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591화 (540/1,000)

00591  62. 덴마크와 발트 해  =========================================================================

“루스 차르국의 현재 영토 안에서만 그 정도라니, 놀랍소.”

동해국 땅과 흑룡강 북쪽 땅, 그리고 북미에서 모피를 지금보다 몇 배 더 구할 수는 있었다. 품질 좋은 모피를 생산하는 한대지역을 고산국이 루스 차르국보다 훨씬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피 자원이 대폭 줄어들 것은 안 봐도 뻔했다. 이민호는 원주민들에게 생활필수품 교환에 필요한 이상으로 억지로 모피 생산량을 올릴 계획은 없었다. 발트 해의 모피 시장을 붕괴시켜 루스 차르국의 확장을 저지하려던 계획은 아무래도 폐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뭐가 말이오?”

“루스 차르국에서 수출하는 모피는 충분히 훌륭한 품질입니다만, 고산국에서 판매하는 모피와 비교가 되지 못합니다.”

“해달 모피 때문이오? 그 외에 무슨 차이가 있소?”

“루스 차르국에서 들여오는 상품은 늑대와 여우, 토끼 같은 하급 모피가 주종을 이루며 검은담비 모피는 매년 수만 장에 불과합니다. 카스피 해 바로 북동쪽에서 시작하는 우랄산맥에서도 훨씬 북쪽 추운 지역에서나 검은담비를 잡을 수 있습니다.”

검은담비 모피가 매년 수만 장이라니,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그러나 항상 많이 잡힌 것도 아니고, 1585년부터 1680년까지가 검은담비 사냥의 절정기였다. 이민호는 하필 이 시기의 러시아를 상대하게 됐다.

“그래요? 몰랐소.”

“방금 보고받았는데 고산국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해달과 검은담비 외에도 비버, 사슴, 호랑이, 표범 등 고급 모피 위주라고 합니다. 물량은 적더라도 가격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모피 동물의 품종이 아예 다르다는 뜻이었다. 고산국에서 수출하는 모피가 훨씬 고급품에 속했다. 이는 당연히 가격에 반영됐다.

“루스 차르국에서도 검은담비 모피가 산출되고 있다니. 그거 귀한 건데 말이오.”

“그렇습니다, 폐하. 해달과 비버 이전에 가장 인기가 좋았던 모피가 검은담비입니다. 고산국의 물량이 적더라도 품질이 훨씬 좋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려.”

검은담비의 서식지는 우랄산맥에서 시작해 시베리아와 흑룡강 유역, 그리고 백두산과 함경도에 이른다. 아이누 섬과 사할린 섬에서도 검은담비가 잡혔다.

그래서 현재 영토 기준으로는 동해국과 아이누 섬에서 훨씬 많은 검은담비를 잡을 수 있었다. 다만 인구가 희박해 많이 잡을 수 없을 뿐이었다.

“루스 차르국은 가공하지 않은 생모피를 수출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가죽이 썩고 털이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같은 모피라도 짐승을 잡는 순간부터 철저히 가공해서 높은 품질을 유지하는 고산국과 가격에서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가격 차이가 나더라도 기본적인 물량 차이를 극복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라이프치히에서 거래되는 물량은 엄청납니다. 하지만 오늘 고산국 배에서 하역한 물량이 거래 금액으로 따지면 라이프치히에서 거래되는 양의 보름치 이상으로 판단됩니다.”

“오호?”

이민호가 벌떡 일어나 방금 발언한 시의원의 빈 찻잔에 차를 따랐다. 그리고 설탕을 다섯 스푼이나 가득 퍼줬다. 시의원이 황송하게 찻잔을 받았다.

“아무리 품질이 낮더라도 모피는 기본적으로 비싼 상품이오. 모피가 이렇게 많이 팔리는 이유가 뭐요? 뤼벡 상인들을 제외하면 북유럽 사람들이 특별히 부유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소만.”

“그거야 당연히 북유럽은 춥기 때문입니다.”

“겨울에 바깥에서 활동을 많이 한다는 뜻이오?”

“아닙니다. 모피 옷은 집에서도 하루 종일 입습니다.”

“뭐요? 정말 깬다.”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북유럽에서는 가정용 난방 재료인 장작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모피 옷은 생존에 필수적인 상품이었다. 옛날에 인구가 적었을 때는 근처 산에서 나무를 해서 장작으로 만들어두고 겨울 내내 때었는데, 정착하고 나서 천 년 넘게 나무를 하다 보니 도시 주변의 산이 온통 벌거숭이가 됐다고 했다.

