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32 65. 뻐꾸기시계 =========================================================================
태평양 탐사전단 소속 탐사대가 캄차카 반도, 일명 고구마 반도의 동남부에서 겨울을 지내고 왕도로 돌아왔다. 태평양 각지에 대한 탐사는 건국 이래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지만 탐사대원 30명 중에서 두 명이나 전사했다기에 특별히 접견하고 대원들을 위로했다. 반 년 넘게 오지에서 고생한 탐사대원들은 국왕의 만찬에 초대될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 살 곳이 못 됩니다. 잉글랜드와 위도가 비슷한데도 10월부터 5월 말까지 눈에 덮여 있습니다. 화산이 160개에 활화산이 확인된 곳만 29곳이나 됩니다.”
“편서풍이 바다를 지나면서 눈을 뿌리는 모양이군. 대륙성 기후가 그렇지 뭐.”
겨울에 얼어붙는 오호츠크 해와 가장 위험한 직업인 게 잡이로 유명한 베링 해 사이에 위치한 곳이 고구마 반도니 오죽할까 싶었다. 아이슬란드처럼 활화산과 눈 덮인 평원이 함께 있는, 지옥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 겨울의 평균 기온은 겨우 영하 10도밖에 안 됐다. 그리고 얼음이 녹으면 강마다 연어가 엄청나게 올라온다고 했다. 그래서 곰이 많이 살았다. 이 지역 불곰들은 알래스카 불곰과 달리 물속에 들어가 연어를 사냥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탐사대가 겨울을 보낸 곳을 지도로 살펴보니 남동쪽 만 입구의 양쪽에 다시 작은 만이 있는 지형이었다. 아마도 현대 러시아어 지명으로 페트로파블로프스크캄차츠키인가 하는 지역 같았다. 몇 년 전부터 태평양을 횡단하는 배들이 식수를 얻기 위해 들르기도 했다.
“코리악 족이 반도 동부 해안 지방에 거주합니다. 북쪽 축치 족과 혈연으로 연결되고 문화적으로 가까운 족속입니다. 약간 다른 부족도 살고 있습니다.”
“혹시 북미 원주민들과 닮은 것 아냐?”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생긴 것도 비슷하고 북미 원주민들의 티피와 비슷한 원추형 천막, 그러니까 순록 가죽으로 만든 춤이라는 천막에 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매우 호전적이어서 탐사에 문제가 많았습니다.”
코리악 족은 두 가지로 나뉜 채 생활했다. 하나는 해변 마을에서 어업과 순록 목축을 하는 정주 목축민이었고, 내륙 지역에 사는 자들은 철마다 순록을 따라 옮겨 다니는 유목민 성향이 강했다.
코리악 족은 오호츠크 해 주변 민족들에 주로 분포하는 하플로그룹 G의 발현율이 0.419나 된다. 몽골과 아이누, 티벳 등에서 0.2 이하이며 한국과 일본 등에서 0.1 위아래다. 북미 원주민에게는 전혀 없는 유전자였다.
“전사자가 두 명이나 생기다니. 저번처럼 곰 때문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탐사대는 원칙적으로 다른 지역에 들어갈 때 그 지역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을 바치고 지나가도 좋다는 허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다짜고짜 공격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원주민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탐사대가 조심스럽게 허락을 구하는 등 예의 바르게 행동했는데도 원주민에게 공격당할 경우,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적을 공격하도록 탐사 원칙이 세워져 있었다.
보통 6~7 가족이 유목민 밴드를 형성한 코리악 원주민들은 탐사대의 공격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성인 원주민 남자들이 모두 죽고 나면 여자와 아이들을 재산과 함께 다른 밴드에게 맡기게 돼 있었다. 여자들이 친척을 찾아가면 일단 여자와 아이들의 생존에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고산국 탐사대의 강력한 전력이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게 된다.
“코리악 족은 식량뿐만 아니라 생활의 거의 대부분을 순록에 의존합니다. 버터와 치즈, 발효한 우유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순록 유목을 하니까 낙농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 지역에 치즈와 버터라니, 신기하군.”
백인들이 치즈와 우유를 많이 먹어서 체구가 크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유목을 하는 몽골인들이 아시아 인종 중에서 유독 크긴 하지만 북유럽 인종과 비할 바는 아니었다. 순록 고기와 치즈, 버터를 먹는 코리악 족이나, 고기만 먹는 이누이트들이 신장이 크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들이 사용하는 눈신을 가져왔습니다.”
탐사대장이 각기 순록의 뼈와 버드나무로 만든 두 가지 눈신을 탁자 위에 올렸다. 어느 지역이나 비슷하게 마치 테니스 라켓처럼 생겼다.
