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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30화 (579/1,000)

00630  65. 뻐꾸기시계  =========================================================================

총리 집무실은 왕궁 남문에서 시작되는 주작대로의 첫 번째 거리인 육조 거리 첫 번째 건물에 있었다. 그러나 혜영은 오전 결재를 마치면 왕궁에 돌아와 왕실업무를 살폈다.

이민호는 총리 집무실의 손님용 탁자에서 빈둥거리면서 신문을 살폈다. 왕도에서 발행되는 일간신문만 20종이 넘었다. 그런데 신문 위쪽에 시커먼 띠 몇 줄이 인쇄돼 있었다.

“요즘 신문 1면이 왜 이래?”

“신문에서 오보를 낼 때마다 검은 줄 하나씩 긋도록 했어요. 줄 끝에 어떤 기사를 어떻게 잘못 보도했는지 기록돼 있죠?”

어느 나라에서 의사가 치료 도중 환자를 한 명씩 죽일 때마다 병원 건물에 풍선을 하나씩 달게 한다는 농담을 이민호가 한 적이 있었다. 혜영이 그 농담을 감명 깊게 듣고 활용한 것 같았다. 이 경우 건물에 매달린 풍선 숫자가 적을수록 명의였지만, 새로 병원을 개원한 경우에도 풍선 숫자가 적다는 것이 농담의 핵심이었다.

“뭐? 큭큭! 아주 잘했어.”

고산국에서는 신문사에서 잘못된 기사를 낼 때마다 신문 1면 상단에 굵고 검은 띠가 늘어나 1면을 위에서부터 점점 잠식해 들어갔다. 이것이 신문에 대한 평가 기준이 돼서 오보를 많이 낸 신문일수록 판매량이 뚝뚝 떨어졌다.

반론권도 잘 보장해서 반대편에서 항의하면 같은 면 같은 면적에 사흘 연속 그쪽의 주장을 기사로 싣도록 했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편들어주는 편파보도는 이런 식으로 제재를 받기에 기사를 제대로 쓰려면 양쪽의 견해 차이를 균형 있게 반영해야 했다.

“신문 판매만으로 신문사가 유지되나?”

“당연히 안 되죠. 국영기업청에서 상품을 돌아가면서 매일 2면씩 광고를 내주고 있어요. 철도청에서도 종종 공고를 내고 있고, 곧 설립될 식품관리청에서도 광고를 낼 계획이에요.”

“정부 광고 받으려고 신문사 차리는 인간들도 있겠다.”

“판매부수 기준으로 광고료가 다 달라요. 처음 시작한 신문은 좀 봐주긴 해요.”

모든 신문에 공평하게 광고를 내고 있으므로 광고에 의한 언론 장악 시도는 아니었다. 인쇄기를 보유하지 못한 작은 신문사의 신문 인쇄를 국영인쇄소에서 해주고 배달망을 공유시킨 것이 정부에서 지원한 몇 안 되는 언론 정책이었다.

국영기업청은 정식 행정부서도 아니고 완전한 왕실 소유도 아닌, 조선의 내수사와 비슷한 위치였다. 그러나 왕실 재산보다는 국가 재산 관리에 치우쳤다.

“흠! 요즘은 광고도 제법 잘 만드네.”

처음에는 상품의 장점을 설명하는 글만 광고면 안에 빼곡히 들어찼는데 제품 모양을 그림으로 표현한 광고가 나간 다음부터 그림이 광고 전면에 등장했다. 여백이 훌륭한 광고 기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다양한 이념이 분출된 백화제방 이래로 신문사들이 수십 곳 생겨났으나 대부분이 경영압박을 받고 있었다. 고정적인 독자층과 안정적인 광고를 기반으로 신문사를 운영하기 힘들었고, 시내에서 소리 질러서 파는 한 푼짜리 읽을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신문사 경영을 정부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지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을 하기 어려워졌다.

“모든 기자들이 사관 정도의 책임감과 자부심만 가져도 기자는 진정 명예로운 직업이 될 거여요.”

“생활인에게 그 정도 수준을 요구하다니, 힘들지. 사관도 사실 사관일 동안에만 객관적이고 명예로울 뿐이야. 사관은 나중에 고관대작으로 진출할 기회를 잡는 청직 아닌가?”

