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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42화 (591/1,000)

00642  67. 1600년  =========================================================================

“그런데 이 고양이는 언제까지 크는 거야? 삵보다 훨씬 크네?”

“이제 거의 다 자란 것 같아요. 의외로 보통 고양이보다 훨씬 사람 말을 잘 들어요.”

민영이 손짓하자 카라칼이 와서 머리를 들이밀었다. 민영이 쓰다듬는 동안 카라칼이 눈을 지그시 감고 촉감을 즐겼다. 도도한 고양이라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민영은 카라칼을 데리고 산책도 한다고 자랑했다. 카라칼의 목걸이에 걸린 것은 빨갛고 가느다란 비단 실이었다. 10kg이 넘는 체구가 조금만 저항해도 툭 끊어질 가는 실에 묶인 카라칼은 민영이 원하는 대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함께 걸었다.

“후원에 사는 새가 확 줄어들었어. 갈라티아 궁녀들이 하는 말에 따르면 밤마다 새들이 비명을 지른다더군.”

“미안해요. 야생의 본능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밤에 문을 닫아놓을게요.”

왕궁 후원에서 새를 키우는 것은 아니었고 야생 새들이었다. 카라칼은 야행성이라 민영이 잠든 틈에 빠져 나와서 사냥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야성이 강한 카라칼이 야생 새를 사냥한다는데 금지시킬 이유가 없었다.

“여름에는 덥잖아. 내버려둬.”

카라칼이 사람에게 얌전한 것은 좋았지만 본능에 충실한 야생동물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카라칼을 번식시켰다간 고산국 본토에서 새의 씨가 마를 것 같아 수입 금지령을 내렸다.

개와 고양이를 제외한 모든 살아있는 동물은 고산국 영역 내의 다른 지역에 데려갈 때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했다. 사람들은 그 과정이 귀찮아서 아예 동물을 데려가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호주에 토끼를 풀어 키우자는 정신 나간 주장을 하는 자들이 있었다. 무한급수로 설명을 해도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 호주에 토끼를 들여온 자들도 토끼가 호주의 토양과 농업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기 전까지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당해봐야 확실히 알게 되겠지만 그 때는 이미 늦었다.

“전하! 페르시아에서 아부다비로 말을 보내왔습니다. 1차로 한혈마 천 마리를 보냈고 계속 수송해서 합계 3천 마리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페르시아 사람인 마의와 말구종들도 따라왔습니다.”

마침 연료 보급을 위해 아부다비에 들렀던 수송선에서 말 400마리를 싣고 왔다고 예조 판서가 보고했다. 3천 마리라면 한 무제가 이광리를 장수로 삼아 대완국에 2차 원정을 보냈을 때 조공을 받은 마릿수와 같았다.

예조 판서가 왕궁에 한혈마 한 마리를 가져왔다고 해서 이민호가 말 구경을 나갔다. 체구가 큰 말이 당당히 서서 이민호를 노려보고 있었다. 검은 털에 윤기가 자르르 흘러서 감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이제야 보상을 받는군요. 혹시 샤가 말 값을 원하던가요?”

“샤한샤는 말 값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합니다. 페르시아에서 무슨 일로 말을 전하께 보낸 것입니까?”

“그냥 조공 받은 것으로 생각하시오.”

페르시아 사파비 왕조의 샤한샤 아바스 1세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와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서 말을 사서 남쪽으로 몰고 온 다음 배에 태워 아부다비로 보내는 성의를 보여줬다. 아사신이 페르시아와 관계가 있을 거라는 이민호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신하들이 페르시아를 치자고 주청할까봐서 설명해주지 않았다. 나중에 인도와 관련되면 페르시아가 적 아니면 아군으로 분명히 판명될 테지만 지금은 중립으로 놔두었다. 아부다비에는 여전히 페르시아 상인들이 구름처럼 몰려와 교역을 하고 있었다.

“어? 전하! 이 말은 왜 이리 큽니까? 내구마이옵니까?”

항공대장 이면 중령이 수상비행기를 동해국에 보내는 문제를 보고하러 왔다가 눈을 크게 떴다. 말구종에게서 말고삐를 받은 이민호가 이면에게 넘겼다.

“항공대장에게 주는 선물일세.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 말은 이제 관심이 없나?”

“감사합니다, 전하! 무관이 말에 관심이 없을 리가 있습니까? 비행기도 좋지만 말은 사람과 감정이 통하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면은 다섯 살에 말을 몰 수 있었다. 자그마한 동자인 이면이 커다란 말을 타고 달리는 장면을 이민호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었다.

“이야! 이 녀석 자부심이 아주 대단하네요. 웬만한 사람은 태우지 않겠다는 의지가 확고합니다. 종마입니까?”

“종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유명한 대완국의 한혈마일세.”

