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29화 (578/1,000)

00629  65. 뻐꾸기시계  =========================================================================

“전하! 건의드릴 게 있습니다.”

“말씀해보시오, 소장.”

조선소장은 이 기회에 조선업계뿐만 아니라 해운업계 전체를 대표해서 국왕에게 건의했다.

“목조 순양함과 그 이하 목조함선 여러 종류, 그리고 상선과 어선은 3년에 한 번씩 개삭하기로 규정돼 있습니다. 그래서 잦은 개삭으로 인해 그 기간 동안 작전이나 항해에서 제외되어 큰 비용이 듭니다.”

배가 조선소의 건현에 들어와 있는 동안 그 역할을 못하므로 그 기간 동안 비용이 발생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선주가 무역회사라면 그 동안 다른 배를 임대해야 한다.

“그런 면은 있소.”

“고산국 배 대부분은 조선처럼 바닷물에 썩기 쉬운 송판이 아니라 단단한 티크 목으로 건조해서 훨씬 튼튼합니다. 나무 기생충을 막기 위해 배밑판에는 동판까지 부착했습니다. 그런 만큼 개삭 기한을 몇 년 더 연장해도 될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조운선은 만든 지 3년이 지나면 개삭, 다시 3년 지나면 재차 개삭, 또 3년이 지나면 개조하도록 규정돼 있었다. 개삭은 썩거나 구멍 난 판재의 교체를 포함한 수리와 부분품, 특히 판재를 연결하는 나무못의 교체를 뜻했다. 개조는 판재 대부분을 바꾸고 심지어 배의 크기를 줄이는 등 거의 다시 건조하는 수준의 대규모 수리 공사였다.

조운선처럼 판옥선도 정조 이전까지는 36개월에 한 번 개삭했다. 정조 때에 쇠못, 즉 철정으로 판재를 서로 단단히 연결할 수 있게 되면서 80개월 동안 개삭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이 변경됐다.

임진왜란 당시 왜선 중에서 일부가 나무못이 아닌 쇠못을 사용했다. 그런데 이 쇠못에 녹이 슬면서 나무 틈이 벌어지고 이로 인해 선체가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이때에는 물에 불은 나무못이 판재의 틈을 밀봉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설명됐다. 그러나 정조 대에 쇠못을 사용하면서 더욱 단단히 접합하는 기술이 개발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산국에서도 목조선의 개삭을 3년으로 규정했다. 티크 목이 물에서 잘 썩지 않는다 하나 정기적인 점검과 수리의 필요성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일 년에 최소 한 번씩 선거에 올려 배 밑바닥을 점검했다.

“티크 목이 비싸서 내가 알기로 티크 선은 절반도 안 되오. 그리고 선주들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다 보면 침몰 직전인 배도 계속 운행하려 할 것이오. 선장이나 선원이 배의 수리를 요구했는데도 선주가 수리를 안 해주는 경우도 있지요?”

“그렇습니다만, 항해에 큰 문제가 없는 경우에 한할 것입니다. 설마 자기 배가 가라앉게 놔두겠습니까? 값비싼 화물까지 실은 배라 손해가 막심할 텐데 말입니다.”

“소장! 그래서 상선 한 척이 태평양에, 두 척이 대서양에 가라앉았소! 운항의 안전을 위협하는 중대한 문제가 생겨도 무조건 배를 띄우려고 하는 욕심 많고 멍청한 선주들 때문에 말이오!”

기관을 단 배는 목조선이라도 대부분 고산국에서 건조되어 아직 선령이 10년을 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조선이나 고산국과 달리 유럽의 범선은 개조를 지속해서 선령이 30년을 넘은 배도 흔했다. 그러나 배는 기차나 마차 같은 다른 교통수단과 마찬가지로 꾸준히 손을 봐줘야 하는 물건이었고, 유지 보수를 게을리 했을 때 결과는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돈이 아까워 선주가 배 수리를 안 해줄 경우 보통은 선장과 선원들이 먼저 배를 떠났다. 수리를 안 해서 위험해진 배 말고도 고산국에서 일할 곳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선원들 사이에 나쁜 소문이 퍼지면 그 배에 탈 선원도 없었다.

