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50화 (599/1,000)

00650  68. 아라비아  =========================================================================

“좋구나.”

함대는 동서의 폭이 10km나 되는 대염호를 지나 다시 수에즈 운하를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저 멀리 북서쪽에 동쪽으로 흘러 팀사 호수에 연결되는 나일 강 지류의 강변 밭에 밀과 보리가 누렇게 익어 출렁거렸다. 그리고 목화를 수확하는 농민들로 들판이 가득했다.

지금은 3월 중순인데도 나일 강 유역에서는 수확기에 접어들었다. 아프리카 중부 산악지역에 내린 봄비가 나일 강에 모여 강 하구 델타 지역에서 범람해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7월에서 10월이 농한기였다. 물이 빠져 나간 11월부터 2월은 농번기, 3월부터 7월까지는 수확기였다. 이것이 이집트의 세 계절이었다.

“나일 강변은 몹시 풍요로운 곳입니다, 전하. 다만 강변이 아닌 지역은 죄다 사막입니다.”

이집트 총독 대리 정옥남은 수에즈 운하 남단 수에즈에서 국왕좌승함에 탑승했다. 함대가 지다에 있을 때 순양함 두 척이 미리 수에즈로 가서 무전을 쳤고, 카이로에 있던 정옥남이 말을 타고 바람처럼 달려왔다.

“이집트를 통치하기 어렵지 않나?”

“이집트가 넓다 하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나일 강변과 삼각주에 국한돼 있습니다. 그 면적은 해남도하고 별 차이가 없습니다.”

고산국에서 인재 부족 문제는 직급이 높을수록 심각했다. 오랫동안 해남도에 유배시키듯이 보냈던 정옥남까지 나서서 일을 해야 했다. 한 사람이 한 지역에 너무 오랫동안 파견되는 것도 좋지 않았다.

정옥남이 해남도에 있는 동안 아주 잘 다스렸다는 것은 이민호도 인정했다. 해남도는 명나라 황제로부터 받은 관작인 주애공의 명목상 영지 비슷한 곳이었지만, 한인들을 뺀 나머지 종족 백성들은 명나라보다 고산국을 자기 나라로 여겼다. 물론 정옥남이 려족과 묘족들에게 충분히 먹고 살 길을 마련해준 덕택이었다.

그리고 정옥남은 수시로 명나라 남부에 관리나 상인을 파견해 명나라의 사정을 훤히 꿰뚫고 이를 수시로 왕도에 보고했다. 그래서 반란이 일어날 때 북경의 황제보다 이민호나 혜영이 훨씬 빨리 알고 대처하게 됐다. 반란이 일어나면 물가가 요동치기 때문에 고산국은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집트인들의 교육 수준이 높아서 정치적 문제는 껄끄럽겠지만 행정을 하기에는 아주 편할 거야.”

“그렇습니다. 사실은 제가 이집트에서 과연 행정을 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어떤 명령을 내리더라도 이미 마을 단위에서 알아서 착착 진행하고 있으니까요.”

“준비 기간 없이 자넬 너무 성급히 보낸 것 같아. 총독도 아닌 총독 대리라는 한계도 있어.”

그렇다고 정식 이집트 총독인 이순신에게 이집트를 통치하라고 맡길 수는 없었다. 진짜 군인들은 행정을 시키면 잘 하면서도 본분에서 벗어난 일이라고 여기기 쉬웠기 때문이다. 제주목사인 이경록도 무관이었지만 제주도를 잘 다스리고 있으면서도 무관 직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것을 한으로 여겼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카이로에서 할 일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치안 유지와 세금 바치기, 그것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세금을 이스탄불에 내는 것이 아니지만 말입니다.”

“치안이나 세금을 이집트를 위해 잘 쓰는 문제도 쉬운 일은 아니지. 군대는?”

“각 주별로 1개 대대 외에, 마을마다 자경단 1개 소대를 조직했습니다. 지독히 못 싸운다고 아랍인이나 투르크인들에게 무시당하는 이집트인들이지만 군사훈련은 잘 받고 있습니다. 이제는 화승총도 잘 다룹니다.”

19세기에 이집트가 독립을 선언했을 때는 이집트군에 의해 오스만 제국 군대가 탈탈 털렸다. 레반트 지역을 점령한 다음 영국의 견제가 없었다면 이집트군이 이스탄불로 진격할 뻔했다. 현대 이집트군은 4차 중동전에서 이스라엘을 상대로 아주 잘 싸웠다.

