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따뜻한 바다의 제국-689화 (638/1,000)

00689  74. 타이가  =========================================================================

74. 타이가

몽골족 유목경제의 구조를 생계형에서 기업형으로 개선하는 방안은 본토에서 이미 준비해왔다. 키우는 양의 숫자를 두 배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서 일단 올 가을에 양을 되도록 적게 도축하는 대신, 부족한 식량을 고산국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먼저 양을 통째로 굽거나 삶아먹는 전통 방식을 지양하고 한족이나 여진족처럼 고기만두와 물만두를 만들어 먹는 방법을 퍼뜨렸다. 쌀과 몇 가지 야채를 섞어 볶음밥을 요리해서 먹는 방법도 소개했다. 혜진에게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지자 돌림 신입 호위들이 귀족 부인들과 병사들에게 요리 교육을 시켰다.

“몽골족이 갖고 다니는 조리 도구가 몇 개 안 돼서 새로운 음식을 확산시키기 어려워요, 주인님.”

“다 만들어줘야지. 동해국에 연락해서 보내라고 해.”

“그런데 이런 식이면 몽골족이 최소한 먹는 것만큼은 농경민족과 비슷해지겠어요. 몽골족에게서 가축을 착취하기 위해 식물성 음식을 강제로 먹인다고 반발이 심할 거여요.”

지수와 지영이 이민호에게 그런 걱정을 제기했다. 그러나 쌀밥은 물론 보릿가루와 콩가루로 만든 죽은 몽골 귀족들과 병사들 사이에 금방 퍼졌다. 예전에도 곡식이 없어서 못 먹었지 주면 아주 잘 먹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몽골 기병들에게 씨감자를 나눠줘서 방목지나 집 근처에 감자 밭을 만들어 심도록 했다. 감자를 고깃국에 넣어 같이 먹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덕택에 조상 대대로 몽골족의 경쟁자인 타르박이 더 신이 나게 됐다.

“성장기에는 고기를 많이 먹고 성인이 돼서는 채식으로 균형을 맞추는 편이 좋아.”

“어차피 몽골은 너무 추워서 고기 종류를 많이 먹어야 해요.”

“고기 위주로 먹는 건 상관없는데, 고기밖에 먹을 게 없어서 고기만 먹는 것이 유목민들의 가장 큰 문제야.”

“곡식을 충분히 더 많이 보낼게요.”

“방목하는 양의 숫자에 한계가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지. 키워서 팔 곳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 많이 키울 거야.”

다르항부터 울란우데까지 도로를 건설했다. 차나 마차보다 양떼가 더 자주 이용하게 될 도로였다.

“그런데 양을 반드시 두 배 이상 키워야 하나요? 지금도 유목민들의 가계가 그리 큰 적자는 아니잖아요?”

“응. 부리야트가 고산국 속국이 되고 철도를 이용하면서 몽골족의 수입이 많이 줄어들 테니까.”

품질 좋은 모피는 대부분 바이칼 호 주변이나 그 북쪽의 타이가 삼림 지대에서 나왔다. 초원에서는 토끼나 타르박 등 작은 설치류와 여우 정도밖에 안 잡혔다.

몽골족은 부리야트 족으로부터 모피를 사서 남쪽의 이웃 부족에게 파는 릴레이 교역 방식으로 몽골족 전체가 모피무역의 이익을 나눠 가졌다. 그러나 바이칼 호수 가까이 철도가 건설되면서 부리야트 부족이 철도를 통해 직접 판매하게 됐다. 중간 상인 역할을 하던 몽골족 다수의 수입원이 사라지는 셈이었다.

“작년에 구한 양치기 개가 굉장히 똑똑하던데 몽골 유목민들이 키우게 하면 어때요?”

“셰틀랜드 쉽독? 목양견으로는 최고지만 너무 작아. 몽골인들이 키우는 개는 늑대나 외부 약탈자들하고도 싸워야 해.”