학식과 덕망이 높은 관리들이 맡는 학문 및 자문, 간언 등의 관직을 청직(淸職)이라 하는데 예산을 다루거나 인사권을 쥐는 등 이권과 관계없는 언론 직책이었다. 이조 전랑, 즉 이조 정랑과 좌랑 등을 요직(要職)이라 하며 당하관 이하 관리의 인사권을 통해 왕권을 견제하는 역할이었다. 이를 합해 청요직(淸要職)이라 해서 관리가 고관으로 출세하는 발판이 되었다.

이런 구조라서 조선 후기에 간신이나 권신으로 지목된 대다수 고관들이 청요직 출신이었다. 사르후 전투에서 후금에 투항한 조선군 5도 도원수 강홍립도 선조 대에는 사관이었다.

“신문사 경영자를 편집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편집자와 기자들이 조합을 꾸려서 기사를 내게 하는 게 어때요?”

“아예 신문사 경영자를 빼버릴 수도 있지. 주식을 기자들에게 나눠주고 전문 경영자를 영입해도 되잖아.”

신문사 소유에 관한 문제는 창립 초기인 오직 지금만 이민호가 선택할 수 있었다. 이민호는 신문사 소유 구조도 다양할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고산국에는 재벌이 생기기 어려운 구조라서 신문이 한 가지 이익집단만의 나팔수 역할을 할 위험은 적었다.

“언론에 대한 정부의 영향이 너무 강해요. 지금처럼 정부에서 신문사 경영을 계속 도와주면 결국 국영신문사밖에 안 돼요. 신문사의 존재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요.”

“그게 문제야. 신문사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건국 초기부터 백성이라곤 조선에서 빈손으로 들어온 사람들뿐이었다. 10여 년 동안 돈을 모았다 해도 자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신문사 설립자본의 규모가 작다 보니 안정적인 신문사 경영을 하기 어려웠다. 신문 판매 자체만으로는 기자들 월급도 제대로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산국 왕도만을 신문 발행권으로 삼기에는 시장이 너무 작았다. 그러나 광고 시장이 성장 중이라 미래를 기대해볼 만했다.

“시장이 작으면 키워야지. 전국 배달망을 만들어서 철도를 이용해서 지방 도시에도 신문 배달을 하게 해. 새벽에 운행하는 기차 있지?”

“서해안선이 자정에 왕도에서 출발하고, 한 시에 동해안선이 출발해요. 그 전에 신문 인쇄를 마치고 역에 보내면 될 거여요.”

“자그마한 땅덩어리인데도 왕도가 북쪽에 치우쳐서 이럴 때도 불리하군. 그래도 출근 시간 전 아침에 신문을 가정에 배달할 수 있을 거야.”

왕도에서는 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가정집에 신문을 집어던지면 강아지가 반갑게 뛰쳐나와 물어뜯는 식으로 신문배달이 잘 이뤄졌다. 지방도시나 마을에도 신문이 들어가는 것이 옳았다. 앞으로 정부기관지가 할 일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정부를 견제할 언론을 이렇게 정부에서 키워주는 것도 이상해요.”

“정부라고 다 하나가 아니야. 그리고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기 마련이거든. 우리가 정보국이나 감사원을 휘하에 두고 있지만 모든 곳을 감시할 수는 없어.”

“신문사가 지방 권력과 유착하면 어떡하죠?”

“다 날려버려야지. 고산국은 먹고 사는 문제가 없어. 기자 일을 하는 자들 중에서 썩지 않은 인간들도 있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전문 기자 외에 여러 신문사에 기사나 논설문을 기고하는 자유 필진도 필요했다. 교수들만으로는 다양한 시야를 제공하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외부 필진으로 참가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에요? 주인님한테서 나는 것 같아요. 목욕 안 하셨어요?”

“아! 꽁치야.”

비린내가 폴폴 나는 꽁치의 꼬리를 잡고 흔들었다. 민영 뒤에 숨어있던 고양이가 바로 튀어나와 앞발로 잡아채려 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잽싸게 뒤로 빼버렸다. 아기 고양이가 털을 세우고 이민호를 노려봤다.

