에서 동인도회사 자본금 총액에 해당했다. 합병과 주식 공개로 투자자금을 더 모집해 회사 규모를 두 배로 늘린다면 사업 초기부터 여유 있게 무역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업이 잘 풀리면 증권거래소를 통해 유통되는 주식 가격이 급등하게 된다. 한창 때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사업 규모가 현대 가치로 7조 달러가 넘어 현대 기준으로도 세계 최대의 회사였다.

고산국이 인도양과 아시아 항로를 다 장악하고 있으므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실제 역사처럼 규모를 크게 확장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회사 설립 초기부터 고산국의 보호를 받아 안정된 무역을 바탕으로 빠르게 이익을 낼 수 있게 됐다. 잘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도 있었다.

“네덜란드 말고 저희 덴마크도 대서양 무역에 참가하게 해주세요.”

“다른 나라에도 무역을 개방하고 있으니 덴마크도 참가하려면 언제든 하시오. 아이슬란드를 식민지로 보유할 정도라면 덴마크의 항해 능력은 충분한 것 같소.”

“덴마크에 돌아가면 뤼벡의 사업체를 정리하고 서인도회사를 설립할게요. 북미 동해안의 도시들과 교역할 거여요. 자본금은 10만 파운드로 시작하고 투자자를 좀 더 모집해서 30만 파운드를 채울까 해요. 혹시 폐하께서도 자본을 투자하실래요?”

“이제 보니 공주는 부자였구려. 나도 10만 파운드를 투자하겠소. 공주는 10만 1파운드를 투자해서 사업을 이끌어 가시구려.”

덴마크의 대서양 무역이 고산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므로 굳이 이민호가 일일이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한자 동맹의 핵심 도시인 뤼벡에서 사업체를 성공적으로 운영할 정도라면 공주의 상업적 재능은 충분히 인정받을 만했다.

“정말요? 루스 차르국부터 발트 해와 북해를 지나 대서양을 건너 북미 동해안까지! 선단은 제가 직접 이끌 거여요. 대포 몇 문만 팔아주세요.”

“판매용 대포 여섯 문을 넘기겠소. 그런데 시집은 안 가려고 하시오?”

“이 성질에 시집은 무슨 시집요? 돈이나 벌래요.”

덴마크 시녀들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헤드비히 공주는 지식이 풍부하고 상업적 재능이 출중한 편이었으나 시녀들에게는 그다지 훌륭한 상전이 아니었다. 결혼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시녀들을 훌륭한 귀족 가문의 남자와 연결시켜주는 능력이 부족했다.

============================ 작품 후기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엄청나게 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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