몽골 초원 같은 가혹한 환경에 어울리는 양치기 개는 지금 몽골인들이 키우고 있는 큰 체구의 개들이었다. 몽골 개는 지독한 추위에 견디고 양을 지키느라 맹수들과 싸우면서도 아이들에게는 유순했다. 몽골 개 방카르가 티베탄 마스티프와 혼혈되는 중이라서 현재 두 종류 개의 외모는 많이 다른 편이었다.

“몽골인들이 양을 두 배로 키워도 사실 큰 이익은 안 돼요. 몽골인들에게 수입을 보전해주려면 결국 곡물을 싸게 공급하고 철도 운송료를 깎아주는 수밖에 없겠어요.”

“깎아주는 건 어쩔 수 없어. 나중에 지하자원을 본격적으로 캐내게 되면 시베리아 철도가 흑자로 돌아설 거야. 지금은 자작나무 운송으로 버텨야지.”

지금까지 고산국에서는 비싼 티크목만으로 건축자재와 가구, 배의 건조까지 다양한 목재 수요를 감당했다. 이제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면서 자작나무나 소나무 등 여러 종류의 목재가 공급되면서 사용 목적에 따라 적당한 목재를 쓸 수 있게 됐다. 북미에서도 목재 개발이 큰돈이 됐다.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다르항 남쪽 초원에서 여러 몽골 부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나담이 열렸다. 동몽골의 보호자가 된 고산국왕을 존경하고 전쟁에서 죽은 전사들을 기리기 위한 목적이었다. 사실은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 놀고먹는 축제를 열기 위한 핑계였다.

씨름과 기마궁술, 사냥, 15세 이하 말 타기 등 몇 가지 종목에서 치열한 경쟁이 붙었고, 각 부족들의 장점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기병연대 장병들은 기마궁술 부문에서 우승자부터 5위까지 싹 쓸었다. 나담 중간에 소총 사격과 기관총, 야포의 시범 사격 행사를 가졌다.

이민호는 몽골 귀족들과 함께 단상에서 구경했고, 우승자가 가려질 때마다 큰 상을 내렸다. 구경꾼들에게 음식을 무료로 제공해 인심을 크게 얻었다. 유럽에 수출하고 남는 럼주를 여기서 다 풀었는데 몽골족들은 술이라면 도대체 사양하는 법이 없었다.

차하르 부와 할하족의 여러 부족들이 돌아갈 때 조리 도구와 쌀, 밀가루, 보릿가루 등을 잔뜩 제공했다. 급히 동해국에서 보낸 씨감자도 두 자루씩 말안장에 걸도록 했다.

겨울이 되기 전에 몽골족에게 곡물을 더 제공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아돌아서 가축 사료로 쓸 곡물이라 몽골에 공짜로 풀었는데, 몽골의 보호자로서 제 역할을 다한 셈이 됐다.

다르항을 요새도시 겸 교역지로 건설하기 위해 고산국 건축 기술자들이 파견됐고, 가장 먼저 차하르 부 3천 명이 부역을 제공했다. 곡식 창고 역할을 할 작은 요새를 많은 인력이 투입돼 짓고 있어서 잘하면 겨울 전에 완공될 것 같았다.

동몽골 사람들과 작별하고 7월 하순에 울란우데로 돌아왔다. 본토에서 파견된 건축기사들이 동해국 여진인, 부리야트 부족민들과 함께 시청 건물과 가끔 국왕이 행궁으로 쓸 관사를 건설하는 중이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목욕을 할 수 있었다.

“미지근할 때 마셔도 속이 아주 시원하다.”

“유리병에 담아 왕도에서 파는 게 어때요?”

목욕을 끝내고 탁자에 준비된 몇 가지 음료 중에서 맹물을 선택해 마셨는데 뜻밖에 아주 상쾌해졌다. 알아보니 바이칼 호수 중에서도 깊은 수심에서 길어온 물, 심층수라고 했다. 민지도 물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글쎄. 수돗물 마시던 사람들이 생수를 돈 주고 사서 마실까 모르겠다.”

“이 물의 인상을 잘 포장해야죠. 이름하야 국왕전하께서 극찬한 바이칼 호숫물. 어때요?”

