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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07화 (556/1,000)

00607  62. 덴마크와 발트 해  =========================================================================

그날 저녁 함대는 가까운 덴마크의 쾨벤하운에 정박했다. 그런데 지난번에 지나갔을 때와 달리 배가 항구에 잔뜩 들어 차 있었다.

“어서 오게. 지난 며칠 사이에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닌 거야? 자세히 이야기 좀 해보게.”

크리스티안 4세가 몹시 반기며 궁전에 초대해서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덴마크 귀족 여성과 결혼한 통역장교도 만찬에 참석했다.

함대 소속 배마다 통돼지 바비큐가 몇 마리씩 들어갔다. 구해달라고 부탁해놓았던 프리슬란트 젖소 여러 마리를 수송선에 실었다. 흔히 홀슈타인 젖소라고 불리는 얼룩소였다.

“항구에 웬 배가 그리 많아?”

“한자 동맹 여러 도시에서 보낸 사절단이야. 고산국 함대가 돌아가면서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하니까, 다음에 올 때 방문해달라고 선물을 바치려고 온 배들이야.”

“도시를 멸망시키지 말아달라는 소리로 들리는군.”

“큭큭! 맞아. 시의원들이 몸이 달아서 서너 명씩 직접 왔더군.”

만찬 중에 여러 도시에서 보낸 사절단이 알현을 신청하고 선물을 바쳤다. 이민호는 선물에 합당한, 그러나 발트 해 연안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산호나 향신료를 답례로 하사했다. 마치 아시아식 조공체계가 만들어진 듯했다.

고산국 고위 장교단과 덴마크 귀족들이 테이블마다 서너 명씩 앉아서 대화하는 사이, 이민호는 덴마크 국왕과 함께 영토 협상과 서인도회사 설립 준비를 마무리했다. 주빈석에는 헤드비히 공주와 민영도 착석했다.

“오빠! 왕궁 실내악단이 왜 저렇게 풀이 죽었어요?”

“응? 아! 잉글랜드에서 초빙해온 악사들이 그 동안 기고만장했다가 오늘 임자 만난 거지. 악장은 아예 주저앉았구먼.”

고산국 해군 악단 예복을 입은 제1 바이올린 주자가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즉 턱받침에 턱을 대지 않는 바로크식 주법으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현을 짚은 손가락을 턱 가까이 쭉 올리거나 손가락을 떨어 감정 표현을 강화하기도 했다. 중간 중간에 현에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서 한두 옥타브 위의 음을 표현하거나 활줄로 여러 가지 현란한 주법을 구사했다.

국왕과 장교들은 덴마크 왕 및 귀족들을 상대로 외교관 노릇을 하고 있었으나 잉글랜드 악단과 교대로 연주하던 고산국 악단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정복자 같았다. 실력 차이가 드러난 지금은 교대하지도 않고 고산국 악단만 계속해서 연주했다. 잉글랜드 악사들은 좌절한 자들이 절반, 얼이 빠진 채 연주를 감상하는 자들이 나머지 절반이었고 악보에 곡을 옮길 겨를도 없었다.

“바이올린으로 저런 주법이 가능하나? 음색도 원래 것과 좀 다른데.”

“현을 금속으로 바꿨어.”

“아하!”

곡도 차이가 있었다. 이 시기 유럽의 음악에 더해 이민호가 기억하는 클래식 음악의 몇몇 소절을 기반으로 고산국 작곡가, 연주자들이 고민해서 아예 새롭게 작곡했다. 그리고 <어제 악보>라는 이름으로 인쇄해서 마치 고산국 국왕이 유럽식 음악을 작곡한 것처럼 사기를 쳤다.

“포르투갈과 처음 접촉한 게 10년쯤 되나? 바이올린을 마치 고산국 전통악기처럼 다루는군.”

“아시아에도 비슷한 현악기가 있으니까.”

“아! 맞다. 바이올린 계열 악기들이 원래 중앙아시아 케만에서 나왔다고 들었어.”

