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11화 (560/1,000)

00611  63.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

“알제르 참치 냉동선이라. 참치를 끌어올릴 작은 기중기가 겨우 두 개면 부족하지 않을까?”

이번에는 포샤가 작성한 알제르 등 북아프리카 도시들을 위한 계획서를 이민호가 검토했다. 지중해 지역을 담당한 베네치아 시녀들은 북아프리카의 농경지 확장과 유전 개발 외에 어업에도 신경을 썼다.

남태평양에서 조업할 1,800톤 급 참치 잡이 어선은 그물과 단정을 끌어당기는 기중기가 고물에 세 개, 3천 톤 급 참치 냉동선은 참치 꼬리를 잡아서 들어 올리는 기중기가 두 개였다. 해안경비대 구난경비함에 이어 건조될 최초의 어업용 철선이었다.

“어부들 숫자가 제한돼 있으니까 더 많아도 활용을 못해요.”

“그렇겠군. 잘 봤어. 고생이 많았다.”

포샤가 정한 것은 냉동선 설계가 아니라 냉동고 용량과 크레인 숫자 같은 설계 전 요구사항이었다. 이민호는 라면 반찬으로 먹던 참치 통조림이 생각나 침을 꿀꺽 삼켰다. 참치를 구이로 먹던 야만에서 벗어나 참치 회나 다른 생선회도 먹고 싶었다.

어서 기생충이나 세균에 대한 완벽한 대비가 돼야 회를 먹을 수 있을 텐데, 지금 당장은 어려웠다. 의사나 의학자들이 하는 일이 워낙 많아 인력을 빼내 다른 연구를 시킬 수가 없었다. 아직도 사람 생명을 구하는 일이 먼저라서 식도락을 위해 연구 역량을 돌릴 여력은 없었다.

“민영이는 아주 신났어.”

북방 여공작이 민영에게 괜히 붙은 작위가 아니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민영의 주관 하에 여진족 호위들이 맡아, 몽골과 시베리아 정세를 감안해 건설 계획을 입안하고 있었다.

물론 실제 노선 설계는 경험이 풍부한 철도 건설 기술자들이 직접 답사를 한 다음 확정하겠지만 정치적인 결정은 이민호와 정부가 이렇게 미리 설정해줘야 했다. 북미 오대호에 대형 제철소가 들어서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계획이었다.

“노선 두 가지를 일단 선정했는데 어느 쪽을 먼저 건설할지 고민이에요. 바이칼 호수 북쪽 노선은 강폭이 넓은 강이 많고, 남쪽 노선은 몽골 차하르 부나 오이라트 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어요.”

“어느 쪽부터 놓고 싶어?”

“시베리아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결국 둘 다 놔야 하겠지만 편한 쪽부터 시작하는 게 나을 거여요. 몽골 부족들하고 조만간 접촉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겠지만요.”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남과 북 두 가지 다 건설하기로 했다. 남쪽은 초원이라 금방 철도를 건설할 수 있지만 몽골 유목민들이 방해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했다. 몽골인들이 건설에 참가한다면 더할 수 없이 좋겠지만, 몽골 영토 통과를 반대하거나 통행세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반대로 바이칼 호수 북쪽은 산악지대였고 북극해로 흐르는 강이 여럿이었다. 산에 터널을 뚫지 않고 교량을 적게 건설하면서 철도를 건설하기란 쉽지 않았다.

“몽골 영토에서 벗어나도록 바이칼 호수 중간으로 철도를 놓으면 안 될까요? 다리를 놓을 필요도 없잖아요.”

“언제까지나 열차 운반선에 의존할 수는 없어. 열차 운반선은 임시로 쓰는 것뿐이니까 결국 철도를 다 깔아야 해.”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할 때 강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강은 철도 건설용 자재 수송에 도움이 됐다. 그리고 열차 운반선을 이용해 철도가 깔리지 않은 강이나 호수 구간에서 열차를 수송할 수도 있었다.

강을 만날 때마다 일일이 교량을 건설하고 나서 다음 철도 구간을 건설한다면 건설 기간이 몇 십 년으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이미 건설된 철도를 통해 운반한 배의 부분품을 조립해서 배를 완성한 다음, 수로를 통해 공사용 열차를 실어 나르기로 했다. 교량 건설 기간 중에도 교량 너머의 구간에서 계속 공사가 진행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돌아가면 몽골 부족들과 본격적으로 접촉해야겠어요. 보얀 체첸칸이 비록 이름뿐인 칸이라지만 그래도 칭기즈칸의 직계인 황금 씨족이며 정통 차하르 부의 칸이에요.”

“그래. 북방 여대공의 말씀인데 내가 따라가야지. 남쪽 노선부터 건설하겠다는 뜻이지?”

