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63화 (612/1,000)

00663  70. 귀로  =========================================================================

이틀을 더 기다려서 순례자들을 함대에 가득 태웠다. 그러나 아슈도드 항을 가득 메운 범선들을 뚫고 나가기 어려워 범선이 조금 줄어들 때까지 며칠 더 기다리기로 했다.

그 사이 교황과 성직자들을 승합차에 태워 예루살렘 남쪽 베들레헴을 순례할 수 있게 했다. 교황 일행이 북쪽 나사렛을 순례할 때는 하이파 항구를 통해 내륙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보고를 들어 보니 베들레헴과 나사렛 역시 순례자들의 방문에 대비해 아흐마드 파샤가 도로를 널찍하게 건설해 놓았다. 앞으로 꾸준히 기독교 및 무슬림 순례자들을 손님으로 받을 생각을 하고 확실한 투자를 한 셈이었다. 아흐마드 파샤는 제2의 메카를 꿈꾸고 있었다.

“여객선, 수송선 합해서 승객이 5만 명이나 탔군. 전단장! 위험하지 않을까?”

“배수량이 커서 몇 백 명 정도씩 더 태우더라도 함의 복원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순례자들이 탑승하기 전에 목욕을 시켜서 위생도 괜찮은 편입니다. 다만 순례자들에게 먹일 물과 식량이 문제입니다. 순례가 끝나면서 무지막지하게 먹어대고 있습니다.”

“중간에 크레타에 들려야겠군. 내일 새벽에 바로 출발하겠네. 전단 전 함선에 그렇게 알리고, 이상이 없다면 내가 따로 명령하지 않아도 출항시키게.”

“예, 전하. 아슈도드에 정박했던 범선들이 많이 줄어들어 출항 가능합니다. 05시에 출항하겠습니다. 아슈도드에 등대가 세워진 덕택에 항로를 확인하기 쉽겠습니다.”

아슈도드 항에는 고산국에서 자금과 자재를 지원하고 리드완 왕조의 기술자들이 건설한 등대가 우뚝 서 있었다. 전기로 작동하는 등대는 아니고 옛날 방식으로 장작을 때웠다. 등대가 높아서 사방 40km에서 불빛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도련님! 스위스 용병부대 편제와 훈련계획안입니다.”

전단장이 국왕좌승함 집무실에서 나가자마자 감동이 들어와서 서류를 내밀었다. 스위스 용병들이 계약을 마치고 2개 연대가 창설될 경우 주둔지와 훈련 과정 등에 대한 계획안이었다.

연대는 기병과 보병, 포병으로 나뉘는데, 기병은 이집트의 맘루크 가문에서 승마부터 기병 전술까지 가르치기로 했다. 보병은 야전과 산악전은 물론 시가지전투까지 배우기로 했다.

포병은 고산국에서 아시아 여러 나라에 판매한 방어용 대포가 아니라 경량화된 바퀴 달린 야포를 주력으로 삼았다. 전시가 되면 고산국 본토에서 지휘관들과 함께 포병이 증원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계획안을 대충 훑어본 다음 이민호가 바로 재가해줬다. 감동이 우물쭈물하더니 제 딴에는 이민호를 위로한답시고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잘 자라고 있으니 몇 년 더 기다리시면 병력 충원이 지금보다 훨씬 쉬워질 겁니다.”

“그때도 난 용병을 고용할 건데?”

“예? 용병이 싸다 해도 너무 많으면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용병부대는 웬만하면 외국에 주둔시켜야지. 군대에 청춘을 바치고 싶은 젊은이가 얼마나 있겠어? 웬만큼 모험을 좋아하거나, 조직생활을 즐기거나, 혹은 아주 가끔 충성스런 사람이 아니라면 군대는 감옥과 같아. 그것도 가끔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한 감옥이지.”

“사실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평소에 장병들에게 잘 대해주도록 해. 누가 월급 때문에 군에 남아있나?”

군인 월급이 두 배로 올랐다 해도 다른 직종의 수입도 마찬가지로 올랐다. 고산국에서는 군인보다 수입이 좋은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북미로 가면 더더욱 많이 벌 수 있었다.

“그래서 고산국 젊은이들이 결혼한 다음에는 웬만하면 전역하라고 하셨군요.”

“그래. 원정이나 해외 근무를 떠날 때마다 하릴 없이 집에서 기다릴 아내와 자식들을 생각해야지. 그리고 건국 초라서 사람이 많이 필요한데 노동력이 아직도 심각할 정도로 부족해. 그래서 더더욱 용병을 쓰는 거야.”

로마에서 그랬고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그런 말을 했고 현재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그러는 것처럼, 시민들은 생산 활동에 종사하고 전쟁은 외국인 용병들이 맡는 편이 사회적 효율이 높았다. 물론 용병부대들을 제대로 통제했을 때 이야기였다. 정신 놓고 군권을 떠맡기다 보면 어느새 용병대장이 나라를 집어삼킬 수 있었다.

“지금 단계에서는 아직 나쁘지 않습니다. 구르카 용병을 아시아에, 스위스 용병을 유럽에 배치한다면 현지인을 병사로 고용하는 셈입니다.”

