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37화 (586/1,000)

00637  66. 백화제방  =========================================================================

“고북 시 경계를 또 확장한다고요?”

“상공업이 발전해서 인구 유입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하. 최근에 태어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된다면 현재 왕도의 시가지만으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왕도를 미리 더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왕도 남서쪽, 아리수 너머에 신시가지를 건설하고 있는데도 부족하다고 공조 판서와 고북 시장이 보고했다. 공장지대는 아리수 하류를 따라 북쪽으로 이어져 있고, 고북 시 북동쪽 왕궁을 중심으로 남서쪽으로 차례로 관청가와 상가, 대학가가 이어져 있었다.

그 외에 나머지 지역은 모두 주택가였다. 공조 판서가 부족하다고 지적한 것은 주택가였다. 산 넘어 서쪽은 완전 농촌인데 그곳으로 확장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독신 근로자에게 제공되는 연립주택은 그다지 인기가 없는 편이었다. 많지 않은 월세로 널찍한 단독 주택에서 살 수 있기에 공장에서 거리가 있더라도 다들 주택가에서 살기를 원했다. 혼자서 집을 관리하지 못하거나 심심하다는 이유로 두세 명이 함께 사는 경우도 흔했다.

“공장이 도시로 집중되는 이유가 있겠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노동력을 구하기 쉽고 적은 운송비만으로 항구를 통해 쉽게 수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장을 지방 도시에 적당히 분산시키도록 하시오. 전기와 항구는 지방도시에도 다 있소. 방법은 알고 있지요?”

“예, 전하. 어차피 토지는 다 국왕전하께서 소유하고 계십니다.”

정부에서 부지를 안 내주면 공장을 설립하지 못한다. 기계류는 어찌어찌 밀수한다 해도 전기를 구하지 못하기에 고산국 밖으로 나가면 생산할 수도 없었다.

“공장은 지방 도시로 분산시킨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큰 도시로 몰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딜 가나 일자리가 넘쳐나는데 젊은이들이 굳이 지방도시나 농촌에 머무를 이유가 없습니다. 사실 백성 대부분이 왕도 고북 시에서 살길 원합니다.”

“그렇다고 왕도를 백성들이 살기 불편하게 만들 수도 없지 않소? 지방도시에도 장점이 있을 테니 적당히 키워보도록 하시오.”

현재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성인이 되기 시작하는 10년 후에는 고산국 전체에 큰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민호는 가급적 청년들이 북미나 호주로 이주하길 바라지만 청년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었다.

지금도 물론 꾸준히 농업 이민을 가지만, 정말로 수입이 많은 농업에 국한됐다. 북미에서 살면 생활비가 적게 들어서 임금 인상에 대한 요구가 적었다. 그러니 농부 지망자 외의 청년들이 북미로 갈 유인이 적어졌다.

이민호는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다. 북미에서 생활하면 수입도 많고 지출도 많아져야 했다. 유럽과 물가 수준을 맞춰야 한다는 당위성도 있었다. 그러나 고산국의 영토가 분산돼 있어서 섣불리 임금이나 가격에 손을 대기가 어려워서 계속 연구 중이었다.

“북미에 거주하는 군인들은 격오지 근무 수당을 추가로 받지요?”

“군인들이 딱히 돈 때문에 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군인 가족들은 오히려 조금 적게 받더라도 본토에 남아있고 싶어 합니다.”

“북미 도시들이 아직 개발이 덜 됐으니까요. 문화적 수요가 큰데 만족시켜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소.”

결국 왕도를 확장시키기보다는 지방 도시를 육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당연히 비용은 훨씬 많이 들었고, 효율은 떨어졌다.

같은 시설을 갖춘 대학이라도 외국인 교수를 비롯한 교수진의 실력이 뛰어난 왕도의 대학이 훨씬 나았다. 아무리 지방 도시 위주의 정책을 시행하더라도 결국 왕도, 또는 대도시에 인구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신시가지를 잘 만들고 있는 것 같소.”

“감사합니다. 문제가 여러 가지 생기고 있지만 해결하고 있습니다.”

주택가는 화재가 났을 때 옆집으로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 한 가지만을 위해 현대 한국의 단독주택들에 비해 대지 면적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높은 담보다는 낮은 울타리로 가로막아서 이웃과 소통하기 좋았다. 도둑은 거의 없었다.

다만 민간 건설회사가 주택 건설 사업에 많이 참가하면서 경험이나 기술 부족, 혹은 자재를 빼돌리는 건설업자들 때문에 가끔 부실 공사가 생겼다는 것이다. 다른 것은 손해보상을 시키고, 만약 규정된 자재로 시공하지 않는 경우 건설업자들은 모조리 탄광 행이었다.

“이 기사를 보십시오, 전하. 기본소득 때문에 백성들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그런 주장이야 국초부터 흔했소.”

