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16 64. 오대호 =========================================================================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배경이 된 곳이 미시시피 강이었다. 허클베리 핀과 흑인노예 짐이 탄 뗏목이 상류로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오대호에 도착할 수도 있다는 말에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전하. 이리 남쪽과 남동쪽에는 여러 강과 지류가 복잡하게 얽혀서 흐르고 있습니다. 탐사단이 지도를 작성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이곳 쿠야호가 강에서 직접 오하이오 강 북쪽 지류 비버 강에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무슨 놈의 강들이 남으로 향했다가 북으로 향했다가 아주 엉망이구려.”
미완성 지도 사본을 봤더니 물길이 아주 천방지축으로 흘렀다. 탐사대원들이 위도와 경도 표시 없이 강의 흐름만 그렸다면 상류와 하류 구별을 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리 시 주변의 몇몇 강은 북쪽 이리 호에 연결됐으나 대부분은 오하이오 강으로 흘러들었다.
“어느 정도는 수로를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짧은 육상 구간에 운하를 파야 비로소 이리 호와 오하이오 강이 제대로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평원에 운하 몇 십 킬로미터 정도 파는 거야 쉽지요. 아까 두 강이 합류되는 곳이라 했지요?”
그런데 두 강이 합류되는 지점이란 곳이 현대의 피츠버그 위치였다. 앨리게니 강과 모논가헬라 강이라는 지류 2개가 합류해서 그때부터 오하이오 강이 되고, 이 강은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시시피 강에 합류한다.
이리 시 근방에서 수로를 조금만 연장하면 오대호부터 멕시코 만까지 단번에 이어질 수 있었다. 미시시피 강 유역 여러 곳에 도시를 건설하기도 쉬웠다. 중요한 일이라서 이민호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만에 하나, 평원 원주민들이 새원산을 공격하러 몰려온다면 이리 호 남쪽과 애팔래치아 북쪽 사이의 통로를 지나야 합니다. 이곳에 도시를 세워 이리 시와 함께 공동으로 방어한다면 이곳 동쪽이 든든해질 것 같습니다.”
“평원 원주민들이야 이로쿼이 연맹 부족들에게 쫓겨난 자들이 다수 아니오? 도시 방어만 가능하다면 북미 내륙에서 전략적인 방어선 형성을 고려할 필요가 없소. 다 우리 땅이라는 전제로 개발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오하이오 강의 시작점이 애팔래치아산맥의 탄광에 더 가까운 위치였다. 미시간 호 주변에서 산출되는 철광석의 품위가 아주 높아서 탄광에 가까운 편이 운송비를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은 새원산에 지리적으로 더 가까웠다. 새원산에서 출발한 철도가 애팔래치아산맥을 피해 북쪽으로 빙 돌아온 반면, 이곳은 나지막한 경사지를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중간에 그레이트밸리를 따라 쉽게 샛강에 이를 수 있었다. 산맥 중간 협곡을 지나는 도로 혹은 철도도 언젠가는 필요했다.
“좋소. 탐사를 마치고 지도가 완성되면 다시 고민해봅시다.”
미시간 호 서쪽 노천 철광의 품위가 높고 애팔래치아산맥에서 캐는 석탄의 양이 많아 이리 제철소에서 예상보다 훨씬 많은 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하이오 강 시작점에 제철소를 짓는다면 철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을 생산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철이 부족해 수에즈 운하 선로를 재활용한 게 바로 얼마 전이라 이민호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그러나 오대호와 미시시피 강을 잇는다면 미시간 호수 남단 시카고가 더 나았다.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모아 미시시피 강, 또는 오대호를 통해 대서양으로 보낼 수 있고, 북미 대륙 사방으로 펼쳐진 철도 노선이 합류할 수 있는 교통의 요지였다.
“전하께서는 석탄을 때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을 별로 선호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오나 이 지역에 석탄이 풍부하니 그것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를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글쎄요. 석탄도 열효율은 좋은 편이지만 그다지 좋은 연료는 아니오. 다른 자원에 비해 석탄을 캐는데 인력이 많이 들지 않소?”
“애팔래치아산맥 기슭에 노천 탄광이 흔합니다. 먼지 안 나게 물을 뿌린 다음 밀차로 밀고 삽차로 떠서 화물차에 실으면 됩니다. 역청탄의 품질이 좋아 화력이 매우 높습니다.”
“유연탄이라면 태울 때 분진이 많이 나지 않소? 이 지역에 화력발전소가 필요하긴 한데, 기름 강에서 쏟아져 나오는 석유로도 충분하오. 그리고 수력발전소 입지를 좀 더 찾아본 다음 고민해보겠소.”
