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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677화 (626/1,000)

00677   72. 아이슬란드의 여왕  =========================================================================

이민호는 병력 탑재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장갑차 옆을 달리는 기병을 불러서 물었다. 마침 얼굴을 자주 봤던 기병 부사관이었다.

“유 중사! 쟤들하고 붙으면 어떨 것 같아?”

“전하께서는 이미 답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기병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단단한 갑옷을 입은 흑기병이 카라콜 전법을 수행한다 해도 달리면서 연발총을 쏴대는 고산국 기병을 당해낼 방법은 없을 것 같았다.

유럽에서 전쟁에 참가한다면 유일하게 위협적인 무기는 대포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 유럽의 야전에서는 포병이 상대의 포격에 노출된 곳에 배치되기 때문에 쉽게 제압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에서 전쟁을 해봤자 재미가 없겠어.”

“맞습니다. 아슬아슬한 맛이 전혀 없습니다. 전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 내 탓이다, 이놈아!”

고산국은 지금까지 앞선 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나라 군대들과 전력 차를 크게 벌리는데 주력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자주 유럽에 와서 화력을 자랑하는 것은 아예 전쟁을 피하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고산국과 대립할 가능성이 있을 때마다 아예 한 수 접고 물러섰다. 물론 결정적인 이익이 걸린 문제라면 달라지겠지만, 고산국과의 분쟁을 피하려고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민정이 심심하지?”

“아닙니다. 전방의 상황이 계속 변해서 바쁩니다.”

이민호가 탄 장갑차에는 보병 대신 호위들이 탔다. 그 중에서 외 호위대장인 민정은 이민호가 야외에서 활동할 때마다 이렇게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덴마크 기병 지휘관이 곧 노이뮌스터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전하.”

“좋아. 예상보다 빨리 도착하겠군.”

1호차 차장이 보고하자 이민호가 사수석으로 돌아왔다. 비올레타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하다가 얼른 손으로 가렸다.

“젖소 하나 제대로 못 키우다니, 북미의 목부들이 한심해요.”

“공업제품도 설명서와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소. 가축은 더 세심하게 다뤄야 할 것이오.”

쉬발레 강변의 노이뮌스터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이곳은 홀스타인 중심에 자리 잡은 전형적인 북부 독일의 한적한 농촌 도시였다. 데인족과 다른 게르만족의 땅인데도 덴마크 영토, 정확히는 덴마크 국왕의 독일 영지라고 해서 조금 어색했다.

목장에 도착하니 목부 가족이 몰려나와 땅바닥에 엎드렸다. 이민호가 장갑차에서 내려 물었다.

“여긴 젖소 목장인가?”

“그렇습니다, 폐하. 하명하신다면 소인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현재 젖소들이 목초지에 나가 있어서 외양간은 텅 비었다. 소를 통로 양쪽에 나눠서 재우고 구유가 줄지어 있었다. 뒤쪽은 소 오줌이 흘러 나갈 수 있도록 약간 경사진 홈통이 파여 있었다.

“소똥 냄새가 별로 심하지 않네?”

“축사를 자주 치우고 톱밥을 섞어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그렇게 소를 치는 목장이 꽤 늘어났습니다. 일이 조금 많아져서 귀찮지만 소똥 냄새는 저도 싫으니까요.”

배합사료를 먹인 소똥에서는 질식할 것처럼 독한 냄새가 나지만 풀이나 건초를 먹인 소의 배설물 냄새는 그리 독하지 않았다. 목장주는 건초를 발효시킨다는 식으로 설명했는데 이민호는 이해가 잘 안 됐다. 그리고 오줌과 똥을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이 목장 주인은 위생관념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요즘 북미에서 젖소를 많이 수입해가는 것을 알고 있나?”

“예, 폐하. 덕택에 저도 요즘 한 몫 잡을 수 있었습니다. 송아지와 암소를 30마리 넘게 팔았고 앞으로 더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북미에 직접 와서 소를 기르는 게 어떤가? 반드시 고향을 떠나서 이민 오라는 말은 아니야. 한 5년 소를 키우면서 고산국 농부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쳐주고 돌아오면 돼.”

“혹시 계약 조건이 어떻게 됩니까, 폐하?”

목부에 불과한 자가 동맹국의 국왕에게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 역시 유럽에서 사회생활의 규칙은 계약을 통해 결정됐다.

“국비로 목장을 차려주고 거기서 나오는 수입은 전부 자네가 가지고, 일 년에 은 50 파운드를 급료로 따로 주겠네. 물론 파운드는 은화가 아니라 은의 무게야.”