이민호가 신문을 대충 훑었다. 농민 부부가 애들을 여덟을 낳아서 키우다가, 기본 소득이 농업 소득을 넘어서자 아예 농사를 접고 기본 소득만 받아서 논다는 이야기였다. 기본 소득만으로 은 20냥이면 열 가족이 충분히 여유 있게 살 수 있었다.

신문 기사가 거짓말은 아니고 실제로 그런 가정이 꽤 있었다. 자식이 여덟이 아니라 서넛 정도만 돼도 수입이 충분하기 때문에 농민이 경작지를 줄이기도 했다.

몇몇 신문에서는 천한 백성들이 국가의 녹을 먹으니 이렇게 놀게 돼서 나라가 망하게 됐다면서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문제는 이런 엉성한 논리가 독자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특히 자녀가 적은 가정에서 손해 본 것 같아 몹시 분개했다.

“그렇습니다, 전하. 하지만 아이 여덟을 키워보라고 하면 누구라도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조선에서 이런 경우에는 맏이가 막내를 업어 키우는 식으로 가사를 분담했습니다. 물론 자식들 전부가 농사와 가사를 도와야 하기에 교육 받을 기회가 완전히 사라집니다.”

“문제는 사실을 뻔히 아는 다른 신문사에서 입을 다물고 있다는 것이오. 정부를 비판하는 것이 언론의 의무가 맞지만, 잘못된 동업 의식 때문인지 다른 신문사에서 낸 엉터리 사설까지 눈을 감고 있는 것이오.”

“그런데 그건 뭡니까, 전하?”

“정부에서 자녀 많이 낳기를 권하는 홍보 광고요.”

이민호가 공조 판서에게 홍보 시안을 내밀었다. 신문 광고에 실릴 홍보 문구는 농민 부부가 자식 대여섯을 낳아 키우면서 농사를 접었으나, 경제적 부담은커녕 오히려 더 편하게 살게 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정도 낳아서 기르면 국가 입장에서는 애국자에 국가유공자였다.

“애들 키우느라 농사 좀 덜 지으면 어떻소? 어차피 곡식은 남아도는데 말이오.”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온데 저렇게 거짓말을 일삼는 악의적인 신문사를 내버려두실 겁니까?”

“내버려둘 것이오. 비판은 필요하니까 말이오.”

그러나 완전히 내버려둔 것은 아니었다. 신문 사주가 정부 광고를 날로 먹으려고 유령 신문사 몇 개를 차렸다가 쫄딱 망했다.

신문사 등록을 담당하는 부서의 장인 예조 판서로부터 보고를 받은 이민호는 모른 척 정부 광고를 한 달쯤 내줬다가 광고비의 열두 배를 벌금으로 때렸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1책 12법이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신문은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신문을 통해 외국의 사상을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관리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이오. 여기 반란의 역사라는 연재 기사도 읽어보시오. 왕이나 황제의 목을 뎅겅뎅겅 잘도 자른다오.”

“이런 무엄한!”

“어허! 실제 역사 아니오?”

먹고 살기에 바빠 직업이나 전공에 관련되지 않는 분야에 대한 관심을 접는다는 핑계를 댈 일은 거의 없었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기상학에 관심이 생기면 대학에 가서 공부할 수도 있는 곳이 고산국이었다.

9월에 일본 혼슈 서쪽 지역에서 소탕 작전이 전개됐다. 관동 지역에서 밀려난 일본인 농부들이 출입을 금지한 관서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다는 보고를 받고 큐슈에 주둔하던 여진 기병이 출동했다.

큐슈나 시코쿠에서 가까운 지역은 정찰 활동이 심해서 피하고, 일본인 농부들은 주로 내륙 깊숙한 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일본인 농부들은 저항을 거의 하지 않아 여진 기병들이 기대하던 전투는 한 번도 벌어지지 않았다. 농부들을 등쳐먹던 화적 집단 100여 명을 추격해 섬멸했을 뿐이었다.

문제는 관서에서 농사짓다 적발된 일본인 5천여 명이 사로잡혀 왕도로 끌려왔다는 것이었다. 거지꼴이 된 일본인들이 여진 기병들의 감시를 받으며 왕도 거리를 행진하는 꼴을 본 고산국 백성들은 도로변에 나와서 국왕전하 만세를 외쳤다. 그러나 이민호는 어이가 없었다.

“저들을 왜 왕도에 데려와? 다 죽이거나 금역 동쪽으로 쫓아내지. 그렇게 개선식을 하고 싶었나?”

“구주에서 처리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전하. 관서에 놔둘 수도 없고, 관동으로 몰아내려고 하니까 자살자가 속출했습니다. 그렇다고 가까운 구주에 정착시킨다면 본주 관동의 농민들이 관서로 대거 몰려들 것입니다. 다 죽여 버리지 않을 거라면 뭔가 징벌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민호가 화를 내자 큐슈 주둔 여진 기병 지휘관이 진땀을 흘리며 변명했다. 왕도에서도 딱히 처리 방법이 없었다.

“혜영이! 시베리아 횡단 철도 노무자들은 다 고용했지?”