현재 카이로에 고산국 군대라고는 1개 소대밖에 없었고, 그것도 전원 구르카 용병들이었다. 기마전령이 필요하면 이집트인 병사들을 활용했고, 반란이 일어날 경우 지방군이 진압하도록 계획했다. 정옥남과 고산국에서 파견한 관리 10여 명만으로 이집트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잘하고 있군. 오크남 자네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에 이집트는 어떤가?”

“옛말에 의식이 족해야 예의를 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집트에 식량은 풍부해도 이집트인들은 지나치게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것 같습니다. 먹고 사는 외의 문제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집트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게 잘 도와주게. 고산국이 괜히 이집트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할 이유가 없어. 수에즈 운하를 끼고 있는 나라니까 이집트와 고산국은 강력한 동맹국임을 인식시키게.”

“어지를 명심하고 제가 맡은 일을 잘해내겠습니다. 그런데 전하께 건의사항이 있습니다.”

“예산이 많이 드는 일인가 보군. 가급적 도와줄 테니 해보게.”

조금 긴장한 이민호는 항만 건설이나 나일 강 제방을 언뜻 떠올렸다. 그러나 그런 것보다 이민호에게 훨씬 익숙한 단어를 듣게 됐다.

“나일 강 상류 강폭이 좁은 곳을 가로막으면 홍수를 예방하면서 막대한 전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스완이라는 곳을 조사해보니까 폭이 특히 좁아서 500미터 정도만 제방으로 막으면 엄청난 수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건설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 같아서 걱정이며, 고산국의 토목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댐? 아스완에?”

“예, 전하. 고산국 본토에서도 강물을 막아 수력 발전을 하지 않습니까? 땔감이 부족한 이집트에 전기가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넓은 나일 하구 삼각지 전체에 비료를 뿌려줄 능력이 없으면 댐은 포기하는 게 나아. 자네 생각인가, 아니면 이집트인들이 나일 강 상류에 댐 건설을 원하나?”

나일 강이 매년 범람하면서 에티오피아 고원지대의 부엽토를 실어와 강변과 하구 삼각주의 농지를 옥토로 바꿔주었다. 강물이 넘치는 시기는 놀랍도록 규칙적이었기에 수해를 당하지 않고 관개사업에도 유리했다. 그러나 이러한 규칙성은 이집트 문명이 가장 오래된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발전을 이룰 자극을 주지 못해서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적게 만들었다.

아스완 댐이 1971년에 준공된 다음 이집트의 옥토는 그 전과 달리 염분 때문에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그리고 댐에서 물길이 막히자 말라리아를 비롯한 전염병이 창궐하고 바다에 식물성 플랑크톤의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해 어획량마저 대폭 감소했다. 댐 건설 이후 강물의 절반이 지하로 스며들거나 증발하고 물의 무게로 인해 지진이 빈발했다.

“제 생각은 아닙니다. 이집트의 학자들은 나일 강 상류에 댐을 건설하는 것을 숙원사업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에즈 운하를 단기간에 건설할 정도로 토목 기술이 높다고 소문 난 고산국이 이집트를 통치하는 동안 댐을 건설해주길 원합니다. 저도 그럴 듯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는 헛돈 쓰고 욕먹기 싫어. 독립한 다음에 이집트인들이 스스로 결정해서 이집트의 세금으로 만들라고 해. 그때는 어떻게 결정하든 말리지 않겠어.”

이집트인들은 댐을 짓기 전에는, 그리고 댐을 짓는 동안에는 댐 완공 후에 뭔가 엄청나게 좋아질 것 같은 환상 속에서 지낼 것이다. 거대한 댐이 완공된 다음에는 국력을 외국에 실컷 자랑할 수 있어 뿌듯한 느낌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수확량이 확 줄어드는 꼴을 당해봐야 나일 강의 복수를 절실히 깨우칠 것 같았다.

“그럼 이집트인들에게 그렇게 답하겠습니다.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라는 헤로도토스의 경구를 인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그게 좋겠다.”

정옥남은 해남도에서 많은 것을 시도해 성공시킨 행정가였다. 그러나 이민호는 뭔가 불안해서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크남! 그대는 짧은 시기에 총독도 아닌 총독 대리다. 이집트인들에게 선정을 베푸는 것은 좋은데 뭔가 업적을 쌓으려고 초조해질 필요 없어. 예로부터 백성들이 토목공사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있잖아.”