민지가 농담인지 사업이야긴지 모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유럽 사람들이 먹고 살만하다면 심층수나 광천수를 개발해서 팔겠지만, 이 시대에는 맹물을 비싼 돈 주고 살 사람이 없었다.

조선 한성에서 영업하는 물장수들은 한강이나 계곡물을 길어와 파는 사람들이었다. 즉, 물이 아니라 물을 길어온 물장수에게 수고비를 지불하는 차원이었다.

“바이칼 호수에 생수 공장을 지어서 휴대용 0.5리터하고 가정용 1.5리터 유리병이 있지? 거기에 담아서 왕도에 보내도록 해봐.”

“꺄악! 이제 왕궁에서 이 물을 마시는 거여요? 좋아 죽겠어요.”

다른 호위들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바이칼 호숫물을 마시고 피부 미용에 효과를 크게 봤다는 설이 있었다.

일단 왕궁 사람들이 마셔보고, 괜찮으면 일반 판매를 추진하기로 했다. 얼마나 팔릴지 모르겠지만 모피와 목재, 양고기와 석탄 외에 몽골에서 수출할 상품이 새로 생겼다.

“주인님! 내일부터 사흘 동안 사냥이에요.”

“사냥? 내가 사냥을 즐기지 않잖아.”

“알아요. 하지만 부리야트 귀족들이 사죄 의미로 하는 사냥이니까 주인님이 꼭 참가해주시면 좋겠대요. 7일 전부터 몰이꾼들이 천여 명이나 동원됐어요.”

“7일 전?”

스케일이 큰 몽골식 몰이사냥을 삼림지역인 이곳에서 한다면 몰이꾼들의 인명피해가 많이 발생할 것 같았다. 미리 알았더라면 쓸데없는 짓을 그만 두라고 했을 텐데, 이미 늦었다.

몽골인들에게 사냥은 제2의 생업이나 다름없었다. 16세기 말 명나라 관리 소대형의 기록에 따르면 몽골에서 사냥은 100일 동안 진행되고 천기 만마가 동원돼 사냥물이 언덕처럼 쌓인다고 했다.

이런 사냥은 초원에서 칸이나 귀족들의 지휘 아래 행해지는 대규모 군사 훈련이었고, 원정 중에 식량을 조달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초원의 몽골족에 비해 부리야트의 몰이사냥은 규모가 훨씬 작다고 볼 수 있었다.

“규모가 너무 크죠? 가까운 초원에서 타르박이나 사냥하는 편이 차라리 더 재미있겠어요.”

초원에 흔한 타르박은 설치목 청서과로서, 이것의 모피가 19세기에 들어 유럽에서 꽤 유명해지면서 매년 100만 마리 이상을 수출했다.

몽골에서 타르박 고기는 가난한 자의 음식이라고 하지만 맛은 꽤 좋은 편이라고 알려졌다. 초원을 잘 달리던 말의 앞발이 갑자기 땅에 푹 빠져 꺾이면서 기수가 땅에 내팽개쳐진다면 십중팔구 타르박의 굴 때문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사냥터를 안내하겠다는 부리야트 귀족을 따라갔다. 몽골 초원에는 조선의 서낭당처럼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오보가 많은 반면, 바이칼 호 주변에는 새가 나무 위에 올라앉은 솟대가 흔했다.

“원래 가을까지는 금렵기입니다만, 대왕을 위해 특별히 사냥을 했습니다.”

“혹시 호랑이는 없소?”

“안다 바르스는 가던 길을 계속 가시도록 길을 비켜드렸습니다. 임신한 동물, 어린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동물, 무리의 선두 등은 포위망에서 풀어주었으니 대왕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니, 뭐. 걱정한 것은 아니지만 잘 하셨소.”

부리야트 족은 호랑이를 안다 바르스, 즉 동무 호랑이라 하여 마나한 텡그리와 함께 사냥의 수호신으로 숭상했다. 늑대와 암사슴은 몽골족의 조상신이기에 특별한 경우에만 사냥했으며, 곰을 잡을 때는 특별한 의례를 수행해야 했다.

