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12 78. 교육과 연구 =========================================================================
78. 교육과 연구
10월 중순에 이민호가 왕도로 돌아왔다. 북미와 호주, 아프리카 등에서 진행되는 일을 검토하고 결정을 내리면서 보름이 훌쩍 지나갔다. 아열대 기후인 고산국 왕도도 그 사이 어느새 가을로 접어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북미와 호주 개발을 지원하느라 관리들이 지독히 바쁘게 보냈다. 그 와중에 여진족 땅과 몽골, 서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일을 연속 떠맡게 되면서 조정 관리들 얼굴이 다들 누렇게 떴다.
그러나 6조 판서들에게 실무를 대폭 이관한 다음부터 총리 혜영은 예전의 청초한 모습을 되찾았다. 부처 업무를 직접 지시하는 경우가 줄어들고 이제는 부서 간 업무조정 정도만 맡았다. 중견 관료들의 능력이 늘어나면서 예전처럼 혜영이 직접 챙겨야 할 일이 줄어든 탓이었다.
“다들 상태가 영 안 좋아. 일요일만이라도 좀 쉬게 하지 그래?”
“총리령을 몇 번이나 내렸는데도 그래요. 일에 치여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관두는 관리들이 너무 많아요.”
일반 백성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고 농부들도 주말에는 쉬엄쉬엄 일하는데 관리들만 죽어라 일하는 꼴을 보니 안쓰러웠다. 석 달에 한 번 꼴로 신임 관리들을 뽑았으나 일은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관리들이 힘들다고 관둘까 겁난다. 2년에 한 번씩 자리를 옮기게 해. 그리고 새 자리로 가기 전에 한 달 동안 유급휴가를 주면 어때?”
“그게 좋겠어요. 요즘 관리들 숫자가 너무 많아진 것 같은데 괜찮겠어요? 청소부도 관리라고 하니 백성들이 적응을 못해요.”
“공공의 업무를 하는 자들은 모두 관리라고 할 수 있어. 청소부도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인데 뭐 어때. 인원 충원에는 문제가 없지?”
고산국에 천한 일이란 없었다. 그리고 청소부는 어느 도시에나 반드시 있어야 하는 직업이었다.
“예. 군인처럼 외국에 원정 갈 일이 없이 나라에 봉사하는 일로 인식돼 있어요. 힘든 일이니만큼 녹봉을 충분히 주고 있어요.”
고산국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관리 채용에 관련된 비리가 전혀 없는 나라였다. 인사 청탁은커녕 오히려 고위 관리들이 쫓아다니고 인재들은 도망가기에 바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 시기에 취업설명회를 열면 6조와 다른 관공서에서 관료들이 몰려와서 부서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했다. 신문 광고 절반이 관리 모집 광고로 채워졌다. 그러나 여기에 철도와 수도, 전기, 전화 등 국영기업들까지 인력 모집에 가세하면 행정관리 지원자 숫자가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일이 쉬워야 더 많은 관리들이 지원할 텐데, 그 반대라서 계속 악순환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했으면 바로 일을 해야지, 한두 해씩 놀겠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주인님 때문이라고 말은 안 하겠어요.”
“좋잖아. 학교 졸업하고 나서 백수로 1, 2년 탱자탱자 노는 것. 혜영이도 부럽지?”
“부러워 죽겠어요.”
그러나 청년들이 완전히 넋 놓고 노는 것은 아니고 할 일을 탐색하는 시기였다. 기본소득 모은 것으로 외국에 여행도 다니고, 따로 책을 사서 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학에서 공부를 지나치게 많이 시킨다고 소문이 난 탓에 대학진학률이 3할 정도로 낮은 것은 문제였다. 유학생이 절반 가까이 돼서 대학을 세워서 괜히 외국 유학생들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았다.
물론 유학생들 절반 이상이 고산국에 귀화하고 있으니, 대학에서 백성을 만드는 셈이었다. 그러나 조선이나 고산국 태생이 아닌 유럽인 출신은 고산국 백성이 되더라도 전공에 제한을 받았다.
“공학이나 화학 계열은 여전히 유학생들에게 금지죠?”
“물론이야. 우리가 많이 앞선 분야니까 외국과 협력할 이유가 없어.”
“의학과 약학은 훨씬 앞섰는데도 외국인 학생들에게 공개했잖아요.”
“그거야 더 많은 사람을 살리자는 뜻에서 그런 거지. 약이나 의료기술, 새 곡식 품종은 얼마든지 공개해도 돼.”
농학, 그 중에서도 육종학이나 인공양식 분야는 고산국이 아예 독보적이었다. 새로운 변이체를 발견해서 고정시키고 새 품종을 만드는 것은 세계의 모든 농민과 유목민들이 대를 이어 하던 일이었다. 그러나 고산국에서는 새 품종 개발하는 일을 단기간에 끝냈다. 당분을 대량으로 축적하는 새로운 감자 품종을 만들어낸 곳이 바로 농업연구소였다.
