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1 77. 동해국에서 =========================================================================
백산 3부는 며칠 후에 바로 천 명을 채워서 동해국 도읍에 돌아왔다. 이로써 계약기간이 시작됐다.
그런데 세 부족 300명씩, 합해서 천 명이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바람에 백산 3부에서 자기들에게 좋은 쪽으로 해석한 모양이었다. 각 부족 당 3백 명이 아니라 합해서 천 명을 채워서 왔다. 백산 3부 내에서 합의가 된 것 같아 이민호도 개의치 않았다.
그 사이 하얼빈에 주둔하는 제2 탐사대를 호출했다. 이들을 다우르 족 북쪽 지역의 탐사 업무에서 해제하고 백산 3부 사람들을 훈련시키도록 지시했다.
“제2 탐사대가 저들에게 사격술과 기마사격술, 총기 긴급 수리, 지형에 따른 여러 가지 생존기술, 독도법 등을 가르치게. 사막 훈련을 빼고 산악 훈련, 하천 훈련, 늪지대 훈련 같은 것으로 충분할 거야. 할 수 있겠지?”
“전하. 백산 3부 사람들이 산맥이나 숲에서 저희보다 생존기술이 훨씬 뛰어납니다. 괜히 창피당할 것 같으니 그런 지형에서는 표준적인 기술만 가르치겠습니다.”
“그 정도로 특별한 훈련 대상인가?”
“그렇습니다. 다른 부족이 아니라 백두산 산자락에서 살아온 백산 3부입니다. 고구려나 발해에 복속됐던 말갈 부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래된 종족입니다.”
“말갈족에 백산부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이 달라졌을 거야.”
“그 동안 탐사대가 저들에게 청해 기술을 배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희가 그들에게 생존기술을 가르친다면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백산 3부 사냥꾼들은 숲이나 산에 특화된 탐사대마저도 한 수 접어줄 정도의 실력이라고 탐사대장이 보장했다. 백산 3부를 우랄산맥 경비나 시키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탐사대는 지도 제작과 새로운 지역 탐험,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부족과의 교섭 등에 특기를 가졌고 백산 3부는 단지 유능한 맹수 사냥꾼일 뿐이었다. 사냥꾼에게 여러 가지 장점이 있겠지만 레인저나 국경경비대 역할을 시키려면 여러 가지 교육과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도 부족한 게 많을 거야. 사격술이나 총기 사용법처럼 말이야. 단발총이니까 제원 숙지를 잘 시키게. 너무 멀리서 쏴서 상대가 도망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말이야.”
“예. 아마도 제원의 최대한도를 유효 사거리로 만들 사람들입니다만, 해보겠습니다.”
“저들은 민간인이고 자네는 군인이야! 지레 겁먹을 것 없어.”
“군인으로서 전투를 한다면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숲이나 산에 들어가면 저들이 확실히 낫습니다.”
북미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창설됐다가 해체되길 반복했던 레인저 부대는 정찰대 역할을 맡거나 정예부대의 별칭에 불과했다. 이차대전 때 레인저는 육군 부대의 상륙 선도, 혹은 선봉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1970년대 이후 미국 특수전 사령부 소속의 특수부대로 고정 배속됐다.
그러나 백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온 국경 순찰 부대로서 레인저 부대의 원형에 가까운 텍사스 레인저는 군인이 아니었다. 처음 창설 당시에는 불법적인 자경단 개념이었고 한때 합법적인 민병대였다가 20세기 들어서서 텍사스 주립 경찰로 흡수됐다.
그 어느 때에도 텍사스 레인저가 군인이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과 업적으로 인해 유명해졌다.
- 타탕! 타타탕!
“노리쇠 후퇴! 약실 확인! 장전! 노리쇠 전진! 조준! 준비된 사수부터 정확히 쏴!
- 타타타탕! 타탕!
오랜만에 동해국 도읍 성 밖 너른 공터에서 총소리가 빵빵 울렸다. 동해국 여진족들이 사용하는 화승총이 아니라 단발 보병총과 기병총의 짧은 총성이 연속 이어졌다.
