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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바다의 제국-717화 (666/1,000)

00717  79. 1601년의 일상  =========================================================================

79. 1601년의 일상

봄에 오이라트 부의 토르구트 족이 서 시베리아 우랄산맥 남쪽부터 동쪽까지의 초원으로 이주했다. 30만에 달하는 사람은 물론 천막과 수레, 말과 가축들까지 기차에 실어 날랐다.

울란우데 역을 지나면서 모든 토르구트 부족원들이 기본적인 예방접종을 받았다. 그리고 매일 저녁 기차가 역에 설 때마다 최대한 잘 먹였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분유가 무제한 공급됐다.

단기간에 이렇게 대규모 이동을 한 사례가 없었기에 이민호와 고산국 관료들도 꽤나 긴장한 채로 수송 작전에 임했다. 이주지에는 이미 우물 수백 곳을 파고 토르구트 유목민들이 겨울을 지낼 남쪽 영지에는 외양간과 창고 건물도 지어놓았다.

“3개월간의 이주 기간 중에 사망자가 1,200여 명이나 발생했어요.”

“인상 풀어. 민영이 잘못이 아니야. 내가 예상한 수치보다 사망자가 훨씬 적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몽골족 30만 명 중에서 매년 1만 명 정도가 자연적으로 죽잖아?”

평균 수명이 짧은 시대였다. 이 시대의 몽골초원 남서쪽, 혹은 현대의 신강 이리 지역에서 토르구트 족이 출발할 때부터 계산한다면 훨씬 많은 사망자가 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이주하는 동안에는 노환이나 병으로, 혹은 사고로 죽은 자가 극히 적었다.

“우물을 미리 파놓아서 정착은 잘하고 있어요. 다만 넓은 지역에 흩어져 살다 보니 서로 연락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말 타고 다니면서 잘 하겠지. 그리고 몽골족 30만이면 방어전에서 기병이 최대 6만이 나온다 했으니 충분히 지킬 수 있을 거야. 그 동안 수고했어.”

민영은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북방여공작의 일을 떠맡았다. 그 동안 민희가 많이 도와줬지만 이미 민희는 왕성을 지키는 일에 더 특화되어 있었다.

“저 언제 호위대로 복귀할까요?”

“일단 아기를 키워야지. 북방 일만으로도 바쁘지 않아?”

“바쁘긴 하지만 주인님 옆에 있고 싶어서요.”

“그럼 나도 좋겠지만, 그래도 젖먹이 때는 너무 유모에게만 맡기지 마.”

눈 밑에 다크 서클이 내려앉은 민영을 끌어당겨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마에 입을 맞추는 순간 그 동안 민영에게 쌓였던 스트레스가 확 날아간 것 같았다.

“네. 헤헤!”

“일을 많이 맡겨서 미안해. 이제 좀 쉬어. 내일 찾아갈게. 알았지?”

“네? 내일 밤은 제 차례가 아닌데요.”

민영을 품에 안고 있자니 바로 안고 싶었지만, 집무실 보이지 않는 곳에 호위가 매복하고 있었다. 이민호와 민영이 동시에 국왕 전용 책상으로 잠시 시선을 옮겼다.

“험! 낮에 말이야.”

“네에! 기다릴게요.”

민영을 활짝 웃으며 집무실에서 나가고, 이민호는 책상에 쌓인 서류들을 훑었다. 어느덧 6월이 지나 여러 지역에서 보낸 2/4분기 보고서였다.

토르구트 족이 정착 중인 서 시베리아를 빼고는 대부분 원활히 잘 돌아가고 있었다. 호주 칼굴리 금광에서 본격적으로 금이 채굴되고 북미에서는 미시시피 강의 북서쪽 지류들을 탐사하며 원주민들을 평화적으로 복속시켰다. 대서양 무역 규모가 계속 커지면서 교역량과 이익에서 매년 신기록을 갱신했고, 덴마크의 서인도 회사는 북해와 발트 해를 주름 잡았다. 네덜란드가 대서양의 해상운송 사업에 뛰어들면서 고산국에 매우 우호적으로 접근했다.

덕택에 고산국의 능력 대부분을 토르구트 족에 대한 지원에 집중할 수 있었다. 토르구트 족이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서 시베리아도 평온해질 것 같았다.

“전하.”

“왜?”

책상 밑 널찍한 공간에 신입 호위 지윤이 들어가 있었다. 침전의 침대 밑에 호위가 고정 배치되는 것처럼 집무실 책상 안에도 작은 총구멍을 내고 호위가 배치됐다.

예전에는 이런 상황이 야릇하게 느껴졌으나 이제는 전혀 개의치 않을 정도가 됐다. 다만 다리 밑에 누가 있다고 생각하면 불편한 정도였다.

“선거로 뽑힌 사람들이 저지르는 추태를 살펴보세요.”

“추밀원 의원들?”