그래서 숙련된 선원들이 떠난 자리를 배나 항해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초보 선원들이 머릿수만 채우기 마련이었다. 결국 악천후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배가 항구에 도착하지 못하고 바다에서 실종됐다.

선주는 파산했고, 선장이 화물을 갖고 도망갔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선주가 발목이 쇠사슬에 묶인 채로 탄광에서 평생 일하게 됐다. 경찰 검찰부는 선주를 살인죄로 기소했으나, 판사들끼리 치열한 법리논쟁 끝에 결국 과실치사로 판결해 무기징역을 때렸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소유의 배인데 어째서 위험에 처하게 합니까? 그래서 더더욱 믿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마련입니다.”

“어째서 법이 시대가 갈수록 복잡해지는지 아시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인간들 때문이오. 법의 맹점을 이용하려는 인간들 때문이오!”

반사회적 성향의 인간들은 언제나, 어디에나 있었다. 기회만 생기면 언제든, 자기가 손해 보는 한이 있어도 남을 공격했다.

보통 인간들은 안면이 없더라도 임신한 여성을 극력 보호해주려 한다. 그러나 임산부에게 대놓고 모욕하는 여자와 지하철 노약자보호석에 앉은 임산부를 바닥에 내팽개치는 노인이 있었다. 남자가 개를 풀어놓고 산책시키면 그냥 지나가다가도 여자가 목줄을 단 개를 끌고 다니면 온갖 이유를 들먹이며 욕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었다.

“개삭은 반드시 판재를 교체하지 않더라도 정기 검사와 안전 점검 역할도 하고 있소. 목선의 개삭 기한을 절대 연장해주지 않겠소.”

“죄송합니다, 전하.”

이민호가 분노하자 조선소장이 몸을 떨었다.

“철선도 당연히 일정 기간마다 검사를 할 것이오. 조선소는 배를 만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검사해서 안전을 확인하는 곳이오.”

“그, 그렇습니다, 전하.”

“선주들은 얼마 안 되는 개삭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배를 침몰시키는 것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오. 배가 침몰하기 전에 운항을 중지시키는 것이 고산국의 원칙이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전하.”

사업자들이 자그마한 이익을 밝히다가 안전을 무시할 가능성은 언제든 있었다. 국가가 할 일은 행정적 규제로 선박의 안전을 지켜주는 것이지, 선주들의 이익을 위해 안전을 위한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바로 그 날부터 감사원에 지시해 민간 선박의 점검을 담당한 해안경비대에 특별 감사를 실시했다. 해안경비대 대장인 부친 이응화와 계모를 필리핀 바기오 서쪽 백섬 제도에 반강제로 효도관광을 보낸 다음, 관리와 선주들의 유착 가능성을 철저히 조사했다.

어느 중견 간부의 부인이 값비싼 보석과 진주목걸이를 구입한 사실이 확인되고 나서 간부에게서 실토를 받아냈다. 개삭과 안전 점검을 문서로만 형식적으로 받은 선주 5명이 구속되고 해안경비대 간부와 실무 관리 2명이 쇠고랑을 찼다.

비리가 확인된 이상 왕립조선소에도 감사원의 칼날이 휘둘러졌다. 뇌물을 받지 않았지만 무역회사나 선주들에게 규정을 넘게 편의를 제공한 소장은 파면, 뇌물을 받고 업무를 소홀히 한 간부 몇 명은 감옥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됐다. 혜영이 혀를 찼다.

“유능한 관리들인데 뇌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다니, 안타까워요.”

“결과를 보면 무능한 거야. 뇌물을 받고 안전 점검을 안 했잖아? 침몰한 상선들과 관련됐을지도 몰라. 부패한 관리가 유능할 가능성은 전혀 없어.”