“목장 수입 외에 해마다 50파운드 무게라면 엄청난 양이군요. 저를 고른 이유가 있으십니까?”

“목장인데도 소똥 냄새가 거의 안 나서. 어때? 갈 텐가, 말 텐가?”

목장 주인이 고개를 돌려 가족들을 바라봤다. 아들 내외인 듯한 젊은 부부가 있고 그 외에 10대 후반인 아들과 딸들이 이민호와 눈을 마주쳤다가 고개를 숙였다.

“제 장남 부부를 보내드리면 어떻겠습니까? 나이가 스물일곱인데 이미 저한테 충분히 배웠습니다. 치즈를 만들 줄도 압니다.”

“나쁘지 않지. 자넨 어떻게 할 텐가?”

“시켜만 주신다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목장 주인의 장남은 그의 마누라가 열심히 허리를 꼬집었지만 끝내 북미로 가겠다고 자원했다. 며느리에게 왜 북미에 가기 싫은지 물었다.

“황공하옵니다, 폐하! 북미는 로마가톨릭 위주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루터파 기독교인입니다.”

“새원산에 루터 교회도 있으니 걱정 말게.”

목장 주인에게 소똥 냄새가 적게 나는 방식으로 축사를 운영하는 다른 목장주들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했다. 목장주는 그 정도 대우면 누구라도 가겠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이것은 남의 나라 백성을 빼오는 것이 아니었다. 홀스타인에서 무력 시위를 하는 대가로 목장주들을 5년 정도 고용해도 된다고 덴마크 국왕이 허락해줬다.

“고산국이 새로 건국된 나라라서 여러 가지 기술자가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풍차 기술자는 안 데려가십니까, 폐하?”

“북미에서 풍차를 쓸 일이 별로 없어서. 차라리 물레방아를 쓴다네.”

“아! 북미에서는 전기라는 것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농장주인이 납득했으나 더 큰 이유가 있었다. 북미 해안지방은 덜했지만 넓은 평원 지역에는 회오리바람이 자주 불어 집과 사람을 하늘로 날리는 경우가 흔했다. 집이 날아갈까 봐 기초 공사를 튼튼히 한 철근콘크리트 건물 위주로 짓는 마당에 풍차 건물을 세울 배짱은 없었다.

“와! 동양 사람이다.”

목장에서 나오니 구경꾼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 중에서 독일계 꼬마들이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미소를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독일어 통역장교는 독일인들의 눈이 약해서 햇빛 아래서는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이민호도 알고 있어서 오해를 하지 않았다.

“처음 봐? 꼬마야! 동양인 처음 보냐고.”

“예! 처음 봐요. 여긴 어떻게 오셨어요? 신선한 우유 마시러 오셨어요?”

“홀스타인을 정복해서 너희 같은 꼬마들을 잡아먹으려 온 거야.”

“우리가 어린애인 줄 아세요? 안 속아요.”

꼬마들하고 아옹다옹하다가 민정에게 잡혀 장갑차에 탔다. 곧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꼬마들이 몰려와 장갑차에 태워달라고 부탁해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건빵과 사탕을 한 봉지씩 나눠줬다. 이것도 민사작전의 일환이었다.

그 날 오후 함부르크 성벽이 보이는 곳까지 행진했다. 함부르크 시가지를 시대별로 그린 그림 몇 장을 구했는데, 함부르크는 그림보다 훨씬 더 요새화돼 있었다.

쌍안경으로 살펴보니 성벽에 병력이 급히 배치되고 대포를 이쪽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다. 어용 화가들이 함부르크를 자세히 그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돌아왔다.

다음 날 쾨벤하운으로 돌아와서 뤼벡 시의회에서 보낸 결혼식 축하사절의 방문을 받았다. 결혼식을 앞두고 점점 예뻐지는 헤드비히 공주가 배석한 가운데 뤼벡 사절이 선물을 바치고 이민호와 헤드비히에 대한 찬사를 잔뜩 늘어놓았다.

뤼벡은 작년에 이민호가 방문한 이후 한자 동맹의 맹주에서 덴마크 서인도회사의 수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뤼벡 상인들은 그 이후 넘치는 상품과 돈을 감당하지 못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부탁한 것은 가져왔소?”

