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56화 (605/1,000)

00656  69. 성지 순례  =========================================================================

“마론파 중심 지역에 수상비행기를 보내서 선전용 전단을 뿌리게 하자. 언어 지원은 되겠지?”

“확인해볼게요. 명목상 가톨릭의 일원인 마론파가 사용하는 아랍어, 시리아 주변 동방정교회 신도들이 사용하는 아람어, 행정 언어인 투르크어. 이렇게 세 가지가 모두 번역 가능해요.”

이민호가 한글 문구를 작성해서 기마 전령을 통해 아슈도드 항구에 남아있는 전단장에게 보냈다. 경고하는 의미로 마론파 지역에 폭격을 하고 싶어도 항공용 폭탄이 아직 제작되지 않아 불가능했다. 대신 수송선에 실린 인쇄기에서 전단지를 대량 인쇄하는 것은 가능했다.

두 시간 후 수상비행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은 비행기에서 전단을 뿌리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나중에는 폭격도 가능할 것이다. 비행기 덕택에 원정군의 작전 범위가 내륙으로 훨씬 깊이 확대될 수 있었다.

“도로에 마차는 별로 안 다니고 양떼가 활개치고 다니는군.”

“어머! 호주에서 키운 양이네요?”

예루살렘까지 이어지는 도로는 마찻길이 왕복 4차선이었고, 항구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능하면 걸어가려는 순례자들의 성향을 감안해 인도가 차도만큼 넓었다. 비가 적게 오는 지역적 특성상 찻길은 진흙을 단단히 다지는 식으로 건설된 반면 인도는 보도블록으로 포장했다. 아슈도드에 벽돌 공장이 세워져서 생산하는 대로 예루살렘까지의 마찻길을 포장할 예정이었다.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백향목이라 불리는 비싼 삼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키웠다. 아직은 묘목에 불과했지만 이것은 이 지역 지배자 아흐마드 파샤가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히 투자한 것이다. 아흐마드 파샤는 주민들이 삼나무의 가지를 꺾어가서 집 뒷마당에 심으라고 권장했다.

“양고기가 모자라겠지만 어쩔 수 없지.”

“순례자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으니까요.”

교황보다 먼저 순례에 나선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아슈도드 항구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직 사순절 시기였고 일요일의 부활절을 앞둔 이번 주는 특히 몸가짐을 조심해야 할 성 주간이었지만,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들을 위해 양고기가 제공됐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은 아직 거친 빵과 물만 먹고 고기나 기름진 음식은 피했다.

교황이 탄 수레의 속도에 맞춰 그 앞뒤에 배치된 장갑차 행렬도 천천히 이동했다. 별 일이 없다면 내일 오전에 예루살렘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중간에 하루 더 야영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해지기 전에 감동이 이민호에게 와서 보고했다.

“도련님! 교황 성하께서 야영지에 도착했습니다.”

“주변 경계를 확실히 해. 어제처럼 암살자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령관 감동은 물론 병사들이 지난 이틀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이럴 줄 예상하고 주야간 근무 시간을 나누고 당직사령을 임명했다.

그러나 주변에 사람들이 너무 많고 소란스러워서 선잠을 자다 깨다 하는 경우가 많아 피로가 누적됐다. 최소 50만 명의 순례자들이 교황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해가 지면 교황의 야영지를 중심으로 장갑차를 원형으로 배치해서 줄을 연결해서 그 안으로 통행하지 못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신도들이 교황 성하의 옷깃이라도 만져보려고 끝없이 몰려옵니다.”

“근접경호는 기사단과 스위스 용병의 몫이니까 내버려 둬. 대신 교황 알현을 마친 신도들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야영하도록 유도해. 밤에는 접근 자체를 아예 막아야 해.”

다들 눈을 뜨고 지켜보는 동안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경호해도 빈틈은 있는 법이었다. 오늘 오전에는 교황이 마실 물주전자에 독이 들어 있었다.

“방금 아흐마드 파샤가 그러는데 마론파가 심부름시킨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일제히 물러섰다고 합니다.”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네. 전서구를 사용했나? 하지만 아직도 다른 암살자들이 남아있을 거야.”

“예. 바그다드에서 파견한 자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종파가 너무 많습니다.”

예루살렘부터 레바논 산악지대까지는 기독교와 이슬람 계열의 다양한 종파가 종교생활을 영위했다. 이들은 협력도 하지만 가끔은 첨예하게 이익이 충돌하기도 했다. 일부 세력은 교황이 성지 순례를 안전하게 마칠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마론파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한 이래 확실한 유럽 기독교 세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은 종파였다. 그러나 동방정교였다가 귀의한 로마 가톨릭의 일원이라고 하지만 완전히 독립된 인사체계를 갖췄다. 전례도 동방정교회에 가까웠다.