이 시대의 땔감인 장작은 그 전, 후와 달리 비싼 상품이 되었다. 이미 근처 숲의 나무를 다 베어버린 잉글랜드에서는 난방용으로 석탄 수요가 늘고 있었다. 부유한 자들은 장작을 때고 임야를 소유하지 못한 하층민들은 지표면에 드러난 석탄을 구해서 연기와 악취를 참으며 땐다고 했다.

“석탄을 태우면 냄새와 연기가 지독해서 공짜로 줘도, 아무리 추워도 쓰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뭔가 석탄 말고 새로운 연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잉글랜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석탄을 난방용이나 취사용 연료로 쓰지 않았고, 나무는 거의 다 떨어졌다. 겨울 내내 난방을 못한 채 모피만 입고 덜덜 떨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석탄을 안전하게 연소시킬 수 있는 스토브나 난로는 18세기에 들어서서야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특히 탄광 개발은 산업혁명의 단초가 되었다. 물론 근대부터 현대까지 석탄은 대기오염의 주범이었다.

“폐하! 석유를 이곳에 수송해서 난방연료로 쓰게 하면 어때요?”

“석유는 고산국에서 쓸 것도 모자란다오.”

헤드비히 공주가 속삭였으나 이민호가 단칼에 거절했다. 조명용 고래 기름을 대체할 등유를 유럽에 판매할까도 생각했는데 등유는 용도가 너무 많아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고산국이나 북미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이 조만간 유럽이나 다른 지역으로 흘러들어갈 것을 각오해야 했다. 석유도 그 중 하나였다.

“아! 죄송해요.”

“아니요. 유전을 좀 더 많이 찾으면 유럽에 수출하는 것도 고려해보겠소.”

여기서 이민호는 꽤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시의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고산국의 모피 교역이 루스 차르국의 모피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은 확실했다.

북유럽 부유층은 고산국 모피를 입고 하류층은 루스 차르국 모피를 걸치게 함으로써 모피 가격과 로스 차르국의 수출 물량을 낮추는 효과를 확실히 볼 수 있었다. 잘하면 시베리아 진출을 차단하지는 못하더라도 상당 기간 늦추는 효과는 기대할 만했다.

“공주는 어떻게 생각하시오?”

“유럽 상인들이 북미 새원산에서 사는 상품 중에서 물량으로 따지면 곡물이 가장 많겠지만 가격으로 보면 모피가 가장 많을 거여요. 그렇죠?”

“유럽 상인들이 있는 대로 북미의 모피를 사가는 모양이오.”

북미와 유럽의 모피 가격에 차이가 컸다. 향신료처럼 100배의 이익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유럽 상인들이 대서양의 풍랑을 각오할 정도로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상인들이 고산국 왕성에서 미칠 듯이 모피를 사려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덴마크 서인도회사에 북미의 모피 독점권을 달라고 하면 안 되겠죠?”

“대서양을 건너간 다른 유럽 국가 상인들이 크게 실망할 것이오.”

어떤 이유로건 대서양을 왕복하는 고산국과 유럽 국가들의 상선들이 더 많아지길 원했다. 서인도회사를 키워주기 위해 모피 판매 독점권을 줄 수는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사실 자금이 부족한 서인도회사에서 북미 모피를 다 소화하기도 어려울 거여요. 그래도 뤼벡이나 몇몇 한자 자유 도시와 연합하면 판매가 가능해요.”

“실망하지 마시오, 공주. 함대 수송선에 적재한 모피는 사실 아시아에서 가져온 것이 대부분이오. 내 영토는 북미뿐만이 아니요.”

“히익!”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를 존경스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동안 대충 견적이 나왔다. 덴마크 서인도회사도 살고 한자 동맹도 사는 방법이었다.

“뤼벡의 시장과 시의원들은 들으시오.”

“예, 폐하!”

고산국 신하도 아니면서 시장과 시의원들이 벌떡 일어나서 이민호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이민호는 마치 칙령을 내리는 황제가 된 기분이었다.

“매달 오늘 만큼의 물량을 뤼벡에 배정하겠소. 물론 같은 양이 덴마크에도 하역될 것이오. 상황에 따라 물량을 늘릴 수도 있소.”

“허억!”

시의원 몇이 뒤로 넘어지려는 것을 동료 시의원들이 부축했다. 시장이 서둘러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폐하! 뤼벡이 다시 살아날 길이 열렸습니다.

“과연 고산국의 물력은 끝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헤드비히 공주를 뤼벡의 시장과 시의원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했다. 두 사람이 결혼 예정이라는 소식이 아직 뤼벡에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아이슬란드 여왕이며 덴마크 공주인 헤드비히는 곧 나의 아내가 될 분이오. 덴마크 서인도회사를 운영할 공주와 앞으로 잘 협의해서 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오.”