빈부격차는 상대적 박탈감이 중요한 요소라서 농민이나 사업자들에 비해 수입이 적은 관리들의 녹봉을 점진적으로 올려주기로 했다. 유럽 물가 수준과 맞추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녹봉을 올려준다고 해서 관리들이 부패에 연루되지 않을 가능성은 적었다. 관리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견제가 더 필요했고, 이 경우 내부 고발자에 대한 보호가 필수적이었다.

“조직을 배반했다고 내부 고발자를 소외시키면 어쩌죠?”

“그럼 국왕이 아닌 조직에 충성을 하는 자들이야. 나와 백성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되는 반역자들은 모조리 쳐 넣어야 해. 내부 고발자의 신원을 비밀로 지켜주면 되는데, 감사기관에서 피감기관에 고발자 신원을 몰래 알려줄까 겁나는군.”

부패의 고리가 감사기관에도 연결될 가능성에 대비해야 했다.

“감사원은 안심해도 될 거여요.”

“어째서? 책에 나온 대로만 행동하는 꼬장꼬장한 선비들만 모였나?”

“정보국 인원이 몇 명 투입돼 있으니까요.”

“그럼 정보국의 비리는 누가 밝히지?”

“정보국은 주인님의 호위들이 장악하고 있잖아요?”

삼권분립이 안 되고 국왕에게 권력이 집중되다 보니 부처들 사이에 견제와 균형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렇게 비밀리에 인원을 교체 투입해서 서로를 감시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관가에 피바람이 몰아치는 동안 이민호는 후원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면서 지냈다. 후원 온천에 몸을 반쯤 담은 채 갈라티아 궁녀의 풍만한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책을 읽으면 세상 돌아가는 일을 잊을 수 있었다.

“주인님, 포도 드세요. 앙~”

“앙~”

옆에서 다른 궁녀가 과일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이틀 동안 겨우 세 페이지 읽었다.

며칠 만에 드디어 뻐꾸기시계가 완성됐다. 마테오 리치는 시계 장식의 화려함에 놀랐다. 오랜만에 입궁한 명나라 황태자 주상락도 시계에 감탄했다. 주상아 공주는 자리가 불편하다면서 주상락과 직접 만나는 것을 피했다.

“이것이 뻐꾸기시계, 어쩌면 황룡시계로군.”

“하루에 5.5초 늦습니다, 전하.”

국방연구소장이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몇 년 사이에 정밀도가 무척 높아졌지만 태엽시계의 한계 탓에 더 이상 정확성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제품설명서에 10일에 1분을 앞당기라고 표시돼 있었다.

국방연구소에는 훌륭한 장인들이 많아 별 걸 다 만들었다. 시계 태엽통을 비롯해 장식을 제외한 뻐꾸기시계의 모든 것을 수제로 제작했다.

“마침 두 시가 다 됐군.”

시계추는 안 보였고 대신 물레방아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 참석자들이 알현실의 괘종시계와 뻐꾸기시계를 번갈아 바라봤다. 그때 시계의 창문이 덜컹 열렸다.

- 뻐꾹~ 뻐꾹~

나무로 만든 귀엽게 생긴 뻐꾸기가 창을 열고 나와서 울었다. 뻐꾸기가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키우게 한다는 TV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다음 뻐꾸기시계의 판매량이 확 줄었다고 한다.

“오! 잘 작동된다. 소장! 시간 조절해서 이번에는 황룡으로 해보시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전하.”

톡 튀어나온 스위치를 반대 방향으로 미는 간단한 조작만으로도 선택이 가능했다. 시간을 되돌리자 황금으로 도금한 기다란 황룡이 튀어나와 ‘크아아아아’ 하고 울부짖었다.

“오! 현실적인데? 수고하셨소, 소장.”

“황공하옵니다, 전하.”

“소장! 스위스에서 용수철을 이용해 휴대용 손목시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소.”

“저도 들었습니다, 전하. 팔 힘이 센 사람들이 차고 다니는 모양입니다.”