“그들은 왕도에 있으니까 상관없는데, 북미나 호주의 시의회 의원들이 문제에요.”

“그래? 잠시.”

정보국에서 올린 보고서를 찾아서 읽어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작년에는 눈치 보느라 조용했는데 2년차에 들어선 다음부터는 의원들이 기고만장해져서 제멋대로 조례를 제정했다.

“시의회 의원이 탄 마차가 지나가면 모든 백성들이 하는 일을 멈추고 부복해야 한다고? 나한테도 하지 않는 절을 시켜? 어이가 없네.”

“국가반역죄와 국왕모독죄로 당장 전원 체포할까요?”

“조례 제정권을 줬으니 일단 내버려두고 정보국을 통해서 조사를 좀 더 하라고 해야겠다. 올해는 투표율이 3할도 안 되는구나. 그런데 너 뭐하니?”

책상 밑을 내려다봤더니 예쁘장하게 생긴 호위 지윤이 이민호의 양다리에 두 팔을 얹고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 자세에서는 가슴이 이민호의 중심 위에 놓였다. 아직 승은을 입지 않은 신입 호위치고는 꽤나 도발적인 자세였다.

“진정하시라고요. 헤~”

“근무 시간 중에 이상한 짓하지 마.”

“지금 집무실에는 아무도 없어요. 꺄아~ 볼록 솟았어요. 어떡하죠?”

“휴우~ 어떡하긴. 세운 사람이 책임져야지.”

“실제로 해본 적은 없지만 연습은 좀 했어요. 서투르더라도 이해해주세요.”

이민호는 농담한 것인데 지윤이 진담으로 알아먹었다. 혁대가 풀리고 단추가 열렸다. 밑을 봤더니 지윤이 손가락 두 개로 이민호의 그것을 살짝 잡은 다음 차마 용기를 못 내고 있는 듯했다.

“자신 없으면 그만 둬. 창피하다.”

“아니에요. 신기해서 구경한 거여요.”

검은 머리가 아래를 가리고, 뜨거운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끝에 촉촉한 것이 살짝 닿았다. 지윤이 한참 혀로 맛을 보더니 점점 깊숙이 삼켰다. 그리고 머리를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 잘한다.”

지윤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가벼운 하복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가슴을 만졌다. 직장 내 문란한 성풍속도를 보는 것 같았다.

“전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오시오.”

하필 이때 최 선생이 제본한 책 몇 권을 갖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그 사이 지윤은 움직임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오늘은 호위가 없나요? 전하의 집무실에 들를 때마다 느꼈던 날카로운 기세가 사라졌어요.”

“허허! 최 선생은 왕실의 식구나 다름없는데 호위들이 예민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겠소?”

최 선생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민호가 진땀을 흘렸다. 지윤이 놀라서 이민호의 것을 살짝 깨물었다가 더 놀라서 온몸이 뻣뻣이 굳었다. 호위들은 최 선생을 강력한 경쟁자로 여긴 탓에 그 동안 견제와 질투가 장난 아니었다.

“중학교 과정을 먼저 완성했어요. 지역사와 기술사, 문화사를 조화시켜 서술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담당 교수님들이 요약을 잘해주셨어요.”

“오! 수고 많았소. 지도와 그림이 많이 들어가서 어린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겠소.”

이민호가 책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내연기관과 터보샤프트의 투시도가 그림으로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국방연구소에서 기관 설계도를 구했소?”

“기관 겉을 보면서 내부 모습을 추정한 거여요. 혹시 잘못 됐나요?”

“기관을 직접 본 사람은 내부에서 부품이 작동하는 방식을 추정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너무 정확한 것 같소. 우리 고산국이 외국에 비해 앞선 것은 과학기술이오. 나중에는 다른 나라에서 모방하겠지만, 우리가 나서서 먼저 공개할 필요는 없소. 나는 외국과 기술 격차가 어느 정도 유지되길 바라고 있소.”

“죄송해요. 당장 지울게요. 어떤 벌이라도 받겠어요.”

“벌하자고 한 이야기가 아니요. 최 선생은 고산국의 교육 분야를 맡은 최고위 관리요. 국가정책을 따라줄 의무가 있소.”

“명심할게요, 전하.”

항상 완벽한 일처리를 추구하는 최 선생이 허둥거리는 모습은 처음 봤다. 그 외에 역사 교과서 내용은 아주 좋았다. 다만 이민호의 업적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이 낯 뜨거웠다.

특히 몇몇 전쟁에서 묘사된 이민호의 무위는 최소한 소드마스터였다. 이민호가 항상 뒤에서 지휘만 한 것이 아니라 가끔은 말을 타고 선두에서 싸우기도 했으나 교과서에 묘사된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전쟁이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것은 분명한데, 너무 전쟁 위주로만 묘사하면 지겨울 것 같소. 역사 교과서를 읽는 학생들이 흥미가 떨어지지 않도록 다양한 소재를 언급하면 좋겠소. 중학교 교과서는 이미 완성됐으니 고등학교 교과서를 저술할 때 참고해주시오.”

