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35 66. 백화제방 =========================================================================
왕도 고북 시에 국립 도서관이 준공됐다. 왕립 도서관에서 소장했던 장서 대부분을 이미 옮겼다. 사서 교육과 역할 이관을 마치고 연말에 국립 도서관이 정식 개관할 예정이었다. 이민호가 보고서를 읽으면서 감탄했다.
“이야! 개관 전인데도 장서가 굉장히 많구나. 관료들에게 맡겼다면 건물만 번드르르하게 짓고 장서는 신경도 안 썼을 텐데.”
“도서관의 첫 번째 기능이 책을 소장하는 건데 설마 그러겠어요.”
혜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러나 이민호는 현대 한국에서 시립 도서관이 개관할 때 많이 봤었다. 건물만 좋고, 장서를 살 예산이 없어서 사서가 여러 출판사나 저자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공짜로 책을 달라고 부탁해서 간신히 서가를 채웠다.
도서관 건물을 세우면 정치가나 관료에게 치적사업이 되지만 책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에 연관된 모든 건물 건설 과정에서 당연히 검은 돈이 오갈 수 있었다.
“각 학교에 도서관이 있겠지?”
“물론이에요. 우리 최 선생이 학생들 교육에 얼마나 신경 쓴다고요. 교과서와 참고서를 제외하고 5천 권이 넘어요.”
“그 동안 교육용 책을 많이 출간했구나.”
“하지만 소장 도서 절반 이상이 역서예요. 아직 건국 초니 어쩔 수 없겠죠.”
외국어 구사자가 적었던 19세기 말의 일본에서는 외국 서적을 엄청나게 많이 번역했다. 이때 외국어를 번역하면서 새로 만든 한자어가 이후 한중일 삼국에 두루 사용되면서 왜색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고산국에서 먼저 번역하면 나중에 조선이나 명나라에서도 그 용어를 그대로 차용할 것으로 기대됐다.
“오! 그럼 절반 정도는 국내 저자가 쓴 책이야?”
“국내는 국내죠. 왕립대학교에 초빙된 외국인 교수 분들이나 유학생들이 낸 학위논문을 책으로 발간했어요. 외국 동화책도 많아요.”
“그것도 좋은 일이네.”
이민호는 20세기에 미국이나 유럽 대학교에 유학 가서 박사학위를 받는 비 백인들이 출신국 상황을 주제로 논문을 제출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었다. 대학이 소재한 나라에서는 가만히 앉아 유학생 출신국의 사정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내국인 저자가 책을 낼 풍토가 돼야겠지만 아직 이르다고 생각해요. 국내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앞으로 기대해도 좋아요.”
“유럽의 사상서는 많이 번역했나?”
“르네상스 시기부터 신학자들이 쓴 책이 많아요. 지식인들이 죄다 신부들이라서 기독교에 경도된 것 같아 불편해요.”
“어쩔 수 없지. 그 시대에 지식인이란 신학자들뿐이었으니까.”
혜영이 잠시 이민호의 눈치를 살폈다. 혜영이 이민호의 의중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주인님의 뜻을 최 선생에게 설명하고 이야기를 해봤어요. 일단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법치주의를 중점적으로 교육시키는 게 좋겠어요.”
“잘했어. 가장 기본이지. 그런데 최 선생은 요즘 왜 잘 안 보여?”
“내년에 쓸 교과서를 집필하고 있잖아요. 며칠씩 밤 샐 때가 많아요. 다른 과목처럼 전문 저자들에게 맡기고 싶어도 인문 분야를 맡길 사람이 거의 없거든요.”
“서양인은 신부, 동양인은 유학자겠구나. 이들에게 국어와 역사 교과서를 맡길 수는 없지.”
이민호가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 교과서 초고를 펼쳤다. 글보다 그림이 훨씬 많은 교과서에 등장한 아이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삽화가는 다양한 양식의 집과 옷을 다채롭게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 같았다. 좋은 이미지가 대부분이라 고산국에 대한 관광안내서로 써도 충분할 것 같았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 다정한 어머니와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 그리고 착한 아이들이라. 크고 넓은 집에 깨끗한 도로와 마차까지. 대단해! 교과서만 보면 고산국은 완전 이상향이군.”
“비웃지 마세요! 주인님이 만들고 있는 나라에요. 현실과 그리 동떨어지지도 않았어요.”
중학교 국어 교과서는 보다 현실적이었다. 조선 땅에서 여덟이 태어났다가 둘만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여인이 고산국에서 결혼한 다음 낳은 아이들이 어려서 죽지 않는 것은 예방주사 덕분이라는 사실을 알아가는 교훈적인 내용이 있었다.