“농민 외에는 일거리가 너무 없어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흑사병으로 인해 인구가 대폭 줄었음에도 실업자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그러니까 토목 공사로 인한 효과보다는 토목 공사 자체를 하면서 인력을 고용하길 원하는 건가?”

“그런 면이 큽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 전하께서는 그냥 돈을 나눠주는 길을 택하시겠지만, 저는 업적으로 평가받는 관리라서 선택하기 어려운 방법입니다.”

“이해하겠네.”

갑자기 강폭이 넓어진다 했더니 함대가 팀사 호수에 진입했다. 서쪽으로 나일 강의 작은 지류가 이쪽으로 흘러들었다. 다른 지역과 조금 달리 나일 강 강변 폭이 좁은 땅에만 나무나 농작물이 심겨져 있고 조금만 벗어나면 사막이었다.

“여긴 나일 강이 범람하지 않는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범람해야 검은 땅이 되면서, 그러니까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작은 지류가 지나서 아쉽게도 농한기에도 범람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옥남은 이집트인들이 7월부터 10월까지를 뜻하는 농한기라는 말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주변이 온통 쓸모없는 사막이라서 그렇지 이 지역도 꽤나 넓었다.

“호수 북쪽에 작은 마을은 뭔가? 예전에는 못 본 것 같은데.”

“이스마일리아라고 합니다. 운하 공사를 할 때 자재를 쌓아놓으려고 평탄화를 했는데, 공사가 끝나고 집이 없는 이집트인들이 이곳에 집을 지었습니다. 물론 저들은 대부분 실업자 빈민들입니다.”

“좋아. 이 작은 나일 강 지류와 주변의 사막 땅, 그리고 빈민들을 동원해서 사막을 옥토로 일구게. 관개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할 거야.”

“연간 강우량이 거의 없다시피 한 사막을 농경지로 바꾸라는 말씀입니까, 전하?”

나일 강 유역의 연간 강우량은 상류부터 차차 줄어들어 사막지대에서는 2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해안으로 갈수록 다시 강우량이 많아진다. 보통 강우량이 연간 300밀리미터만 되면 곡물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일 강변은 온통 농경지였다. 풍부한 강물을 이용해 비가 오지 않더라도 농사를 짓는데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물을 나일 강 지류에서 얻는다 해도 토질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웠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건국 후 네게브 사막에 관개사업을 실시해 16만 헥타를 기름진 황토지대로 바꾸었다. 사막에서는 일 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기에 강한 일조량을 이용해 품질이 높은 곡물과 과일, 채소를 경작할 수 있고 심지어 2모작을 할 수 있었다. 매년 4개월 동안 물에 잠기는 나일 강 하구 삼각주보다 생산성이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옥남이 말도 안 된다고 해서 이민호가 신념을 실어서 대답했다.

“응!”

“전하의 뜻이 확고함을 알겠습니다. 실업자들에게 일도 시키고 농경지도 얻고, 좋습니다. 농사가 잘 될지 모르겠지만 관개사업은 물론 토질을 바꾸는 일에 주력해서 농경지를 만들어보겠습니다.”

“농업연구소 연구원들이 개간에 일가견이 있어. 그들을 부르게.”

“사막 개간은 그들에게도 처음일 것입니다.”

“수량이 풍부한 강물이 바로 옆을 흐르는데 뭐가 문젠가?”

악어가 약간 걸리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진주조개 양식을 성공시킨 옥남이라면 연구원들과 함께 사막 개간사업도 잘해낼 것으로 믿었다.

“알겠습니다. 반드시 해내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십시오.”

옥남이 가져온 커다란 석판에서 천을 걷어냈다. 이민호가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얼마 전에 알렉산드리아 북동쪽 라쉬드라는 마을에서 옛날 석비를 발견했습니다. 마을 사람이 주춧돌로 쓰려다가 이상한 글자가 많아서 학자에게 알렸고, 학자가 이것을 카이로에 보내왔습니다.”

“오호! 그 마을은 올해 세금을 면제해주고 석비를 발견한 농민과 이것을 카이로에 보낸 학자에게 상을 내리게. 호위! 여객선에 연락해서 루치아 견습수녀를 오라고 해. 그리스어를 아는 신부들도!”

호위가 함교로 달려가고 옥남이 어리둥절했다.

