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05화 (554/1,000)

00605  62. 덴마크와 발트 해  =========================================================================

함대는 폭이 5km나 되는 사주에 복잡하게 난 좁은 수로를 통해 쉬테틴 석호에 진입했다. 20km나 되는 넓은 석호를 지나 다시 수로를 통해 복잡한 강 하구 지형을 지나야 쉬테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오는 길에 프로이센의 섭정이 탄 배가 있나 살펴보면서 의심스런 배는 일단 잡아서 수색부터 했다. 그러나 독일인 고위 귀족이 탄 배는 아직 잡지 못했다.

어제 저녁부터 해군과 지상군 참모들이 베를린 진공 작전 계획을 짰다. 기병연대와 장갑차 대대, 그리고 구르카 여단이 모두 투입되는 지상전을 상정했다. 만약 적의 저항이 길어질 경우에 대비해 탐사선을 비롯해 고속단정들이 오데르 강을 통해 베를린 북동쪽에서 보급을 추진할 계획도 세웠다.

“공주. 이번 전투에 대해 잠깐 설명해주겠소. 나는 지상군을 투입해 베를린을 포위해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에게서 항복을 받으려고 하오. 며칠 걸릴지도 모르겠소.”

“어째서 베를린을 포위하시려고요? 물론 저는 폐하의 뜻을 따르겠지만 궁금해서 여쭤요.”

이민호는 헤드비히 공주가 여자라서 전쟁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발트 해에서 사업을 할 서인도회사의 이미지를 고려해 전쟁에 반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었다.

“프로이센 섭정은 단치히와 쾨니히스베르크의 파멸에 책임이 있는 자 아니요? 반드시 잡아서 참수하겠소.”

“예? 잠깐만요, 폐하!”

“수상한 배가 나타났습니다, 전하!”

바로 이때 함장이 급히 보고했다. 쉬테틴 항구로 들어가기 전에 폭 2km, 길이 5km 이상 되는 석호가 또 있었는데 함대가 이곳을 지날 때였다.

그런데 강 하구를 향해 화려한 장식을 단 범선이 나오다가 멈추더니 다시 상류로 돌아가려고 급히 선회하고 있었다. 문장은 어디서 자주 보던 것이었다.

“저 배는 뭐지?”

“프로이센의 검은 독수리 문장과 비슷합니다만, 아주 약간 다릅니다. 문장 일람표를 확인하겠습니다, 전하.”

이민호가 함장과 대화하는 중에 헤드비히 공주가 발을 동동 굴렀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의 문장입니다!”

“당장 나포해! 드디어 잡았다.”

“잠깐! 안 돼요!”

“왜 그러시오?”

오늘따라 헤드비히 공주가 혼란에 빠진 듯했다.

“폐하! 설명을 할 테니 좀 들으세요.”

“일단 저 배를 잡고 나서 들읍시다.”

순양함 두 척이 속도를 내서 범선의 앞뒤를 가로막으며 깃발로 정선 신호를 보냈다. 범선에 탄 선원들이 대포에 화약을 넣고 마스트에 올라가 머스킷을 쏠 준비를 했으나 전투는 벌어지지 않았다. 배에 탄 귀족이 즉시 항복을 했기 때문이다.

해병들이 범선의 갑판을 향해 총을 겨누는 사이로 이민호가 뱃전에 얼굴을 내밀었다. 겁에 질린 선원들이 눈알만 뒤룩뒤룩 굴리는 가운데 이민호가 귀족 노인과 대화를 나눴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이 배에 탔나? 당장 그 자를 내놔라!”

“제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입니다, 고산국 국왕폐하!”

“네 이놈!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이곳까지 빨리도 도망쳤구나. 감히 나를 속이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쾨니히스베르크에 간 적이 없습니다.”

음흉한 자답게 당연히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이상했다. 이민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귀족이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입니다. 쉬테틴과 포메라니아, 카수비아, 반달로룸과 크로센의 공작이기도 합니다. 포메라니아 공작은 단지 명목상의 칭호입니다만.”

“잠깐!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라면,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 아니오?”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기도 합니다, 폐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선출할 권한을 가진 선제후 7명 중에서 하나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이었다. 선제후가 소개했듯이 여러 지역의 공작 칭호를 갖고 있었으나 가장 중요한 칭호는 선제후였다.

이때 헤드비히 공주가 고개를 내밀더니 노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3년 전 저희 오빠 결혼식에서 뵙고 오랜만이에요.”

“오! 비키 공주! 잘 지냈소? 내 딸 안네는 어때요? 너무 걱정돼서 지금 덴마크로 가는 길이오.”

이민호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4세의 아내의 공식 칭호가 브란덴부르크의 안네 카테리네라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저 노인은 헤드비히 공주에게 오빠의 부인의 아버지, 즉 사장어른이 되는 셈이었다.

