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02 76. 시베리아 =========================================================================
“보고하게. 저번에 올 때와 달라진 점만 간단히 요약하게. 시장에 여러 종족들이 몰려왔더군.”
“예, 전하. 시장이 개설된 이래 북쪽에서 야쿠트 족과 어웡키 족, 북동쪽에서 다우르 족, 동쪽에서 오로챈 족과 시버 족 등이 몰려와서 교역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할하 부 몽골족이 가장 많이 찾아옵니다.”
치타 인근 지역은 면적은 넓고 인구밀도는 극히 적었으나 참으로 다양한 부족들이 거주했다. 혹은 교역을 위해 멀리서 방문했다.
실제 역사에서 치타 주변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다. 바로 동쪽은 몽골 땅에서도 북동쪽에 위치했으나 만주에 가까운 탓에 나중에 몽골공화국이 아니라 내몽골에 편입된다. 아직 한족의 이주는 드문 편이었다.
“별로 이익이 안 되겠지만 이 지역 사람들을 고산국 백성으로 받아들이고 안정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행정을 수행하게.”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유목민이나 수렵민들에게 모피 외에 가치가 높은 상품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치안이 좋은 시장을 찾던 원주민들에게는 아주 좋은 교역 시장이 될 것입니다.”
“시버 족이라면 송화강 유역에서 동해국 탐사대와 자주 우호적으로 접촉한 부족 아닌가? 이 지역 시버 족에 대해 조사한 것을 말해보게.”
오로챈과 시버 족(錫伯族)은 퉁구스계이면서 한때 몽골계 중심인 실위 족을 형성했던 여러 부족들 중 하나였다. 특히 시버 족은 북원 정권의 가신이었다가 누르하치가 청나라를 세운 다음 러시아의 동진을 막는 군사적 업무에 동원했다. 코사크를 비롯한 러시아 탐험가들에게 시버 족 기마궁사가 워낙 유명해서 시베리아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었다.
시버 족은 이후에도 청나라의 군인 부족이 되어 여러 지역에서 활약했다. 1765년 관병 천여 명과 가족 3천 명이 신강 이리 지역으로 이주해서 현대에 10만 넘게 불어났고, 원래 언어를 끝까지 지켜냈다. 원 거주지인 만주의 시버 족이 언어를 잃고 대부분 만주족에 동화된 것과 비교됐다.
“시버 족 인구는 10만 이하입니다만, 북방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아서 분포 지역이 굉장히 넓습니다. 현재 유목 위주로 살아가면서 수렵과 어업, 약간의 농업을 하고 있습니다. 말 타고 활쏘기라면 여진족에 뒤지지 않습니다. 참! 조선인들과 많이 닮아서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여진인과 몽골인들도 구별하기 어렵던데.”
“제가 오래 살펴본 결과 여진족이나 몽골족보다는 시버 족이 훨씬 더 많이 닮았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니까 고대로 올라가면 혈통이야 비슷할 수도 있겠고, 이민호는 시버 족이 말 타고 활을 쏜다는 부분에 특히 주목했다. 한때 조선 기병을 지휘했던 이민호 입장에서 몽골족과 여진족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여진족과 몽골족은 말은 조선 기병보다 훨씬 잘 타더라도 말을 탄 상태에서 활은 더럽게 못 쐈다. 이는 곧 말 탄 상태에서 총을 쏠 때의 명중률과 직접적으로 관련됐다.
투르크 족이 말 타고 달리면서 몸을 뒤로 돌려 활을 쏘는 것은 짧은 거리에서나 가능하고 나머지 기마민족의 궁술이란 지역 제압 사격에 가까웠다. 이 정도로는 기마 상태에서 총을 쏘기 어려웠다.
“시버 족을 만나보고 싶군. 그들이 얼마나 기마궁술에 능한지도 직접 확인하고 싶어.”
“나담을 개최해서 다른 부족들과 직접 비교해 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큰 상금을 걸고 말이지? 좋아. 종목별 상금으로 1, 2, 3등 합쳐서 은 천 냥씩 걸겠네. 당장 추진해주게. 그리고 다른 일은 없나?”
시장에게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물었다. 역시나 시장이 준비한 내용을 좔좔 읊었다.
“예, 전하. 이곳 임시 이름 치타는 아직 정식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건설 중인 도시에 불과합니다. 그런데도 동몽골에 거주하는 여러 약소 부족들이 어찌 알고 계속 의탁해 오고 있습니다.”
“약소 부족들을 보호해주려면 다른 강한 부족과 충돌하게 돼 있어서 고민이겠군.”