덴마크 서인도회사 설립 준비를 하면서 덴마크 왕실로부터 아이슬란드와 페로제도, 그린란드를 정식으로 인수했다.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탐사단을 보내겠지만 고산국 정규군이 주둔하는 것은 피하기로 했다.

페로제도는 원래 팔려고 수십 년 전부터 매물로 내놨던 것이고, 그린란드는 새로 팔게 됐으나 관심 가진 덴마크인이 없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에서 반발이 있을 것 같아 헤드비히 공주가 제안한 대로 영토 할양 조약이 맺어졌다.

결국 아이슬란드는 헤드비히 공주를 여왕으로 한 왕국으로 독립시키되, 헤드비히의 재위기간에는 고산국과 덴마크에 동시에 신속하는 나라로 규정했다. 어차피 얼마 후에는 고산국 영토가 될 예정이었다.

“페로 제도에 해적들이 자주 쳐들어와서 문제야. 내버려두면 안 될 텐데? 오죽하면 덴마크 왕실에서 대대로 팔려고 했겠어?”

“대포 몇 문 갖다 놓기로 했어. 그리고 배가 자주 들르면 해적질할 엄두도 못 낼 거야.”

페로 제도 주민들에게 머스킷과 대포 등 무기를 더 주고 민병대로 조직화시키기로 했다. 화력이 역전돼 이제는 오히려 페로 제도 주민들이 지나가는 외국 어선들을 털어먹을까 걱정됐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놈들은 상대가 힘이 약하면 반드시 빼앗아간다니까.”

“후후! 덴마크는 안 그랬어?”

“덴마크는 더 이상 바이킹이 아니야. 특히 나는 합법적인 일만 명분을 갖고 추진해.”

“노르웨이는 어쩔 거야?”

“내가 노르웨이에 도시를 네 개나 건설하고 있잖아? 인구가 워낙 적어서 발전 가능성은 별로 없더라도.”

“노르웨이인들이 일단 크리스를 좋아는 하겠구나. 그런데 한자 동맹 도시들은 한결같이 덴마크를 엄청 싫어하더라.”

아직까지는 덴마크가 노르웨이를 지배하는 것에 큰 반발이 없었다. 노르웨이가 독립 움직임을 보인 것은 1814년 스웨덴이 노르웨이 지배권을 덴마크로부터 빼앗은 다음이었으나 즉시 진압 당했다. 1905년 덴마크의 왕자이며 스웨덴 국왕의 외손자를 데려다가 왕으로 즉위시켜 성공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해협 통행세가 비싸기는 하지만, 무역을 증진하기 위해 조금 줄여줄 용의도 있어. 서인도회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야 할 텐데.”

“그래. 통행세는 좀 줄여야겠더라. 오죽하면 플류트 선이 그 모양으로 만들어졌겠어?”

“큭큭! 네덜란드 미친놈들! 플류트 선은 아마 구두쇠 유대인 놈들이 설계했을 거야. 해적선을 만나면 도망치거나 그냥 죽으라는 거야.”

정상적인 선형의 상선이라도 해적선의 무장과 인원을 당해내기란 어려웠으니 처음부터 도망치거나 아예 포기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상갑판 면적을 지나치게 줄여서 보기에도 불안했다.

“그런데 고산국왕! 프로이센 섭정은 어떻게 할 거야? 전쟁을 일으키려고 음모를 꾸몄으면 당연히 잡아 죽여야지.”

“어떻게? 군대를 몰고 남부 독일까지 가서 잡으라고?”

“그게, 좀 어렵겠지? 아무리 고산국이 강군이라도 너무 멀어. 고산국이 신성 로마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면 뒤따라 다니면서 점령지를 날로 먹으려고 했는데, 아깝다.”

“남 좋은 일을 시키기 싫어서라도 전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외교적 공세는 어느 정도 가할 생각이야. 노인을 신경쇠약으로 죽여야지.”

“사람들이 고산국왕이 포기한 경우도 있다고 신이 나서 떠들어댈 거야. 괜히 시비 걸었다가 불리해지면 내륙으로 숨는 놈이 앞으로 나온다면 어쩔래?”