“새언니는 곧 출산일이에요. 며칠 전에 봤는데 무척 건강하니 너무 염려마세요.”

“저기, 공주. 그럼 저 사람은 프로이센 섭정이 아니요?”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 후에 프로이센 섭정이 될 사람이었다.

“아니에요! 제가 설명해드리려고 했는데 폐하께서 들으려고 하지 않으셨잖아요!”

“뭐가 뭔지 모르겠소.”

13세기 이후 게르만 족은 슬라브 족 폴란드인들이 거주하는 오데르 강 동쪽으로 활발하게 진출, 혹은 침략했다. 브란덴부르크와 오스트마르크, 즉 오스트리아는 게르만 족의 영토 확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변경백령이 되었다.

그런데 브란덴부르크 영지가 동쪽과 남쪽으로 자꾸 확장되면서 영지 역시 여러 번 분할됐다. 심지어 돈을 꾸느라 저당 잡히기 위해 분할시킨 브란덴부르크-슈베트 변경백령 같은 경우도 있었다.

문제의 원흉인 프로이센 공작령의 섭정은 독일 남부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 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인 게오르그 프리드리히였다. 쿨름바흐가 바이로이트 지역의 수도라서 비공식적인 문서에서 브란덴부르크-바이로이트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냥 지역 이름을 쓸 것이지 헷갈리게 브란덴부르크를 붙이는 이유가 뭐요?”

“브란덴부르크에서 확장된 영지니까요.”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와 참모들에게 설명하는 동안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국왕좌승함에 승선했다. 공주에게서 사정 설명을 들은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제가 그분 대신 폐하께 사과드리겠습니다. 제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제발 그분을 용서해주십시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독일의 수많은 제후들 중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나중에 프로이센 왕국의 왕이 될 위치였기에 이민호는 선제후가 지나치게 예의를 차린다고 느꼈다.

“본인도 아니면서 어째서 대신 사과하시오? 일어나시오.”

“아닙니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변경백님께서 베푼 은혜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비록 후손이 없어 혈통이 단절될 상황에 처했으면서도 그분도 호엔촐레른 가문의 일원이라서 가문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신 분입니다. 지금까지 양보해주신 성의를 생각해서 이번에는 마땅히 제가 그분의 책임을 나눠서 질 때입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소.”

“제가 설명할게요, 폐하.”

호엔촐레른 가문에서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분할하지 않고 장남 한 사람에게만 상속해주는 가문법이 있었다. 1473년에 알브레히트 3세 아킬레스에 의해 성립된 ‘아킬레아 처분법’이었다. 선제후 영지의 분할 금지는 선제후의 특권을 규정한 금인칙서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알브레히트 3세는 차남과 삼남에게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에서 멀리 떨어진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와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를 상속시키면서, 제비를 뽑아 영지를 정했다. 만약 다른 자식이 더 있다면 성직자를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요아힘 프리드리히의 부친이며 작년에 서거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한 게오르그가 이 가문법을 어기면서 문제가 생겼다. 오데르 강 동안의 노이마르크 일부와 도시 크로센(Crossen an der Oder)을 선제후령에서 분리해서 삼남과 차남에게 분할 상속하는 유언을 남긴 것이다.

부친 사망 후 장남이며 선제후 후계자인 요아힘 프리드리히는 상속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게오르그 프리드리히에게 자문을 요청했다.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이었던 게오르그 프리드리히는 사촌이 후계자 없이 죽고 나서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 변경백을 겸하고 있었다. 그는 알브레히트 3세의 차남과 삼남에서 내려온 두 변경백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였으며, 후손이 없었다.

“비키 공주가 한 설명이 맞습니다, 폐하.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변경백께서는 제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의 영지 전부를 상속받게 하는 대신, 그분의 사후에 저의 동생들에게 두 변경백을 나눠서 상속해주기로 약속했습니다.”

“범죄자 주제에 통이 크시구먼.”

“그리고 다시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이 분할 상속되지 못하도록 가문법으로 규정했습니다. ‘게라의 가문조약’이라 해서 지난 4월에 호엔촐레른 가문의 모든 구성원이 동의했습니다.”

뭔가 복잡하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가문의 영지를 정리한 게오르그 프리드리히가 같은 호엔촐레른 가문의 방계인 프로이센 공작령과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을 합칠 준비를 해두려는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가문을 위해 양보할 줄 알고, 미래를 대비해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남의 목숨을 아주 우습게 여긴다는 것이 문제였다. 덕택에 이민호는 이틀 사이에 도시 두 개를 거의 소멸시키고 폴란드 후사르에게 인명피해를 주게 됐다.

단치히에서 사망한 민간인이 거의 없었고, 쾨니히스베르크는 단치히 사건을 일으키면서 동원된 병력이 많아 도시에 포격을 가한 것이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 죄 없는 폴란드 후사르에 천 명 가까운 인명 피해를 입힌 것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선제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선제후령을 분할하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잘 알겠소만 나는 프로이센 섭정을 맡았던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그 사람과 계산할 것이 있소.”