“최종적으로 2만 3천 명이 일하고 있어요. 채석장과 벌목장에서도 인원이 남아돌아요.”

일본인 농부라고 하지만 5천여 명 중에는 여자도 있고 아이들도 있었다. 이들을 다 죽이기도 어렵고, 일단 범죄자들이라서 한 곳에 정착시키기도 곤란했다.

관동 지역은 무법천지라서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농지마다 최소한 세 곳에서 세금을 부과해 수확량보다 더 많은 세금을 여러 무력집단들에게 바치거나 빼앗겨야 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 상황에 처한 농민들은 최후의 선택을 하고야 말았다.

“북미나 호주에서 일을 시키면 안 되나요? 지금도 인력이 부족하잖아요.”

“범죄를 저지른 벌로 넓은 경작지를 준다고? 말도 안 돼. 그럴 바엔 차라리 우호적인 복건이나 안남 사람들을 이주시키는 게 낫지.”

“그럼 일정 기간 고된 일을 시킨 다음 정착시켜요. 아이들은 죄가 없잖아요.”

혜영이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일본인들을 감쌌다. 이민호도 여자와 아이들까지 죽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지만 이 시대에는 인구가 곧 국력이었다.

“성인 남자가 천여 명이라고 했지? 그럼 인력이 부족해서 개발을 미뤄놓은 곳에 투입해야겠다. 고구마 반도 남쪽 항구 개발과 호주 칼굴리 광산에 투입해. 20년 동안 열심히 일한 자에 한해서 호주 목화밭이나 사탕수수 농장 노동자로 정착시키겠다.”

“20년은 너무 길어요. 그 동안 여자와 아이들은요? 가족이 해체되면 불쌍하잖아요.”

“무슨 소리야? 여자와 아이들도 남자들을 따라가서 같이 살라고 해. 가족이 해체되지 않는 대신, 아이들도 커서 성인이 되면 같은 일을 해야 한다. 20년 동안 무보수 노예 노동이야. 미카, 할 말이 있으면 해.”

미카가 우물쭈물하기에 이민호가 발언을 시켰다. 일본 출신이라서 일본인들에게 잘해주기가 더 어려웠던 탓이다.

“주인님. 일본인 포로들이 너무 지저분해서 씻기고 옷을 새로 입히는 게 좋겠어요.”

“왕도에 전염병을 옮기면 안 되니까 당장 그렇게 해. 예방주사도 놔줘. 괜히 시체가 늘어나면 곤란해.”

“밥은 어떻게 먹여야 할까요?”

“우리가 언제 포로들한테 밥을 적게 먹였나? 아일랜드 난민들과 똑같이 해줘.”

“죽부터 먹인 다음 차차 식사량을 늘려 나갈게요.”

미카가 기뻐했다. 일본과 전쟁하는 동안에는 원수진 듯이 대하던 미카였지만 일본 농민들에게는 원한이 없는 듯했다. 이민호는 자신이 마치 츤데레가 된 것 같았다.

“일본인들도 인간이니까 일단 인간으로 대우해주겠는데, 저들이 결코 쉽게 고산국 백성이 되지는 못할 거야.”

“주인님은 땅이 넓은 관서를 비워두기 아깝지 않나요?”

“전혀. 관동은 여전하지?”

“예. 큰 집단 세 개가 서로 싸우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무력집단이 각지에서 할거하고 있어요.”

미카에게서 자세히 보고를 받았다. 현재 일본의 상황은 전국시대보다 훨씬 더 심했다. 영지와 농민을 두고 여러 무력집단이 전쟁으로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기존 영주들은 거의 다 몰락하고 무력집단 내에서 하극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럼 당분간 내버려둬. 적당히 합해질 것 같으면 또 대가리를 날려버려야지. 절대 항복을 받아들이지 마.”

“언제까지 일본인들을 그렇게 혹독하게 관리하실 건가요?”

혜영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물었다. 이민호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해서 인구를 늘리는 것보다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줄이는 것이 훨씬 쉬웠다. 그러나 이른바 죄 없는 일본인들까지 학대하는 것 같아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지배집단은 물론 하급 무사집단도 완전히 몰락할 때까지. 일본에 농촌 마을 단위만 남으면 그때 생각해보자.”

“저, 주인님. 방금 그 말씀을 일본 농민들에게 전파해도 되나요? 무사집단의 소멸을 조금 더 일찍 끝낼 수 있어요.”

“미카가 알아서 해. 하지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어. 만약 그렇게 된다면 농민들에게 농지 재분배를 해준다고 해. 치안도 유지해줄 테고.”

“그렇게 할게요. 하고말고요.”

“우리 군사력이 직접 개입하지는 말아야 해.”

“네!”

그 동안 시무룩했던 미카가 의욕이 넘쳤다. 그러나 일본 역사에서 이어져온 이키 토벌의 사례를 봤을 때 결코 쉽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미카가 일본 농민들을 배후 조종해 반란을 일으키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큰 혼란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 작품 후기 ============================

늦게 올리는 게 버릇이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오늘은 한 편만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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