이민호가 정규군이 아니라 탐사대에게 사격 훈련을 시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훈련 중인 백산 3부 여진족 사수들은 한 순간에 맞춰 일제히 사격하지 않았고, 명중률에 신경 쓰느라 제각각 사격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차이였다.
국경경비대는 보병처럼 대열을 맞춰 총을 쏠 일이 없기에 탐사대 교관들은 보병과 달리 일제사격이나 교대사격 같은 엄격한 사격통제를 병사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사실 요즘 들어서서 고산국 보병들이 대열을 갖춰 사격할 때 첫 사격 외에는 개별 사격을 할 것을 권했다. 이것이 전장의 현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이 전투에서 이기고 있다는 판단을 하면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자연스럽게 일제사격을 하게 됐다. 그러나 머스킷이 아닌 단발총 사수에게 일제사격은 총알 낭비일 수도 있었다.
“금방 적응하네.”
“예, 전하. 훌륭한 사수가 될 것 같습니다.”
이민호가 감탄하고 제2 탐사대장은 혀를 내둘렀다. 백산 3부 훈련병들은 단발총, 즉 구식 보병총이나 기병총을 소중히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며칠 만에 금방 적응했다. 그리고 기마 사격과 장거리 사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활도 비싼 조선 흑각궁으로 교체해줬다. 내구성은 여진 활에 비해 떨어지지만 위력이나 사거리 면에서 기존 백산 3부 사람들이 쓰던 것보다 압도적인 성능을 자랑했다.
백산 3부 사냥꾼들이 이미 체득하고 있는 생존기술 외에 독도법이나 지도 제작법, 암호 활용, 비상 연락 방법 등을 배우게 했다. 전혀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있었지만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되던 것을 국경경비대 공통의 것으로 통일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런 실력을 갖고도 건주 여진에게 패했다고?”
“당연합니다. 저희들은 짐승을 잡던 사냥꾼이고, 건주 여진은 전문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군인들입니다.”
9부 연합군이 건주 여진에 패했을 때 참전했던 사냥꾼들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역시나 궁술, 기마실력, 기동성 등에서는 백산 3부가 건주 여진에 비해 압도적이었다. 갑옷이나 지휘체계 같은 것은 건주 여진이 나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점은 직업이었다. 건주 여진 병사들은 전투 중에 동료가 죽거나 부상을 입었을 때 치열하게 반격을 가했고, 백산 3부는 부상당한 동료를 업고 얼른 후퇴했다.
유목민이나 기마민족들이 다 그렇듯 여진족의 전투는 적이 강력하게 저항하면 일단 물러서서 적을 유인하는 것이 기본적인 전술이었다. 그러나 건주 여진은 유목민답지 않게, 말을 타고 싸울 때조차 마치 정주민족 보병처럼 그 자리에 버티면서 싸웠다. 여진족들이 수행했던 일반적인 전투와 전혀 달라서 다른 여진 부족들이 버틸 수가 없었다.
기병에도 차이가 컸다. 중기병과 경기병을 놓고 볼 때, 경기병이 훨씬 전술적으로 다양한 선택권을 누릴 수 있었다. 중기병은 화살 공격에 대한 방어력이 높더라도 작전 거리 제한, 느린 기동 속도, 활보다 창칼에 의존해 공격 거리가 짧은 등 경기병에 비해 단점이 더 많았다. 그러나 중기병은 상황에 따라 몇 배나 많은 경기병을 패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기마민족이라도 지배적인 세력만이 보유할 수 있는 병과였다.
“건주 여진은 군인이라. 맞아. 명령이 없으면 후퇴할 수도 없지.”
건주 여진 및 다른 여진족들과 싸워본 함경도 장수들이 평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성에서 포와 조총을 쐈을 때 다른 여진족들은 즉시 물러섰지만 건주 여진 병사들은 인명피해를 입으면서도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결코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다.
마치 대열을 형성한 다음 동료들이 적의 총격에 맞아 죽어 나자빠지는데도 지휘자의 구령에 맞춰 묵묵히 머스킷을 장전하는 근대 유럽 군대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런 반응을 접하지 못했던 상대방을 큰 충격에 빠뜨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건주 여진은 유목민 기마병의 기동성과 정주민족 군대의 군율을 갖고 있다는 뜻이로군.”