페르시아에서 바친 명마들은 아할테케 종이 다수였다. 페르가나 말과 같은 종이라 하지만 아할테케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 지역에서 자란 말들이었다.

“우와! 역시 대단한 말이로군요. 귀가 쫑긋이 서서 마치 황소의 뿔 같습니다. 그리고 목이 이렇게 굵은 말은 처음 봅니다.”

말의 목덜미를 만지던 이면이 등자를 밟고 훌쩍 뛰어 말안장에 올라탔다. 말이 움찔하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랴!”

이면이 외치자 한혈마가 궁성 마당에서 천천히 걸었다. 이민호가 접근할 때는 인상을 찌푸리며 온몸으로 거부하던 말이 이면을 태우고는 말고삐를 당기는 대로 방향을 틀었다.

“저 말 녀석. 내가 탈까봐서 얼른 항공대장을 주인으로 선택한 것 아냐?”

“주인님. 동물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그래, 그래.”

민영의 말이 옳았다. 말이나 고양이에게 이민호가 욕심을 내더라도 제대로 관리할 시간이 없었다. 차라리 그 시간에 자식들하고 놀아주는 게 훨씬 나았다.

“하아!”

이면이 말의 옆구리를 발뒤축으로 살짝 찌르자 말이 총알 같이 달려 나갔다. 장애물을 뛰어넘으면서 빠른 속도로 달리는 동안 이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좋겠다.”

이민호는 이면이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항공대장! 오늘은 무슨 보고를 하러 왔나?”

“아! 잊어먹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면이 훌쩍 뛰어 말에서 내렸다. 말의 잔등을 쓰다듬어주고 나서 말구종에게 말고삐를 맡긴 이면이 머리를 긁었다.

“동해국에 파견하는 수상비행기의 조종사로 저를 보내달라고 부탁드리러 왔습니다만, 취소하겠습니다.”

“이해는 하겠는데, 직책을 생각해서 위험한 일은 더 이상 하지 마. 이제는 조종사들이 충분히 있어. 위험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자네가 젊은 조종사들에게서 기회를 빼앗아간다고 생각해야 해.”

“저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인데 벌써 그런 나이가 된 겁니까?”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직책이 높아서 문제일세. 조종사들을 지원해주는 게 자네 일이야.”

“저도 압니다. 하지만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고 싶습니다.”

이면이 툴툴거리며, 그러나 입이 쫙 벌어진 채 말을 타고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 날 총함장 이순신의 집에 한혈마 한 마리를 더 보내야 했다. 고산국의 해군 총함장 이순신도 여전히 무관이었기 때문이다.

“3천 마리면 기병 연대 딱 하나를 운영하고도 좀 남겠다.”

기병 연대에 기병만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고 보급이나 행정을 맡은 군인들도 있었다. 3천 명 정도로 구성된 기병 연대에서 순수 기병 병과는 1,500명에 약간 미달했다.

“기병마다 천리마 두 마리를 타게 하려고요? 엄청난 기병이네요.”

“짐말은 제외하고라도 승용마와 전마를 섞어놓으면 품종 관리하기 곤란해. 두 마리를 번갈아 타라고 해.”

“기병 연대 병사들은 운이 아주 좋군요.”

“부럽다.”

“하지만 전마로 사용하면서 숫자가 늘어나길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아요. 전염병이나 적의 공격으로 인해 말이 사람보다 훨씬 많이 죽어나가니까요.”

이민호도 1879년 영국군 몇 천 명이 참전한 줄루 전쟁 때 영국 본토에서 모은 말 60만 마리를 아프리카로 끊임없이 보내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당분간 대규모 전쟁이 없길 바랐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말이 줄어들면 또 달라고 하지 뭐.”

“천리마는 서역에도 그리 많지 않아요. 그러니 절반 정도는 번식용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겠어요. 몇 마리는 왕실용으로 해요.”

“그렇게 하자. 기병이 한혈마 한 마리 관리하는 것도 벅찰 거야. 그럼 민영이가 호위들 데려가서 먼저 골라봐. 이런 선택권이라도 있어야지.”

여진족 호위들이 그 좋은 기마 민족의 눈썰미로 가장 좋은 말 40여 마리를 골랐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순한 말 한 마리를 이민호에게 주고 나머지 거친 말은 호위들이 한 마리씩 나눠 가졌다.

페르시아에서 온 마의와 말구종들이 왕궁에 배치돼 고산국 왕궁과 기병 연대, 그리고 말목장의 마의와 말구종들을 가르쳤다. 이들은 세균이나 호르몬 등 과학적인 지식은 적었으나 수천 년의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 관리방법을 상세히 가르쳤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 건설이 진행되면서 북미 제철소에서 생산된 선로가 끊임없이 동해국으로 향했다. 노무자 2만 명이 먹을 식량과 생활용품도 고산국 본토에서 동해국으로 수송됐다.