“예, 전하. 중학교 역사교과서도 수정을 할게요.”

“새 학기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많이 고칠 필요는 없소.”

이민호가 직접 붙잡고 교과서를 썼다면 몇 년 걸렸을 것이다. 그러나 최 선생은 역사 관련 국내외 교수들과 협의해서 빠른 시간 내에 최종 교정본에 가까운 교과서를 완성했다.

“험! 그런데 언제 왕궁으로 거처를 옮길 거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일만 끝나면요.”

최 선생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아랫도리 사정만 괜찮았다면 이민호가 일어나 최 선생을 품에 안아주기라도 했겠지만 현재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최 선생은 유능해서 끊임없이 일을 맡을 것이오. 더욱이 우리 같은 공적인 일을 맡은 사람들은 업무 중에 짬을 내서 개인적인 일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오. 그러니 며칠 안으로 입궁하도록 하시오.”

“어명을 받들겠습니다, 전하.”

정식 혼인은 아니었기에 조선에서 후궁을 들이는 방식으로 모든 혼인 절차가 약식으로 진행됐다. 그러다 보니 입궁 날짜가 정해지지 않아서 최 선생에게 맡기기로 했다.

최 선생은 군사력이나 대규모 예산을 다루는 직책은 아니었으나 백성들의 교육을 책임 진 중요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앞으로도 최 선생 이상의 적임자를 찾기 어려울 것 같고,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기도 곤란해 조정 회의를 거쳐 결국 입궁하기로 결정됐다.

예조판서가 노처녀 딸이 시집가게 됐다며 기뻐하면서도 판서 직을 사직할 것을 청했다. 그러나 이민호가 그에게 유임할 것을 단호히 종용했다.

예조판서는 조선에서 중인 출신이라 실무를 주로 맡았었고, 다른 판서나 고위 관료들과 달리 고지식한 선비 타입이었다. 명나라와 조선 등 유교권 국가의 의전과 예절에 익숙해야 할 예조판서에 가장 적임자였고 일도 잘했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사피예 술탄이 예조판서와 바람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하렘의 여자 권력자에게도 쉽게 접근했다.

“지윤아. 괜찮아?”

“푸하! 숨 막혀 죽을 뻔했어요.”

“집무실에서 일 안하고 쓸데없는 짓거리하니까 벌 받았나보다.”

그러나 지윤은 반성의 기색 없이 이민호의 것에 뺨을 비벼대고 있었다.

“저는 최 선생님이 부러워요.”

“뭐가 부러워?”

“최 선생님은 혜영 총리님이나 혜진님, 민희님과 민영님처럼 한 분야를 맡은 분이잖아요. 얼마나 능력이 출중한지 가늠할 수가 없어요.”

처음에는 인구가 적어서 후궁들에게 여러 가지 일을 맡겼다. 그러나 이제는 충분히 시간이 흘렀는데도 더 나은 사람을 찾기 어렵게 됐다. 어쩌면 환갑 넘길 때까지 격무에 시달리게 될지도 몰랐다.

“그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열심히 일하다 보면 능력은 자연히 쌓이게 된단다.”

“다른 분야는 훌륭한 분들이 다 자리를 잡은 것 같아요. 그럼 저는 이쪽 분야나 잘 할래요.”

“처녀가 할 말이 아닌 것 같다만, 기대하마.”

이민호가 보고서를 읽는 사이 지윤이 상의를 벗고 본격적인 공략에 나섰다. 말랑한 가슴 사이에 그것을 끼우고 혀와 입술을 사용하는 고난도 묘기도 선 보였다. 이민호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주인님. 남자가 여자에게 그러면 안 돼요.”

“고맙다만 찹찹거리는 소리는 내지 마라. 그런데 뭘?”

예민해진 부위에 혀로 강한 자극을 주면서 지윤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최 선생님과 정략결혼을 할지라도 애정과 관심을 표해주셔야 기뻐할 거여요.”

“정략결혼 아닌데? 난 최 선생이 좋은데?”

“아유~ 그 말씀을 제가 아닌 최 선생님께 하시라고요.”

졸지에 등 떠밀려 프로포즈하게 생겼다. 그러나 최 선생은 최 선생이고, 지윤도 역시나 소중한 여자들 중의 하나였다. 지윤이 물로 입을 헹굴 때까지 기다렸다가 껴안고 진하게 입맞춤을 해주었다. 어떻게 보면 호위들도 불쌍한 여자들이었다.

============================ 작품 후기 ============================

혜진은 이미 승은을 내렸는데 대충 언급하고 넘어갔었습니다.

1605년까지는 큰 사건이 별로 없어서 금방 지나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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