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48 68. 아라비아 =========================================================================
다음 날 낮에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입항했다. 이때는 오만보다는 무스카트오만이라는 국명이 더 널리 쓰이던 시기였다.
무스카트에는 포르투갈이 1508년 무스카트를 점령한 이후 세운 요새가 두 곳이 있었다. 항구 입구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산에 세워진 알 잘랄리 요새와 알 미라니 요새였다. 무스카트가 포르투갈에 점령된 탓에 1552년과 1581년부터 1588년까지 오스만 제국의 해군이 공격해 점령하기도 했다.
“오만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가 지금은 고산국의 속국인가요? 성격이 애매해요.”
“아니. 우리 심부름해주는 부용국.”
배에서 내리기 직전에 이민호가 민영에게 답한 것과 달리 현재 오만은 독립국이었다. 오만이 고산국에 협력하기로 결정한 이후 포르투갈 군대가 자진해서 인도로 철수한 덕택이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포르투갈이 1649년에 오만의 이맘 술탄 빈 사이프에 의해 쫓겨났으니 50년이나 빨리, 그것도 평화적으로 철수가 이뤄진 셈이었다. 1740년대에는 페르시아가 무스카트를 집어삼키려는 것을 막아냈다.
그러나 역사상 어느 세력도 오만을 통째로 식민지나 속국으로 삼지 못했다. 해안 도시 몇 곳이 유럽이나 다른 침략자에게 넘어가더라도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막은 언제나 부족장들이 다스렸기 때문이다.
“무스카트오만의 7천 년 역사에서 가장 귀한 손님을 맞이할 영광을 주셔서 알라께 감사드립니다. 잘 오셨습니다, 폐하. 알라의 종이며 분란의 박멸자이신 고산국 국왕폐하께 알라의 영총을!”
통역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뭔가 엄청난 칭호와 찬사를 들은 것 같았다. 이바디파의 이맘 외에도 오만의 대부족인 카흐탄, 니자르 부족의 족장이 고산국 국왕의 방문을 환영했다.
이민호는 7천 년 역사라는 말에 과정이 섞였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고고학적 유물들은 BC 3천 년경에 수메르에 기록된 뱃사람들의 무역국가 마간국이 오만일 수도 있음을 입증했다. 기록된 것만 이미 5천 년 역사였다.
“고맙소. 그런데 술탄은 편찮으신 게요?”
“아부 무하마드께서는 요즘 신앙심이 부족해진 것 같아 궁전에서 편히 쉬시면서 꾸란을 좀 읽으라고 권해드렸습니다.”
이민호가 왜 술탄이 마중 나오지 않았느냐고 꾸짖자 이맘이 이런 이유를 댔다. 그 사이에 술탄이 이맘의 세력에 패해 궁전에 유폐당한 모양이었다. 아부 무하마드는 오만에서 술탄의 칭호라고 통역이 설명했다.
“흐음. 그럼 무스카트오만을 앞으로는 이바디 이맘국으로 불러야 하는 것이오?”
“외국에서 어떻게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다 같은 나라를 지칭하니까요. 아부 무하마드는 방탕한 여자들에게 술탄의 이웃이라는 면죄부를 너무 남발했습니다. 그래서 무슬림들의 반발을 산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통역관에게 설명을 들었다.
“전하. 여자가 오만 술탄에게 청해 술탄의 이웃이라고 선언되면 수치스런 짓을 해도 부친이나 친척들이 어떻게 징벌을 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 여자를 명예 살인을 하면 가해자가 일반적인 살인죄로 처형당하기 때문입니다.”
“명예 살인? 아내가 눈앞에서 강간당하는데도 지켜주지 못한 주제에 아내를 죽이는 그 명예 살인 말인가?”
“좋은 풍습은 아니지만 문화적 차이로 넘어가시지요.”
이슬람 경전에는 명확히 명예 살인을 부추기는 문구는 없었다. 또한 같은 이슬람 국가라도 지역에 따라 명예 살인의 빈도수가 달랐다. 인도의 힌두교 지역이나 북아프리카, 알바니아, 심지어 기독교 신자가 다수인 아르메니아와 이탈리아 남부, 그리고 시칠리아에도 있었던 풍습이다.
‘술탄의 이웃’은 <이븐바투타 여행기> 오만 여행 편에 나온 내용이다. 그런데 술탄의 이웃으로 선언된 여자가 부정을 저지를 경우 부친이나 친척이 그 여자를 명예 살인을 하지 못한다는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여자를 죽였다고 떳떳이 주장하고 이웃들로부터 영웅 취급받는 문화권이라도, 만약 정부에서 강력하게 처벌하면 두려워서 감히 명예 살인을 저지르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들이 힘없는 여자를 죽이면서까지 지키려는 가문의 명예는, 명예 살인자가 감당해야 할 형벌보다 낮은 위치에 있었다. 가문의 명예를 위해 아내나 딸 같은 여자를 죽여도 되는데 나는 가문의 명예를 위해 절대로 죽지 못하겠다는 뜻이었다.