“그래. 그 지역에 적응한 현지인이 나을 때가 많아. 그리고 본토에서 원정을 나갈 때마다 군인 가족들뿐만 아니라 다른 백성들도 불안해지거든. 가급적 소수 지휘부만 원정을 떠나면 불안감을 훨씬 적게 느낄 거야.”

현지인 위주로 군대를 구성하는 것도 사실 불안했다. 이민호는 영국 동인도회사에서 고용한 인도 현지 병사 세포이들이 항쟁을 일으킨 사건을 떠올렸다.

현지 종교와 관습에 대한 식민지 관리들의 몰이해가 거대한 항쟁을 불러 일으켰다. 총에 기름칠을 할 필요 없이 기름칠된 화약포를 입으로 물어뜯으면 무슬림과 힌두교도 세포이 병사들이 고마워할 줄 알고 강요한 것이 재앙을 일으켰다. 세포이 병사들이 항의해도 강압적으로 시키면 다 될 줄 알았다가 영국인 민간인들마저 떼죽음 당했다.

“그래도 지원자들을 받아들여 참전시켜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실전 경험만큼 값진 것은 없으니까.”

만약 스위스 용병 연대를 작전에 투입해야 한다면 지휘관과 참모진을 기본으로, 장교와 부사관급 지원자를 받아 이들이 직접 용병부대를 지휘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한다면 고산국 장교들이 실전 경험을 쌓고 전술을 꾸준히 발전시킬 수 있다고 봤다.

군대는 역시 실전 경험이 중요했다. 훈련도 마찬가진데, 중대나 대대 훈련만 하다가 연대 훈련을 하면 상상도 못했던 온갖 문제가 발생하는 꼴을 자주 봤다. 변수가 많은 실전에서는 당연히 더 큰 혼란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스위스 용병들도 고산국 육군 식으로 훈련을 받는 동안 문화적 충격을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며칠 전 계약을 제안했을 때도 스위스 대위가 많이 놀랐었다.

“도련님! 조만간 유럽에 큰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예측이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로마가톨릭과 신교도의 첨예한 갈등이 유럽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넣을 것 같습니다.”

“모르지. 뭔가 전쟁의 계기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더라도 상황에 따라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어. 같은 조건이라도 프랑스 국왕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안 일어날 테고, 에스파냐 국왕 같은 사람들이 많다면 그보다 사소한 문제로 전쟁이 일어날 테지. 아니면 어떤 세력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아무 핑계나 잡아서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어.”

“요즘 들어서 경제적 요인이 전쟁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을 펴는 역사학자들이 많습니다. 사관학교 교수 요원들도 그런 주장을 합니다.”

“어? 그거 내가 역사학자들에게 슬쩍 흘린 거야. 지나치게 단순화한 이론이지만 전쟁을 경제로 분석하면 매우 그럴듯하거든.”

물론 경제적 갈등이 전쟁의 주요한 원인이 되는 수도 많았다. 그러나 이 시대 전쟁론이 지나치게 정치적 관점 일변도라서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하기 위해 다른 요인을 중심으로 분석하게 했다. 전쟁의 원인이 한두 가지로 요약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극히 적었다.

“만약 유럽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면 개입하실 겁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지.”

“발트 해 때문에라도 덴마크는 반드시 지켜야겠지요?”

“뭐. 그렇지. 감동이 너, 요즘 참모본부 장교들하고 대화를 많이 나눈 모양이군.”

“도련님이 다양한 상황을 부여해서 참모들을 실컷 괴롭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번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시켰다면서요?”

“왕창 깨졌지. 북미와 호주, 일본과 루손 북부까지 다 빼앗기고 본토만 간신히 지킬 수 있었어.”

몇 달 전에 참모본부에 하달된 가상 전쟁에서는 전 세계가 합심해서 고산국을 공격하는 비현실적인 상황을 부여했다. 실제라면 외교 수단을 총동원해 같은 편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참모들이 고산국의 성인 남자 전체를 군인으로 총동원하고도 북미와 아시아의 결정적인 전투에서 패했다. 해군에서 격차가 크지 않았다면 본토마저 점령될 뻔했다.

모의 전쟁 연습에서 연합군 지휘는 이민호가 맡았었다. 유럽인과 중동인, 흑인들이 멀리 대서양 남쪽으로 우회해 남미에 상륙한 다음 지상으로 밀고 들어갔더니 북미를 지킬 방법이 없었다. 본토 서쪽 해협에서는 명나라가 밤에 해류를 따라 작은 뗏목들을, 그리고 바람을 따라 범선들을 바다에 띄우면 막강한 해군으로도 본토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웠다.

“그때부터 참모들이 신중해진 것 같았습니다. 사관학교에서 수재로 이름을 날리던 잘난 놈들이었는데 말입니다. 너무 기를 죽이신 건 아닙니까?”

“다른 나라를 존중하도록 교훈을 내려줬지. 참모들은 전쟁을 앞두고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해.”

“맞습니다. 전략을 잘못 세우면 수많은 병사들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까요.”