- 캬앙!

“고양이 성질 나빠지겠어요.”

“야생 고양이치고는 사람한테 너무 잘 달라붙어서 신기하다.”

꽁치를 던져주자 고양이가 으적으적 씹어먹은 다음 민영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민영의 손에 먼저 머리를 비볐다.

“귀여워.”

“보는 것은 재미있는데 직접 키울 자신은 없으시죠?”

“바로 그거야.”

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게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다. 이민호는 왕실에 속한 가족들은 물론 고산국 백성들과 속국 백성들, 그리고 북미 원주민과 새로운 이주민 등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고 있었다.

그래서 애완용 동물이 위안을 준다 해도 부담이 가서 직접 키우지 못했다. 이민호의 소박한 꿈이라면 마당 넓은 집에서 강아지 몇 마리를 키우며 편히 지내는 것이었으나, 앞으로도 일에 치여 살 운명이었다.

“주인님이 시키신 대로 측후소를 여러 곳에 설치하고 있어요. 다만 오지에 파견 나갈 관상대 관리들의 동요가 심해요.”

“그렇다고 현지인들만으로 운영할 수는 없잖아. 중요한 설비가 잔뜩 있는데 말이야. 인원을 보강하고 격오지 근무수당을 대폭 올려 줘.”

방송전파를 하늘로 쏘아 보낸 이후 레이더를 쉽게 개발할 수 있었다. 360도 회전하는 전파송신기와 수신기는 작동에 문제가 없었으나 이를 전자적으로 표시하는 전시기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아주 작은 꼬마전구 수백 개를 동원해 전파 반사체의 존재 유무를 표시했다.

함선용 전파탐지기를 따로 제작 중이었으며 전시기의 폭이 넓어도 되는 기상관측용 전파탐지기가 먼저 완성됐다. 구름의 높이와 밀도, 폭을 탐지하기 위한 기상레이더였다.

필리핀과 괌, 브루나이 등 각지에 위치한 측후소에서 풍향과 풍속, 습도 등의 관측결과를 왕도의 중앙관상대에 보내고, 중앙관상대에서 일기도를 제작해 날씨를 예측하고 이를 방송국에 알렸다. 그러나 어차피 잘 맞지도 않을 지역별 날씨 예측보다는 태풍 등의 진로 파악과 위험 경보가 주요 임무였다. 평시에는 날씨 예보가 아니라 현재 날씨 보도가 주로 이루어졌다.

“함대 외에 무선통신기와 전파탐지기를 운용하는 유일한 행정부서가 관상대야. 직원들 군사훈련은 확실히 시켰겠지?”

“총기를 보유하게 했어요. 그보다는 현지 유력자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해요.”

태평양 섬 곳곳에 배치된 관상대 직원들은 섬의 산꼭대기에 세워진 측후소에서 근무해야 했다. 항구에서 보급품을 받아 일개미처럼 산꼭대기까지 운반하는 날에는 허리가 휘었다.

그리고 파푸아 섬에 근무하는 측후소 직원들은 자칫 식인종들과 싸워야 할지도 몰랐다. 직원들이 살아남든지 말든지 측후소를 공격한 그 지역 식인종들은 멸종을 면치 못할 것이다.

“현지 유력자들이 과도한 요구를 하면 그냥 군대를 보내 쓸어버려.”

“주인님, 과격해지셨군요?”

“측후소 직원들을 인질로 놓아두고 싶지 않아서 그래. 이 정도도 협력하지 못하겠다면 우리의 적이지. 고산국의 친구라고 해서 측후소를 설치했는데, 그런 식이면 배반이야.”

“감히 고산국의 행사에 반기를 들 유력자는 없어요.”

베트남과 브루나이의 왕실, 필리핀 총독부는 고산국 정부에 잘 협조했다. 그러나 이들이 지방까지 완전히 장악한 것이 아니기에 분쟁의 가능성은 항상 남았다.

겨우 1개 중대밖에 안 되는 바기오 주둔군이 파견될 수도 없어서 보통은 순양함 전대와 해병들이 출동해 유력자들 앞에서 무력시위를 해서 해결했다. 그래도 가끔은 싸움이 나서 민다나오 섬에서 한때 전쟁 위기에 돌입한 적도 있었다.