“사실 그런 귀족을 잡는 게 어렵지는 않아. 위치만 알면 독일 어디든 기병연대가 가서 잡아오면 돼.”

이 시대 유럽에는 상비군이 없었고 용병을 부대 단위로 고용하는 경우가 흔했다. 전령이 달려가 부대를 소집해 방어에 투입하는 것보다 고산국 기병연대의 이동속도가 훨씬 더 빨라서 주요 방어지점을 지나쳐버릴 수 있었다. 브란덴부르크-쿨름바흐를 공격해 섭정을 징벌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았다.

“말도 안 돼!”

“지도를 봐.”

두 사람 사이에 작은 휴대용 유럽 지도가 펼쳐졌다. 발트 해 쉬테틴에서 출발해 쿨름바흐에서 난리를 피운 다음, 알프스를 넘어 베네치아까지 달린다면 천여 km 남짓이었다. 쿨름바흐에서 작전을 마치고 네덜란드나 폴란드로 빠지면 기병연대의 생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고산국 기병연대는 유럽식 중기병이 아니고 경기병도 아니야. 휴대한 보급품으로 일주일 정도는 전투를 수행할 수 있어. 물론 기병연대 절반 정도는 전사하거나 낙오되겠지.”

“그게 가능하다면 정말 무섭다.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하지만 독일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면 득보다 실이 많지 않겠어? 외국군이 내륙을 마음껏 종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 제후들이 잠도 못 잘 거야. 나중에 결정적일 때 써먹어야지.”

30년 전쟁이 일어나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그러나 고산국이 등장하면서 실제 역사인 1618년보다 빨라질 수도, 늦춰지거나 아예 전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섭정이 원한 것은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령과 프로이센이 합해지는 거잖아. 앞으로 두 지역이 합쳐지기도 어렵고 수십 년 동안 빚 갚느라 발전도 못해. 괜히 일 벌였다가 망한 거지.”

쾨니히스베르크 절반이 파괴되고 프로이센이 거대한 채무에 짓눌려 낙담했는지 섭정 게오르그 프리드리히는 실제 역사인 1603년보다 몇 년 빨리 죽었다. 그리고 그 대신 프로이센 섭정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가 맡았으나 그도 과로로 인해 일찍 죽고 말았다.

이 시기의 호엔촐레른 가문도 겹치기 족내혼 탓인지 합스부르크 가문처럼 후사 잇기가 쉽지 않은 편이었다. 오랜만에 다산을 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 요아힘 3세 프리드리히는 두 번 결혼해서 자녀 열둘을 낳았으나 여섯이 어려서, 또는 젊어서 일찍 죽었다.

“흐음! 고산국 함대가 내륙에서 작전할 능력이 없다고 소문이 났는데, 아닌가 보구나.”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작년에 조문단이 발렌시아에서 마드리드를 거쳐 갈리시아로 갔잖아?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했어. 물론 보급 때문에 해안 작전이 편하지만 내륙지역 작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다른 나라에 소문낼 필요는 없어.”

“아! 백조 마차! 맞다. 조문사절단은 외국 영토로 원정 훈련을 갈 훌륭한 기회지. 그런데 진짜로 백조가 마차를 끌었어?”

예상한 대로 과장된 소문이 유럽 전체에 퍼진 듯했다.

“그럴 리가 있나? 돛과 노 없이 움직이는 배와 똑같은 기관으로 움직였어.”

“나 그거 갖고 싶다.”

“안 돼.”

“마차 말고 배 말이야.”

“더 안 돼. 몇 척 빌려는 줄게. 어차피 그런 배는 덴마크에서 독자적으로 운영도 못할 거야.”

크리스티안 4세가 바닥에 드러누워 바동거리면서 떼를 쓰더라도 기관이 장착된 배는 절대로 내줄 수 없었다. 그리고 아직 유럽에서는 금속 가공 기술이 떨어져 복제도 불가능했다. 고산국 선원들이 운행하는 배 몇 척을 임대 형식으로 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쳇! 홀슈타인이나 지켜줘.”