“여자들도 아무런 무게감을 못 느끼고 손목에 찬다고 합니다.”

“여자 손목에 말입니까? 끄응!”

이민호가 조금 과장하자 소장이 분기탱천해서 돌아갔다. 최소한 기계제작에서 지고는 못 사는 소장이 당장 장인들을 소집해 손목시계를 만들 것이다. 스위스에서 만든 것은 휴대용 시계였지만, 장기적으로 손목시계로 발달하기에 이민호가 그렇게 방향을 제시했다.

“전하! 미천한 저를 위해 이런 기물까지 만들어주시니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별 것 아니오. 천자 알현 때는 이 정도 되는 진상품을 바쳐야지오. 그런데 태서유사!”

마테오 리치가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 바치라고 뻐꾸기시계 외에도 다양한 선물을 준비했다. 황제도 마테오 리치가 아니라 이민호가 진상했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 것이다. 그리고 주상아 공주가 편지까지 써줬으니 마테오 리치의 알현 신청이 거부당할 리가 없었다.

“하명해주시옵소서, 전하.”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경우가 극히 적다고 알고 있소. 그 이유를 알고 있소?”

차라리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비율이 훨씬 높았다.

“무슬림들은 자기들이 기독교보다 더욱 새롭고 완전한 종교를 믿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명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비록 태서유사께서는 유교를 저급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유학자들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오. 그러니 선교가 잘 안 된다 해도 태서유사께서는 너무 실망하지 마시길 바라겠소.”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이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알린다면 중국인들도 신을 믿게 될 것입니다.”

“과연 훌륭하십니다.”

신앙과 용기를 가진 사람을 말릴 수는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마테오 리치와 그의 동료들은 명나라에서 10만이 넘는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제사를 인정하지 않는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추방되면서 예수회도 위축됐지만 선교사로서 단기간에 할 만큼은 한 셈이었다.

“베이징에서 선교를 허락받으면 아담한 교회라도 지으십시오.”

“감사하오나 과한 금액입니다, 전하.”

명나라에서 유통하기 좋은 은으로 6만 냥, 2톤쯤 준비했다. 남는 은은 선교 자금으로 쓰면 될 일이었다.

“황태자 동생.”

“예! 전하.”

“곧 음력 8월이오. 성탄절이 돌아오니까 마땅히 황도에 가셔야겠지요?”

“예? 예.”

주상락이 시무룩해졌다. 황제가 아버지이면서도 무서운 까닭이었다. 이민호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주상락 훈련병!”

“훈병 주! 상! 락! 어? 전하!”

주상락이 요청해서 신분을 감추고 신병훈련소에 입소해 정상적으로 훈련병 과정을 마쳤다. 고산국의 병사로서 아직 부족하지만 최소한의 자격을 획득한 셈이었다.

“황태자는 스스로 고산국 육군에 입대해 훈련소 교육 과정을 당당히 마쳤소. 그렇게 매사에 씩씩하게 행동하시오. 황상께서도 황태자가 씩씩하게 변해서 오면 다시 보게 될 것이오.”

“형님! 고맙습니다.”

“황태자가 천자가 되는 그 날 대명은 천하에 우뚝 설 것이오.”

“물론입니다. 그렇게 되고 말고요. 형님은 대명의 은인이 되실 것입니다.”

주변 상황, 특히 황궁의 권력 암투 때문에 그렇게 되기 힘들다는 것은 이민호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상락이 즉위 한 달 만에 허망하게 죽게 하지는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마테오 리치와 주상락을 같은 배에 태워 베이징으로 보냈다. 축하사절은 계복이 이끌고 가게 해서 내란 진압에 관련된 협의를 하고 오게 했다.

아미족 원주민 공연단이 이번에도 동참해서 배 안에서부터 춤을 추며 축제 분위기를 띄웠다. 아미족의 취향에 맞춰 현란한 색상의 비단 천을 제작했다.

============================ 작품 후기 ============================

저는 자러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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