부리야트인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는 곳이 울타리로 둘러친 사냥터의 종점이었다. 이들은 숲의 주인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민담을 암송하고 있었다.

도착해보니 울타리를 둘러친 곳에 거의 500마리나 되는 대형과 중형 동물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울타리 밖에는 몰이꾼 천여 명이 북을 치고 울타리를 창대로 치면서 노래를 불러 동물들을 극도의 흥분 상태로 몰아갔다.

이민호는 울타리 안쪽이 사자와 아기 양이 같이 뛰어노는 것 같은 평화로운 모습일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상상보다 훨씬 참혹하게도 늑대와 불곰, 순록과 새앙토끼가 뒤섞여서 서로 물어뜯거나 울부짖고 있었다. 담비는 주변을 살피며 어쩔 줄을 몰랐고 여우는 사람들 틈으로 빠져 나가려고 눈치를 살폈다.

“저희들은 도망 잘하는 짐승을 사냥할 때 몰이꾼들의 앞에 서겠습니다.”

“잘 도망가는 짐승을 사냥할 때 하나가 되어 함께 사냥하길 바랍니다.”

부리야트의 귀족들이 이민호 앞에 일제히 부복했다. 귀족들은 사냥에 빗대어 이민호에게 충성 맹세를 바치고 있었다. ‘잘 도망가는 짐승’ 운운은 칭기즈칸이 옹칸과 맹세할 때 사용되는 등 상징적이고 의례적인 맹약의 징표였다.

“잘 도망가는 짐승을 사냥할 때 나도 그대들과 함께 사냥하길 바라겠소.”

“감사합니다, 대왕!”

부리야트 귀족들이 일제히 절을 했다. 지난번에 적전 도주한 일 때문에 고산국 국왕에게 언제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던 부리야트 부족의 귀족들이 드디어 한시름 놓았다. 더 이상 처벌을 받을 걱정을 하지 않게 됐으나, 이제부터 부리야트 부족 전체가 고산국 국왕에게 확실히 종속됐다.

몰이꾼들이 사냥감들을 울타리에 몰아넣었으니 이제 집단 처형할 때였다. 이민호는 일부러 기관총 사수들을 불러왔다.

“정확성은 필요 없어. 부리야트인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니 탄약을 아낌없이 사용해서 동물들을 잡도록 해. 우리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고 탄약 또한 넘쳐난다. 그러니 감히 배반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 이번 작전의 핵심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탄을 마음껏 쓰겠습니다, 전하.”

사수들이 기관총 5정을 거치하고 옆에 탄통을 쌓아놓았다. 그리고 예비 총열까지 준비해서 총알을 낭비할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쏴.”

- 따다다다닷!

커다란 불곰과, 불곰에 필적하는 거대한 체구의 순록과 말코손바닥사슴들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먼저 총탄에 맞아 죽어갔다. 화살 몇 발쯤은 가뿐하게 버티는 불곰이었지만, 강력한 탄환이 불곰의 가슴이나 두개골을 관통해 단 한 방에 쓰러뜨렸다. 그리고 쓰러지는 사이에 기관총탄 여러 발이 몸 곳곳에 꽂혔다.

그리고 다음 순서가 회색이리와 스라소니, 라마교 승려들이 들여왔다가 야생화된 티베탄 마스티프였다. 커다란 동물들이 이유도 없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 육식동물들은 깜짝 놀랐다가, 그 공격이 이번에는 자기들에게로 옮겨졌음을 확인하고 분노했다. 몇몇 동물이 기관총 사수들에게 뛰어오다가 여러 발을 얻어맞고 몸이 찢겨 나갔다.

“우으우우~”

갈기털을 길게 기른 큰 회색이리가 고개를 들어 하울링을 한 다음 울타리로 뛰어올랐다. 다른 회색이리 수십 마리가 두목을 따라 뛰었다. 그러나 몰이꾼들이 창날로 찔러 회색이리들이 울타리를 넘지 못하게 막았다.

============================ 작품 후기 ============================

이어질 내용입니다.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