“맞습니다, 전하. 특히 할하 부가 다른 여러 부족들을 지배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할하 귀족들이 자주 시청에 와서 항의를 합니다.”
초원에서 약한 부족들끼리 연합을 하거나, 혹은 강한 부족에게 공물을 바치며 보호를 부탁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일반적으로 선택하는 관행이었다. 피정복민이 직접 흡수되는 것과 달리 이것은 순전히 계약관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계약은 잊어버리고 관계만 남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강한 부족이 약한 부족을 피지배부족으로 여기고 과한 요구를 하게 되는 경우가 흔했다.
만약 약한 부족이 참다못해 고산국 도시의 보호 아래에 들어오면 강한 부족이 이들의 인도를 요구했다. 시청에서 거부하면 당장 싸움이 나지는 않았으나 관계가 험악해졌다. 어려운 문제겠지만 초원에 접한 고산국 도시에 공통되는 현상이라서 이민호가 나서서 어떻게든 정리해줄 필요가 있었다.
“동맹을 노예로 다루는 부족은 다 망하게 돼 있는데 말이야.”
“고산국에서 보호해주는 부족이라고 큰소리치며 주변 부족들에게 폐를 끼치는 부족도 좀 있습니다. 어딜 가나 호가호위하는 자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생각해보면 동몽골 중에서도 북쪽은 별로 신경을 쓴 적이 없었군.”
“동몽골 차하르 부와 할하 남부 연맹 등 주요 부족들이 현재 북경에 가까운 남쪽 영토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내몽골 자치구 남쪽에서 남동쪽 사이가 현재 고산국과 동맹을 맺은 동몽골 부족 연합이었다. 북동쪽은 같은 할하 부라도 다르항의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북원의 칸이 제대로 지배하지 못한 지역이기도 했다.
“시장이 문제 되는 부족의 족장들을 소환해서 따끔하게 훈계를 하게나. 그 사이 기병연대와 여진 기병 5천을 이 근처에 한 바퀴 돌리겠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리고 양과 곡식을 많이 수송해 와서 나담을 잘 준비하되, 주변 모든 부족들을 초청하게. 양을 도살하는 시기가 되려면 좀 남았지?”
“예. 현재 서리가 내린 직후입니다. 풀이 완전히 시들기까지 한 달 넘게 여유가 있습니다.”
요동에 있을 때 거지꼴을 하고 다녔던 여진 기병들은 그 사이 깔끔한 고산국 군복으로 갈아입고 윤기가 흐르는 고급 모피 외투를 걸쳤다. 지난번 다르항 전투에 참전했던 여진 기병들은 토르구트 기병처럼 안에 비단옷을 받쳐 입었다.
위압적인 체구의 페르가나 말을 탄 고산국 직할 기병연대가 앞장서고, 5천이나 되는 여진 기병이 뒤따랐다. 다르항 전투에서 고산국 1개 기병대대가 활약한 것만으로도 전세에 큰 영향을 줬는데 몇 배나 되는 병력이 한꺼번에 움직이자 몽골 부족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칸이시여! 저들은 원래 우리 부족의 노예들이었습니다. 돌려주십시오.”
“할하 족의 여러 귀족들이 잘 모이셨소. 우리 너른 바깥으로 나갑시다.”
그러나 할하 부 귀족들은 자기 이익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목숨을 걸었다. 치타 시청에 할하 귀족들이 찾아와 항의하자 이민호가 그들을 후원으로 안내했다. 여러 샤먼들 중에 화려한 복장을 한 샤먼이 북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 타앙~ 타앙!
“우리 바르가의 조상님이여, 하늘에서 굽어 살피며 미욱한 후손의 질문에 대답해주소서. 저희는 어디에서 생겨났습니까? 부리야트의 후예들이여! 위대한 테무친, 칭기즈칸은 세상에서 네 번째로 큰 바다에 살던 부리야트에서 일부를 떼어 동쪽으로 옮겨 살게 했다. 그것이 너희 바르가 족의 시초였다.”
바르가 족의 샤먼이 부리야트에서 분리된 이후 이 지역에 정착해 살게 된 과정을 낱낱이 묘사했다. 문자 없이 샤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던 이야기였다.
한참 지나 겨우 50년 전에 할하 족이 이 지역으로 이주한 다음, 바르가 족과 동등한 관계의 동맹을 맺기로 합의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던 할하 부 귀족들이 반발했다.
“그만 두십시오! 이런 이야기는 얼마든지 왜곡할 수 있습니다.”