다만 코리악 족이 사용하는 눈신은 설피보다 훨씬 넓고 그물이 촘촘했다. 눈신을 단순히 이동에만 사용하지 않고 눈신을 신은 채 사냥을 하거나 각종 노동을 한다는 뜻이었다. 눈신 하나만으로도 코리악 족의 생활상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강원도 설피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르군. 효과가 좋던가?”
“예. 겨울 내내 대원들이 이것을 신고 다녔습니다.”
탐사대는 정예군이라서 강원도처럼 눈이 잔뜩 쌓인 아이누 섬에서도 훈련을 받았다. 그러나 일 년 중 8개월 동안 눈이 대지를 덮은 지역에 사는 코리악 족과 설원에서 전투를 벌이면 불리한 점이 많을 것 같았다.
“정확히 어떤 무기에 의해 대원이 전사했나? 방탄복이나 전투복에 혹시 문제가 있나?”
“겨울에 뜨거운 물을 대원의 얼굴을 향해 부었습니다.”
“맙소사! 죽이겠다고 작정했어!”
“전투 후에 유해를 운구해왔습니다.”
극도로 추운 지역에서는 끓는 물이라도 허공에 뿌려지는 순간 바로 얼어버렸다. 선물을 주려고 웃느라 바람안경을 벗고 접근했을 유능한 대원들이 허망하게 가버렸다. 1만 원정군을 전투에 투입했어도 거의 발생하지 않던 전사자가 탐사대에서는 이렇게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면서 자주 발생했다.
“안타깝군. 국립묘지에 안장하고 가족은 잘 보살펴주겠네. 어휴!”
“감사합니다, 전하. 유목민들이 영토에 대한 집착과 외부인에 대한 배타심이 큰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몇몇 마을과 우호관계를 형성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겠습니다.”
“고구마 반도를 우리가 반드시 이용해야 할 이유는 없네. 어업기지가 필요하다면 다른 곳에 설치해도 돼. 다만 그곳을 외국이 정복하지만 않으면 되는데, 원주민들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바로 이것이 고산국의 영토 내 원주민 정책이며, 또한 고민이었다. 원주민들을 강제로 거주지에서 몰아내거나 세금을 바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고산국은 원주민들의 정복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역을 내버려두면 외국 탐험대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영토로 선언해버릴 수가 있었다. 이 시대에는 오직 고산국만이 원주민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데, 원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기가 어려웠다.
“보고서를 따로 올리겠습니다만, 겨울 숙영지에 작은 항구도시를 만들어 원주민들과 교역을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건국 이후 일관된 정책이지만 교역은 원주민들에게 우리가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습니다.”
“그 지역 원주민들에게 필요한 물품이 뭔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역이고 철기를 자체 생산하지 못해 뭐든 다 필요합니다. 남태평양 섬에 사는 원주민들처럼 이곳 남자들도 칼과 창, 화살촉을 요구했고 여자들은 실과 바늘, 가위를 좋아했습니다.”
“없어도 되겠지만 있으면 확실히 편하지. 난방은 뭘로 하지?”
“천막 중앙에 화덕을 놓고 자작나무 장작으로 만든 숯을 때웁니다. 불을 신성시 하는 사람들이라 철제 화로가 인기 좋을 것 같습니다.”
탐사대원들이 원주민들에게 집들이 비슷한 행사에 초대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코리악 원주민 남자들이 그 추운 겨울에 모두 웃통을 벗고 활줄을 열심히 돌려 새로 지은 천막에서 처음으로 불을 피우는 의식을 구경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언뜻 떠오르는 게 있었다.
“혹시 성냥을 키면 그것을 달라고 하지 않던가?”
“맞습니다! 성냥 30개 들이 한 곽을 줬더니 몹시 소중히 보관했습니다.”
“불을 관리하는데 자원과 시간이 많이 들 거야. 필요할 때 성냥을 키면 편해지겠지. 그들에게 시간을 만들어주자.”
돌도끼로 나무를 베는 원주민들에게 선교사가 쇠도끼를 나눠주는 것은, 원주민의 노동 시간을 대폭 줄여 설교를 듣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남는 시간을 애를 만드는 일에 썼다.
코리악 원주민들에게 쇠도끼와 각종 철제 무기, 그리고 생활용품을 넘기기로 했다. 성냥보다는 부싯돌이 더 긴요하게 쓰일 것 같았다. 그들이 교환하는 물건 중에 상품가치가 있을 만한 것은 연어포 외에 순록의 젖으로 만든 버터와 치즈 정도였다.
“거의 이누이트 수준으로 고기만 먹겠군.”
“야생식물의 씨앗과 뿌리도 가끔 먹습니다. 고기만으로는 몇 가지 영양소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혹시 쌀밥을 대접한 적 있나? 잘 먹던가?”
“예. 아주 잘 먹었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빵도 좋아했습니다. 식물성 식품에 대한 욕구가 아주 높았습니다.”