마론파는 현대 레바논 내전에서 팔랑헤 민병대의 주축으로서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학살하는 등 개념 없는 짓을 해서 욕을 먹기도 했다. 교황을 경호하는 입장에서는 안심할 수 없는 세력이었다.

유대인들도 다른 의미에서 위험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순례자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해 대규모로 충돌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아흐마드 파샤가 미리 유대인들에게 경고하고 새로 닦은 순례자의 길로 통행하는 것도 자제시켰다. 텔아비브가 발전하면서 이 지역 유대인들 일부가 빠져 나간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쳇! 오늘도 야전식량이구나.”

두꺼운 종이 포장을 벗기고 퍼석퍼석한 건조식품을 찬물과 함께 먹었다. 교황을 비롯해 순례자들이 쫄쫄 굶거나 풍찬노숙을 하는데 고산국 원정군만 고기 굽는 냄새를 피울 수도 없었다.

“병사들 옆에서 맛없다는 표정 좀 그만 지으세요.”

“맛없는 건 맛없는 거지. 아무리 장기 보존에 중점을 뒀다지만 야전식량은 너무 맛이 없어.”

민영이 뭐라 하든 말든 이민호는 투덜거리면서 억지로 밥을 먹었다. 장갑차 대대 병사들이 피식 웃었고, 병사 하나가 이민호에게 뜨거운 커피 잔을 내밀었다.

“고마워. 억지로라도 든든히 먹어. 배고프면 밤에 자다 깰 거야.”

“맛이 아주 나쁘지는 않습니다, 전하.”

“이런 걸 먹여서 미안해. 건조 비빔밥처럼 맛에 신경을 더 쓰라고 할게.”

이번 작전에 이민호가 직접 참가하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했다. 병사들만 이 고생을 시키고 국왕이 쏙 빠졌다면 충성심이 뚝뚝 떨어졌을 것이다. 국왕이 병사들과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병사들이 감격에 겨워했다.

“나비야!”

사막 고양이가 안 보이기에 민영이 불렀다. 주변 숲에 뛰어 들어가더니 쥐라도 잡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 덤불에서 사막 고양이가 진짜로 쥐를 입에 물고 나타났다. 고양이는 쥐를 민영 앞에 내려놓고 말똥말똥한 눈으로 쳐다봤다.

“꺄악! 징그러! 나비 너 나한테 왜 그래? 불만 있어?”

“나비가 고맙다고 선물로 준 거야. 먹는 척하다가 버려.”

고양이가 판단하기에 사람은 동작이 너무 굼떴다. 그래서 사냥을 못해 굶어 죽을까봐 걱정돼서 쥐나 새를 물어온다고 예전에 들었다.

“이걸 먹는 척하라고요?”

민영이 부들부들 떨다가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나 민영이 우는 이유는 이민호가 생각한 것과 전혀 달랐다.

“왜 그래? 그렇게 징그러워? 그럼 그냥 버려.”

“아니요. 10년 전에는 들쥐를 구워서 아주 맛있게 먹었어요. 그때 친구들과 친구 엄마들이 생각나서요. 다들 살아있는지, 고생은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는 잘 살고 계시잖아. 친구나 친구 어머니들도 잘 사실 거야.”

“주인님이 몇 년 일찍 태어나셨다면, 그래서 시전부락 사람들도 조선과 싸우지 않고 동해국에 평화롭게 복속됐다면 좋았을 거여요.”

민영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거려 위로했다. 그때 시전부락을 공격한 조선 무장들 중의 하나가 이민호였지만, 여진족 호위들은 그런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고 이민호에게 의탁했다. 그래도 서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았다.

“흩어진 시전부락 사람들 일부가 건주여진에 들어갔을지도 몰라요.”

“거기서도 잘 살면 좋겠는데.”

“그럴 리가 없어요. 당시 시전부락은 잘 사는 편이었거든요. 하지만 제가 어느새 들쥐를 징그럽다고 싫어하게 됐어요.”

“징그럽지. 고산국 아래서는 그 누구든 들쥐를 먹지 않게 될 거야.”

나비에게 야전식량을 담았던 종이 상자를 내주었다. 몸체에 비해 훨씬 작은 상자였지만 나비가 좋다고 들어가 몸을 구부렸다. 일반 고양이보다 훨씬 큰 몸체가 작은 상자에 다 들어갔다.