“제가 그 계산을 대신 해드리면 안 되겠습니까, 폐하?”

“나는 그 자를 참수하려고 하고 있소이다. 방해하시려고? 당신은 지금부터 내 포로요.”

호위들이 권총과 소총을 선제후에게 겨눴다. 그러나 선제후는 무릎을 꿇은 채 이민호에게 제안했다.

“저를 그분 대신 포로로 잡아도 좋습니다. 속죄를 할 테니 배상금을 정해주십시오. 그분 대신 저를 죽이셔도 좋습니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를 징치하려고 쾨니히스베르크 시가지 절반을 파괴했고, 프로이센에서 배상금 1,500만 라이히스탈러를 받았소.”

“설마 그렇게 많이 냈습니까? 프로이센은 그 정도로 부유한 영지가 아닙니다만.”

놀란 선제후에게 헤드비히 공주가 나서서 설명했다.

“고산국에 1,500만, 폴란드 후사르에 351만, 그리고 단치히의 재건을 위해 10년 동안 자금을 대기로 했어요. 유대인에게서 돈을 빌렸대요.”

“맙소사! 프로이센은 곧 망하겠군요.”

프로이센이 망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이민호는 속은 게 화가 나서 그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를 잡아서 족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폐하. 그 노인은 60세에요. 어차피 몇 년 안에 죽을 테니 화를 푸세요.”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에게 말한 다음, 선제후에게 열심히 뭐라 설명했다. 통역이 귀띔하길, 돈으로 때우라는 충고를 하고 있었다.

“폐하! 제 개인 재산을 팔아서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은 5백만 라이히스탈러도 안 됩니다. 하지만 그분을 살릴 수 있다면 그만큼 빚을 질 각오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를 내겠다는 뜻이오?”

“천만 라이히스탈러를 낼 용의가 있습니다. 부디 그분을 용서해주십시오.”

“쳇! 나는 고산국 국왕이오. 내 명예가 겨우 그 정도 가치밖에 없소? 돈은 필요 없소. 절대 그를 용서해주지 않겠소.”

이민호가 버럭 화를 냈으나 헤드비히 공주가 열심히 설득했다. 이민호도 더 이상 실수를 하고 싶지 않아 화평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졌다. 내륙 깊숙이 들어가 전쟁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한몫했다.

“여기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가 지배하는 안스바흐와 쿨름바흐 변경백령이에요.”

“너무 남쪽이구려.”

지도를 보니 안스바흐 변경백령과 쿨름바흐 변경백령은 독일에서도 한참 남쪽에 위치했다. 베네치아나 네덜란드에서 출발하는 편이 나을지도 몰랐다.

“에휴! 모르겠소. 공주가 알아서 하시오.”

이민호는 화가 나서 침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은 헤드비히 공주의 주도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함대가 쉬테틴 바깥 석호에 머물러 있는 동안 상선 여러 척이 쉬테틴과 함대 사이를 오갔다. 대부분이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연락 용도로 활용했지만 일부는 금과 은을 운반해왔다.

“폐하! 현재 300만 라이히스탈러가 넘게 들어왔어요. 내일 낮까지 나머지 700만을 채울 거여요.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성의를 봐서 이만 화를 푸세요, 폐하.”

“쳇! 이미 공주에게 맡겼으니 마음대로 하시오.”

일이 있을 때마다 헤드비히 공주가 꼬박꼬박 침전에 와서 침대에 드러누운 이민호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화가 나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폐하! 아직도 화가 안 풀렸어요?”

“그 섭정인가 하는 인간 때문에 내 체면이 많이 손상됐소. 그에게 속아서 무력을 사용한 것이 몹시 불쾌하오.”

“폐하의 체면은 자그마치 2,500만 라이히스탈러의 가치가 있는 거군요. 꺄악!”

이민호가 공주의 손목을 낚아채서 몸을 껴안았다. 잠시 바동거리던 공주는 미래의 남편이 이끄는 대로 품에 안겼다. 공주의 시녀들이 불안하게 지켜보는 동안 이민호가 공주의 몸을 만졌다.

“저, 폐하.”

“이 정도는 괜찮아!”

제지하려는 시녀들에게 보란 듯이 공주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입맞춤을 하면서 손은 공주의 치마 사이로 들어가 허벅지 안쪽을 더듬었다.

헤드비히가 체면이 손상된 값이 황금 35톤이나 되는 비싼 남자의 목을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이민호가 혀를 들이밀자 눈을 꼭 감은 공주가 혀로 쪽쪽 빨아댔다.

============================ 작품 후기 ============================

조금 복잡하지만 독일 초행길에 충분히 오해할 것 같아 소재로 활용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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