이 시대에 세포융합을 하는 기술을 가진 나라는 고산국이 유일했다. 서로 다른 세포의 원형질막을 제거한 다음 약품이나 전기 자극, 혹은 기계적 자극을 가해 세포를 합쳐 하나가 되게 하는 기술이었다.
농업연구소 학자들이 현미경을 통해 보면서 손으로 조작하는 작은 기구로 세포를 만지는 꼴을 보고 이민호가 해보라고 권했었다. 농학자들이 줄기에는 토마토, 땅속에는 고구마와 감자가 달리는 식물을 만들 꿈에 부풀어 있었다. 아프리카왕국에서 고구마 외에 새로운 농작물을 달라고 독촉하는 바람에 연구 개발 속도가 올라갔다.
“유럽 국가들은 왜 우리 무기를 따라서 만들지 않나요? 하다못해 부싯돌 식 격발장치를 붙이거나 총열에 강선이라도 깎아야 하지 않아요?”
“유럽인들이 멍청해서. 아니면 총기 발전에 관심이 없어서.”
“설마요.”
“우리 무기를 보더라도 그들이 새로 배울 것은 없어. 수석식 격발장치나 강선은 이미 유럽에 다 있는 기술이거든. 그런 발상이나 기술이 있다 해도 현재 실전에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은 뭘 뜻하겠어?”
수석식 격발장치, 강선과 탄피식 탄환, 후장식 장전 등은 이미 지난 세기부터 유럽에서 연구 중인 방식이었다. 고산국에서 총기제작에 사용된 기술이 유럽인들이 보기에 전혀 새로운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실용성이 떨어지는군요.”
“그렇지. 그 발상을 실용화하려면 수십 년이 더 들어갈 거야. 기껏 완성한다 해도 다른 이유 때문에 일반화되기도 어려워. 그리고 우리 것에서 새로운 요소를 보고 따라 한다 해도 금방 뚝딱해서 만들어지는 게 아니야. 뇌관이나 무연화약 같으면 감도 못 잡고 있을 거야.”
실제 역사에서는 1510년부터 톱니바퀴식, 즉 차륜식 발화장치가 독일에서 개발됐으나 무겁거나 제작비가 비싸거나 고장이 잦아서 제작과 판매에 어려움을 겪었다. 프랑스에서 1580년에 개발을 시작한 수석식 격발장치는 17세기에 들어서서도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완성됐다. 그러나 여전히 단점이 많은 격발 방식이라서 흑기병의 권총 외에는 널리 채용되지 못했다.
강선은 16세기에 발견됐으나, 당시 총알이 구슬 모양이라 탄의 회전에 적합하지 않았고 장전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그래서 총열의 강선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에 가서야 일반화됐다. 후장식 소총도 1841년 프러시아군이 드라이제 소총을 채용하면서부터 확산됐다.
아이디어가 있고 기술이 있더라도 실전에 사용될 만큼 실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리고 실용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술자들의 피와 땀, 자본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기껏 만들어내는데 성공하더라도 문제가 많아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 또한 정치가나 군 수뇌부에서 채용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더 이상 발전은 없었다. 총기가 외국으로 빠져 나갈 가능성을 줄이려고 노력하면서도, 그것이 금방 복제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민호는 알고 있었다.
“경찰 충원은 잘 돼?”
“예. 백성들을 직접적으로 지켜주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라 경찰로 인식되고 있어요. 여자와 아이들이 몹시 좋아해요.”
“잘 됐네. 경찰은 군대의 예하 부대가 아니야. 백성들을 위해 할 일이 많겠지.”
“백성들은 경찰을 국왕전하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신랑감으로 인기가 좋겠군. 소방관은?”
군대가 외국 원정 위주로 작전을 하기에 본토를 비워놓으면 항상 불안했다. 그래서 본토 방비는 바다는 해안경비대, 육지는 경찰에 맡길 작정이었다. 그런 이유로 경찰 병력을 충분히 여유 있게 운용했고, 덕택에 본토 치안이 무척 좋아졌다.
“기존 소방 조직들을 통합해서 지역별로 소방대를 조직하고 있어요. 소방관에게 구조업무는 물론 사법권까지 맡기면 너무 격무에 시달리지 않을까요?”
“수사는 경찰에 넘겨야지. 소방과 재난 대비를 제대로 하려면 사법권을 갖고 있어야 해. 권한이 없으면 무시당하기 쉽고, 그럼 백성들 안전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거든.”
화재 진압 중인 소방관에게 폭력을 휘두르거나 소방차의 진입을 가로막는 미친 인간들을 경찰에 맡기지 않고 소방관들이 바로 체포하도록 했다. 소방이나 인명구조 작전 중에 한해서 소방관들의 권한은 경찰이나 군대를 능가했다. 심지어 각종 재난 시에는 지역 경찰이나 민병대 조직에 대한 지휘권마저 장악했다.
1600년 12월, 강철 튜브 구조 뼈대에 알루미늄으로 외피를 만든 비행기가 처음으로 이륙했다. 주익이 복엽기나 삼엽기가 아닌 단엽기, 그 중에서도 날개가 동체 아래쪽에 달린 쌍발 저익기가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이민호는 관제탑에서 항공대장 이면과 함께 뭉툭하게 생긴 프로펠러 비행기가 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때, 항공대장?”