이민호는 해서여진까지는 건주여진에 흡수되는 것을 용납하더라도 몽골초원은 중립으로 머무르길 바랐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가 몽골을 고산국 영향력 내로 들어오게 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이민호는 판단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몽골이 차하르와 오이라트뿐만 아니라 각 부족 내부 분열이 심각해서 전란이 이어지는 판에 도무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예. 일단 쉬운 노선부터 건설하는 게 나을 테니까요. 그리고 오이라트 부하고는 전쟁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차하르와 오이라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니까요.”

“넓은 초원에서 싸우는 것은 마음에 안 들어. 게다가 춥잖아!”

“제가 장갑차 안에서 주인님을 따뜻하게 안아드릴게요.”

“후후! 그럼 좋지.”

국왕좌승함 집무실에는 어느덧 책상 여러 개가 들어와 세계 곳곳에서 진행할 고산국의 건설 계획을 수립했다. 내년에 있을 로마가톨릭 교황의 성지순례 계획은 이미 작성했으나 로마와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으며 계속 수정 중이었다. 이런 계획 수립은 각 출신지역별 후궁, 시녀, 호위들이 맡았고, 지금은 이들이 이민호보다 오히려 전문가였다.

“캬웅!”

후궁들에게 일을 시켜놓고 이민호는 아기 고양이와 놀아줬다. 야생 고양이가 분명한 이 아기 고양이는 어느덧 이유기에 접어들어 이제는 연한 고기 정도는 먹을 수 있게 됐다. 삶은 쇠고기 수육 조각을 들고 고양이를 놀렸다.

“웃차! 이 녀석이 고기가 아니라 내 손에 발톱 공격을 하는구나.”

“그러다 성질 나빠지겠어요.”

고양이의 발톱에는 무수한 세균이 묻어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함대에 항생제가 있긴 한데 아직도 제작비가 엄청나게 비싸고 유효기간은 짧았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목숨 걸고 하는 장난일수도 있었다.

“이놈 성질은 지금도 충분히 나빠.”

아기 고양이는 우유를 먹이는 민영만 잘 따르고 이민호를 볼 때마다 성질을 냈다. 이민호도 야생동물과 굳이 시간 들여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앞발질을 할 때마다 이민호가 피하자 고양이가 서서히 입을 내밀어 고기 조각을 덥석 물었다. 고양이와 이민호가 잠시 눈싸움을 했으나 고양이는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 했다. 결국 이민호가 손을 떼자 고양이가 찹찹거리면서 잘도 먹었다.

“쳇! 재미없게. 다 먹어라.”

고기를 통째로 바닥에 놓았다. 승리한 고양이가 이민호와 얼굴을 마주치면서 명백히 비웃음을 지었다. 이민호가 발끈했다.

“이놈아! 이 고기가 어디서 나온 건지 모르지? 우유는? 다 내 땅에서 나온 산물이다. 내가 너를 먹여 살리는 거야.”

“사람 먹는 걸 줘도 괜찮겠어요?”

“물을 충분히 마시면 괜찮아.”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 고양이에게 사람이 먹는 음식을 줘서는 안 된다는 말이 나돌았었다. 염분과다로 신장이 붓고 일찍 죽는다나. 그래서 배고픈 길고양이가 불쌍해서 참치 캔을 따주거나 소시지를 준 사람들이 욕을 잔뜩 먹었다.

자칭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사람들은 길고양이에게 참치나 닭 가슴살을 줄 때 데치거나 따뜻한 물에 헹궈 기름기와 소금기를 말끔히 짜내고 깨끗한 물을 따로 줘야 한다고 강요했다. 고양이가 굶더라도 차라리 주지 말라는 소리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염분이 과하면 소변으로 배출되니 과장이었다. 염분이 개와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독인 것처럼 서술된 어느 책 내용과 반대로 정식 수의학 연구 논문들에서는 전혀 다른 결론을 냈다.

짠 음식의 대명사 라면보다 훨씬 높은 나트륨 함량 1.5퍼센트, 소금 함량 3.75퍼센트까지는 상관이 없다고 한다. 건강한 고양이에게 신부전증과 고혈압에 영향을 안 미침은 물론 높은 염분이 하부요로질환에 오히려 유익하다는 결론이었다.

고양이 사료나 캔에도 사람이 먹는 음식만큼 염분이 충분히 들어있었다. 물론 이 시대에 고양이에게 전용 사료를 안 줬다고 욕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아이슬란드 주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함대는 그린란드를 향해 출발했다. 멀어지는 섬을 보면서 아이슬란드 시녀들이 슬피 울었다.

무장 탐사선 한 척을 남겨두고 가려다가 대서양 탐사전단이 이틀 후에 도착할 예정이기에 명령서만 레이캬비크에 남겨두었다. 당분간 대서양 탐사전단 소속 함선들이 교대로 아이슬란드를 방어하도록 임무를 변경했다.

“어선이 정말 많습니다. 선수에 선명을 적은 배들이 대폭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가 나포할까 겁나겠지. 이렇게 조업을 허가해주는 것만으로 다행으로 알아야 돼.”