이 시대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도 이민호는 공해와 스모그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었다. 제철소와 화력발전소를 동시에 세운다면 그 도시에 이산화황으로 이뤄진 구름이 머물고 산성비가 쏟아져 내릴 것이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유도 모르고 콜록거리다가 젊어서 일찍 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굴뚝에서 솟아오르는 연기는 산업발전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수백 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준 악의 상징이기도 했다. 북미에서는 풍부한 자원을 이용해 산업혁명의 첫 단계부터 깨끗하게 시작하고 싶었다.
“예, 전하! 석유 화력발전소가 여러 모로 낫습니다. 하오나 폐수와 분진이 우려되신다면 폐수 처리장은 물론 획기적인 효율의 분진 저감장치를 개발하겠습니다. 현재 백금 촉매를 연구 중입니다.”
“소장은 강 합류지점에 제철소와 발전소를 반드시 세우고 싶으신 게구려.”
조선의 철장이나 대장장이 출신인 기술자들은 얼마 전까지 공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민호가 폐수나 매연 문제를 지적해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도 근처에 세운 용광로를 운영하다가 매연에 질식해 몇 명이 병원에 실려 간 다음부터 심각성을 인식했다. 장마철에 오폐수가 넘쳐서 남의 논을 망치고 농민들에게 멱살잡이를 당한 다음부터 조금 조심하게 됐다. 사람이 다 그렇듯 직접 당해봐야 깨우쳤다.
“철장으로 살아온 저희들 인생에서 회심의 역작이 될 것입니다. 제철소 두 곳에서 철이 본격적으로 생산된다면 전하의 앞길을 막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대륙 횡단 철도쯤이야 동서, 남북, 대각선으로 각기 열 개씩 깔아도 됩니다.”
“태평양이나 대서양에 철교를 놓아도 되오? 아니오. 그냥 해본 소리요.”
“철도도 아닌 철교라면, 흐음. 고민 좀 해봐야겠지만 현재 추정한 석탄과 철광 매장량으로 미루어 비교적 얕은 곳을 통과한다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이민호는 클리블랜드뿐만 아니라 피츠버그가 미 동부 유수의 공업도시가 된 이유가 충분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탐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사실 화력발전소는 유연탄만으로도 충분했고 효율이 좋은 석유는 다른 분야에 사용하기 위해 아끼는 편이 나았다.
기술자들과 점심식사를 같이 하고 금일봉을 하사한 다음 제철소에서 나왔다. 그 동안 제철소의 엄청난 규모에 압도돼 입을 다물었던 헤드비히 공주가 찬사를 쏟아냈다.
“폐하! 기술자들이 정말 열정적이에요. 그들의 건의를 받아주신 폐하도 대단한 분이세요.”
“헤드비히 공주. 제철소 하나 만드는데 자금이 얼마나 드는지 아시오? 원료 공급지인 철광이나 탄광은 어떻게 운영하고 수송은 어떻게 하는지 아시오? 훌쩍! 여기서 일할 일꾼을 데려오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았소. 우리가 타고 온 철도 선로는 멀리 이집트의 수에즈에서 수송해온 것이오.”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의 등을 토닥였다.
“폐하! 어쨌든 북미 대륙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큰 강과 연결, 그것도 상류에서 연결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중요해요.”
“그렇소. 북미 내륙 지방 탐사와 개발이 아주 쉬워질 것 같소. 미시시피 강 하구에서 상류로 올라갈 생각만 했었는데, 하류로 내려가는 식으로 개발하면 훨씬 빨라질 것이오.”
다른 나라 탐험대와 달리 고산국 탐사대는 단정에 작은 기관을 달아 상류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었다. 오하이오 강에서 시작해 미시시피 강 본류, 그리고 서쪽으로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미주리 강을 통해 로키 산맥까지 비교적 쉽게 진출할 수 있었다.
미시간 호 남쪽 끝, 현대 지명 시카고는 짧은 운하를 통해 일리노이 강 상류 데스 플레인스 강에 이어 미시시피 강 본류와 연결된다. 시카고는 사방으로 연결된 육로는 물론 오대호를 통해 대서양으로, 미시시피 강을 통해 멕시코 만에 이어지므로 사통팔달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미시시피 강과 미주리 강이 합류하는 지점이 현대 지명 세인트루이스였다. 이곳을 장악할 수 있다면 그때서야 비로소 북미 대륙의 주인을 자부해도 될 것 같았다.
“다른 지도와 달리 이 지도는 몹시 허술하군요. 직접 측량하지 않고 제작한 지도겠지요?”
“그렇소. 북미 원주민들로부터 전설을 전해 듣고 상상으로 그린 지도요.”
북미 내륙 지역은 아직 탐사대가 도달하지 못한 곳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조만간 미시시피 강 본류에 도달하는 순간 내륙 지역이 그 속살을 드러낼 것이다.
이민호가 괜히 아이리시울프하운드에 욕심을 낸 것이 아니었다. 늑대를 물어죽일 만큼 큼직한 그 개는 탐사대원들에게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았다.