고산국뿐만 아니라 유구국 상선들이 대거 동원돼 수송 작업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다. 동해국에 선로 등을 하역하면 이미 완성된 철로를 통해 빠른 시간 내에 건설현장으로 보낼 수 있었다.

“어떤가? 이제 취역해도 될까?”

“예, 전하. 아주 좋은 배가 될 것입니다. 선장과 항해사들도 배를 잘 아는 사람들이라 다행입니다. 평형수 균형이나 배의 무게 중심도 아주 면밀히 계산해서 잘 잡습니다.”

1만 5천 톤짜리 여객선은 부두에 정박한 동안에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선장과 시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선박 설계자는 무척 자랑스럽게 보고했다.

“규정대로만 하면 해난사고가 날 이유가 없는데 말일세.”

“규정대로 해도 바다에서는 가끔 사고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대양 한가운데에서 삼각파도를 맞으면 그 어떤 배라도 버틸 수가 없습니다. 배가 그냥 뚝 부러지거나 한쪽을 피하면 다른 쪽 파도를 현측에 얻어맞아 결국 침몰하고 맙니다.”

“말이 그렇지.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으니까.”

이제 외부 치장공사만 마치면 여객선이 정식으로 취역할 수 있었다. 첫 번째 항해인 교황 성지 순례를 마치면 대서양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민선 두 척을 대체하기로 예정된 이 여객선도 국가 소유였다.

- 위이잉~

수상비행기가 항구를 낮게 떠서 날고 있었다. 지금까지 제작한 복엽기와 단엽기 여러 대는 아직 시험 비행기 수준이었고, 안정적인 수상비행기가 가장 먼저 양산 단계에 돌입했다.

원형기 두 대는 지도 제작 및 정찰용으로 동해국에 보내고 지금은 양산형 첫 번째 수상비행기가 시험 비행을 하고 있었다. 비싼 전기를 물 쓰듯 해서 생산한 알루미늄을 수상비행기에 아낌없이 쏟아 부어서 제작했다.

그 동안 문제가 있었던 사출기도 출력을 극대화해서 수상비행기를 순양함에서 안전하게 날릴 수 있게 됐다. 교황의 성지 순례라는 역사적인 이벤트는 묻히고 거대한 여객선과 물과 하늘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수상비행기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럽과 서남아시아에 퍼질 것으로 예상했다.

추기경들이 방문한 기간에는 비행을 금지시켰으나 고산국에 신부와 선교사들이 많아 비밀을 완벽하게 지킬 수는 없었다. 지금도 유럽에서는 고산국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기물이 발명됐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지중해에 뜨면 전 세계에 큰 충격을 몰고 올 거야.”

“여객선이 말씀이십니까? 당연합니다.”

이민호는 수상비행기를 두고 한 말인데 선박 설계자가 착각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여객선을 마치 자기 자식처럼 예뻐하는 것이 특이했으나, 이것이 보통 사람의 반응이었다.

“자네는 선박 설계자로서 고산국에 가장 시급히 제작할 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구조선입니다, 전하. 연안에서 충돌사고나 침몰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해군 순양함이 출동해서 인양하거나 항구로 끌고 와야 합니다. 순양함에 달린 기중기보다 큰 기중기를 단 민간 선박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침몰 사고에서는 해상 초계중인 순양함을 부르게 되지만 작전 중이거나 정박 중인 순양함을 부른다면 군함을 만든 효율이 떨어졌다. 그리고 순양함에 달린 기중기는 민간에서 원하는 만큼 대형화할 수도 없었다.

아직 심해 잠수복을 개발하지 못했다. 고산국이나 북미 연해에 어류가 풍부하고 얕은 수심에서도 어패류가 충분히 잡히는 탓이었다. 전복 등 비싼 어패류는 아예 양식을 해버리므로 깊은 수심에서 작업이 가능한 머구리 잠수복도 아직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해난사고가 발생할 경우 꼭 필요한 분야였다.

“어느 정도 크기로 만들어야 할까?”

“클수록 좋습니다만, 작아도 두세 척이 모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기준이 되는 배를 정해주시면 그것에 맞게 만들겠습니다.”

“구조선 두 척이 침몰한 1만톤 급 순양함을 인양할 수 있도록 하게. 각 지역에 구조선 두 척씩 배치하겠네. 효율이 떨어지겠지만 평소에는 구조선을 화물 하역 작업이나 건설 공사에 활용할 수 있을 거야.”

“설계를 마친 다음 전하께 재가를 받겠습니다. 평소에 미리 재난구조에 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비보다 중요한 것이 역할 분담과 재난구조 절차였다. 해안경비대에 책임을 맡기고 구조 절차를 정하도록 했다. 소방관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인명구조를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해난사고에 적용시켰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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