“넘어가더라도 욕은 해야지! 야만인들 같으니라고!”
“그리고 조선에도 비슷한 풍습이 있습니다. 바람피운 여자뿐만 아니라 과부를 열녀로 만들기 위해 자살로 위장해 살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악습이 고산국에서도 암암리에 자행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끄응! 만약에 그렇다면 고산국도 야만국이야.”
고산국에는 사적 복수를 강력히 금지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지만 설마 명예 살인이 일어나랴 싶어 금지 조항이 없었다. 그러나 명예 살인을 감형해주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리고 최 선생이 교과서나 신문 기고를 통해 그런 악습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 나아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양반 출신이나 노인들의 인식 변화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술탄이 왕궁에 갇혀 있기에 항구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이맘과 두 부족장들과 대화를 나눴다. 이익금 정산과 손해보전 등은 이미 마친 다음이었다.
길지 않은 대화를 위해 장갑차 중대와 구르카 여단에서 1개 대대가 상륙해서 천막 주위를 에워쌌다. 과도한 경호였지만 혹시라도 있을 암살 시도 자체를 막으려는 의도였다.
“오만은 물자 수송을 아주 잘해주고 있소. 아프리카 국왕 므부투가 오만의 여러분들께 감사를 표해달라는 요청이 있었소.”
“열등한 흑인 노예 따위가, 아니 므부투 국왕께서 칭찬해주시다니 영광입니다, 폐하.”
“흠! 흠! 흑인 왕국이 현재 오만에게 가장 큰 손님임을 기억하시오.”
“죄송합니다, 폐하.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데 습관이란 참으로 무섭습니다.”
이 정도면 이민호가 성질을 낼 만도 한데 오만을 두들겨봤자 이익이 없어서 꾹 참았다. 국익을 따지는 것이 통치자의 덕목이긴 하지만 점점 돈의 노예가 되는 것 같아 이민호는 조금 서글펐다.
“아프리카 왕국은 현재 인구가 220만에 전사가 10만이나 되오. 그 중에 총병이 자그마치 1만이오!”
“헉! 그 비싼 총을 1만 정이나! 하긴, 폐하께서 뒤에 계시는군요.”
“복속된 왕국이나 부족들이 많고 지금도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으니 조만간 아프리카의 대제국으로 성장할 것이오. 지금 잘 사귀어두면 나중에 두고두고 덕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이맘이 의자에서 내려와 공손히 절을 하며 고했다.
“사죄하는 의미에서 제 손녀딸을 므부투 국왕께 시집을 보내겠습니다. 그분이 대국의 국왕이시며 무슬림이므로 제 손녀딸의 배필로서 전혀 부족하지 않은 자격을 갖춘 분입니다.”
“딱히 그럴 필요는 없소. 므부투 국왕의 아내가 내 아내 숫자보다 많다는 것만 기억하시오.”
“히익! 그럼 천 명 이상입니까?”
“나도 천 명은 안 되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이었다. 오스만 황제나 인도 황제의 하렘에 비교해 많지 않았으나, 일반인들에 비해 무척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므부투는 주변 부족들을 통합하느라 무분별하게 여자들을 받아들였다.
“그 이야기는 됐고, 페르시아와 무굴 제국에 대한 정보는 많이 수집했소?”
“그렇사옵니다, 폐하. 교역에서 약간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더 많은 배를 두 나라에 보내고 있습니다.”
이맘에게서 두툼한 서류 뭉치를 받았다. 통역관에게 대충 살펴보게 했더니 전통적인 무역국가답게 정보는 비교적 객관적이고 정확한 편이라고 평가했다.
“대단히 수고하셨소. 그리고 두 부족장께 말씀드리고 싶소.”
“하명하십시오, 폐하!”
“젊고 능력이 좋은 젊은이가 부족에 있다면 고산국에 유학생으로 보내주시오. 학문은 교류가 있어야 더욱 발전한다고 믿고 있소. 이슬람 신학은 약하더라도 다른 학문은 고산국이 앞서간다고 자부하고 있소.”
부족장 두 명이 움찔했다. 노련한 부족장들은 그것이 부족장의 자식들을 고산국에서 인질로 잡아가겠다는 의미임을 파악하고도 남았다.
지적으로 생긴 두 부족장이 천막 밖에 서 있는 장갑차를 한 번 쳐다본 다음 답했다. 수십 년 동안 전쟁터에서 싸우고도 살아남았다고 믿기 어려운 용모였다.
“마땅히 제 장남을 고산국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미욱하지만 후계자 수업을 마친 제 아들을 유학생으로 보내게 된다면 영광입니다.”