감동이 씩 웃었다. 참모본부가 생긴 이래 장군 입장에서 머리를 써야 할 일이 줄어들어 편했으나, 아직 참모들이 신뢰할 만한 성과를 거둔 적은 없었다.

아직은 20대 중후반에 불과한 참모들이지만 연대장이나 그 이상의 지휘관을 역임하고 실전을 겪은 다음에는 질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했다. 참모본부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아직 멀었다.

“주인님, 저.”

“응?”

이민호가 손을 잡고 침대로 끌어당겼는데도 민영이 버틴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민영이 생리 중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물론 말을 해서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처음부터 버텼다는 점에서 달랐다.

“혹시?”

“네. 여의사 어의께 진단을 받았어요. 2개월이래요.”

“우와! 정말이야? 기쁘다.”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는 민영을 이민호가 꼭 껴안았다. 그 동안 임신을 못한 민영은 심적 고통을 극심하게 겪었고,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겨우 20대 중반인 민영은 이민호가 보기에 아직 한참 젊었다. 그래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드디어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제부터 푹 쉬면서 좋은 생각만 해. 바로 왕도로 돌아가자.”

“최소한 로마는 가셔야 해요. 그리고 앞으로 주인님을 직접 수행하지 못하게 돼서 섭섭해요.”

“아기가 중요하지, 나 같은 놈이 중요해?”

“그렇지 않아요.”

발을 동동 구르는 민영을 침대로 올라오게 했다. 꼭 껴안고 같이 누운 것만으로도 두 사람은 행복했다.

성지 예루살렘 와서 겪은 진정한 기적이라면 민영의 임신이었다. 그 어떤 종교적인 기적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만큼 신비롭지 않았다. 물론 왕도에 있는 동안 수태했겠지만, 성지 순례 중에 임신이 확인되면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들어댈 것 같았다.

“아기님을 키운 다음 다시 호위대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주인님을 수행하는 것은 저의 기쁨이었거든요.”

“물론이지. 이제부터 호위대장도 임기제로 해야겠다. 나중에 다시 민영이가 호위대장을 맡아줘.”

“젊은 애들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물론이야. 그리고 앞으로 내가 직접 원정 나가는 일도 줄어들 거야. 그럼 아기를 키우면서 호위대장 일을 할 수도 있어.”

이민호는 자기도 믿지 않는 말을 떠벌였다. 아직 건국 초기라서 왕이 왕도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는 없었다. 국왕이 여기 저기 싸돌아다니다가 사고로 죽거나 암살당할 위험이 있다고 하나, 왕이 직접 돌아보지 않게 되는 순간 불온한 반란의 움직임이 싹트거나 독립 세력이 태동할 것이 분명했다.

왕토는 왕이 직접 통치력을 행사하는 지역이었다. 백성들이 평생 왕의 얼굴 한 번 못 본다면 통치력이 제대로 행사되기도 어려운 시대였다. 더욱이 새로 고산국 영토에 편입된 지역의 백성들이라면 국왕의 존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안심이 된다.

시베리아에도 언젠가 한 번은 가봐야 했다. 그것은 철도가 개통된 다음일지, 건설 중일지는 아직 확실치 않았다.

“다음 호위대장을 주인님이 임명해주세요.”

“민선, 민정, 민숙이가 그 다음 나이지? 누가 좋을까?”

다음 호위대장을 임명하라는 말에 한 시대가 지나갔음을 이민호는 절실히 깨달았다. 귀여운 토끼 모습으로 위장했던 암사자가 물러나려고 했다.

“민지가 가장 꼼꼼하고 지도력이 있어요. 다른 호위들은 직접 뛰어다니고 싶어 해요.”

민희와 민영이 언니 노릇을 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키워서 조금 다른 경우였다. 나머지 호위들은 동료의식이 강한 반면 정해진 서열은 없었다.

“좌우 호위대장이 아니라 이번에는 내외 호위대장은 어때?”

“그럼 민지하고 민정이를 시키세요.”

“그렇게 할게. 민영이는 호위 고문을 해라.”

민희가 출산을 하면서 호위대장에서 물러난 이후 궁전 경비대장을 맡고 있었다. 이민호는 민영이 호위에서 물러난다 해도 뭔가 일을 맡길 원했다.

“직접 따라다니지는 못하더라도 도와는 드릴게요. 그럼 이제 북방 여공작 작위도 후배에게 물려줘야겠죠?”

“응? 그건 민영이한테 평생 준 작위야. 내가 전에 말을 안 했나?”

“엑? 그럼 시베리아 철도 공사도 계속 맡아야 해요?”

“당연하지. 만약 내가 다른 곳에 원정 간 동안 몽골족하고 전쟁이 나면 그것도 지휘해야 할지도 몰라. 물론 사람들을 붙여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가 몸과 마음이 편해야 아기도 편하겠지.”

악덕 고용주 이민호의 마수에서 벗어날 길은 없었다. 민영은 평생 일해야 함을 깨닫고 몹시 낙담했다.

============================ 작품 후기 ============================

의욕과 달리 3회 연재는 무리인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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