“다른 기록이 있소?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더라도 왜곡되지 않았다는 보장이 있소?”
“없습니다만, 아무리 샤먼이 기록을 하는 자라 하나 이미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대포를 쏘고 기차가 달리는 이 시대에 샤먼이 읊는 구전 설화라니, 어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칸이시여! 노예는 노예로 태어났기에 노예입니다. 그뿐입니다.”
“할하 부의 샤먼도 모셔왔소. 들어보시오.”
“약 먹고 헛소리하는 샤먼의 말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 할하 부는 티베트에서 훨씬 고등한 종교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히익!”
할하 부의 샤먼이 귀족들을 비웃으면서 다가왔다. 샤먼이라고 똑같은 샤먼은 아니었다. 할하 부 샤먼은 70세가 넘었다. 할하 부가 이 지역으로 이주할 때의 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는 샤먼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에서 거짓말하지 마라. 천벌 받는다, 머리에 똥만 찬 귀족 놈들아!”
몽골의 샤먼은 대대로 귀족들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칭기즈칸과 몽릭, 그리고 그 아들 탭 탱그리의 관계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티베트 불교가 몽골 사회에 들어오면서 샤먼의 사회적 지위는 급전직하했다. 티베트 불교를 지원하는 귀족들과 샤먼들의 관계는 당연히 악화일로에 접어들었다.
생계 곤란에 처한 여러 부족의 샤먼 가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샤먼을 관두거나, 빈곤 선상에서 샤먼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치타 시청으로부터 종교가 아닌 문화예술인으로서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샤먼들이 몽골 귀족이 아닌 고산국 편을 드는 게 당연했다. 그리고 샤먼들이 몽골족 일반 민중에 미치는 영향력은 아직 강하게 남았다.
“야만스런 샤먼 주제에!”
“나는 샤먼이기도 하지만 초원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의 증인이기도 하다. 다얀 칸의 명령에 의해 항가이 산맥에서 내려온 할하 부의 조상들이 투먼으로 조직된 것은 아직 100년도 되지 않았다. 부정하느냐?”
현대 몽골공화국에 사는 몽골족의 8할 정도가 할하 부 소속의 여러 부족들이었다. 그러나 할하 부가 성립된 것은 다얀 칸 시대이니 아직 역사가 짧은 부족이었다.
“우리 조상의 일이라 기억하고 있다. 샤먼 너도 할하 족이 아니냐?”
“물론 내 가문도 할하 부에 속한다. 그 일부가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50년도 되지 않았다. 너희 할하 귀족들은 마치 천 년 전부터 이 지역에서 다른 부족들을 지배한 것처럼 말하는구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지금부터 할하 부와 다른 부족들이 동맹을 맺은 조건을 자세히 설명해주마.”
“그까짓 것, 됐다! 칸이시여! 샤먼의 헛소리는 듣기 싫으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할하 부 귀족들이 얼굴이 벌개져서 시청에서 나갔다. 이민호는 경제적 곤란에 빠졌었던 샤먼들을 지원해준 시장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꽤나 복잡하고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었던 일을 평화롭게 해결했다. 이민호는 여차 하면 소수 부족들을 다른 지역으로 이주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땅은 충분히 넓으니 소수 부족들을 이대로 거주시키는 편이 나았다.
“샤먼들의 기억이 바래지기 전에 문서로 작성하는 게 어떻겠소?”
“세계의 절반을 지배하는 칸이시여! 문서로 작성하는 즉시 샤먼들이 할 일이 소멸됩니다. 저희들이 할 일은 하늘과 사람을 연결하고, 문서와 상관없이 과거의 기억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입니다.”
“서양에도 비슷하게 조상의 지혜를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주는 일을 맡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른 종교의 핍박을 받아 단절됐다오. 걱정돼서 하는 말이오.”
드루이드는 정확히 켈트족에서 신봉하던 다신교의 성직자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 암기는 별 의미가 없고 문자로 기록하는 편이 정확성 면에서 훨씬 나았다. 샤먼들끼리 협의해서 몽골어와 조선말로 기록하는 문제를 협의하도록 했다.
무력시위와 축제 준비를 하는 동안 이민호도 좀 쉬었다. 이동하는 중에도 지겹게 쉬었지만 열차 이동 후에는 반드시 운동을 동반한 휴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민호는 또 다시 호위들을 못 살게 굴었다.
============================ 작품 후기 ============================
시버 족을 부용민족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시베리아 편을 한 회 더 연장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