“어명대로 시행하겠습니다. 혹시 중요한 석비입니까, 전하?”

“옛날 역사를 증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네. 그 중에서도 옛 문자를 해독하는 것은 옛날의 문화 수준을 증명하는 동시에 현재의 학문 수준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야.”

“중국에 금석학이나 고증학이라는 학문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옛 글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맞아. 옛날에 갑골문자가 있었지. 이것은 그와 비슷한 상형문자야. 그러나 상형문자라 해서 무조건 물체의 형상만 본 뜬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물론입니다, 전하. 오래된 옛날에도 관념이 있었고, 문자에 반영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상형 문자인데도 형태가 아닌 소리를 뜻하는 문자가 분명 일정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맞아.”

그 사이에 루치아를 비롯해 견습수녀들과, 추기경과 신부들, 선교사들이 국왕좌승함에 도착했다. 그리스어를 아는 성직자들만 오라고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왔다.

“고대 그리스어를 아는 분들이 계시오?”

“예, 폐하! 성서 연구를 위해 그리스어를 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민호가 석비를 가리켰다. 신부들이 우르르 몰려와 석비를 관찰했고, 그 사이 옥남이 탁본을 나눠주었다. 탁본으로 보는 것이 문자를 파악하기에 훨씬 편했다. 선교사 한 사람이 이민호에게 고했다.

“하나는 기원전에 사용된 고대 그리스어입니다. 나머지 두 가지는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 그리고 필기체처럼 간략화시킨 민중문자입니다.”

“그 동안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하지 못했는데 모처럼 같은 내용을 가지고 세 가지 문자로 작성한 비문이 발견됐소. 유럽에는 그리스어를 배운 사람이 많으니 상형문자 번역에 도전할 학자들에게 이 탁본을 나눠드리고 싶소. 비문 전체를 해독한 학자에게 큰 포상이 있을 것이오.”

“폐하! 혹시 전혀 연구가 진행되지 않은 비석입니까?”

연구의 성과를 유럽인들에게만 독점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열쇠 몇 가지를 알려줘야 학자들이 빠르게 해독이 가능했다. 그래서 이민호가 과학 잡지에서 읽었던 내용을 몇 가지 읊었다.

“이분은 이집트 총독 대리 오크남 후작이오. 이집트를 통치하면서 이집트 학자들을 모아 연구를 하고 있지요. 오크남 총독 대리는 여기 타원형으로 묶은 상형문자들을 파라오의 이름 프톨레마이오스로 해독했소.”

“오오! 그렇다면 해독이 훨씬 쉬워질 것입니다. 오크남 후작의 학문이 대단히 깊으십니다.”

“상형 문자는 그림 문자가 아니오. 물체를 본 딴 것이 아니라 중국 문자인 한자처럼 소리글자와 의미글자로 나눠서 파악해야 할 것이오. 물론 그 자체로 소리와 의미를 모두 가지는 문자도 있소.”

“상형문자가 소리글자였다니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이 독수리 모양의 문자는 어떻게 발음됩니까?”

“발음은 a와 같소. 독수리와 비슷하게 생겼으나 고개를 앞으로 돌린 올빼미는 m이며, 여기 메추라기 모양의 글자는 u와 대응할 수 있소. 그리스어와 비교해보면 발음은 금방 확인할 수 있을 것이오.”

“유럽의 학자들이 몹시 좋아하겠습니다.”

신부들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 다행이었다. 이민호는 새 그림 문자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다. 맞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

이로써 고산국은 신탁통치를 맡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고, 연구 성과를 유럽 학자들과 나누는 훌륭한 문화 군주가 되었다. 옥남도 얼떨결에 단순한 행정관이 아닌 학자로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산국이 이집트 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연구한다는 사실을 이집트인들에게 알린 것이었다.

“이집트인들의 조상은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는데 후손들은 왜 이 모양인가, 분발시키는 것이 독립에서 가장 중요한 일일세.”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옥남에게 이집트 총독 대리를 맡긴 것은 이집트인들에게서 호감을 사기 위해서였다. 해남도에서 했던 정도만큼만 이집트에서 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옥남은 이스마일리아에서 내려 카이로로 돌아갔다. 로제타석도 수레에 싣고 갔다. 온 국토가 박물관이나 다름없는 이집트에서도 로제타석은 특히 중요한 유물이었다. 피라미드 같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의 위압감보다는 글자가 새겨진 석비가 일반적으로 훨씬 고급문화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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