“너무 기뻐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다른 나라에 공군이 없는 이 시대에 고산국에 필요한 기종은 전투기나 폭격기가 아니라 정찰기, 수송기, 여객기, 해상초계기 등이었다. 기동성보다는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작전반경이 클수록 좋았다.
시험비행에 나선 비행기는 30인승 정도 되는 작은 여객기였다. 그러나 12인승에 불과한 기존 수상비행기보다 훨씬 컸다. 작고 빠른 전투기 개발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만들기 쉬운 것부터 손을 댔다.
추진기관은 로터리 엔진이나 직렬형 엔진이 아니라 터보샤프트 엔진을 약간 바꾼 터보 프롭이었다. 양쪽 날개에 프로펠러가 돌아가지만 사실상 제트기나 다름없는 강력한 쌍발엔진을 장착한 비행기가 금방 고고도로 올라갔다.
“어? 안 보입니다. 전파탐지기에서도 사라졌습니다.”
“항공기용 전탐기를 따로 만들어야겠어. 아! 비행운이다.”
이민호와 이면 등이 쌍안경을 들고 하늘을 살폈다. 높은 하늘에 하얀 구름 두 줄기가 일직선으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비행기에서 나온 구름이라서 비행운이라고 명명하셨습니까, 전하?”
“맞잖아.”
시험 비행기가 고고도로 비행 중이라 잠시 전탐기에 잡히지 않은 것뿐이었다. 관제탑 옥상에 달린 것은 해군 함선용이나 기상관측용과 똑같은 전파탐지기라서 일정 각도 이상을 탐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관제탑에서 국방연구소 선임연구원이 시험비행기 부조종사와 통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시험비행은 순조롭게 진행돼 3천 미터 상공까지 도달했고 속도는 시속 600km를 넘었다. 아직 최고 고도나 속도에 도달하지 않았다.
“선임연구원! 수고했소. 대성공이오.”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설계 단계부터 세세히 지도해주신 덕택입니다.”
관제탑에서는 이번 항공기 개발에 관련된 연구원들과 이민호가 서로 공치사하기 바빴다. 이민호는 생각 같아서는 관제탑에 샴페인이라도 돌리고 싶었다.
사실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추진기관을 큰 용량의 터보 프롭으로 바꾸고 외피의 재질을 알루미늄으로 바꾼 것뿐이었다. 기술 향상에 시간이 많이 드는 것은 오히려 항공역학이나 조종술로서, 고산국에서는 복엽기와 수상비행기를 개발한 이래 꾸준히 발전해왔다.
한참 지나서 시험 비행기가 고도를 낮춰 활주로에 접근했다. 그러나 관제탑 확성기를 통해 시험 비행기 조종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 비상사태! 비상사태! 앞바퀴가 내려오지 않는다. 동체 착륙해야 하는가?
“관제탑 옆으로 비행하라. 눈으로 직접 확인하겠다.”
선임연구원이 지시하자 비행기가 관제탑 가까이 지나갔다. 거리가 충분히 먼데도 관제탑 전체에 굉음이 울렸다.
시험 비행기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고, 지상에서 시험하는 동안 크고 작은 사고가 여러 번 발생했다. 그러나 비행 중에 발생한 사고는 자칫 인명피해를 불러올 수 있었다.
비행장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급히 소방차와 의무차가 활주로에 출동해 동체착륙 이후 발생할 화재를 진압할 준비를 갖췄다.
“어휴! 잘못하면 시험 비행기를 날려먹게 생겼습니다.”
“항공대장! 조종사 두 명과 항법사가 탔지? 낙하산으로 탈출하라고 해야겠어.”
“어? 아닙니다, 전하! 잠시 기다리십시오. 선임연구원도 봤어요?”
“봤습니다, 항공대장님.”
선임연구원이 시험 비행기에게 관제탑 옆으로 다시 한 번 비행하라고 지시했다. 속도를 늦춘 비행기가 서서히 지나가면서 바퀴가 내려왔는지 다시 확인했다.
“시험 비행기! 확인했다! 앞바퀴는 내려왔다. 앞바퀴 관련 점등신호의 문제일 뿐이다.”
- 그럼 다시 활주로에 진입해서 착륙하겠다.
잠시 후 시험 비행기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이민호가 관제탑에서 내려가 만나보니 조종사들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고생했네. 마지막에 놀랐어.”
“아닙니다, 전하. 비싼 시험 비행기를 못 쓰게 만들까봐서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비행기는 얼마든지 만들어줄 수 있어. 조종사들만 무사하면 돼.”
“예? 예. 전하.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간단한 고장이라서 다행이었다. 이면을 위험한 시험 비행에서 제외시키려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사고란 항상 일어나기 마련이었지만, 시험 비행기의 경우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지금까지 시험 비행사 중에서 순직자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부상자는 꽤 많이 발생했다. 처음 행글라이더 시험 비행 때 이면 등이 부상당한 것부터 센다면 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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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