“예, 폐하. 자세히 조사하느라 조금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사절은 시비르한국을 멸망시키는데 기여한 스트로가노프 가문에 대한 조사 보고서를 이민호에게 바쳤다. 뤼벡 시의회는 한자 동맹 도시들의 협조를 얻어 러시아의 신흥 가문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수고하셨소. 보고서에 대한 분석을 끝낸 다음 뤼벡과 한자 동맹 도시들이 할 일을 알려주겠소. 내가 무슨 일을 벌일지 대충 예상하겠소?”

“전에 폐하께서 잠깐 말씀하신 것처럼 스트로가노프 가문의 소금 판로를 막으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폐하?”

“맞소.”

“하오나 암염광산이나 자염,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행하는 천일제염 등 소금을 생산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이 듭니다. 러시아의 신흥 상인가문 하나 무너뜨리는데 과다한 비용을 소모하지 않으실지 우려됩니다.”

“소금을 얻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소만, 만약 오스만 제국의 염호에서 채취한다면 비용이 달라지지 않겠소? 앙카라 남쪽에 ‘투즈 골루’라 해서 드넓은 소금 호수가 있다오.”

“염호에서 소금을 퍼 담는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군요. 오스만 제국과 친분을 유지하며 해상수송 비용이 적게 드는 고산국만이 가능한 방법입니다.”

뤼벡 시의회 사절이 납득했다. 그러나 이민호는 지금까지 오스만 제국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루살렘 성지 순례를 성공리에 마쳤으면서도 아흐마드 파샤에게 사해의 소금 채굴권을 달라고 요구하지도 않았다. 필요 없기 때문이다.

“고산국에서 덴마크 서인도회사에 암염보다 높은 농도의 소금을 매달 5만 가마를 보내겠소. 왜요? 양이 적소? 그럼 10만 가마를 보내겠소.”

“어버버버!”

“폐하. 소금이 너무 많아 물량을 소화하기 어렵습니다. 매달 2만 가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헤드비히 공주가 발트 해 연안 국가의 소금 수입량 자료를 보이며 양을 조절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실망스럽게도 2만 가마로 줄여서 매달 서인도회사에 공급하기로 했다.

뤼벡을 비롯한 모든 한자 동맹 도시는 스트로가노프 가문에서 판매하는 암염의 절반 가격으로 소금을 매입하기로 했다. 이로써 스트로가노프 가문은 발트 해의 소금 판로를 잃었다. 이 정도 가격차이라면 러시아의 소금 시장도 상실할 것이 확실했다.

“뤼벡은 폐하께 영원히 충성을, 진실한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뤼벡의 사절단이 바닥에 엎드려 절한 다음 돌아갔다. 발트 해의 소금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러시아 상인 가문 하나를 단번에 날려버릴 힘을 가진 사람이 있으리라곤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헤드비히 공주가 이민호를 존경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이민호의 두 손을 잡아 가슴으로 가져갔다.

“결혼식이 이제 사흘 남았어요. 느껴지시나요?”

“흐음. 생각보다 크오.”

“두근두근 뛰는 제 심장 박동 말이에요!”

헤드비히가 이민호의 손등을 꼬집은 다음 시녀들을 이끌고 알현실에서 나갔다. 그러나 불쾌한 표정은 전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의 염호는 그냥 하신 말씀이죠? 소금을 어디서 구하실 건가요, 주인님?”

“당연히 바다에서 소금을 만들어야지.”

이민호가 민지에게 대답했다. 바다를 통해 나라를 세운 이민호는 육지의 암염 광산이나 염호를 본 적이 없었다. 솔트레이크시티는 2002년 동계 올림픽을 통해 들어만 봤지 위치도 몰랐고, 북미에 염호가 있다는 소리를 원주민이나 탐사대에게 들은 적도 없었다.

“북미나 유럽에 염전을 만들 만한 곳이 없잖아요. 아이슬란드나 페로 제도는 너무 추워서 바닷물이 증발하기도 힘들고 소금을 만들더라도 너무 짤 거여요.”

“아이슬란드 지열발전소에서 전기가 생산되고 있잖아. 알루미늄 제련소가 본격 가동되기 전에 남는 전기로 소금이나 만들어야지.”

“아하!”

민지와 민정의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왕도에서 전기분해로 소금을 만드는 장면을 처음 봤을 때 여진 호위들은 아주 기겁하고 말았다.

일단 전기분해로 기계염을 만든 다음 정제하거나 천일염을 섞어서 여러 가지 종류의 소금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했다. 꽃소금이나 맛소금 등을 만들어 아이슬란드와 페로 제도 주민들에게도 나눠주기로 했다.

============================ 작품 후기 ============================

다음 회가 결혼식이고,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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