“그렇습니다, 전하. 어느 한쪽이라면 대응을 하는데,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상대라면 몽골이든 여진이든 몹시 버거워 합니다.”
이 시대 명나라 군대가 군율이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적의 공격에 겁에 질려 우르르 도망가는 것은 조선군과 같았다.
아무리 강군이라도 적에게 공격을 당하는 동안 담담하게 서서 진을 유지하기란 어려웠다. 근대 유럽의 군대에서는 장교와 부사관들이 병사들을 두들겨 팸으로써 억지로 군율을 유지했다.
“그런 식으로 군을 조련할 줄이야. 건주 여진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가 있었군.”
“전하! 저희들은 서쪽에서 군인 역할을 하게 됩니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소속은 정하지 않았어. 군에 속할지, 총독부나 시청에 속할지 아직 몰라. 하지만 전투보다는 국경을 순찰하는 야경꾼 같은 역할이야. 물론 전쟁에 참전할 수도 있지.”
우랄산맥에서 백산 3부 여진족들이 맡을 역할은 정확히는 국경경비대였고, 경찰에 가까웠다. 경찰은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면서 국가의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집단이었다. 또한 전시에 군에 편제돼 전투에 투입될 수도 있는 특별한 집단이었다.
“저희들은 군인 신분이면 좋겠습니다.”
“장단점이 있긴 하지만, 자네들 의견을 참고하겠네.”
그러나 군대라는 조직은 다양한 임무에 대응하기 어려웠다. 특히 군대 일부가 실수로 다른 나라 국경에 진입하면 침략으로 간주돼 전쟁의 원인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국경경비대 같은 준군사조직이 활용도 면에서는 높았다. 백산 3부가 우랄산맥에서 어떤 법적 지위를 차지할지는 좀 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누가 주인공이지?”
“저여요, 주인님.”
지영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침전에 들어온 호위 세 명 중에서 배란 예정일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지영이 입은 연분홍색 롱 원피스를 이민호가 천천히 벗겼다. 하얗고 아담하면서 반짝거리는 몸이 드러났다. 비슷하게 아담한 체구인 민지가 가무잡잡하면서 생명력 넘치는 건강 미인이라면 지영은 좀 더 차분하고 이지적으로 생겼다.
“혼자서 되겠어?”
“민정 언니와 지혜가 도와주기로 했어요.”
“그래. 다들 올라와서 준비해라.”
지영은 예민해서 그런지 오래 버티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중간에 지영이 시체처럼 축 늘어져버리면 이민호의 기분도 망치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두 명이 조수로 추가됐다.
“민정이 너, 외 호위대장이라고 권력을 남용한 것 아니야?”
“어머나? 저희들끼리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당연히 호위들이 모여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제가 이겼죠.”
“그래, 그래. 얼른 벗어라. 지혜도 가위 바위 보 한 거야?”
“몰라요.”
얼굴이 빨갛게 된 지혜는 이민호가 속옷을 내리는 동안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밖에서는 용감하고 심지어 과격하기까지 한 호위들은 침대에서만큼은 얌전했다.
이민호는 나란히 누운 셋에게 돌아가면서 정성스레 애무했다. 호위들의 숨결이 점점 가빠졌다. 지영은 어느덧 눈에서 흰자위만 남았고, 지혜는 손으로 입을 가려 신음소리가 새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민정은 눈을 감은 채 활짝 미소를 지으며 느긋하게 즐겼다.
“지영이는 똑바로 눕고 민정이와 지혜는 지영이를 등지고 옆으로 돌아누워라.”
“이렇게요?”
지영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리고 다른 두 호위의 엉덩이를 지영의 몸에 붙였다. 그리고 지영의 두 발목을 한 손으로 잡은 채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세 명에게 교대로 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오래 지나지 않아 지영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울먹거렸다. 그리고 이민호의 몸짓 하나하나를 감동스럽게 받아들였다.
“울지 마. 기뻐해야지.”