고압적으로 보이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민호가 속국이나 동맹국에는 온화한 정책을 펼치지만 오만은 그 전에 대대적으로 해적질을 하던 나라였다. 아무리 먹고 살 게 없다지만 국가 단위로 분탕질에 나섰던 나라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사실 인질이 누가 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오만의 대족장들이 고산국에 인질을 바쳤다는 정치적 목적만 달성한다면 상관없었다. 신뢰도와 관계된 시험이라서 그 목적만 달성하고 대족장의 아들들을 다시 보내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험에 통과한다 해서 반드시 오만을 신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언제든지 자식들을 피의 제단에 바칠 수 있는 사람들이 지배자라는 족속들이었다.
“국제적인 사안에 안목을 크게 키워줄 수도 있소. 이번에 왕립대학교에 입학한다면 명나라의 황태자나 페르시아의 왕자와 좋은 친구가 될 것이오.”
“영광입니다, 폐하.”
회의를 마치고 만찬 연회에 참가한 다음 국왕좌승함으로 돌아왔다. 회의 때부터 계속 민영이 불안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물었다.
“왜? 저치들이 배반할 것 같아서?”
“예. 부족장들이 치욕을 꾹 참는 듯한 모습이었어요.”
밤새도록 순양함 몇 척이 함포의 포구를 바위언덕 위의 요새를 향하고 있었다. 외국에 나갔을 때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사람이라면 그게 정상적인 반응이야. 나는 오히려 끝까지 표정을 숨긴 이맘이 더 무섭더라.”
“그 정도로 정치적인 인간이라서 오만의 이맘까지 올라섰겠지요.”
이맘이 종교적 수장이라 하지만 이미 충분히 정치가였다. 이슬람교가 생긴 이래 정치와 종교는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오만을 심하게 다루는 것이 이상해?”
“아니요. 오만을 항상 경계해야 해요.”
베네치아의 일곱 시녀들이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대화를 들었다. 인도양과 아라비아 반도를 맡길 만한 사람이 없어서 베네치아 시녀들에게 분담시켰다. 아랍어를 아는 시녀라도 북아프리카 해안 지방의 사정에만 밝았지 아라비아 반도의 사정은 잘 몰라서 문제였다.
“외교관을 키워야 돼. 단기간에 대규모로.”
그 과정에서 질적인 하락은 감수해야 했다. 아부다비에 아랍과 페르시아를 잘 아는 외교관이 당장 필요했고, 예멘과 오만, 인도 등 각 지역 전문가도 절실히 필요했다.
“외교관을 키우려다가 조선 역관 가문처럼 세습직으로 변하면 어쩌죠?”
“통역이나 밀수를 하는 역관 가문이 세습하는 거야 별로 상관없어. 그런데 만약 조선의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행사들이 대대로 세습한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그럼 나라의 눈과 귀가 막히는 거죠.”
만약 고산국이 그런 상황이 된다면 외교관이 아무리 고급 인재라도 다 쳐 죽이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한 나라의 외교업무를 특정 집단이 사유화하려고 시도한다면 국가 안위를 좀먹는 집단이었고, 반드시 처단해야 했다. 관리들의 부정부패에는 항상 신경 써야 하는 법이지만 인사 문제는 제도만으로 막기 어려웠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출항한 함대는 사흘 만에 모카 항에 도착했다. 예멘 총독 하산 파샤가 그야말로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겼다. 작년에 전사한 이맘 알 만수르 알 카심의 아들, 알 무아야드 무하마드는 사나에 있다고 했다.
“올해만 지나면 내년 초에 황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폐하.”
“오! 총독께서 승진하는 거요? 미리 축하드리오.”
“작년에 많이 도와주신 폐하 덕분입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작년에 일어났던 이맘의 반란을 진압한 전공을 이스탄불에 보고할 때 예멘 총독이 독차지했다는 뜻이었다. 이민호가 총독에게 허락하긴 했으나 보고서의 진실을 꿰뚫어보지 못하고 총독을 승진시키려는 오스만 제국도 별 것 아니라는 평가를 하게 됐다.
“승진한다면 혹시 제국의 대재상이 되시는 거요? 이거 잘 부탁드려야 되겠소이다. 하하!”
“아직 확실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대재상이 되면 많이 도와주십시오. 알아보니 파샤들 중에서는 제가 폐하를 가장 가까이서 모신 것 같습니다. 하하!”
외부의 평가와 직접 겪어본 다음 이민호가 내린 평가가 가장 엇갈리는 사람이 하산 파샤였다. 이스탄불에서는 하산 파샤를 피와 광기에 물든 대장군 정도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이민호가 보기에는 그냥 겁 많고 욕심 많은 평범한 노인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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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이집트입니다. 금방금방 넘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