고산국 탐사대가 탐험대가 아닌 것은 정책적으로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었다. 즉, 탐험이 아닌 탐사를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대원들은 원주민들과의 전투나 맹수들의 습격, 각종 사고 등 위험에 노출돼 꾸준히 희생자가 발생했다. 탐사대원들이야말로 진정한 북미 대륙의 정복자들이었다.
“라코타! 라코타!”
“그래, 그래. 라코타.”
활과 창, 방패로 무장한 수족 원주민 추장들이 이민호에게 알현을 청했다. 그리고 라코타, 즉 친구 혹은 동맹자라는 뜻의 말을 반복했다.
고산국 여진 기병대와 광부들은 수족과 그들의 적 오지브와 족을 미시간 호 서쪽 철광 인근에서 계속 접촉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수족이 오지브와 족에게 계속 밀려서 농사를 포기할 즈음에 고산국 철도 건설단과 마주쳤다.
당연히 여진족 기마대와 한 판 붙어서 크게 깨진 수족은 오지브와 족의 침략으로부터 고산국이 보호해주길 원했고, 여진 기병은 이를 받아들였다. 여진 기병은 오지브와 족과도 한 판 싸움을 벌여 현재 위치에서 두 부족의 경계선을 고착시켰다. 이민호는 가급적 북미 원주민들과 싸움을 벌이지 말라고 지시했지만, 여진족들은 원주민들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았다.
“전하. 저들은 나뭇잎마을 추장들입니다. 철광에서 일하는 고산국 광부들을 고산국의 동맹인 자기 부족 전사들이 잘 보호해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동맹이 되는 것에 동의했단 말이오? 그런데 나뭇잎마을이라고요?”
“저들 말로는 와페톤완이라고 합니다, 전하. 동부 수족, 혹은 산티 수족 중의 한 갈래입니다.”
알곤킨 계열 부족 출신 노인이 이민호에게 수족의 말을 통역해주었다. 수족 추장들이 닌자 마을 출신은 아닌 것 같았다.
원주민 추장들과 선물이 오고갔다. 이민호는 모피를 받고, 추장들에게는 칼과 창, 화살촉을 나눠주었다.
일부러 철광 주변에 개간한 농가 몇 채에서 기계영농을 하면서, 수족 여자들을 농업노동자로 고용해 꾸준히 일을 시켰다. 밀과 쌀, 과일을 임금 대신 받아가면서 고산국에 대한 수족의 우호도가 점점 올라갔다. 그리고 수족은 물론 오지브와 족도 각종 커다랗고 무서운 농기계를 보면서 고산국 농가에 대한 공격을 아예 포기하게 됐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풍요로운 미시간 호숫가에 대한 북쪽 오지브와 족의 침략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나뭇잎마을 전사들이 먼저 용감하게 적과 맞서 싸우겠지만 고산국에서도 전사들을 보내 지원해달라고 합니다.”
“저들이야 걱정되겠지요. 하지만 여진 기병들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말 탄 군대가 광부들뿐만 아니라 나뭇잎마을까지 지켜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시오.”
원주민 노인이 이민호의 결정을 통역해주자 추장들의 얼굴이 몹시 밝아졌다. 그리고 신세 한탄 비슷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성실한 노인 통역사가 요점만 뽑아 이민호에게 전해주었다.
“수족은 옛날에 저 멀리 남동쪽 바닷가에서 이주해 온 부족입니다. 몇 대 조상들은 멀리 산맥 너머 드넓은 산티 강 유역에서 살았다는군요. 산티 강이 어딘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쉽게 믿지 못할 이야기요.”
산티 강은 북미대륙 남동부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고, 새강릉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수족 원주민들의 말을 그저 전설로 치부했다. 앞으로 과학이 발달해 원주민들의 DNA를 검사하지 않는 한 쉽게 믿을 만한 전설은 없었다.
수족은 미시간 호숫가에 거주하면서 아직 평원 원주민들의 생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민호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기마문화가 없었다. 고산국이 북미를 매입하면서 수족 훙크파파 추장 ‘앉은 황소’ 등이 커스터의 제7 기병대와 싸울 일은 아예 없어졌다.
수족은 괜히 고산국의 철도 건설을 방해했다가 여진 기병에게 호되게 당한 이후 우호적으로 돌아섰다. 고산국 군대가 철광석만 캘 뿐 영토 야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족은 오지브와 족의 침략을 방어하는데 동맹을 맺어줄 것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었다.
문제는 방어를 넘어 오지브와 족 마을들을 공격하자고 자꾸 여진 기마대를 충동질하는 것이다. 침략을 당한 그들 입장에서야 당연한 요구겠지만, 전체 북미의 원주민들을 공평하게 다스려야 하는 이민호 입장에서는 들어줄 수 없는 요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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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원과 호수를 구경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