“네. 저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나요.”
지영이 훌쩍거리며 이민호의 목에 팔을 둘렀다. 민정과 지혜도 몸을 돌려 지영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유~ 지영이가 주인님을 너무 좋아해서 탈이라니까요.”
민정이 지영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지영이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려 했으나 세 방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린 지영에게 이민호가 입을 맞췄다. 지영의 뺨에 입술을 댄 민정이 이민호에게 입술을 내밀기에 살짝 빨았다. 그리고 지혜의 얼굴을 당겨 역시 입을 맞췄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민정이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했다. 그리고 채 스무 번도 채우지 못해 아직도 풋풋한 지혜는 매번 자기 몸의 반응에 놀라워했다. 이민호가 시베리아 순행에서 가장 잘한 점은 호위들을 실컷 안아준 것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호위들은 이민호의 식사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그래서 남자 몸에 좋은 것이라면 멀리서라도 구해왔다. 장어나 버섯 외에 철갑상어도 오래 전부터 강장식품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카 호수에 철갑상어가 살아?”
“예. 철갑상어 큰 놈을 몇 마리 가져왔는데 드시겠어요?”
이 시대에는 철갑상어가 흔했고, 또한 알보다 고기가 고급 요리로 알려져 있었다. 한카 호수와 송화 강을 비롯한 흑룡 강 수계에는 칼루가 철갑상어가 서식했다. 흑해와 카스피 해에 사는 벨루가 철갑상어와 비슷한 어종이었다.
이민호가 직접 조리실에 가서 철갑상어를 구경했다. 턱이 뾰족하게 생긴 걸 보니 마포나루 시장에서 자주 봤던 철갑상어가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길이가 3미터가 훌쩍 넘어서 보기에도 부담스러웠다.
“조리장! 고기는 알아서 요리하고 알을 소금에 절여서 가져오게. 맛 좀 보자. 우리한테 금수저가 있던가?”
“왕도에는 있는데 여긴 은수저뿐입니다, 전하.”
“알았네. 조리장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실력을 보여주게.”
왕실 사람들은 암살 방지용으로 은수저를 주로 사용했다. 캐비아는 금수저로 떠먹어야 한다는데 미각이 까다로운 사람이나 구별 가능할 것으로 이민호는 생각했다.
저녁식사에 철갑상어 고기와 함께 거무죽죽한 철갑상어 알이 유리잔에 담겨서 나왔다. 전골과 구이로 요리해 나온 고기는 다른 상어고기와 달리 맛이 꽤 좋았다. 철갑상어는 목 단계부터 상어와 전혀 다른 물고기였다.
그러나 캐비아는 거무죽죽한 색깔 때문인지 별로 입맛을 당기는 모양은 아니었다. 조리장이 여러 가지 조리 방법을 고민하다가 60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고 적당한 비율로 소금에 절인 다음 약한 술로 씻어서 가져왔다.
이민호가 심호흡을 한 다음 은수저로 철갑상어 알을 한 숟가락 펐다. 입에 넣기 직전에 옆에서 지켜보던 민지가 숟가락을 빼앗았다.
“독이 들었어요!”
“어? 은수저 색깔이 아주 살짝 변했네.”
잠시 큰 소동이 일어났으나 철갑상어 알의 산도가 높아 은수저에 산화가 일어난 탓이었다. 소동이 가라앉은 다음 나무수저를 이용해서 철갑상어 알을 떠먹었다. 씹히는 맛이 그럭저럭 괜찮았다.
“흠. 뭐 괜찮네.”
“괜찮네요. 간식으로 빵에 발라 먹어도 좋겠어요.”
철갑상어 캐비아가 그럭저럭 좋은 평가를 얻었다. 그러나 일부러 찾아서 먹지는 않을 것 같은 맛이었다.
그리고 국왕이 일부러 가난한 서민 음식을 먹었다 해서 동해국 여진족들에게 좋은 평판을 얻었다. 이 시대에 철갑상어는 너무 흔했다. 그리고 성장이 너무 느려서 인공양식을 하기에는 부적합한 어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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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에서라도 캐비어를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