조선 노비 출신 가정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 출신 농부 가족이 새참을 함께 먹으면서 고향에서 힘들었던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도 있었다. 주제는 사람의 생명과 자유의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일깨우면서 인권에 대한 기초 개념을 잡는 단계였다. 그런데 고산국에 흑인 농부가 남아있다는 사실에 이민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인 농부들은 고향에 돌아가지 않았나?”
“나이가 들어 군대에 못 들어가고 아프리카로 귀향하지도 않은 흑인이 3천 명 정도 있어요. 주로 고중 인근 평야에 거주해요. 마을 일을 잘 돕는다고 이웃들의 평가가 아주 좋아요.”
“이 사람들은 왜 아프리카나 북미에 가지 않았어? 훨씬 넓은 땅을 경작할 수 있는데?”
“노예 출신들이라 그런지 더 이상 떠돌고 싶어 하지 않아요. 고향 마을이 붕괴돼서 돌아갈 곳이 없어지고 세상이 두려워진 탓도 있어요. 어딜 가도 고산국에서처럼 제대로 보호받기 어렵다고 생각하나 봐요.”
“쯧쯧!”
뉴올리언스의 거리에서 멋들어지게 재즈 연주를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흑인들이 고산국 농부로 남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호는 아직도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흑인 남자들이 일본 처녀들하고 결혼한 것 같던데, 불만은 없을까?”
“흑인들이 다 일본 여자와 결혼한 것은 아니에요. 어느 인종이든 배우자로는 같은 인종을 더 선호하거든요. 므부투 국왕이 흑인 처녀 2천 명을 보내서 그 동안 결혼 못한 남자들에게 가정을 꾸려줬어요.”
“므부투가 고산국에 남은 흑인들에게도 신경 써줬군. 왕다워.”
“누구보다는 훨씬 자상해요.”
“그러게 말이야. 얼마 안 되는 흑인들이지만 잘 돌봐줘. 이 사람들이 낳은 아이들이 나중에 고산국의 체육계를 이끌어나갈지도 몰라.”
흑인이 유전적 다양성이 워낙 풍부해서 운동신경이 아주 뛰어난 사람은 물론, 평균보다 무딘 사람들도 흔했다. 다만 뛰어난 운동선수들만 널리 알려질 뿐이었다. 열악한 환경의 노예선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후손이라 육체적으로 강인하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참. 교과서 내용에서 집필 의도가 너무 강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전달하고 싶은 주제를 적당히 감출 수는 없을까?”
“교과서에서는 주제가 명확해야 하니까요. 주인님이 고산국 백성들은 문명인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자유와 평등, 인권 같은 개념을 강조하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하지.”
교과서에서는 자유와 인권은 권력을 가진 자가 허락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시대와 국적을 불문하고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던 것이라는 사실을 누차 강조했다. 고산국에 노예가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고, 경제적으로도 노예제는 효율이 나쁘다는 것을 로마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서 증명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서는 가상의 국가 군대에 포로가 된 적국의 민간인들을 학살하라고 장교가 강요하는 상황에서 병사의 선택을 다루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매우 충격적이게도, 장교의 명령을 어기고 민간인들을 풀어줘 도망시킨 병사는 훈장을 받고 장교는 벌을 받는다고 결말이 났다.
장군의 명령을 어긴 채 점령지에서 자행한 학살로 인해 후방에 반란이 일어나, 진압병력을 대규모로 파견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장교 탓에 적 주력과의 전투에 병력을 집중시킬 수 없어서 자칫 패하겠다고 펄펄 뛰는 장군의 대사로 끝맺음했다.
교과서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실었다. 탐사대의 활약을 묘사해 진취적 기상을, 국방연구소 장인의 기관 개발사를 통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농부와 어민, 상인, 군인 등 모든 직업이 개인의 행복은 물론 고산국이라는 사람들로 이뤄진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기여한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 좀 읽어보세요. 이번에 해남도 주변 해안을 노략질하던 명나라 해적들이 잡혔는데, 판사들이 판결을 못 내리고 주인님께 도움을 요청했어요.”
“해적? 해적이면 보통 사형이나 무기징역이잖아? 판결을 내릴 때 고민할 게 있나?”
“보통 해적하고 좀 달라서 문제죠.”
“어? 이게 뭐야! 카카카카카!”
소장을 읽은 이민호가 배를 잡고 나뒹굴었다. 해적들이 신입 해적을 충원하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 민간인 남자를 납치해 남자 해적이 강간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당한 민간인은 창피해서 고향으로 도망치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해적질에 적극 가담한다고 한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 베트남과 광동 인근을 노략질한 대규모 해적단과 비슷한 인원 충원 방법이 이 시기에도 벌써 사용되고 있었다. 정성공의 후계자를 자칭하던 정을이 세운 해적단은 그의 첩 정일수라는 해적 여두목이 지휘한 기간에 배 천 척에 해적 5만으로 불어나 청나라가 토벌할 엄두를 못 냈다.