“남의 나라를 먼저 침략하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도와줄게.”

“알았어. 다른 나라 안 잡아먹을게. 홀슈타인에 독일어를 쓰는 주민들이 많아서 혹시나 독일에 붙으려 할까봐 조금 걱정이야.”

유럽에서 한 영지가 두 나라에 이중 신속하는 경우가 흔했다. 1608년 브란덴부르크-프로이센 공작령이나 1701년 둘이 완전히 결합한 프로이센 왕국도 폴란드와 신성 로마 제국에 이중으로 신속했다.

유틀란트 반도 남쪽 슐레스비히는 12세기부터 덴마크의 공작령이 됐다. 그 남쪽 아이더 강과 엘바 강 사이의 홀슈타인은 덴마크 국왕의 통치를 받는 동시에 신성 로마 제국의 봉토라는 독특한 지위에 있었다. 덴마크인과 독일인이 뒤섞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령과 덴마크 왕실은 상속법의 차이로 인해 언젠가 상속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에 유럽에서 민족주의가 유행하는 시기에 독일계 주민이 많은 홀슈타인에서 독일과 통합하려는 노력이 일어난다. 실제 19세기 중반에 홀슈타인은 물론 슐레스비히까지 독일 영토로 넘어간다.

“반대로 고산국이 적의 침략을 받는다면 덴마크가 도와줘야 해. 공수동맹이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도와주지. 설마 에스파냐하고 싸우지는 않겠지? 둘이 싸우면 남부 네덜란드에서 영토를 얻을 기회가 생길 나야 좋겠지만 말이야.”

덴마크 국경이 접한 나라는 스웨덴과 독일, 네덜란드였다. 바다를 통해 싸운다면 발트 해 연안 국가인 폴란드와 루스 차르국이 추가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고산국이 영토는 넓어도 육지로 국경을 접한 나라는 에스파냐 딱 하나밖에 없었다. 필리핀 루손 섬에서도, 신대륙에서도 에스파냐만 국경을 맞닿았다.

정식 영토가 아닌 여진족 동해국은 아직 나라를 형성하지 못한 건주여진 및 해서여진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인접해 있었다. 처음부터 육지를 통해 영토가 접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한 탓이었다. 그러나 시베리아를 개발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었다.

“에스파냐 말고 다른 나라가 바다를 통해 쳐들어올 수도 있어.”

“풋! 고산국 함대가 무서워서 바다에서는 아예 싸울 생각을 안 할 텐데? 혹시라도 그럴 일이 있으면 덴마크 함대가 도움이 될 거야.”

근대 유럽에서 가장 강한 해군은 아니더라도 덴마크 해군의 위상은 그럭저럭 높은 편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덴마크 함대가 프랑스 편에 붙을까봐 두려운 영국 해군이 덴마크를 공격해 전열함들을 끌고 갈 정도로 신경을 쓸 만한 규모였다.

“고산국 같은 동맹국을 얻어서 든든하다. 조약 내용을 잘 지켜다오.”

“물론. 유럽에서 처음으로 얻은 동맹국이니까 잘 지내보자.”

“응? 에스파냐는 동맹국이 아니었어?”

“우호적인 국가인데 정식 공수동맹 조약은 체결을 안 했어. 에스파냐 때문에 유럽에서 온갖 국가들하고 싸워야 될 것 같아서 말이야.”

고산국 에스파냐와 맺은 영토 매매 조약은 북미 대륙의 소유권을 에스파냐가 인정해주고, 만약 북미를 외국군이 침략할 경우 원군을 보내주는 것이 내용이었다. 그러나 에스파냐가 다른 나라와 싸울 때 고산국이 질 군사적 의무는 없었다. 다만 마닐라를 외국군 또는 해적으로부터 보호해줄 의무는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려서 죄송합니다.

어제 새벽에 전자책 원고 5권을 넘기느라 밤새는 바람에 잠자는 주기가 또 바뀌어버렸습니다. 오후에 하나 더 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기다리지는 마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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