함대가 남서쪽으로 향하는 동안 분산 대형을 취했다. 여기저기 함선들에서 보고하는 내용을 합산해보니 아이슬란드 남서쪽, 그린란드 남동쪽 해역에 적어도 30척의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었다.

조상 대대로 최소한 수십 년 전부터 이 해역에서 고기잡이를 해온 어선들을 몰아낼 수는 없었다. 다만 지정된 항구 이외의 상륙 금지, 산란기 조업 금지 같은 통제를 가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차피 어족이 풍부한 이 시대에 내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 말라고 괜히 어깃장을 놓을 수는 없었다.

레이캬비크에서 출항한 다음 날 오전에 그린란드 남단에 도착했다. 탐사선과 단정들을 시켜 영토 표지석을 곳곳에 세웠다. 그린란드에 대서양 탐사전단이 가끔 들렀으나 섬이 너무 많아 그 동안 일일이 세우지 못했었다.

“전하! 무인 등대를 여러 곳에 세우면 좋겠습니다. 영토 주장을 할 겸, 항해 안전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그거 좋은 의견이야, 함장! 그런데 무인 등대를 세운다면 전력원은 무엇으로 할 셈인가?”

“이곳은 바람이 강한 편이니 풍차가 좋지 않겠습니까? 덴마크에서 본 방앗간 풍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고산국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훔쳐갈 유럽 놈들이 반드시 있겠지. 그래도 기술 유출이 안 되는 선에서 연구해볼 만하겠어.”

무인 등대는 그린란드뿐만 아니라 고산국 백성들이 거주하지 않는 북미 지역의 해안선이나 섬에서 영토를 지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의문이었다.

인구가 적어서 지금 당장 그린란드를 개발하는 것은 무리였다. 전기분해를 이용해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제련할 때 필수적인 빙정석이 그린란드에서 산출된다고 어렴풋이 들었지만 정확히 어디에서 나는지 알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이민호가 빙정석 산출지가 이빅투트라고 기억하더라도 정확한 위치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합성 빙정석을 형석으로부터 만든다는 지식은 있어도 정작 합성하는 방법을 몰랐다. 심지어 형석을 구별할 자신도 없었다. 이래저래 그린란드는 개발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좋은 의견을 제시했네, 함장.”

“감사합니다. 처음으로 전하께 칭찬 받는 것 같습니다.”

“응? 실력이 좋고 장래가 기대되니까 내가 자네를 함장으로 천거했지. 그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나봐?”

“흑흑!”

함장이 우는 시늉을 했으나 그 동안 진짜로 서러웠던 모양이었다. 해군 대령 계급에서도 임시 전대장인 함장의 직급을 정식 전대장으로 올려주었다. 함대뿐만 아니라 국가에 좋은 제안을 해준 작은 보답이었다.

그 즉시 덴마크 시녀들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일감이 떨어졌다. 풍차를 이용한 무인 등대 설계였다. 설계도가 다음 날 바로 완성됐다.

“부싯돌 여러 개를 1초에 30번씩 키는 방식이구나.”

“불빛이 좀 약해서 걱정이에요.”

덴마크 시녀들이 아직 전기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풍차가 돌아가면서 부싯돌을 연속 키는 방식으로 등대를 설계했다. 그러나 기어 변환을 몇 번 통해서 구동방향을 바꾸고 회전력을 높이는 구조를 제시해 고산국 연구자들에게도 충분히 보탬이 될 만한 설계였다.

“아주 좋아. 잘했어. 이것을 기반으로 바람이 강한 지역에 무인 등대를 만들자.”

바람이 약한 남쪽은 태양열 축전지로 무인 등대를 키면 좋겠지만 현재 기술로는 어림없는 희망이었다. 항구도시에 속한 등대관리선이 돌아다니면서 무인 등대마다 석유 연료를 공급하는 수밖에 없었다. 수차를 돌릴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동력원이었다.

“그린란드 내륙 탐사는 언제 하시겠어요?”

“추워서 누가 가고 싶겠소? 하지만 언젠가 북극점에 가야 하니까 훈련지로는 적합하겠소.”

바이킹들이 15세기까지 그린란드 남단 극히 일부 상대적으로 온화한 지역에 살았었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유럽과의 교류 중단으로 정착지가 사라지고 말았다.

헤드비히 공주의 본국인 덴마크에서 그린란드에 탐사단을 보낸 적이 있었으나, 정착은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겨울에는 서울보다 덜 추운 편이었으나 여름에 추워서 농업 생산이 불가능해 포기하고 말았다.

고산국에서는 아직 알래스카도 제대로 개발하지 못했다. 그린란드와 알래스카를 비교한다면 당연히 자원이 풍부한 알래스카를 먼저 개발해야 했다. 그린란드 개발은 빙하가 녹은 다음에나 가능했다.

============================ 작품 후기 ============================

그린란드는 저 역시 별로 관심이 없는 지역입니다만, 국왕은 모든 영토에 관심을 줘야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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