“쌀과 밀이라면 얼마든지 있지.”
인구가 겨우 몇 만에 불과한 코리악 족에 대한 교역 계획을 세웠다. 이는 겨울 숙영지였던 고구마 반도 남동쪽의 항구 개발 계획과 맞물려 진행됐다.
그 항구는 베링 해 어업과 북극 탐사의 전진기지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선박을 수리할 조선소와 어민들의 숙소도 세우기로 했다.
“혹시 지열 발전소를 세울 만한 곳은 발견했나?”
“예. 겨울 숙영지 근처에서 뜨거운 수증기가 맹렬하게 뿜어져 나오는 곳을 두 곳 발견했습니다. 간헐천이 아니라 하루 종일 분출하고 있으니 그 증기로 기관을 충분히 돌리고도 남습니다.”
지열발전은 비용이 적게 들고 꾸준히 발전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처럼 판의 경계에서만 주로 이용이 가능했다.
“좋긴 한데, 너무 멀어.”
“값싼 전기를 얻으실 목적이시라면, 필리핀에도 비슷하게 땅에서 수증기를 내뿜는 곳이 있습니다. 민다나오에 두 곳, 비사야와 레이테에 한 곳입니다. 브루나이에도 그런 지역이 있습니다.”
“필리핀과 브루나이? 음.”
“확실한 고산국 영토에 지열 발전소를 두실 의향이십니까?”
“나중에 문제가 될지 모르니 당연히 그러고 싶지.”
지열정을 굴착해 증기와 열수로 발전을 한 다음 그 유체는 지하 열수의 압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지하로 돌려보낸다. 현대에 이탈리아와 뉴질랜드 등에서 4~50년을 넘은 지열 발전소가 가동되고 있었으므로 무한동력이나 다를 바 없었다.
태양열, 풍력, 화석연료, 조력, 수력 등 발전 방식 대부분이 태양에너지를 근본으로 한다. 이들과 달리 지열 발전만이 유일하게 지구의 에너지를 이용하는 발전 방식이었다.
현재 지열 발전소는 고산국 본토에 하나가 시험적으로 가동 중이었다. 일본 혼슈에 지열 발전소 입지로 적당한 곳이 많았지만 무시하고 넘어갔다. 지열 발전소는 판이 만나는 화산대에 세워야 효율적이지만 발전소에서 공장 등 소비지까지 송전선을 이어야 하므로 선택지가 좁았다.
“전하! 캘리포니아와 북미 서해안 여러 곳에 가끔 수증기가 분출된다고 합니다. 유전 탐사대를 동원해 굴착해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보고는 들었네. 하지만 간헐천으로는 좀 부족해. 수증기나 열수가 꾸준히 분출되는 곳이 낫잖아?”
“땅속에 뜨거운 물이 끓고 있다면 온도나 압력이 낮더라도 이용이 가능합니다. 암모니아 같으면 낮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습니까?”
“그렇지! 한 번 해보세. 지진이 자주 나는 캘리포니아가 유리할 때도 있군.”
인도네시아나 일본처럼 지열 자원이 섭씨 200도가 넘으면 발전에 더 효율적이겠지만, 그 이하 낮은 온도라도 비등점이 낮은 다른 유체를 이용한 바이너리 방식으로 지열 발전이 가능했다. 유전 탐사를 하면서 쇠파이프를 땅에 박는 데는 이미 이골이 나서 이제는 지열 발전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높은 지위가 좋은 것은 헛짓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일도 아랫사람들에게 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단장의 나무처럼 아랫사람들은 미치고 폴짝 뛰겠지만, 성공한다면 유전을 개발한 것처럼 유용하게 전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공짜나 다름없는 지열을 배나 장갑차의 연료로 사용하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왜 못해? 남는 전기로 물을 전기분해해서 수소를...... 아니야. 지금은 못하겠군.”
수소 연료는 현대에도 그리 많이 사용하지 못했다. 연료전지나 수소연료는 고산국의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한 다음에나 개발이 가능했다. 지금은 축전지와 건전지도 없어서 통신기를 사용할 때마다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
“어때? 탐사대로 활동하다 보니 세계가 좁은 것 같지 않아?”
“그렇습니다, 전하. 탐사대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상상도 못했을 일입니다. 이제 어느 지역에 가더라도 빠른 시간 내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태평양 탐사단 소속 장교와 부사관들은 일정 기간 육군이나 해군 다른 부대로 전출시켰다가 다시 원대 복귀하는 식으로 순환 근무했다. 근무조건이 너무 열악하고, 다른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탐사단의 경험을 나눠주기 위해서였다.
다른 부대 장교들도 탐사단에서 교대로 근무시켜 경험을 쌓게 했다. 그러나 북미 탐사대는 인원이 부족해 교대도 못했다.
============================ 작품 후기 ============================
거의 끝나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