“웃지만 말고 도움을 주세요. 이것이 형량 감경 사유가 될까요?”
“나야 웃지만, 당한 사람에게는 전혀 웃기지 않는 상황이겠지. 불쌍하니까 형량을 감경해주라고 해.”
웬만하면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언도받았을 해적들이 징역 10년에서 25년으로 대폭 감형됐다. 해적들이 수감돼 일할 탄광은 더더욱 인세의 지옥으로 변할 것 같았다.
이민호에게 몇 안 되는 친구인 안방준이 오랜만에 왕궁을 방문했다. 조선 선비 안방준은 고산국 국왕인 이민호에게 몹시 공손하게 대했다.
“사언(士彦), 잘 왔네. 여긴 사람들이 안 보이는 자리니까 말 놔도 돼.”
“제가 어찌 감히 고산국 국왕전하께 말을 놓을 수도 있지. 왕도에 매번 올 때마다 확확 바뀌는군.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할 줄은 상상도 못했어. 유교 경전에서 칭찬하는 어느 성군보다 낫더군.”
“낯 뜨겁게 아첨은?”
이민호가 자료와 자금을 지원해서 안방준이 집필한 <이대원전>을 조선에서 출간한 적이 있었다. 이 책은 유능한 부하 장수와, 그를 사지에 내몰아 죽인 무능한 상관의 대비가 극적으로 묘사된 명작이었다. 덕택에 조선 국왕과 마을 사람들이 녹도권관 이대원의 유족을 극진히 보살펴주고 있었다.
안방준은 고산국과 조선을 넘나드는 출판 사업의 파트너이기도 하고, 고산국에서 발행하는 주요 신문들을 꼬박꼬박 읽는 열혈 독자이기도 했다. 자주 원정을 떠나는 이민호보다 고산국 내부 사정을 더 잘 아는 경우도 있었다.
“우계 선생의 장례는 잘 치렀나?”
“조문객이 그렇게 많은 장례식은 처음 봤네. 환갑 넘으셨으니 호상이라 해야 하나? 그래도 훌륭한 분이 돌아가셨으니 몹시 안타까워. 어쨌든 스승님이 가셔서 지금은 다시 중봉 선생님에게 배우고 있네.”
그러나 스승 우계 성혼이나 중봉 조헌만큼 안방준도 이미 고명한 유학자로 소문 나 있었다. 마치 유명한 철학교수가 한의학과 학생으로 입학해서 수업시간에 교수들을 괴롭혔다는 일화가 연상됐다.
“자네는 학문이 깊다고 소문났던데, 이제는 혼자서 연구해도 되지 않나? 자네를 가르치는 스승님들이 불쌍하네.”
“뭐야? 우계 선생님이나 중봉 선생님은 나를 가르치실 자격이 충분하신 분들이야.”
중봉 조헌은 금산전투에서 대승한 이후 조정에 나가지 않고 충청도 옥천에서 후학을 기르고 있었다. 조헌도 우계 성혼에게 배웠으나 성혼이 사제 관계를 사양했다고 전한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가 많지 않은 탓이었다.
“어쨌든 고산국에서 외국 서적을 번역해서 낸 책을 조선에서도 열심히 간행했네. 혹시라도 사문난적으로 몰릴 만한 것은 뺐어.”
“종교 서적 외에 웬만한 건 다 냈군. 수고했어. 조선 선비들의 시야가 넓어졌을 거야.”
목록을 살펴보니 고산국에서 번역 발행한 책 대부분이 조선에도 역시 간행됐다. 책마다 발행부수가 꽤 많았으나 단지 유럽의 학문에 호기심을 가진 선비들이 심심풀이 삼아 읽은 것뿐이었다. 본격적으로 공부하려고 고산국까지 찾아왔다가 눌러 앉은 선비가 드물게 있었다.
조선은 언문 표기법이 고산국과 약간 다르고 한문 위주에 세로읽기라서 조선에서 책을 내려면 편집을 새로 다시 해야 했다. 물론 한글만 떼어도 조선인이 고산국에서 발행한 책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얼마 전까지 천년 정도 봉건시대를 지냈더군. 봉건시대라면 아주 옛날 주나라가 연상돼. 그렇다고 유럽이 동양보다 문명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것도 아니야. 신학은 빼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유럽이 낫단 말이야.”
“맞아. 유럽의 사상사는 검토해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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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질 내용입니다. 계속 교육을 시켜야겠지요.
어제는 컴퓨터에 기존 백신이 있는 상태에서 맥아피를 인스톨했다가 충돌이 일어났던 모양입니다. 제거해도 그대로였다가 다른 백신으로 최적화시키니까 블루스크린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컴퓨터는 조금 나중에 사기로 했습니다. 더 일찍 못 올려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