“조선하고 관계는 어때?”

“아주 좋아요. 대신들은 여전히 고산국을 무시해도 국왕은 무척 현실적인 분이에요.”

“무시하기 전에 자기들도 발전할 생각을 하지 말이야.”

“나라를 발전시킬 생각을 한다면 이미 썩은 선비가 아니겠죠,”

조선 조정에는 이원익이나 이항복 등 훌륭한 재상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죽자 살자 권력만 지키려는 자들도 조정에 포진했다. 문제는 문장력이 뛰어난 자들이 지은 작품과 달리 실제로는 무능하고 욕심만 들어찬 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판옥선이 커서 사용하기 불편하니 작은 배를 주력으로 해야 한다는 대신들이 있네? 정말 미친놈들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뭘로 막았는지 기억도 안 나는 모양이에요.”

“정작 관리들이 필요한 전쟁 때는 부모님이 아프다고 자리를 내놓고 어딘가에 숨어 있었던 자들이야.”

동인과 서인을 가리지 않고 남의 전공을 깎아내리기 바쁜 자들이 있었다. 특히 수군 무관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무거운 판옥선 대신 절반 이하 크기인 방선을 주력으로 삼자고 주장하는 대신들이 조정에서 발호했다.

판옥선을 움직일 만한 수군 인원을 모으기 어려운 수군 장수들의 현실을 이해하더라도, 조선 수군의 유일한 장점인 큰 배를 포기하자는 주장은 나라를 버리자는 주장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만 일본이 멸망하고 왜구가 바다에 나오지 않아 아직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조선에서 고산국에 수출을 많이 하는군.”

“무역 수지 균형을 맞추지 말라고 해서 내버려뒀어요.”

“잘했어. 조선이 약간 흑자를 내는 게 맞아.”

조선에서 고산국으로 수출하는 상품은 해산물이 가장 많았다. 서해안 굴비와 남해안 멸치, 그리고 동해안에서 명태와 대구, 오징어를 잡아 말린 다음 포 형태로 고산국에 수출했다. 고산국 근해에서는 어족을 보호하기 위해 그물코가 작은 그물을 사용할 수 없기에, 멸치는 전량 조선에서 수입하거나 죽방렴에서 잡힌 적은 양만 유통됐다.

전복과 해삼, 다시마와 미역 양식은 고산국 왕실 직영으로 계속 인정을 받았다. 조선 남해안과 제주도의 경제력이 조선 다른 지역보다 압도적으로 높아 조선에서 큰 문제가 됐다.

강원도 내륙에서는 시멘트를 생산해 고산국으로 보냈다. 시멘트 공장 인부들의 임금을 관찰사가 떼어먹다가 걸린 것이 지난 몇 년 사이 벌써 세 번째였다. 조선 왕실과 관찰사, 해당 고을 수령 등 시멘트 공장에 빨대를 꽂은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적당히 빼먹으면 안 걸릴 텐데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었다.

“조선을 이대로 내버려두실 거여요?”

“글쎄. 조만간 뭔 일이 나겠지. 그때 결정하자.”

고산국이 구태여 조선 자체를 흡수할 필요는 없었다. 북미와 호주를 개발하느라 정신이 없이 바쁜 지금 괜히 정치적 부담만 커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 인구 부족이 만연해 자꾸 조선으로 눈이 돌아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민 올 사람들은 다 왔나 봐요. 이제는 한 달에 백 명도 안 돼요. 조선 인구 딱 절반만 데려오면 좋겠어요.”

“이제는 차라리 고산국 백성들에게서 2세를 보는 쪽이 빠를 거야.”

“조선은 계륵인가요? 내버려두면 문제가 많을 거여요.”

“껄끄러운 형제가 있는 셈 치지 뭐. 조선에서 명분을 안 내주니 우리가 조선을 공격할 기회도 없잖아?”

“반란 일어날 걱정을 하느니 차라리 치지 말아요.”

바로 그게 문제였다.

============================ 작품 후기 ============================

초기 형태의 레이더가 개발됐습니다. 라디오 방송을 하는 마당에 레이더는 금방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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