민영이 나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 사이에 이민호가 슬그머니 들쥐를 빼돌렸다. 배가 터져 창자가 드러난 모습이 정말 징그러웠다. 조선에서도 아이들끼리 놀면서 개구리나 메뚜기, 뱀과 함께 들쥐도 흔히 구워먹었다. 이민호는 아이들이 최소한 들쥐는 안 먹게 하겠다고 결심했다.

교황 행렬과 고산국 원정군은 3월 29일 수요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했다. 예루살렘의 모든 교회에서 종을 쳐서 교황의 입성을 환영했다.

바로 그 다음 날인 30일은 성 삼일 중에서 첫 번째 날인 성 목요일, 최후의 만찬이 있었던 날이었다. 성묘 성당에서 교황이 미사를 직접 집전하면서 일반 신자 12명의 발을 씻겨주었다.

고산국 원정군은 예루살렘 성곽 내부와 외부에 나뉘어 주둔했다. 성지 순례에 참가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여기저기서 사고가 터졌다. 예루살렘이 성지이지만 다수의 위력에 매몰된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정복 때처럼 광기에 넘칠 우려가 있었다.

유대인들은 기독교 순례자들에게 집단구타 당할 것이 두려워 아예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예수를 팔아넘긴 자들이라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유럽인들에게 수천 년 동안 밉보였다. 괜히 무슬림들을 모욕하려고 나서는 기독교 순례자를 같은 순례자들이 힘을 합쳐 말리기도 했다.

예루살렘을 지배하는 리드완 왕조의 병사들과 고산국 구르카 용병, 그리고 스위스 용병들이 조를 짜서 예루살렘 성 내외의 순찰을 돌았다. 장갑차들은 교황이 가는 곳마다 따라붙었고, 기병 연대도 언제든 투입될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추산 50만이 넘어서고도 부활절이 다가올수록 매일 같이 숫자가 불어나는 순례자들이 예루살렘 성곽 안팎에 머물고 있었다. 리드완 왕조와 고산국, 교황청의 병사들이 치안 유지에 투입됐으나 몹시 버거워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식사 때마다 거리에서 순례자들에게 빵을 무료로 나눠주었다. 그 빵은 고산국에서 매입하고 아랍 상인들이 수송한 이집트의 밀을 리드완 왕조의 백성들이 빻고 반죽해서 만들었다.

저녁나절에 지상군 사령관 감동이 참모들과 함께 이민호를 찾아왔다. 교대로 근무하는 병사들은 그나마 조금 나은데 감동과 참모들은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도련님. 교황 성하께서 외부 행사에 너무 자주 참가하십니다. 마치 암살자들에게 일부러 몸을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설마 예수님 흉내 내자는 건가? 내일이 성 금요일이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야. 교황 성하께 직접 자제를 요청하겠다.”

몇 백 년 만에 대규모 성지 순례를 하더라도 교황을 살려서 로마로 돌아가야지, 만에 하나 암살당한다면 지중해의 평화나 종교의 화합 같은 목적은 말짱 헛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교황이었으나 모처럼 성지순례를 왔기에 미사 집전은 물론 가급적 많은 행사에 참가하려고 했다.

“감사합니다. 내일 특히 경계를 철저히 하겠습니다.”

“고산국 단발총 소수가 유럽에 팔려갔어. 이곳에도 없으라는 법은 없어.”

“단발총 사정거리 내의 모든 건물을 장악하기로 계획이 돼 있습니다. 확성기 외에 강화유리도 준비했습니다.”

“경호 작전이라는 게 정말 피를 말리는군. 다들 고생한다. 며칠만 더 참아라.”

감동과 참모들을 격려한 다음 보냈다.

성 금요일에는 공식 행사가 적기에 아무 일 없이 넘어갔다. 4월 1일 성 토요일은 부활전야라서 밤새도록 부활성야 미사를 올리는 날이었다. 3교대로 경호 임무에 임하는 병사들이 날카롭게 주변을 경계해서 오히려 사고가 나지 않을지 걱정될 정도였다.

“폐하! 만에 하나 교황 성하께 안 좋은 일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루살렘 안팎에 밤새도록 환한 불이 켜진 밤에,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수도사가 이민호에게 알현을 청했다. 로브와 비슷한 갈색 스카풀라를 입은 수도사는 후드 속에 깊숙이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당신, 너무 음침하잖아? 암살자인가?”

“암살자는 확실히 아닙니다.”

수도사가 후드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에 성게처럼 뻣뻣한 수염이 가득했다.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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