은근히 덴마크와 경쟁관계였던 뤼벡 상인들의 안색이 허옇게 변했다. 그러나 순응이 빠른 상인들이었다.

“라이프치히를 넘어서는 모피 무역의 중심이 되도록 열심히 일을 하겠습니다.”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폐하!”

“비럭질 이야기는 잊어주소서.”

고산국과 덴마크 서인도회사, 그리고 뤼벡 사이에 무역 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모피 무역에 관해 이민호는 헤드비히 공주와 함께 뤼벡 시장, 시의원들과 더욱 자세히 논의했다.

이제 뤼벡 자유시에게도 루스 차르국의 모피 수출량을 줄여 고산국 모피의 가격을 높이는 것이 이익이 되었다. 이민호가 말을 하지 않고도 의도된 바를 이룰 수 있게 됐다.

“코사크 탐험대가 오비 강 유역까지 진출해서 모피를 공물로 받는다고 들었소. 문제는 그 지역이 대륙의 중앙부에 위치해서 북극해를 통해 들어가지 않는다면 수백 레구아를 육상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오.”

“코사크 탐험대와 요새들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루스 차르국에 모피를 공급할 것입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고견을 경청하겠소.”

뤼벡에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호가 시의원에게 발언을 독촉했다.

“핀란드 만 동쪽 끝 지역은 한때 스웨덴이 점령했던 땅입니다. 그리고 루스 차르국이 발트 해에 접한 유일한 지역입니다. 이 지역을 스웨덴이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맹과 함께 점령해서 루스 차르국이 바다로 진출할 길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모피 교역을 육로에 의존해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납니다. 영지를 통과할 때마다 붙는 세금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좋은 의견이긴 하나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기가 꺼림칙해서 말이오.”

“아니면 코사크 탐험대를 매수해서 오비 강 유역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크림 칸국과 적대적인 코사크는 때에 따라 폴란드-리투아니아에 붙었다가 루스 차르국에 붙는 식으로 강대국들에게 보호를 청했다. 폴란드 귀족들이 무시하거나 과중한 세금을 물리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시의원들과 논의를 진행해서 오비 강 유역을 점령 중인 코사크들을 매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넓은 지역에 코사크는 겨우 몇 백 명에 불과하니 비용도 적게 들 것으로 예상했다.

“그들과 연락이 닿을 수 있겠소?”

“물론입니다. 모피 거래를 위해 뤼벡에 코사크인들이 와 있습니다. 물론 그 모피는 차르 몰래 빼돌린 시비르의 공물입니다.”

잠시 후에 코사크 두 사람이 시의회 응접실에 등장했다. 이민호가 예상했던 털모자를 쓰고 멋진 턱수염을 기른 강인한 유목민의 모습과는 사뭇 차이가 있었다. 한 사람은 현자 타입의 노인, 한 사람은 호위인 듯 몸집이 컸으나 순둥이처럼 생겼다.

코사크와 대화하기 위해 중간에 통역 두 사람이 필요했다. 코사크도 자기들 말이 아니라 러시아어로 대화했다.

“쿨럭~ 쿨럭! 동방의 대칸께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인사드리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대들은 차르를 위해 시비르에서 공물을 걷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코사크들은 크림 칸국이나 다른 칸국 사람들을 타타르라고 멸칭으로 부르면서도 대칸에 대한 존경심을 숨기지 않았다. 코사크도 어쩔 수 없는 초원의 종족이었다.

이민호는 동해국을 속국으로 두고 있고 시베리아의 여러 부족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있어서 대칸이라는 칭호가 어색한 것도 아니었다. 여차 하면 기마대군을 몰고 우크라이나 남부를 휩쓸 수도 있기 때문에 코사크들이 감히 오스만 제국 황제에게 하는 것처럼 한껏 조롱하는 편지를 보낼 수도 없었다.

“그렇습니다, 대칸. 들판에 사는 타타르인들과 숲의 원주민들에게서 공물을 걷고 있습니다. 흔히 오해하시는데 공물은 세금이 아닙니다.”

“응? 그럼 뭔가?”

“물물교환입니다. 그들에게서 모피나 가축을 받는 대신 담배나 칼, 농기구 등을 하사합니다. 만약 하사품의 값어치가 공물에 비해 떨어진다고 판단할 경우 타타르인들이 하사품을 땅에 내팽개치고 공물을 걷는 사람을 불길에 집어 던집니다. 당연하다는 듯이 반란이 일어납니다.”

============================ 작품 후기 ============================

늦게라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